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우리 측 협정문 초안에 집어넣은 '투자자-국가 소송제'에 문제가 있음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이 제도를 한미 FTA에서 뺄 것을 고려했으나, 결국은 이 제도의 도입을 주장하는 미국 측 입장을 존중하기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한미 FTA 저지 범국민 운동본부' 등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은 정부가 협정문 초안에 '별 생각 없이' 집어넣은 '투자자-국가 소송제'가 공공부문에 대한 정책주권을 훼손할 것이라는 등의 이유로 한미 FTA에서 이 제도를 뺄 것을 요구해 왔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란 외국인 투자자로 하여금 우리나라 정부는 물론 국회와 법원을 상대로 직접 소송을 걸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이 제도가 '투자자-국가 간 분쟁 해결절차'라는 이름으로 우리 측 협정문 초안에 들어갔다는 사실은 지난 5월 <프레시안>의 보도로 밝혀진 바 있다.
"여러 문제점 있어 곤란하다. 하지만…"
<경향신문>은 22일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가 작성한 '한미 FTA 투자 Chapter(분과)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절차(2006년 11월)'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입수했다면서 이 보고서를 인용해 "(투자자-국가 소송제에 대한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TF)가 8월부터 10월까지 가진 5차례 회의에서는 이 제도에 대한 '도입 불가론'이 나왔으나 결론에선 '미국 입장'에 무게를 둔 '도입 불가피론'이 채택됐다"고 보도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는 5월부터 '투자자-국가 소송제'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자 7월에 이 제도에 관한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그 도입 여부 및 절차적 문제점 등에 대한 검토 작업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태스크포스는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여러 문제점이 있어 곤란하다. 하지만 이 제도를 배제하는 것에 대해 미국 측의 반대 입장이 명확하다면 문제점 보완을 전제로 수용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는 잠정적 결론을 내렸다고 <경향신문>은 전했다.
이와 관련해 우리 측 협상단은 10월 말에 열린 한미 FTA 4차 제주협상에서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적용범위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수준보다는 좁혀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미국 측은 이에 반대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 우리 측은 수용(收用, expropriation)과 관련된 분쟁이 발생했을 때 외국인 투자자가 '비밀주의 재판'으로 악명이 높은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와 같은 국제 중재재판소에 제소하도록 하기보다는 국내 법에 따라 중재절차에 회부하도록 하자고 제안했으나, 미국 측은 이런 우리 측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4차 협상에서 양국 협상단은 한미 FTA가 발효되기 전에 일어난 분쟁에는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소급해 적용하지 않는다는 데 대해 합의했다.
이날 <경향신문>이 보도한 '한미 FTA 투자 Chapter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절차' 보고서와 관련해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통상교섭본부가 국회 한미 FTA 특별위원회에 제출해 국회 내에서만 열람하도록 한 자료가 리크(leak, 유출)된 것으로 파악됐다"며 "이렇게 내부 자료들이 리크되는 사실 자체가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프레시안>은 이 보고서의 작성 배경과 그 내용에 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을 듣기 위해 한미 FTA 협상 투자분과의 공동 분과장인 김필구 산업자원부 투자진흥과장과의 연락을 시도했으나, 그가 마침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한-캐나다 FTA 8차 협상에 참석 중이어서 즉각 연락이 닿지 않았다. 또 다른 한 명의 공동 분과장인 최경림 외교통상부 FTA 제1교섭관과는 연락이 됐으나, 그로부터는 구체적인 해명이나 설명을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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