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우린 '열외인종', 결혼정보회사도 안 받아주더라"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우린 '열외인종', 결혼정보회사도 안 받아주더라"

[비정규직 절망 공장, 희망 심기] "모닝은 대박, 노동자는 쪽박"

양재동으로 가는 길은 화려하다. 매끈하게 뻗은 건물들 사이사이로 친절하고 여유로워 보이는 사람들의 표정, 말끔한 거리를 메운 중형 세단들, 그 세련된 빌딩 숲 한 가운데 연고도 없는 섬처럼 떠있는 사람들이 있다. 쨍쨍한 볕 아래로 까맣게 젊음을 소진하고 있는 동희오토 노동자들. 그들은 다름 아닌 우리시대 청년의 자화상이다.

새파란 젊음을 한 밑천 삼아 단단하게 자리 잡은 시대와 대치하고 서서 '맞장뜨자!'고 버티는 그들. 팔다리, 얼굴 할 것 없이 새까맣게 그을려있지만 이제 막 연애를 시작했거나 이제 막 결혼생활에 접어들었거나 혹은 이제 막 첫 울음을 터뜨린 갓난아이의 부모가 되었거나 할 것 같은, 그렇게 선택의 시작점에 이제 막 접어들었을 것 같은 얼굴들이다.

그렇게 '이제 막' 인생의 '막'을 열어야 할 그들은 막다른 골목으로 몰려 선택의 여지를 박탈당한 채 거리에 주저앉아 있다. 추석 전전날 해고당한 젊은이들은 한 손엔 부모님께 드릴 추석선물 비누세트를, 한 손엔 해고통지서를 들고 공장을 나와 지금까지 외치고 있다, 저 절망의 공장을 향하여.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고!"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

열외 인종, 비정규직 노동자들

결혼 정보회사에서 직업별로 매겨놓은 등급이 뜬 기사가 얼마 전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했다. 등급은 딱 15개. 남성의 15번째 등급이 '일반 중소기업 정규직 입사자'였다. 비정규직은 등급에도 없다. 비정규직들은 결혼 정보회사에서 회원으로 받아주지도 않는 셈이다. 이 정도면 결혼 조건은 등급이 아니라 계급이다. 이들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등급 내 인간들'과는 다른 종의 사람들이 돼있다. 결혼은 먼 이야기인 것만 같다는 그들에게 기사를 보여줬다. 한바탕 웃더니 '씁쓸하다'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결혼'은 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을까.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탓인지 그들은 매우 '평범한' 일상을 꿈꾸고 있다.

"결혼을 하면요. 회사에서 죽을둥 살둥 일하지 않고, 죽지 않을 만큼만 할려고요. 야간잔업도 좀 줄이고요.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 토끼 같은 새끼들 안고, 뽀뽀하고, 마누라하고 마주 앉아 뜨신 밥 먹고, 기운도 좀 돌아서 산책도 하고. 한여름에는 가족들하고 동네 호프집에서 통닭에 맥주 한 잔 하면서, 파리 쫓아가며. 그런 여유로운 생활을 꿈꿔보죠. 박봉이긴 마찬가지겠지만 부모님 맛집 모시고 다니면서 맛난 것도 먹고, 가끔씩 용돈도 드리고 싶고 그러죠. 근데 모르겠어요. 복직을 해도 그런 인생이 보장되지는 않을 거니까."

'평범한'이란 수식어도 그들에겐 사치스럽다. 그들의 말처럼 '평범'을 유지하고 살아간다는 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녹록치 않은 일이다. 이백윤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장에게도 결혼은 '답이 안 나오는 이야기'란다. 이제 막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며 꿈에 부풀어있어야 할 나인데 그들에게 미래란 말 그대로 '답이 안 나오는 이야기'가 되어버린지 오래다.

"다른 선택을 하기 힘들어요. 내일 모레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데. 요즘 젊은 세대들은 배우자로 돈 잘 버는 정규직을 바라잖아요. 실용적 관점으로 만나서 결혼하고 하는데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린 최하인 거지. 비정규직에 해고자. 그 어느 것 하나도 플러스 점수를 줄 수가 없는 상황이니까. 상대방에게 정신적 신뢰를 주는 것 말고는 그 어떤 물질적인 부분도 감당해 줄 수 없잖아요. 답이 안 나오는 이야기예요, 결혼은."

