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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져도 상관 없지만, 비정규직 명찰만큼은 자식에게…"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는 '法'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이 9일째 지속되고 있다. 이 파업은 이미 지난주부터 아산공장과 전주공장으로도 확대되었으며, 이번 주부터는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가세할 예정이다. 울산과 아산공장은 거의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현대차 원청 관리자들과 용역 경비들이 비정규직 파업노동자들을 공격하고 있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골절상 등 중상을 입어 병원에 실려갔다.

놀랍게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얼마나 심각한 폭력탄압 앞에 서있는지에 대해 많은 언론이 침묵하고 있다. 지난주 토요일에는 폭압적인 울산공장 현실을 고발하며 4공장 비정규직 조합원이 분신 자결을 기도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게 진행되고 있는데도 현대차는 대화가 아니라 탄압으로 일관하고 있다. 검찰·노동부·중노위 등 정부 기관들 역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불법파업'이라 규정하고 현대차의 탄압에 힘을 싣는다.

그동안 현대자동차와 관련한 수많은 글을 써왔지만, 이미 현대차 비정규직 불법파견 문제가 전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이 문제가 어떤 역사적 배경과 정치경제적 현실을 담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비정규직 인생사 자체가 '잔혹사'이지만 그중에도 글로벌 톱 4위를 달리는 완성차 메이커 현대차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풀지는 향후 한국 사회 비정규직 문제 해법의 기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먼저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한 '불법파업' 논란에 대해 살펴본다.

4년 전이나 지금이나 중노위의 '위법한 판정' 그대로

"참가인(현대차)이 원고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의 주체인 사용자라고 볼 수 없어 이 사건 재심판정이 적법하다고 판시한 원심의 위 잘못은…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할 것" (지난 7월 22일, 대법원 판결문 중에서)

대법원은 위 내용과 같이 현대자동차가 사내하청 노동자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의 주체인 사용자가 된다고 결정하였다. 부당해고의 주체가 될 수 있다 함은 근로기준법상 사용자의 지위에 있다는 말이고, 부당노동행위의 주체가 될 수 있다 함은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의 지위에 있다는 말이다. 노조법상 사용자인 원청이 교섭과 쟁의행위의 상대가 됨은 당연하다.

ⓒ프레시안(김봉규)

위 대법원 판결의 최초 출발점은 현대차 비정규직 해고자들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에 대해 중노위가 패소 판정을 내린 사건이었다. 2004년 12월 노동부가 "현대차 1만여 사내하청 전원 불법파견" 판정을 내리자, 울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불법파견 철폐'를 내걸고 파업투쟁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80여 명의 노동자들이 해고되고 말았다. 해고자들은 원청인 현대차를 상대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으나 중노위는 "원청이 사용자가 아니다"라는 취지로 이를 각하했다.

중노위 재심판정에 불복한 해고자들은 행정법원에 '중노위 재심판정 취소청구소송'을 제기했지만 행정법원과 고등법원은 중노위 재심판정이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고등법원에서도 패소한 이들은 긴 소송기간과 엄청난 소송비용 문제로 고심 끝에 2명의 해고자만 대법원에 상고하는 대표소송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4년여 법정공방 끝에 지난 7월 22일 대법원은 애초 중노위가 "현대차는 사용자가 아니다"라고 했던 재심판정 자체가 위법한 판정이었으며, 따라서 중노위 재심판정이 취소되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4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는 무려 2000여 명이 잘려 나갔고, 해고된 노동자들은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중노위의 위법한 결정이 이런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그런데 현대차 비정규직 3지회가 지난 11월 5일 중노위에 쟁의조정신청을 넣은 뒤, 냉각기간 10일이 지난 11월 15일 중노위는 또다시 "현대차는 사용자가 아니다"라며 조정신청 각하 판정을 내리고 말았다. 대법원이 4년 전 중노위가 내린 판정이 '위법한 것'이라고 했음에도 말이다. 그뿐 아니라 중노위는 "다른 방법을 검토해보라"는 권고까지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다른 방법'이란 하청업체와 교섭을 추진해 보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노동조합에게 '불법파견업체'와 교섭을 하라는 말인가? 이건 중노위가 앞장서서 불법행위를 조장하고 있는 꼴이다.

불법파업 여부도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기다려야 하나?

정부가 중시한다는 '법과 원칙'은 자본가들 앞에만 서면 사라지고 만다. 2004년 노동부가 현대차 울산·아산·전주공장의 사내하청 전원에 대해 '불법파견'을 판정했지만, 6년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 명의 자본가도 처벌된 적이 없다.

