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경쟁 분야 협정문에 '동의명령제(consent order)' 조항을 넣자고 주장했던 것으로 16일 국회 국정감사 과정에서 뒤늦게 밝혀졌다. 동의명령제란 경쟁당국과 경쟁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기업이 위법 여부를 따지지 않고 쌍방합의를 통해 사건을 종료하는 제도로, 재계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 제도의 도입을 주장해 왔다.
이같은 미국 측의 요구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중순까지만 해도 유보적인 입장이었으나 최근 미국 측의 요구를 수용하는 쪽으로 입장을 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 우리 정부는 지난달 28일 발표한 '기업환경 개선 종합대책'에서 노무현 정부 임기 안에 동의명령제의 구체적인 시행방안을 마련하고 이 제도의 입법조치도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한미 양국 정부가 이르면 2008년에 한미 FTA를 발효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는 점에 비춰볼 때, 이런 우리 정부의 행보는 '우연의 일치'로만 보기 어렵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한미 FTA 협상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은 결과로 시행된 국내 제도 및 법령 변경에 대해 '한미 FTA와는 상관없이 우리 정부가 독자적으로 추진한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동의명령제는 위법 대기업에 면죄부 수단으로 전락할 수도"
서혜석 열린우리당 의원은 16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대한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한미 FTA 협상에서 미국은 경쟁당국과 피심인 간에 합의가 이뤄지면 사건이 종결될 수 있게 하는 '동의명령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혜석 의원은 "이에 대해 공정위는 지난 9월 중순에는 동의명령제는 현재로서는 수용하기 곤란하고 추가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으나, 불과 2주만에 입장을 바꿔 동의명령제를 도입해 기업 참여형 시정절차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서혜석 의원은 "이는 한미 FTA를 추진하는 데 있어 (정부의) 사전 준비와 대응이 미흡했음을 드러낸 것"이라며 "(동의명령제는) 불법을 저지른 대기업에 면죄부를 주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비판했다.
서혜석 의원의 이같은 지적대로, 동의명령제는 재계의 끈질긴 요구에도 불구하고 '공정거래법을 어긴 기업이 동의명령제를 통해 법의 심판으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 있게 될 뿐 아니라 그렇게 빠져나간 기업은 추후 공정거래법을 또 위반할 유인을 갖게 된다'는 우려로 국내에 도입되지 않았었다.
동의명령제의 발동은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기업이 혐의사실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혐의사실을 인정한 기업은 직접 피해보상안을 만들어 공정위에 제시하고, 공정위는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 및 공정위 전체회의를 거쳐 그 피해보상안을 수용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한다. 공정위가 피해보상안을 수용하면 사건은 종결된다.
재계는 경쟁당국과 기업의 분쟁이 장기화되면 해당 기업의 활동에 지장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 분쟁을 조기에 종결시킬 수 있는 제도인 동의명령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또 재계는 동의명령제는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는 제도라는 점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위법행위를 한 기업은 경쟁당국과의 합의가 아니라 법에 의해 정해진 심판을 받는 것이 법적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다른 많은 전문가들은 기업의 위법행위로 피해를 입은 소비자가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을 때 동의명령제로 종결된 사건의 위법사실은 증거로 채택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는 소비자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프로그램 끼워팔기' 혐의로 공정위 조사를 받던 마이크로소프트(MS)가 국내에 도입되지도 않은 동의명령제를 적용해 사건을 조기에 종료해달라는 고압적인 요구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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