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경쟁 분과의 협상내용은 상대적으로 덜 주목 받았지만, △재벌 관련 각주의 삭제 △동의명령제의 도입 등 확연하게 재계 입장에 치우친 이 분과의 협상결과는 한미 FTA의 친(親)기업적 성격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보인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재벌도 공정경쟁 하라'는 각주, 왜 빼야 했나?
김종훈 한국 측 협상 수석대표는 이날 저녁 9시 30분 브리핑에서 "드디어 모든 내용이 타결된 분과가 탄생했다"면서 "(경쟁 분과의) 주요 협상 결과는 재벌 관련 각주를 삭제하고, 동의명령제를 도입하기로 양측이 합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재벌 관련 각주란 미국 측 협상단이 경쟁 분과의 협정문에 집어넣은, '재벌(Chaebol)에도 공정한 경쟁을 적용하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의 각주를 의미한다.
한국 측 협상단은 국내 재계의 반발을 우려해 이 각주를 빼기 위해 노력해 왔으나, 일각에서는 '재벌도 공정한 경쟁을 해야 한다는 상식적인 문안을 굳이 빼내기 위한 대가로 또 무엇을 내줄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재계, 한미FTA로 '동의명령제 도입' 숙원과제 성취
한편 동의명령제(Consent order)란 경쟁당국과 경쟁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기업이 위법 여부를 따지지 않고 쌍방합의를 통해 사건을 종료하는 제도로, 재계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 제도의 도입을 주장해 왔다.
김종훈 대표는 이날 브리핑에서 "(한미 FTA와 상관없이) 국내적으로 동의명령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다"며 "많은 선진국들이 이런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우리 정부는 지난해 9월 발표한 '기업환경 개선 종합대책'에서 노무현 정부 임기 안에 동의명령제의 구체적인 시행방안을 마련하고 이 제도의 입법조치도 완료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해당 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와 법무부, 그 중에서도 특히 공정위는 동의명령제의 도입에 반대했다가 한미 FTA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입장을 바꾼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혜석 열린우리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특히 공정위는 지난 9월 중순에는 동의명령제에 대해 현재로서는 수용하기 곤란하고 추가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으나, 불과 2주 만에 입장을 바꿔 동의명령제를 도입해 기업 참여형 시정절차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면서 "(동의명령제는) 불법을 저지른 대기업에 면죄부를 주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서 의원의 이같은 지적대로, 동의명령제는 재계의 끈질긴 요구에도 불구하고 '공정거래법을 어긴 기업이 동의명령제를 통해 법의 심판으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 있게 될 뿐 아니라 그렇게 빠져나간 기업은 추후 공정거래법을 또 위반할 유인을 갖게 된다'는 우려로 국내에 도입되지 않았다.
결국 재계는 이날 한미 FTA 협상을 통해 '공정거래 의무'라는 거추장스러운 의무는 피해가는 동시에 '동의명령제 도입'이라는 숙원과제를 성취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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