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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집회가 무서운 현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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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집회가 무서운 현대차?

[현장] 동희오토 문화제, 현대차 본사 앞에선 '관제집회'

27일 오후 7시,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자동차 본사 앞 풍경이 기묘했다. 인도의 절반이 노란색 바리케이드로 가로막힌 채 퇴근인파로 북적이고 있었다. 갑자기 시작된 보도블록 교체 작업 때문이다. 공사 현장 뒤편으로는 '사회를 어지럽히는 불법 무질서 행위 근절', '질서 준수로 국민의 자존심을 지킵시다' 등의 현수막들이 현대-기아차 본사 앞을 빼곡히 채웠다.

본사 입구에도 현수막과 같은 내용의 띠를 두르고 피켓을 든 현대-기아차 직원 십 수 명이 서 있었다. 그들에게서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 지난 12일부터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과의 대화를 요구하면서 무기한 농성을 시작한 동희오토 해고자들의 농성장이 있었다. 해고 노동자들이 걸어놓은 현수막과 현대차 측이 내건 질서준수 캠페인 현수막이 마주보고 섰다.

▲ 27일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사옥 앞은 현대차의 기초질서 준수 캠페인이 펼쳐졌다. ⓒ프레시안(김봉규)

이날 동희오토 해고 노동자들은 현대-기아차 본사 앞에서 촛불 문화제를 개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현대차 측의 질서 준수 캠페인 신고가 먼저 접수되면서 장소를 길 건너편으로 바꿔야 했다. 보름이 넘게 밤샘농성을 이어오고 있는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 이백윤 지부장은 문화제에서 "명문대 나와서 토익·토플 점수 올리고 치열한 경쟁률 뚫어서 입사한 분들이 나와서 한다는 게 질서 준수하자는 관제 집회"라고 비꼬았다.

이 지회장은 "기업들이 노조와 대립하면서 반복학습 능력이 생겨 만든 아름다운 모델 하우스가 서산의 동희오토"라고 말했다. 동희오토는 기아의 '모닝'을 생산하는 서산공장의 17개 사내하청업체 중 하나다. 서산공장은 기아차의 정규직 노동자가 한 명도 없이 사내하청 노동자로만 채워져 있다.

이 지회장은 "현대·기아차 정규직의 3분의 1도 안 되는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을 받으면서 고강도의 노동에 시달려 왔다"며 "정몽구 회장이 한해 주식 배당금 333억 원을 챙길 때 우리들은 첫 월급으로 65만 원을 받았다"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2005년 처음으로 노조를 만들었고 이후 110여 명이 노조 활동을 이유로 해고당했다. 해고자들은 정 회장과의 직접 교섭을 통해 부당 해고 문제를 해결하자고 제안하고 있지만 현대-기아차 측은 사내하청기업은 교섭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에 응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최근 대법원은 현대차 울산공장의 사내하청 해고 노동자에 대해 현대차 측의 사용자성이 인정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민주사회를 여는 변호사 모임 소속 권영국 변호사는 연대발언에서 "대법원 판결로 제조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도 파견법을 적용받을 수 있게 됐다"며 "파견법에 명시된 2년 이상 근무가 아니더라도 제조업에서 파견은 불법이므로 근무 기간에 상관없이 오늘이라도 직접 고용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백윤 동의오토 사내하청지회장 일문일답

- 무기한 농성에 나선 계기는?

2005년 처음 노조를 만든 이후 노조활동을 이유로 11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해고됐다. 폐업도 4차례나 겪었고 노조 설립을 막기 위해 계약을 해지하거나 징계를 가한 일도 10건에 이른다. 경영 상황에 따라 노동자들을 마음대로 고용하고 자를 수 있는 하청구조에서 처우 개선을 위해 노조가 필요하지만 사측은 이를 막아왔다.

- 농성이 보름을 넘기고 있는데 현대-기아차 측의 반응은?

12일 농성 첫날 건물 청소를 이유로 소방호스를 틀어 우리에게 뿌려댔다. 용역 직원이 60여 명 가량 동원돼 우리를 막았고 밤에는 사이렌을 틀어 잠도 제대로 못 자게 했다. 욕설은 기본이었고 모래를 뿌린 적도 있었다. 오늘은 아예 집회 신고를 선점해서 본사 앞 문화제를 막았다. 사무직을 동원해서 관제 집회를 열지 않았나.

보도블록 교체 공사도 마찬가지다. 하루에 교체되는 블록은 10여 개에 불과하다. 농성을 방해하려고 일부러 벌인 것이다. 굴지의 대자본이 비정규직 노동자가 직접 고용에 나서라고 하는 것을 가리기 위해 벌이는 일 치고는 너무 치졸하다.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대응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 일부 경제지 등 언론에서는 '생떼시위' 등의 표현을 쓰면서 글로벌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도 기사를 20개 가까이 읽어봤다. 그 중에 현장에 와보거나 우리에게 취재를 요청한 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 기자 한 명이 전화 한 통 한 게 전부다. 지금 본사 앞을 누가 가로 막고 있는 지는 그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사측 보도자료만 받아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진정으로 취재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우리들의 이야기도 들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

- 최근 대법원이 현대차에서 옛 파견법 적용을 받는 사내하청 노동자 중 근무기간이 2년이 넘는 이들은 정규직으로 봐야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기아차 서산공장은 정규직이 없는데 같은 사례로 볼 수 있나

대법원은 생산량 결정이나 업무지시 등을 현대차가 해왔기 때문에 노무 지휘를 직접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서산 공장 역시 마찬가지다. 동희오토에는 제품 하자 처리나 부품 교체 등을 담당하는 부서도 없다. 누가 '모닝'을 만드는가는 너무나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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