1998년부터 일을 시작해 중소공장 두 군데를 거쳐 동희오토에 입사한 이청우 조합원은 애인이 없는 이야기에 손사래부터 친다.

"연애는 뭐 혼자 합니까? 연애 하고 안하고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여. 현장에 복귀하면 꼭 연애를 할 겁니다."

그의 야물찬 소망에 한바탕 터진 웃음이 어색하게 잦아들었다. "씁쓸하네요." 이청우 조합원이 덧붙인다. 현장에 복귀하는 것도, 마음의 여유를 갖고 연인과 행복한 삶을, 적어도 최소한 평범한 삶을 꾸리는 것도 지금 그들에겐 너무 먼 남의 나라 이야기다.

먹고 사는 일의 고단함

이청우 조합원은 동희오토 입사 전에도 중소공장 몇 군데에서 일했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살벌한 현장에 겁이 덜컥 났었다고 한다. 노동조합이 있으면 그나마 낫지만 그렇지 못한 사업장은 정말 살벌하단다.

"어휴, 여기서 까딱 잘못하면 뭐 하나 날아가겠구나 싶다니까요." 그는 당시를 생각하면서 혀를 내둘렀다. 특히 동료들과 술을 먹고 난 다음날은 아찔한 순간들이 반복된다. 졸다가 프레스 밑에 손 갖다 넣고, 옆 동료가 기겁하며 깨우고 이런 식이다. 그래도 먹고 살아야 안 되겠느냐고 내게 반문하는 그는 그렇게 흘러흘러 동희오토까지 오게 되었다고 한다. 먹고 살기 위해서 온갖 위험들 가운데로 떠밀리는 노동자들은 결국 산재로 죽고, 다치고, 해고된다. 생존을 볼모로 막다른 골목인 줄 알면서도 달려야만 하는 노동자들. '살벌함'이란 바로 이런 상황들에서 비롯되는 것일 게다.

이백윤 지회장은 도장반에서 일했다. 도장반은 노동강도 면에서 조금 수월한 편인데 페인트 가루도 마셔야 하고, 방진복 입고 마스크를 써야 하는 단점이 있단다. 여름엔 찜통에서 일하다가 마스크를 벗으면 안으로 고여 있던 땀이 주르륵 쏟아진다. 그래도 버텼다.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악착같이 벌었다. 이후 2년 여를 싸워오면서 이제 그 돈도 거의 바닥이 나고 살 길은 막막해졌다. 그렇다고 투쟁을 그만 둘 수도 없다. 함께 싸워 온 조합원들과 현장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있을 동료들 때문이다. '어디 가서 이 정도 못 벌겠냐' 싶어도 여기서 끝내면 '어딜 가도 마찬가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고용불안과 박봉에 시달리는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그것은 그들에게 해방되어야 할 '신분'이다.

이 지회장은 2005년 입사했다. 2005년 민주노조가 생긴 이후 회사는 '유니온 샵'을 체결해서 입사와 동시에 기업의 기업노조 가입 원서를 써야만 했다. 기업노조 조합원이 아니면 입사자체가 불가능했고, 민주노조에 가입하기 위해 기업노조를 탈퇴하려면 해고를 각오해야 했다. 내일이 보장되지 않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쉬운 선택이겠는가. 지회장 역시 2년 동안 기업노조 조합원이었다.

"2년까지는 쥐 죽은 듯이 일만 했어요. 사내하청지회 가입하고 노조활동 하고 싶어도 계약해지 당하니까 못했죠. 사내하청지회 하던 동료들이 해고나 계약해지를 쉽게 당하는 걸 눈으로 봤거든요. 억울하고 분한 것들이 있어도 참을 수밖에 없었어요."

계약기간 2년이 지나고, 무기계약직이 된 후로 납작 엎드렸던 과거에서 조심스레 기지개를 펴게 됐단다. 이 지회장은 기업노조에서 대의원직까지 지낸 이력이 있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다른 사람들도 다 의아해했다며 웃었다.

