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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은 강자의 언어"…'신화'에 맞선 변호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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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法은 강자의 언어"…'신화'에 맞선 변호사들

[비정규직 절망 공장, 희망 심기] 동희오토와 함께하는 두 '강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말이 있다. 온몸을 부딪쳐 깨지면서도 거대 자본에 맞서는 노동자들을 두고 흔히 쓰이는 비유다. 이 말는 애초에 '불가능'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하지만 이들의 '계란으로 바위치기'는 1~2년에 그친 역사가 아니다. 수십 년, 아니 수백 년 동안 노동자들은 그렇게 '불가능'이란 명제에 온몸으로 대항해왔다. 크고 작은 무수한 '가능'들이 그 안에서 생겨났다.

동희오토 노동자들과 많은 시간 함께 부대껴 온 강호민 변호사는 "계란으로 바위를 계속 치다보면 바위에 금이 가고 쪼개지고 결국엔 물길이 난다"라고 그들의 투쟁을 이야기한다. 이번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관련 판결도 이의 연장선상이라고 했다. 동희오토 노동자들이 쉰 목으로 2년간 쉬지 않고 외친 정당함에 대한 요구, 끄떡없을 것만 같던 현대 자본도 결국 물길을 내주고야 말았다.

제 목숨을 내놓으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노동자들은 이렇듯 온 몸으로 희망을 증명해오고 있다. 지금 시작된 작은 물길이 언젠가 바위를 뚫을 거란 믿음 때문이다. 그 믿음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권력의 언어로 권력과 맞서는 사람들'이다. 동희오토 노동자들을 돕고 있는 변호사들을 만나보았다.

법은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배려해야 한다: 강지현 변호사

금속노조 법률원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강지현 변호사는 최근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의 소송 사건 및 법률 자문에 합류했다. 순박하게 웃는 눈이 동희오토 침탈 상황을 묻는 순간 매서워진다. 그는 미신고 집회, 집회 방해를 이유로 사측 용역경비들이 농성장을 침탈, 집기를 모두 치워버린 사건에 대해 "명백히 잘못된 일"이라고 목소리에 힘을 줬다.

"원칙적으로 아무리 상대방이 법을 위반한다 하더라도 공권력의 힘을 빌리지 않은 채 자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자력구제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만, 정당방위 같은 경우에만 가능한 것이죠. '법이 평등하고 공정하게만 집행된다면' 충분히 문제 삼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우발적 집회는 집시법상 집회로 볼 수 없다

강 변호사는 지난 8월 8일 있었던 농성장 강제침탈과 조합원 강제연행 사건에 대해 말을 이었다. 당시 사건에 대해 강 변호사는 수사기관을 상대로 변호인 의견서를 제출했다.

8월 8일 강제연행건의 문제점은 이랬다. 처음엔 현대·기사자동차 본사 앞에서 현대제철 노조 조합원 150여 명이 미신고 집회를 하고 있었다. 사측에서 먼저 그곳에 집회신고를 내 반대집회를 하고 있었고, 잠시 후 경찰이 왔다. 동희오토 조합원들은 현장에 몇 명 없었다.

처음에 경찰들은 이미 신고가 된 회사 측 집회를 방해하지 말라며 해산 권고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집회방해가 미신고 집회로 바뀌어버렸다. 미신고 집회를 한 것은 현대제철 노조였는데, 그들은 경찰의 해산권고에 인도를 넘어 현대기아차 본사 반대편의 코트라 앞으로 이동해버렸다.

결국 미신고 집회를 전혀 한 바 없는, 남아있던 동희오토 조합원 두 명이 항의를 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에워쌌고, "당신들은 미신고 집회를 한 것이다"라며 해산명령을 내렸다. 해산명령을 두 번 발하고 나서 뒤늦게 도착한 이백윤 지회장이 현장을 보고 가담했다.

강 변호사는 당시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강제연행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처음에 이백윤 지회장이 결합하기 전에는 인원이 2명에 불과했던데다 그것도 우발적인 결합이었습니다. 불특정 다수인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한 '목적적 행위'도 없었습니다. 단지 용역들의 시위용품 무단 철거행위에 항의하고자 했던 것에 불과했기 때문에 이는 집시법상 집회로 보기 어렵다고 봅니다.

설령 집회라고 하더라도 우발적 집회죠. 우발적 집회란 누가 주최자인지 특정할 수 없는 거거든요. 형식적으로 이 지회장이 지회장이니까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면 주최자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해산명령을 두 번 발한 이후에 도착해서 10분 정도 가담하다가 연행된 것이기 때문에 이 지회장을 주최자로 볼 수 없죠.