자본가들의 불법파견에 대해 '공권력'은 한번도 작동한 적이 없다. 아니 그 반대다. 노동부가 불법파견 판정을 내린 후 현대차 원·하청 자본가 100여 명을 고발하자 검찰은 무려 2년 가까이 지난 후(2007년 1월)에 '불기소 처분'을 내려 자본가들에게 면죄부를 줬다. 심지어 올해 7월 대법원이 현대차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내렸음에도 검찰이 자신의 잘못된 판단을 반성했다는 얘기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노동과세계(이명익)

반대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에 '공권력'의 작동은 무자비할 정도다. 대검찰청 공안부는 22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비정규직 파업을 '불법파업'으로 규정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키로 했다. 또한 "울산공장 비정규직 노조의 불법파업 관련자에 대한 구속, 입건 등 형사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무부서인 노동부가 불법파견으로 규정하고 고발까지 한 사건에 대해서는 무려 2년 가까이 질질 끌다가 '봐주기 수사'로 끝낸 반면, 현대차 비정규직의 파업에 대해 '불법'으로 규정하고 구속·입건 등의 절차를 진행하는 것은 불과 1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노동부가 불법파견으로 판정한지 6년 동안 사측은 단 한 명도 입건조차 되지 않은 반면, 파업으로 첫 번째 구속노동자가 나오기까지 딱 5일 걸렸다.

결국 검찰과 노동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셈이다. "파업은 불법이다. 억울하면 소송으로 해결하라." 2~3개월 후에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올 예정이지만, 판결이 확정되어도 현대차는 "이 판결은 한 명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라며 버틸 것이 분명하다. 결국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소송기간만 족히 4~5년이 소요될 대법원 판결을 받아오라는 것이다. 이게 정부가 말하는 '법과 원칙'의 실체다.

그렇다면 이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이 불법인지 여부도 대법원까지 가보자. 앞으로 4~5년은 족히 걸리더라도 대법원에서 '불법파업'이라고 확정 판결나기 전까지는 일체의 탄압과 처벌을 중단해야 할 것이다. 2004년에 노동부가 불법파견이라 판정했지만 언제 한번이라도 현대차의 불법파견 행위를 중단시킨 적이 없지 않던가? 검찰과 노동부, 현대차의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지 않았으니 기다려야 한다"는 논리대로라면 불법파업인지 여부도 대법원 확정판결 전까지는 유보하는 것이 '공정'하다.

노동자들에 대한 구속과 해고도 대법원에서 확정판결 나기 전까지는 유보하라.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이 나거나 '적법한 해고'라는 확정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어떤 노동자도 구속되거나 해고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기다리라"는 것이 '법과 원칙'이라면 말이다. 게다가 현대차 불법파견에 대한 판결은 뒤집히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음에도 '기다려라'고 하는 마당에, 이번 파업이 불법인지 합법인지 여부는 복잡한 법률 논쟁을 거쳐야 할테니 검찰·노동부·현대차도 기다림이 마땅하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음주운전에 대해 '면허정지' 행정처분을 내리는 것도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유보함이 마땅하다. '불법파견' 업무에 대해 노동부장관은 업체를 폐쇄시킬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이 있음에도 지난 6년 동안 업무정지 명령 한번 내린 적이 없지 않았던가!

▲ 컨테이너로 막힌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정문 앞 ⓒ프레시안(김봉규)

불법파견 업무를 방해한 것도 죄가 되나?

현대차가 이번 비정규직 파업에 대해 60여 명의 노동자를 고소·고발 조치했는데 핵심적인 혐의는 이른바 '업무방해'이다.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형법상 '업무방해죄'를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국제노동기구(ILO)의 수차례 권고가 있었지만, 한국 정부는 국제사회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스탠다드'를 전혀 지키지 않고 있다.

국제 사회의 권고 여부를 떠나서, 이번 파업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방해한 업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불법파견 업무'이다.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는 파견업무가 원천적으로 금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차 원·하청 자본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6년 이상 '불법파견 업무'를 지시해왔다. 그것도 하루 8시간 정취에 기본 잔업 2시간을 얹고, 주야맞교대에 휴일에까지 불법파견 업무를 시켰다.

11월 15일, 마침내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렇게 선언했다. "더 이상 불법파견에 나의 노동을 제공하지 않겠다!" 현장에서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자본의 불법행위에 일조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불법파견 업무를 방해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매일매일 눈앞에서 버젓이 행해지는 불법행위를 가만히 두고 보라는 것인가? 매시각 매초 불법파견이 행해지고 있기 때문에, 불법파견의 직접 피해자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불법파견 현행범'을 체포할 권리도 합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다.