"2007년 9월 달에 노조활동을 하기 시작해서 12월에 노조 대의원에 출마했어요. 당선됐죠, 당연히. 누가 하려고 해, 그걸. 대의원 출마한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너 왜? 그러면서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더라니까요. 조장이나 '키퍼'면 서로 하려고 그러지만 뭐 하러 기업노조 대의원을 하려고 그러냐 그런 반응들이었어요. 근데 사실 노동조합 활동이 처음이다 보니까 많이 미숙했죠. 다시 하라 그러면 잘 할 텐데. 대의원 되고 나서 노사협의회 안건 수렴한다고 조합원들 의견 묻고 다녔어요. 에어컨을 달자, 칫솔 살균기를 달자, 월급 올려달라 그러자,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왔죠. 혼자 그 의견들 수렴해서 사측에 가져가면 안 들어먹히지. 조합원들에게 그랬죠. 우리가 힘을 모아서 요구 한번 해보자."

빽빽한 일과, 사생활이 없다

"동희오토 일이 장난이 아니예요. 18공정이라고 있어요. 말 그대로 XX 공정이라 그러는데, 1분52초 안에 볼트를 23개 박아야 하거든요. 볼트 얼른 박고, 인셋 내려놓고. 그렇게 일을 하다보니까 힘든 거죠. 회식이고 뭐고 그냥 자고 싶고 그랬어요."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시간은 제 것이 아니다. 머리 뒤에 '생존'이라는 총구 하나가 겨냥된 채로 매 순간순간을 쫓긴다. 하루를 허겁지겁 집어삼키다 보면 온전한 휴식이란 불가능해진다.

"아침 7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6시쯤 눈이 떠질 때가 있어요. 그럼 횡재한 기분이거든요. 한 시간 더 누워있을 수 있다. 그런데 야간 잔업 하고 술 한 잔 먹고 이러면 잠을 늦게 잤는데도 일찍 깨요. 그럴 경우 잠이 또 잘 안와요. 7시 되면 나가야 하니까. 한 두시까지 술 먹은 날은 '오 분만, 더 오 분만 더'를 외치다가 겨우 일어나서 고양이 세수하고 머리 감고 뛰어나가요.

아침은 회사 식당에서 2700원 내고 먹었거든요. 근데 정규직은 나중에 알고 보니 1000원만 내고 먹더라고. 나머지 1700원은 회사에서 보조해주는 거야. 돈도 얼마 못 버는 계약직 노동자들이 돈은 더 내고 먹는 거예요. 3년동안 그 돈 내고 먹었어요.


통근버스에서 내리면 7시55분 정도 되는데 8시 15분에 체조를 해요. 체조 전까지 가야되니까. 안 가면 눈을 부라려요, 시급에 포함된 것도 아닌데. 밥 후다닥 먹고 얼른 뛰어가서 체조를 하죠. 끝나면 8시 20분. 라인에 돌아가면 8시 22분. 다들 담배 한 대라도 더 피고 가려고 그러죠. 전날 피로가 밀려오니까 죽을 맛이고. 30분에 라인 도는데 27분 되면 종이 삐리리 울려요. 대기하라고. 사람들이 '에이 씨' 하면서 일어나 부랴부랴 공구를 채워. 그때부터 시작하는 거죠. 12시반까지 4시간 일하고 점심시간, 5시 반까지 일하고 저녁시간, 8시까지 잔업하면 하루에 13시간을 회사에 매어있는 거예요."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

문자 한 통 보내기 위해 10분간 곡예 노동

"일도 워낙 많으니까 여유가 없어요. '끝나고 낚시 갈래?' 이 문자 한 통 보내려면 1분 정도 걸리잖아요, 핸드폰도 켜야 하니까. 한 열 글자 보내려고 10분을 바둥거려야 되요. 그걸 우리는 '땡긴다'고 하는데 라인이 돌고 차가 계속 오잖아요. 내가 여기서 하는 일을 한 2미터 정도 앞에 뛰어가서 미리 하는 거야. 그래서 이만큼 땡겨 놓으면 한 열 글자짜리 문자 한 통을 겨우 보낼 수 있는 거죠. 이것도 숙련공에 한해서 그렇다는 거예요. 특히 대의원 활동 하고 나서는 하는 일도 많고 이러니까 라인 땡겨놓고 일하고 그랬죠.

