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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협상'과 조용하지 못할 '협상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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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협상'과 조용하지 못할 '협상 이후'

[한미FTA 뜯어보기 362 :현장에서] '한미FTA 베이비 탄생' 전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마감시한을 만 하루 앞둔 30일 새벽 2시, 최종 협상이 열렸던 서울 하얏트호텔은 바로 이곳에서 지난 나흘 동안 대한한국의 미래를 좌우할 협상이 열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고요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호텔에 드나들던 정부 인사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엄청난 규모로 민간 투숙객마저 주눅들게 했던 전경들과 사복 경찰들도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협상장 앞의 검색대에는 딱 한 명의 경찰관만이 남아 있었다.

이 호텔 8층과 9층에 각각 투숙하고 있는 한국 협상단과 미국 협상단의 모습을 찾아보는 것은 더더욱 힘들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협상에서 쌀은 논의되지 않았다"는 거짓말을 되풀이하고 있는 민동석 농림부 차관보만이 마지막까지 카메라 앞에 서서 "쌀만은 꼭 지키겠다"고 말했을 뿐이다. (☞관련기사 보기)

29일과 30일의 경계쯤이었을까, 기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는 "오늘 밤에는 아무런 이벤트도 없을 것이니 집에 가도 된다"는 정부 쪽의 사려 깊은 귀띔이 전해졌다. 기자는 이 무렵 협상 고위급 관계자가 누군가에게 "협상이 마무리됐다"고 말한 것을 전해듣기도 했다.

한국 정부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29일 협상장 안팎에서 전해진 협상 결과들 중에는 △미국 측 자동차시장 개방 수준과 한국 측 자동차관련 정책의 '스몰딜' △미국 측 섬유개방 수준과 한국 측 원사기준 원산지(얀포워드)관련 요구의 '스몰딜' △쌀 이외의 모든 농업 품목의 개방 합의 △스크린쿼터를 현행 수준(연간 73일)보다 높일 수 없도록 한 합의 △재송신 외국방송에 대한 한국어 더빙 불허 유지 △지적재산권 분야의 비위반제소 허용 △현행 저작자 사후 50년인 저작권 보호기간의 사후 70년으로의 연장 △기간통신 사업자에 대한 외국인 지분 제한(49%) 유지 △'개성공단 문제는 추후 논의한다'는 문구 삽입 등이 포함됐다.

아직까지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완화'라는 난제가 어떻게 풀렸는지 의문이 남아 있기는 하다. 미국 측은 한국 측에 뼈를 포함한 쇠고기 시장의 개방을 '서면'으로 제시하라는 터무니 없는 요구를 해 왔고, 한국 측은 늦어도 6월에는 뼈를 포함해 쇠고기 시장을 전면 개방하겠지만 정부의 체면상 그런 약속을 '서면'으로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일단은 유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무튼 이같은 협상 결과를 놓고 볼 때 결정적인 딜브레이커(deal breaker, 협상 결렬 요인)는 없어 보인다는 것이 지배적인 분석이다. 한국 측 협상단은 한 동안 공세를 펴는 모양새를 보이던 반덤핑 분야의 요구를 접는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막판 퍼주기'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이날 저녁과 밤 사이에 기자들 사이를 오간 한미 FTA 협상 결과에 대한 평가도 그랬다. 협상을 오랫동안 취재한 한 기자는 "한미 FTA 협상단의 협상 원칙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고 말해 실소를 자아냈고, 다른 한 기자는 "협상을 성공시켰다고 말하기에는 한국 협상단이 얻어낸 것이 너무도 없다"며 한탄했다. 물론 "한미 FTA를 타결한 것 자체가 한미 FTA의 성과"라고 말하는 기자도 없지 않았다.

'협상 결렬' 또는 '협상 무기한 연기'라는 획기적인 뉴스가 전해질 수 있는, 아직까지 남은 유일한 가능성은, 그동안 보수언론들이 내놓은 시나리오대로, 노무현 대통령이 '정권 연장'을 위해 극적으로 협상을 접는 일이다. 국익의 이름으로. 아직까지는 청와대 쪽에서 전혀 그런 낌새를 안 비치고 있지만, '사람의 일은, 특히 정치인들의 일은 모르는 것'인만큼 1%의 가능성만은 열어둘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한미 FTA 주역'인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우)과 김종훈 한미 FTA 한국 측 협상 수석대표. ⓒ연합뉴스

한미 FTA 베이비의 탄생…온 나라가 시끄러워질 것

이렇게 29일 밤 협상장 안팎의 모습과 카타르에서의 노무현-부시 전화협상을 통해 '한미 FTA 협상 타결'이 기정사실화되면서 협상 타결 이후의 국면을 준비해야 하는 정부 홍보 라인의 움직임은 가빠졌다.

정부는 협상 결과에 대한 홍보를 위해 최종 협상이 시작된 26일경 이미 방송 3사에 '한미 FTA 주역'들을 분담·배치했다. 원래는 KBS에 한덕수 국무총리 지명자, MBC에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SBS에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할당'됐으나, 한 총리 지명자가 "나는 아직 총리가 아니다"며 몸을 사리는 바람에 최종 조율이 계속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쌀은 지켰다." "낮은 수준의 FTA다." "한미 FTA는 선진 통상국가로 가는 도약의 길이다." 그리고 "피해 업종을 위한 충분한 대책을 준비했다." 앞으로 우리 국민들이 이들 방송사를 통해 귀에 못이 박도록 듣게 될 정부의 한미 FTA 선전 문구들이다.

이혜민 한미 FTA 기획단장은 몇 달 전 기자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한미 FTA 협상은 아이를 가진 산모의 상태와 같다고 보면 된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조용한 편이었다. 이제 아이가 태어나면, 즉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되면 이 아이를 돌보는 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워질 것이다." 한미 FTA 어록에 남을 명언이다. 이제 나라가 시끄러워질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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