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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의 어부지리는 누가 얻나?

[한미FTA 뜯어보기 516 : 기자의 눈] 'FTA의 先발효 효과'를 지켜보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얼마 전 타결됐지만, 한미 FTA가 실제로 발효되려면 아직 한미 양국 국회의 비준 동의 등 많은 과정이 남아 있다.

하지만 정부가 한미 FTA 발효를 기정사실화하면서, 한국이 협상에서 미국에 약속해 준 것을 이행하려는 움직임이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한미 FTA의 선(先)발효 효과'다.

워낙 많은 것을 미국에 약속해 줬으니 '착실한 준비'라고 치하할 수도 있겠다. 25일 산업자원부가 FTA로 피해를 입을 기업들을 지원하겠다며 서울 중소기업진흥공단에 '무역조정지원센터'를 개소한 것이 그 예다. 적어도 피해대책에서만이라도 '졸속' 논란을 피해가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개중에는 국내 법령과 제도를 뜯어고치거나 아예 새로운 법·제도를 도입하려는 경우도 눈에 띈다. 한미 FTA는 한국과 미국 두 국가 간의 약속이니 좋든 싫든 이 약속은 두 국가 사이에서만 지켜지면 되는 것인데, 이 약속을 지킨답시고 대한한국의 법과 제도가 변경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재주는 한미FTA가 부리고, 돈은 다른 나라가 챙기고?

대표적인 예가, 이르면 내년부터 시행될 동의명령제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이르면 5월 중 동의명령제 도입과 관련한 관계부처 협의를 시작할 것이며, 올해 하반기 정기국회에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내년부터 시행될 수 있다"고 밝혔다. 한미 FTA가 발효되기에 앞서 동의명령제가 먼저 시행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동의명령제(Consent order)란 경쟁당국과 경쟁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기업이 위법 여부를 따지지 않고 쌍방합의를 통해 사건을 종료하는 제도다. 기업이라면, 국내기업이든 외국기업이든 가리지 않고, 쌍수 들고 환영하는 제도인 것이다.

재벌의 불공정거래를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으며 몇 년째 도입이 무산됐던 동의명령제 논란이 단 '한 방'에 종지부를 찍었다. 바로 미국이 한미 FTA 협상에서 '동의명령제를 원한다'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이 요구한 이 동의명령제를 아예 한국의 법률체계에 집어넣으면, 중국, 일본, 유럽 국가들도 이 제도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미국이 한미 FTA 협상에서 용을 써준 덕분에 다른 나라들이 어부지리를 누리게 된 셈이다.

물론 정부는 '동의명령제는 한미 FTA와 관계없이 우리가 도입하려던 제도'라는 입장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지난해 9월 재정경제부가 발표한 '기업환경개선대책'에서 동의명령제를 공정거래법 및 금융, 환경, 노동 등 여러 분야에 도입하기로 했고, 이에 대한 정부 내 합의도 있었다"면서 "한미 FTA 비준 동의와 관계없이 빨리 도입한다는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 보호기간, 입법예고기간의 연장도 마찬가지

한국이 한미 FTA 협상에서 저작권 보호기간을 저작자 사후 70년으로 늘리기로 미국에 약속해 준 것도 비슷한 맥락에 놓여 있다.

지난해 12월 통과된 저작권법 개정안은 저작권 보호기간을 저작자 사후 50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아직 발효도 되지 않은 '신법'이지만(6월 29일 발효 예정), 6월 30일께 한미 양국 대통령이 한미 FTA 협정문에 사인을 하는 순간 누더기가 될 신세다.

이로 인해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될 출판업계의 관계자는 "한미 FTA가 양자 간 협정인 만큼 미국인이나 미국 기업이 보유한 저작권에 대한 보호기간을 20년 늘려주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정부가 한미 FTA를 계기로 아예 저작권법을 뜯어고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다른 국적의 저작권에 대한 보호기간도 모두 늘어나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말했다.

특히, 유럽연합(EU) 국가의 개인이나 기업이 저작권을 보유한 경우가 많은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취급하는 출판사들은, 미국과 FTA를 체결한다고 해서 별 걱정 안 하고 있다가 갑자기 불똥을 맞게 된 셈이다.