라인에 있다보면 마음이 바빠. 분초에 쫓겨 가며 일을 하다 보니까 사람이 마음이 급하고 뭔가에 쫓겨요. 뭔가에 지배받는 거 같아.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에 조합원들 만나러 가야 하잖아요. 대의원 되고 나서 의견 물으러 다녀야 하는데 어떨 땐 초조하고 그랬어요. 라인 가서 얼른 일해야 하니까. 6시에 라인 돌아가는데 5시 55분에 아직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마음이 급해지죠.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리게 되요. 가서 옷 갈아입고 공구 채우고 해야 하는데. 그 생각밖에 없어요, 그때는. 그렇게 사람이 쫓기더라고.

퇴근할 때 되면 퇴근하기 한 시간 전부터 정신이 없어요. 일분이라도 빨리 퇴근하려고 공정 땡겨가면서 퇴근 이후의 일과를 스케치하는 거죠. 통근버스에서 내려서 집에 올라가면 몇 분일 거고, 보일러 켜고 컴퓨터 켜서 음악을 틀어야지. 보일러가 어느 정도 가동되면 샤워를 하고 라면이나 밥을 먹고. 그러고 나서 영화 한 편 보고, 내일 일해야 하니까 몇 시까지만 보고 이후엔 잠이 든다. 계획은 억만리죠.

그런데 쫓기며 살다보니 퇴근 후까지 쫓겨요. 퇴근하고 돌아가서 침대 걸터앉으면 시간은 아까운데 왠지 뭔가를 해야 할 것 같고, 분초를 쪼개서 써야할 것 같은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되더라고. 제대로 쉬지를 못해요. 일 끝나고 밥을 먹으러 갈 때도 노동자들은 느긋하게 못 먹어요. 집에 가면 다들 딱히 할 일도 없는데 밥 빨리 안 나온다고 재촉하거든요. 담배 한 대 피고 빨리 집에 가야할 것 같고. 그런 쫓기는 분위기가 많았어요. 그런데 8시에 잔업 끝나고 식당가 가면 9시, 밥 먹고 집에 가면 10시, 술을 많이 먹었다 그러면 대중없죠. 퇴근 전 세운 계획들은 대부분 무산돼요, 피곤해가지고. 사생활이 없어요."


뿌리박힌 무기력감은 노동자들의 적

"2005년도에 한 번 업체폐업 당하면서 된서리 맞고 나서 현장노동자들이 눈으로 한번 확인한 게 있어요. 동희오토의 비정규직 간접고용 구조, 2차 사내하청구조라고 하는 것. 이걸 깨부술 수는 없구나 하는 것을 확인한 거예요. 스스로 확신을 갖게 되어버린거죠. 해봤자 안된다고 하는 그 절망감과 회의감을 극복하는 것이 어려웠어요.

'현대제철 노조가 조합원이 천명이었는데 탄압받아서 18명으로 줄었다가 오히려 천 몇 백 명으로 늘어났다'는 좋은 선례를 아무리 이야기해도 안되요. 그러다 '업체폐업 맞으면 어쩔 건데' 라는 질문에 '그러면 투쟁으로 극복해야지' 하는 답 말고 다른 뚜렷한 게 안 나오는 상황이잖아요. 기업노조 위원장 갈아치우고 겨우 민주노조 위원장 세워놨더니 이틀 만에 업체 폐업시켜버렸거든요. 회사는 아예 노골적으로 나오는 거죠. '내가 이렇게 탄압하고 있다. 늬들이 어쩔 건데'"


이 지회장은 뿌리박힌 무기력감들을 극복하는 것이 본인에게도,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힘든 일이었다고 술회한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뛰어드는 것은 누구에게나 두렵고 포기하고 싶은 힘든 과정이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열사들이 우리 곁을 떠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노동자들이 산재로 과로로 쓰러지고 있다. 세상은 잔인하리만큼 견고하고 세상을 바꾸는 일은 끔찍하리만큼 어렵다.