따라서 집회신고 의무가 있다고 볼 수 없고, 주최자를 특정할 수 없기 때문에 주최자에게 부과하는 의무를 부과할 수 없다고 보여집니다. 그래서 우발적 집회의 경우 미신고 집회로 인한 집시법 위반으로 연행할 수는 없는 겁니다."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

체포 피의사실 날조, 표적수사 하는 것인가?

강 변호사가 수사기관을 대상으로 낸 변호인 의견서는 '체포 피의사실 날조'를 근거로 하고 있다.

"현행범의 체포 피의사실 요지에 '현대제철 노조와 함께 집회신고를 하지 아니하고 집회를 했다'라고 명시되어 있었어요. 그건 정말 근거 없는 날조거든요. 현대제철 노조는 아직 산별노조 체계로 완전히 전환이 안 되어서 기업별 노조로 남아있습니다.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와는 전혀 공통의 이익이 있다고는 볼 수 없어요.

조직 범위에 있어서도 현대제철 노조는 주로 정규직 중심으로 되어 있고, 그날 집회에서는 성과·상여급의 소급 시기에 대해 조율이 잘 되지 않아 이에 항의하는 집회를 했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반면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는 '원청사용자성 인정' 그리고 '해고자 즉각 원직복직'을 주장하고 있잖아요. 전혀 공통의 이해관계가 없죠.

따라서 미신고 집회를 사전에 함께 계획해서 진행했을 가능성이 전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취지로 범죄사실을 기재해서 현행범 체포를 했다면 분명한 날조죠. 표적수사 하는 것도 아니고. 이것은 명백히 잘못된 현행범 체포 범죄 사실입니다. 그런 취지로 검사에게 직접 의견서를 제출했습니다. 검사가 공정하게 처리하겠다는 답변을 했고요."


돗자리 한 장 깔 곳이 없다

현대기아차 본사 앞은 지금 대공사 중이다. 제일 처음 동희오토 노동자들이 돗자리 한 장으로 농성을 시작했던 자리는 보도블록을 다 들어냈고, 흉물스런 모습 그대로 방치됐다. 두 번째로 농성장을 차렸던 인도는 어떻게 되었을까. 구청에 확인해보니 이른바 '띠녹지 사업'의 일환으로 독특한 화단을 꾸리는 공사가 마무리 단계를 밟고 있다. 어디서도 보기 드문 이 '인도 옆 화단'은 나무와 나무 사이에 단 한 장의 돗자리도 깔 수 있는 틈이 없다. 또 한 가지 독특한 점은 구청 사업의 일환인데도 불구하고 유독 현대기아차 본사 앞과 그 근처 일대에만 공사를 진행했다는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길 건너편 코트라 앞에는 8월 16일부터 현대기아차 사측의 집회신고가 계속 잡혀있는 상황이다. 현대기아차에는 집회신고 전담팀이 있다. 팀원은 용역업체 직원에서 미성년자 아르바이트생까지 직업도 연령도 사연도 다르다. 한편으론 이들도 일당 12만 원짜리 꽤 괜찮은 아르바이트직를 잡은 비정규직 노동자다. 자본은 이렇듯 동료가 될 수도 있는 노동자들을 적으로 돌리는 교묘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

공사와 사측의 집회신고 아르바이트가 시작되면서 비정규직에겐 돗자리 한 장 깔 수 있는 공간이 허락되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쫓기고 쫓겨 길 바깥으로 내팽개쳐질 상황에 몰려있다. 동희오토 노동자들의 어려워진 상황에 보면서 강지현 변호사는 약자에게 가혹한 법 집행의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법 관용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법의 관용이라는 건 비록 법에 저촉될 여지가 있다 하더라도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얼마나 배려해 줄 것인가 하는 겁니다. 그런데 현실에선 사회적 약자 공안사범으로 취급해 엄격하게 대하는 경우가 많아요. 아이러니죠. 동희오토 조합원들의 요구가 정당한 요구임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요구를 할 때마다 전과자가 되어 나가는 상황이 안타까워요.

힘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합법적인 집회 공간, 합법적인 권리를 주장할 공간은 과연 없는 것일까요. 법이 보편 타당하고 공정하게 집행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사회적 약자에게 더욱 가혹하고 사소한 것까지도 문제 삼고 선량한 사람을 전과자로 만듭니다. 이런 상황에서 법의 집행에 대한 불신이 생기지 않을 수 있을까요?"


최소한의 평등한 세상이라도 왔으면

강 변호사가 꿈꾸는 세상을 물어봤다. 추상적인 질문이라 고민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답변이 나온다.

"동희오토 노동자들이 꿈꾸는 최소한의 평등한 세상, 법이 공정하게 적용되는 세상.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 편법으로 법을 회피하면서 동희오토 같은 100% 비정규직 업체를 설립하는 일들을 법적으로 규제할 수 있다면 그런 세상에 조금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요."