문화관광부 관계자는 '한미 FTA가 아니라면 저작권 보호기간을 20년 연장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미 전 세계 60여 개 국가에서 저작권 보호기간을 (저작자 사후) 70년으로 정하고 있지 않냐"고 반문했다. 저작권 보호기간의 연장은 한미 FTA와 상관없이 '선진 제도'라는 것이다.
▲ 25일 오전 '한미FTA 주역' 한덕수 국무총리는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 등 '한미FTA 협상 졸속체결에 반대하는 국회의원 비상시국회의' 소속 의원들의 항의 방문을 받았다. 항의 방문의 이유는 '한미 FTA 협정문을 조속히 공개하라'는 것. 한미FTA로 인해 고유권한인 '입법권'을 침해 당한 국회의 대표자와 한미FTA를 위해서라면 법을 뜯어고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행정부 관료 사이에 냉기가 흐르고 있다. ⓒ연합뉴스

또 다른 예는 입법예고기간을 '40일 이상'으로 연장해주기로 한 것이다. 현행법은 법령 제·개정에 앞서 '20일 이상'의 입법예고기간을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한미 FTA 협상에서 미국이 한국 법률의 제·개정 사실을 사전에 잘 파악할 수 있도록 입법예고기간을 늘려달라고 요구했으며, 한국은 이런 요구를 수용했다.

이에 따라 입법예고기간도 한미 FTA 조인과 동시에 변경될 처지에 놓여 있다.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한미 FTA에 양국 대통령이 서명을 하는 대로 입법예고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법제처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다른 법 제·개정 사항과 마찬가지로, 정부는 이런 미국 측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우리에게도 좋다는 입장이다. 행자부 관계자는 "한미 FTA와 상관없이 지난해 행정절차법을 개정할 때도 입법예고기간을 늘리자는 논의가 있었다"면서 입법예고기간의 연장은 우리 국민들에게 주요 정책, 법, 제도의 변경사항을 알리고 의견을 수렴한다는 측면에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EU 협상에서는 뭘 가지고 협상을 할 텐가?

양자 간 통상협정에서는 상대국에게만 호혜(favor)를 베푸는 것이 당연하다. 모든 국가들에 무차별적으로 호혜를 베풀 작정이라면 굳이 양자 간 협정을 맺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참으로 이상하게도, 한미 FTA에는 미국에 호혜를 베풀어주겠다는 약속의 차원을 넘어 국내 법·제도를 아예 고치겠다는 약속들이 여럿 들어가 있다. 법·제도의 변경을 검토하겠다고 약속한 것도 셀 수 없이 많다.

이런 식으로 법·제도를 고치면, 정부의 '동시다발적 FTA 전략'의 의미는 크게 줄어들 뿐 아니라 다른 FTA 협상에서도 한국 측 협상력이 약화된다. 오는 5월 7일 열리는 한- EU 1차 협상에서, 이미 도입하기로 돼 있는 동의명령제를 놓고 협상을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부는 한미 FTA를 체결한 이상 그로 인한 법과 제도의 변경은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법제처 관계자는 "한미 FTA 협상이 체결됨에 따라 국내법에 그 내용을 수용해야 한다"며 "5월 중 이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법 수용 작업을 실무적으로 뒷받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미 FTA 협상이 한창 진행되던 당시, 정부와 반(反)FTA 진영은 한미 FTA로 인해 개·폐해야 할 국내법의 개수가 몇 개냐를 놓고 논박을 벌인 적이 있다. 반FTA 진영이 100개가 넘을 것이라고 주장하자, 정부는 20개밖에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20개든 100개든 한미 FTA로 인해 대한민국의 법이 무지막지한 칼날에 노출된다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다. 여기에는 관세법, 특별소비세법, 지방세법, 저작권법, 특허법 등 각종 법이 포함될 예정이다.

미국의 경우는 어떤가? 미국도 '한미 FTA 이행법'이란 일종의 행정법을 만들어 한미 FTA에서 양국이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한 작업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국의 법과 제도를 통상협정 하나에 맞춰 뜯어고치는 일을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미국을 '통상 깡패국가'일 뿐만 아니라 '선진국'이라고도 부르는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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