상처

조직이란 다른 말로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누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일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또 제일 어려운 것이 바로 노동자 조직화다. 이 지회장은 '정말 어렵더라'라고 잘라 말했다. 한참을 생각하더니 문득 김주익 열사 이야기를 꺼낸다.

"김주익 열사는 지나가는 사람이 맨발이면 자기 신발이라도 벗어주는 사람이었데요. 조직활동은 애정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을 좋아해버리더라고. 근데 노력해도 잘 안 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저도 사람이다 보니까."

정말 믿었던 동료가, 그 친구만은 날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사측 편에 줄 서 있을 때의 기분. 그런 상처들은 5년 여를 일해 오는 동안 수도 없었단다.

"기업노조 안에서 '노조민주화를 추진하는 모임'을 만들었어요. '노민추'라고. 12명 정도 조직이 됐는데, 아직 서로가 다 긴가민가 했던 거예요. '한번 해보자'라는 분위기로 밀고 나갔는데 두 번째 노민추 모임 할 때인가, 멤버 중 어떤 사람이 노민추 모임 어디서 하는지 회사에 말해버린 거예요. 우리 모임하고 있는 건물 옆 고층아파트 옥상에서 누가 뭘 하고 있는지 회사에서 다 찍었더라고요. 토요일 날 모임했는데 월요일부터 사장, 소장, 반장과 다 면담 하고. 사람을 볶아대기 시작하는데 못 당하겠더라고."

너무했다, 라는 반응에 이 지회장은 한마디 덧붙인다.

"그래도요. 사람들이 다 떠나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거니까. 그 동지들 원망하거나 그러진 않아요."

상처가 곪고 덧나는 과정들이 반복되어 이제 인이 다 박혔다는 듯. 지회장은 가슴을 쓱쓱 쓸어보였다.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다가 또 끌어안고 또 끌어안고. 만신창이가 되어도 함께 가는 길, 동지(同志)란 그런 연유로 특별한 단어가 된다.

내겐 너무 벅찬 인생의 무게

"친구놈이 하나 있어요. 나보다 5개월 먼저 입사한 놈인데 애도 둘이 있었고, 나이는 나랑 동갑이었어요. 만날 이놈하고 같이 낚시 다니면서 '한번 바꿔보자. 내가 나설 테니까 너는 반 발짝만 담그고 있어라' 그랬었죠. 이 친구가 2005년 사내하청지회 만들어질 당시 주축 멤버였어요. 크리스마스 전날 회식 하다가 둘이 식당 밖으로 나와 추운데 눈 맞아 가며 한참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제가 그 친구에게 '너 왜 노동조합 했냐'라고 물어봤죠. 그 친구 하는 말이 '세상사는 게 하도 더럽고 힘들어서 했다'라고 하더라고요. 하면 좀 달라질 줄 알았다고.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안 그러던 놈이 일하는 중에 계속 졸아대는 거예요. 너 왜 그러냐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집을 어떻게 2000여 만 원 들여서 구했는데 기름보일러라서 제대로 때면 한 달에 세 드럼씩 들어가는 거라. 그 때 한 드럼에 16만 원이었거든요. 세 드럼하면 48만 원이잖아요.

그래서 한 드럼 반으로 어떻게 겨울을 나보려고 전기장판 깔고 살았데요. 잘 때 되면 한 방에 모여서 보일러를 튼다는 거예요. 한 10시쯤 보일러를 틀었다가 12시쯤에 보일러를 끄는 거죠, 밤 새 못 트니까. 근데 애들이 추우니까 한 새벽 3~4시면 깨는 거예요. 감기가 들어가지고 깨서 빽빽 울어대는 걸 달래고 하다 보면 못 자는 거예요.