강 변호사는 굳이 '최소한'이라는 단어를 썼다. 현실이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그만큼 녹록지 않다는 뜻일 게다.


져도 지는 것이 아니다: 강호민 변호사

법률사무소 새날의 강호민 변호사를 만났다. 사람 좋게 생긴 강 변호사는 웃으며 "덥죠" 라고 음료를 권했다. 한 모금 넘기나 싶었는데 금새 '동희오토 비정규직 노동쟁의의 경과'라는 제목의 문서를 꺼내들었다.

"저는 형사사건만 맡았어요. 동희오토라는 업체가 어떻게 만들어진 회사고 어떤 구조로 운영이 되는가 하는 것에 대해 축약적으로 판사들에게 소견서를 제출한 적이 있어요. 그걸 정리해 놓은 거예요."

이 한 묶음의 문서는 '1년 후 재계약을 위해 회사가 시키는 대로만 살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었다.

"동희오토가 1000명 정도의 노동자들을 채용하는데 사무직만 모두 정규직이고 나머지 생산라인 17개 업체는 모두 비정규직이에요. 통상적으로 노조설립을 막을 수 있는 정도의 규모는 사업체당 80여명 정도라는 계산이 나온 적이 있어요. 그래서 동희오토는 그 안에서 다시 17개의 하청업체로 분산해 버린 거죠."

원래 동희오토에는 12개 하청업체가 있었는데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인원을 충원하는 과정에서 현재는 17개로 늘어났다. 1000여명의 노동자들을 17개 하청업체로 나누면 한 하청업체당 약 59명 정도의 노동자들이 일하게 된다.

"사실 동희오토를 원청업체로 보기는 힘들어요. 왜냐하면 기아자동차가 자본을 걷어버리면 동희오토도 사라지게 되거든요."

실제 동희오토는 부지와 공장 건물이 현대자동차 소유로 되어 있고, 동희오토가 임대차 계약으로 사용하고 있다. 설비도 현대캐피탈에 금융리스 형식으로 임대한 것이기 때문에 기아차 자본이 동희오토의 대부분에 개입되어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2005년 금속노조 사내하청지회가 설립되면서 하청업체를 상대로 '교섭응낙가처분신청'을 했었어요. 대법원에서도 승소했고요. 그런데 그 하청업체는 폐업해버렸고 교섭에는 대법 판결 이후 딱 한 차례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거든요. 그 과정에서 기업의 기업 노조가 생겼죠. 노조 위원장이 사장 조카이고, 노조 사무실은 사장 집으로 되어있고, 노동조합 활동도 전혀 안해요. 회사는 금속노조 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지회를 탈퇴하고 회사의 기업별 노조로 가입하지 않으면 업체가 폐업될 것이라고 협박했어요."

업체폐업과 계약해지의 불안에 이기다 못한 노동자들은 사내하청지회를 떠나 기업노조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살아나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오는 이들에겐 해고란 말 그대로 '죽으라'는 소리에 다름 아니다.

"노조가 생길 기미만 보여도 바로 폐업해버려요. 예를 들어 2005년 5월 하청업체에서 노조를 설립하면 8월 정도에 폐업하고 전원 해고, 폐업 후 노조가입자를 제외하고 일부만 고용승계, 이런 식이죠."

동희오토 하청업체들은 수시로 폐업되었고, 민주노조 조합원들은 어김없이 색출당해 해고되었다. 회사 측의 속이 뻔히 보이는 노릇이지만, 내일이 불안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굴복할 수밖에 없다. 비참한 노동환경을 견디며 최저임금이라도 감사히 받으라는 것인가.

"사내하청 노조들은 정규직 노조에 비해 상황이 매우 열악하죠.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회사의 폭력적인 탄압을 무시하고 노조에 가입하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만약 투쟁이라도 하게 되면 해고당하고 구속되고. 힘이 없을 수밖에 없죠. 투쟁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은 정규직 노동조합에 비해 비정규직 노동조합은 사측의 수도 없는 소송 건으로 상황이 더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죠. 업무방해로 형사고소하고, 손해배상 청구하고, 해고시켜버리죠. 전국에 있는 사내하청 노동조합들은 다 그런 과정을 거쳤어요."

비정규직 철폐는 사회 안정화의 지름길

대책을 묻는 질문에 강 변호사는 파견 근로제를 폐지하고 과감히 노동시장 정책을 전환한 옆 나라 일본의 사례를 이야기했다. '파견의 왕국'이었던 일본은 올해 초 일용직 근로자에 대한 파견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또한 우편과 우편 금융을 총괄하는 '일본우정'의 20만 명의 비정규직 가운데 10만 명을 3~4년에 걸쳐 정규직으로 전환하며 제조업의 경우 2013년부터 파견이 완전히 금지된다.