상사의 업무지시가 '불법·부당한 것'일 경우 그 업무지시를 거부할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다. 불법·부당한 업무지시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한다면 당연히 그것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는 수많은 판례가 존재한다. 하물며 대법원에서까지 '불법' 파견이라고 규정한 마당이 아니던가! 그런데 정부와 검찰은 불법파견 업무를 방해한 것을 두고 '업무방해'라는 자본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도대체 왜 '법과 원칙'이란 잣대는 자본가와 노동자에게 전혀 '공정'하지 못하게 적용되고 있을까? "정부와 검찰은 무조건 현대차 편만 들고 있다"는 비정규직 파업노동자들의 주장을 빼놓고서는 논리적 설명이 어렵다.

비정규직 명찰, 우리 세대에서 떼어내자

이러한 상황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노동자들은 '불법파업' 공세가 정당성을 상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황이 이렇게 흐르자 현대차 강호돈 부사장은 "현대차 사내하청 업체 근로자 4∼5년차 평균연봉은 4000만 원 수준"이라는 가정통신문을 보내기도 했다. '불법파업' 정치공세로는 상황을 반전시키기에는 쉽지 않다는 점을 현대차 자본도 알고 있는 것이다.

파업농성을 벌이고 있는 한 조합원에게 가정통신문 문제를 물어보았더니,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땜에 열받아 죽겠다며 이런 얘기를 한다. "형님, 내가 벌써 8년차인데 휴일 거의 없이 잔업·특근 뺑이치고 연말 성과금 다 합쳐서 연봉 3000만 원 조금 넘는데이. 통신문 보고 기사 쓴 기자들 모조리 현장에 와서 나랑 1달만 일해보자 카그라. 그런 기사 절대로 못 쓴데이."

여기까지는 여러 언론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내가 더 소개하고 싶은 말은 그 조합원이 이 얘기에 덧붙여서 다음과 같이 힘주어 강조한 얘기이다.

"잔업·특근 뺑이쳐서 번 돈이라 해도 연봉 3000만 원 받는다카믄 비정규직 중에서도 상위 클래스 맞지예. 이보다 못받는 비정규직 천지빼깔로 깔렸다 아입니꺼. 그런데 우리가 현장에서 목이 쉬어라 외치는게 뭔지 압니꺼? 우리는 깨지도 상관없심더. 하지만 이놈의 비정규직 명찰, 절대로 우리 애들한테는 물려주지 말자 이겁니더. 내도 애 키우는 입장에서 왜 안 무섭겠능교? 그래도 우리가 이긴다카믄 전국에서 연봉 1000만 원, 2000만 원 비정규직 동지들 다 힘 받는다 아잉교? 형님."

1000만원. 현대차비정규직지회가 파업투쟁을 시작하며 쥐고 있던 투쟁기금이다. 강호돈 부사장 말이 맞다면 연봉 4000만원 받는 노동자들이 이토록 빈약한 기금으로 바보처럼 파업에 들어간 셈이다. 농성자들에게 도시락 하나 사먹일 수 없는, 아니 살 수 있다 하더라도 용역 경비와 관리자들에게 가로막혀 전달할 수조차 없는 상태다. 식량이나 침낭, 속옷이나 세면도구 등 아무런 준비없이 파업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불편하다.

그런데도 이들이 1주일을 훌쩍 넘어 찬바닥에서 가족 얼굴 한번 보지도 못하며 버틸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노동자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어깨 위에 850만 비정규직 전체의 운명, 아니 우리 세대의 뒤에 따라올 다음 세대 노동자들의 운명이 걸려있다고 믿고 있다. 내 한몸 건사하겠다고 생각하면 구차해지는게 사람 마음이지만, 내 어깨 위에 수많은 노동자들의 운명이 걸려 있다고 생각하면 누구보다 용감해지는게 노동자들 아니던가.

농성장에 부족하게 들어오는 식량이지만 "나는 배불리 먹었다. 어제 니는 김밥 한줄뿐이 못묵었다 아이가"라며 조합원들끼리 양보하며 동료애라는 '마음'만은 그득하다. 한달 80만 원을 받는 비정규노동자들까지도 한푼두푼 투쟁기금을 모아 노동조합 파업기금에 보태고 있다. 어느새 비조합원들도 너무 미안하다며 조합 가입원서를 찾거나 응원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어느 소년이 축사한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6000여 민중을 배불리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에 음식이 가득 남았다는, 성서에 나오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바로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수조 원이 들어가는 현대건설 인수전에 뛰어들면서도 비정규직에게는 단 한 푼도 쓸 수 없다는 정몽구 회장의 머리로는 결코 상상할 수 없는 나눔과 연대의 정신이 이곳에 있기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절대로 질 수 없다.

현대차그룹이 수십억을 들여 용역을 사고, 공권력을 동원해도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결코 막을 수 없다. 왜냐하면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들이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노동자·시민들의 '마음'을 얻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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