주야 맞교대 해보시면 아시겠지만 일주일 씩 하는 거라서 수면관리가 제대로 안돼요. 그래서 중간에 한번 깨면 잠이 안 와요. 뜬 눈으로 있다 그대로 출근하는 거죠. 그래서 내가 그랬죠. 그럴 바에야 먹을 것 좀 아끼고 기름 좀 때고 살면 너도 편하고 애들도 잠 잘 자고 그러지 않겠냐. 그랬더니 속 모르는 소리 좀 하지 말라는 거예요. 조그만 차 하나 있는데 할부금 내야지, 기름 값에 분유 값, 기저귀 값 하다 보면 한 달에 외식 한번 안 하고 통닭 한 마리 안 사먹는데도 적자나기 일쑤라는 거예요. 그런데 기름을 어떻게 두 드럼, 세 드럼 때냐는 거지.

애 둘에 처 하나가 주는 인생의 무게가 내가 그냥 옆에서 바라보고 한 마디 내뱉을 정도로 가벼운 무게가 아니었던 거죠. 그 친구가 노민추 멤버 중에 제일 먼저 그만뒀어요. 그리고 회사 압력 때문에 힘들어하던 다른 사람들을 꼬드기기 시작했어요. 그만 하라고, 해 봤자 소용없다고. 그 즈음에 집 앞을 찾아가서 한 시간 정도 기다렸다가 만났어요. 물어봤어요, 왜 그러느냐고. 대답을 회피하더라고요. 얼마 안 있어 키퍼로 승진을 하데요. 그런데 그 놈은 지금도 안 미워요. 야속하긴 한데 밉진 않아. 또 이 놈이 어리버리해. 기왕 사측에 줄 섰으면 조장이나 반장까지는 해 먹어라. 속으로 그랬죠. 못난 놈아."


지회장이 "못난 놈아" 하는데 마음 한 켠이 에려 왔다. 친구를 보낼 수밖에 없는 마음이 그 한마디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옛날이야기 하니까 또 옛날 생각 나네." 잠시 지회장은 말이 없었다.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

비켜, 비키라고!

복직하게 되면 어떨 것 같으냐고 물었다. 금세 이 지회장 특유의 환한 웃음이 터졌다.

"일단 기분이 엄청 좋을 것 같아요. 차 트렁크 몰래 숨어 타고 현장에 들어가고 그랬으니까. 야밤에 노가다 인부복장으로 들어갔다가 들려서 끌려나오고 그랬거든요. 내 발로 정정당당하게 입성할 때 짜릿할 것 같아요. 그런데 들어가서도 만만치 않을 거예요. 각오하고 있어요. 현장은 지금 꽝꽝 얼어있거든요. 온갖 음해와 유언비어들이 난무하겠죠. 우리 때문에 업체가 폐업을 하네, 누가 불이익을 당하네 등등. 사측은 어떻게든 우리를 쫓아낼 구실을 찾겠죠. 엄청난 물리적 마찰도 많을 거고. 각오하고 있어요."

오늘도 그들은 돗자리 하나 깔고 이 여름을 버티고 있다. 기꺼이 더러운 바닥에 온 젊음을 부비고 주저앉아 이야기 한다. 할 말은 해야겠다고. 밥통을 옆에 끼고 거리를 거침없이 활보하는, 남은 밥은 우산살에 대롱대롱 매달아 놓고, '딱히 둘 데가 없잖아요'라고 웃어버리는 그들은 아직 할 일도, 할 말도 많은 이 나라의 청년들이다.

이제 막 어둠이 걷히는 아침의 거리로 속속 복귀하는 사람들. 그들의 일상에 동희오토 노동자들의 말은 쉰 목소리로 거칠게 가 닿는다. 누군가는 해야만 할 말, 그러나 누구도 하기 쉽지 않은 말. 그것은 아름다운 외양에 가려진 불쾌하고 불편한, 그리고 처참하고도 슬픈 진실이다. 아름답고 매끄러운 것들은 아무것도 말하지 못한다. 은밀한 치장 속 진실을 이제는 목도해야 하지 않을까.

'아직 젊으니까 괜찮다'며 생애 중 가장 싱싱한 시절의 에너지들을 지금 여기 모두 쏟아붓고 있는 이들. 매번 입을 틀어 막히고, 붙들리고 두들겨 맞고 밀리고 하면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젊은 그들은 매일 아침 1인 시위를 막는 용역경비들과 경찰들에게 오늘도, 당당하게 외친다.

"비켜. 비키라고!"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