"이미 일본의 사례에서 충분히 깨닫지 않았나요. 지금 우리나라에서 비정상적으로 늘리고 있는 비정규직은 경제 안정화를 가져오기는 커녕 오히려 사회 전체의 불안을 가중시킬 겁니다."

진정성있는 연대에서 희망을 발견하다

노동 운동을 하고 싶어 이 길에 들어섰다는 강 변호사다. 편한 길 마다하고 노동자들과 어깨를 함께한 그에게 일종의 '사명감'이 보이는 건 필자 혼자만의 느낌일까.

"거창한 사명감 같은 건 물어보지 마세요. 현장에서 함께 투쟁하지도 못하는데요. 그렇게 헌신적인 분들의 희생 때문에 우리가 여전히 싸울 수 있는 거겠죠. 저는 생활 속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할 뿐이에요."

2007년 이랜드 파업 당시 법정에서 눈물의 변호로 좌중을 울렸던 당사자가 자신의 진정성에 대해 이토록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한다. 희망이란,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서 우연히 맞닥뜨리게 된다.

화물연대 故 박종태 지부장이 떠나던 날을 회상하면서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혜주랑 정하랑 눈에 밟혀서 뭐라고 얘기하지. 그런 유서를 썼겠습니까. 낮에 계룡산에 갔는데 당신한테 말을 남기고 가야할 거 같아서 종이하고 볼펜 가지러 내려왔어. 온몸이 부르르 떨려. 십년을 살아 온 마누라에게 이런 유서를 쓰고 목을 맸겠습니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그렇게 죽게 내버려두지 말라고, 함께 연대하자고, 이들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되었을 때 "좋은 남편이 되고 싶었고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던 한 사내의 꿈을 이루는 게 얼마나 힘겨운 세상이 되었는지"를 온몸으로 겪게 될 것이라고, 그때까지 기다려야 하겠느냐고. 김진숙 지도위원의 이야기에 눈물 적신 사람들이 있다면 아직 희망은 있다. 진정성은 사람을, 삶을 울린다.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

져도 결코 지는 것이 아니다

보수 언론들이 동희오토 노동자들의 투쟁을 '생떼시위'라 보도한 적이 있었다. 그 기사를 보면서 분노나 울분보다 먼저 허탈감이 밀려왔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를 때 느껴지는 당황감과 무력감. 절박한 그들의 투쟁을 생떼라고 표현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수없이 스러지는 목숨으로도 전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는 세상에 과연 희망이 있을까.

"쉽지는 않겠죠."강 변호사는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법이나 제도도 본질적으로 보면 강자를 위한 것들이 아닐까요. 역사가 그것을 증명해 주잖아요. 법이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편에 섰던 적이 있었나요."

그랬다. 법은 권력의 언어였다. 예전에도 그래왔고 지금도 그렇다. 법이 권력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니라면 왜 이 땅의 힘없는 노동자들은 그동안 목숨을 걸어가며, 찬 바닥을 뒹굴며 싸워야했을까. 법이 힘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편이었다면 왜 동희오토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가 2년 동안이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거대 자본과 권력에 맞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은 언제고 쉬웠던 적이 없었다. 이토록 어려운 싸움에서는 어쩌면 지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강 변호사는 그렇게 운을 띄우고 한 마디를 덧붙인다."그러나 져도 결코 지는 것이 아닙니다."무슨 말인지 아시죠, 하고 강 변호사가 묻는다."한번 싸움으로 끝날 게 아니란 거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잖아요."

승리할 것을 알고 싸우는 것은 쉽다. 그러나 패배를 알고 싸우는 것은 어렵고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끊임없이 패배하고 두들겨 맞고 쫓겨나면서 이 땅의 노동자들은, 민중들은 그렇게 살아왔다. 수십 년 동안 노동자들이 연한 살갗을 부딪쳐내며 친 바위는 여전히 끄떡없지만 믿어야 할 것은 정의가 언젠간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가능성이다. 낙숫물 한 방울이 천년을 바닥으로 내려 깨어지면서 거대한 동굴을 만들어내듯이 희망은 그렇게 기적으로 실현된다.

오늘도 길 위에서는 희망을 품은 노동자들이 찬이슬을 맞으며 밤을 지새우고 있다. 내일의 가능을 꿈꾸면서.

나오면서

인터뷰를 끝내고 보니 우연히도 두 변호사 모두 '강변'이다. '강변'이란 올해처럼 유난히 지열이 뜨겁게 올라오는 시기에 반가운 이름이 아닐 수 없다. 더위에 지친 몸을 달려 강변에 발갛게 벗은 발을 담그고 보면 이제야 살 것 같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동희오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두 '강변'은 그들에게 '살 것 같다'는 말을 틔워 주는 사람들이 아닐까. 현대기아차본사 앞 도로의 지열만큼 달궈진 그들의 울분이 시원한 강줄기로 식혀지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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