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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경찰서 민원실이 한밤중에 북적인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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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경찰서 민원실이 한밤중에 북적인 까닭?

동희오토, 현대차의 '방어 집회'에 '방어 집회신고'로 맞불

8일 오후 8시경 서울 서초경찰서 민원실 앞이 부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민원실 앞 주차장 앞에 60여 명의 무리가 자리를 깔고 앉은 것. 저마다 손에는 집회신고서 양식과 펜이 들려 있었다. 자정부터 접수되는 집회신고 때문이다.

노동조합 조합원부터 대학생까지 다양한 사람이 모였지만 목적은 같았다. 기아자동차의 '모닝'을 생산하는 서산 공장에서 노동조합을 만들려다 해고된 사내하청업체 동희오토 노동자들의 '집회의 자유'를 요구하기 위해서다. 기아차 서산공장에는 정규직이 한 명도 없이 모두 동희오토 내 17개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로만 채워져 있어 '자본엔 꿈의 공장'이라는 말이 나왔었다.

▲ 8일 오후 8시 서초경찰서 민원실 앞에 동희오토 해고 노동자들의 집회의 자유를 요구하는 집회 신고서를 작성하고 있는 이들. ⓒ프레시안(김봉규)

'집회신고 전문 알바' 등장…현대차 본사 앞 집회 사측이 선점해

동희오토 해고자들은 지난 7월 12일부터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에게 직접 복직을 요구하며 서울 양재 현대·기아자동차 본사 앞에서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이에 현대차는 본사 앞 인도 보도블록 공사, 화단 작업으로 농성 장소를 좁혔고 '기초질서 지키기 캠페인' 등으로 맞불을 놨다. 밤샘 농성을 이어간 해고 노동자들에게 물대포 쏘기, 소음으로 수면 방해하기, 용역 직원들의 욕설과 폭력이 이어졌다.

게다가 사 측은 현대·기아차 본사 앞에 집회가 가능한 6개 장소를 모두 선점했다. 집회시작 48시간 전에 집회신고를 접수하면 최대 720시간 동안 집회가 가능하다. 이를 이용해 용역직원을 동원해 서초경찰서 앞에 진을 치고 앉아 미리 접수 준비에 들어간 것. 서초경찰서가 집회 신고 인원이 몰리면서 혼란을 방지한다는 이유로 한 줄로 서서 대기하는 가드레일을 만들고 CCTV를 설치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대·기아차 앞 집회신고는 선착순 싸움으로 변했고, 삼성그룹과 현대·기아차 등 인근에 본사를 두고 있는 대기업들이 고용한 용역 직원들로 채워졌다.(☞관련 기사: 서초경찰서의 진풍경, 현대기아차의 살풍경)

이날도 민원실 앞에는 7명의 용역 직원들이 자리를 깔고 대기 중이었다.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 이백윤 지회장은 "저들 중 2명이 삼성, 5명이 현대차 용역 직원"이라고 설명했다. 저마다 플라스틱 의자나 낚시 의자 등에 앉아 만화책을 보거나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죽이던 이들 앞에 60여 명의 인원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현대·기아차 본사 앞에서 사측이 이용했던 '맞불 작전'을 동희오토 노동자들이 '응용'한 셈이다.

▲ 동희오토 해고 노동자들과 정당·시민단체 인사들이 농성에 앞서 서초경찰서 앞 인도에서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프레시안(김봉규)

"집회 막는 용역 직원들이 모여도 불법 집회 아닌가?"

민원실 앞이 난데없이 북적인 데는 서초경찰서의 무리한 집회신고 접수 방식도 한몫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8조 2항에 따르면 "관할경찰관서장은 집회 또는 시위의 시간과 장소가 중복되는 2개 이상의 신고가 있는 경우 그 목적으로 보아 서로 상반되거나 방해가 된다고 인정되면 뒤에 접수된 집회 또는 시위에 대하여 금지를 통고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서초경찰서는 '목적의 상반'이나 '방해'를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선착순으로만 집회신고를 접수해 동의오토 해고 노동자들의 집회 신고를 원천적으로 막아왔다. 인권단체연석회의의 박주민 변호사는 "집회신고가 많이 몰리는 종로 경찰서의 경우에도 장소 중복으로 인한 금지 통보를 하더라고 최소한 이틀 정도의 판단 기간을 두는 '예의'를 차린다"며 "서초경찰서의 행태는 접수를 하자마다 중복이라며 금지통보를 내리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이백윤 지회장도 "본사 앞에서 농성을 하면 같은 복장을 한 용역직원 30여 명이 몰려와 둘러싸고 어머니 이름까지 들먹이며 욕설과 폭행을 했고 우리가 잠이 들면 휴대기기로 포르노를 틀어대며 방해하고 했다"며 "하지만 출동한 서초경찰서 경찰들은 이를 수수방관했다. 그 용역 직원들이 몰려 있는 건 불법집회가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 지회장은 "집회신고에 내보낸 용역들에 지급되는 월급 300만 원을 우리에게 투자했다면 거친 유니폼에 살갗 쓸려가며 일하는 일도, 지금 여기서 농성하고 있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며 "서초경찰서가 우리의 집회 신고를 받지 않으면 그 이름을 '현대경찰서'로 바꾸고 경찰 마크를 현대차 로고로 바꿔달 때까지 싸우겠다"고 덧붙였다.

집회신고에 참여한 이들은 저마다 집회신고서의 집회 사유 기재란에 '동희오토 해고 노동자들이 집회를 할 수 있는 자유'를 적어놓았다. 수원에서 올라온 대학생 한 모 씨(22)는 "현대자동차에 대한 이미지가 좋은 편이었는데 본사 앞의 기초질서 캠페인을 보고는 어이가 없었다"며 "집회신고 절차를 잘 모르는 시민이 보면 왜 그런 집회가 필요한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12시가 넘어서까지 농성을 벌이던 이들은 결국 9일 오전 4시경 서초경찰서로부터 합의를 이끌어냈다. △하나의 단체나 회사가 집회신고를 위해 줄 세우는 인원은 최대 3명을 초과하지 않을 것 △현대차 측이 선점한 장소 중 2곳의 신고를 취소하고 동희오토 측에 허가할 것 △집회신고 기간 중 실제 진행된 집회가 50%를 넘지 않을 경우 이후 신고된 집회를 취소할 것이 내용이다.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는 "안정적인 농성장소를 확보했고 본사 앞 집회에 대한 사측의 독점을 불가능하게 하는 성과를 거뒀다"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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