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빚'이 드디어 역습을 시작했나?
경상적자와 재정적자의 동시 적자를 의미하는 미국의 '쌍둥이 적자'와 이 적자를 동아시아 국가들이 보전해주는 '글로벌 불균형(global imbalance)'은 지난 몇 년 동안 미국경제뿐 아니라 세계경제의 두통거리였다.
이와 관련해 90년만에 처음으로 올해 들어 미국의 외채 상환액이 외국인투자 유입액을 능가하게 되면서 미국의 빚 부담 문제에 대한 우려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동안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대미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달러로 미국 국채를 사면 미국은 그 국채를 팔아 얻은 빚으로 소비도 하고 투자도 하는 이른바 '달러 리사이클링(dollar recycling)'을 통해 미국과 나머지 국가들이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미국정부와 미국국민들의 그칠 줄 모르는 지출로 부채가 계속 늘어난데다, 지난 2년 동안 미국의 금리가 계속 인상되면서 부채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미국의 경제일간지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25일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하며 미국인들에게 '당장 소비를 줄이고 빚을 갚아나가지 않으면 미래에 그 대가를 혹독히 치러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신용카드 왕창 쓰고 안 갚아도 되는' 미스터리
<WSJ>에 따르면 2005년 말 현재 미국의 해외부채는 13조6000억 달러로 가구당 11만9000달러 수준이다. 미국경제의 호황이 시작된 2001년부터 미국의 소비와 투자는 소득을 능가했으며, 그 차이는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인 연간 2조9000억 달러에 이른다.
지난 몇 년 간 미국정부와 미국국민들이 이렇게 해외에서 수조 억 달러를 빌려 평면TV를 사고, 집을 짓고, 전쟁을 벌였다. 미국의 순(純) 해외부채 상환액은 거의 늘어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국제경제연구소(IIE)의 선임연구원인 캐서린 만은 "이런 상황은 마스터카드를 왕창 쓰고도 카드 결제를 안 해도 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영원히 지속되리라고 믿을 순 없다"고 말했다.
미국이 순(純) 상환액을 증가시키지 않고도 이렇게 빚을 쌓아올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지는 미스터리로 여겨졌다. 그동안 많은 경제학자들이 이 미스터리를 설명하기 위해 애썼다. 최근 리카르도 허스맨, 페데리코 스털제너거 등 하버드대 경제학자들은 미국은 해외기업에 전수할 수 있는 노하우 등 분명 소득을 창출하지만 통계에는 잡히지 않은 '암흑물질(dark matter)'이 이 미스터리를 설명해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해외의 투자자들이 이자율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점 때문에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것을 선호했다는 점이 이런 미스터리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중국은 수익률이 5% 이하에 불과한 미국 국채에 2001년부터 5년 간 2500억 달러를 투자했다.
이처럼 낮은 이자율에도 기꺼이 돈을 대준 외국인들의 투자성향은 미국정부와 미국인들로 하여금 돈을 더 많이 빌려 쓰게끔 부추겼다. 해외의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 구입액은 미국이 2001년부터 5년 간 세금 감면, 의료보험 수당 증가액,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 비용 등 1조3000억 원의 80%를 충당해 줬다. 뿐만 아니라 해외의 투자자들은 국채 외에도 7000억 달러에 상당하는 미국 유가증권 등을 구매해 미국인들이 새 집을 사거나 더 많은 소비를 할 수 있게끔 해줬다.
나아가 미국인들은 이렇게 국채 발행 등을 통해 쉽게 빌린 '싼 돈'으로 리스크가 높은 해외증시 투자에 몰두했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미국의 해외투자는 지난 5년 간 평균 8%의 수익률을 보였다. 금융연구회사인 모닝스타에 따르면 이머징마켓 주식에 투자한 미국인 투자자들은 연간 22.3%나 되는 수익을 거뒀다.
이에 대해 영국 런던에 있는 골드만삭스의 수석 경제학자인 짐 오닐은 "이같은 미국의 운은 예외적인 것"이라며 "미국은 마치 세계 최대의 헤지펀드와도 같았다. 낮은 이자율에 빌린 차입금으로 고수익을 올려왔다"고 지적했다.
연준의 금리인상 행진으로 미국의 부채이자 확 늘어나
많은 경제학자들이 전망했던 것처럼 미국의 부채 문제는 올해 들어 본격적으로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올해 들어 미국의 외채 상환액이 외국인투자 유입액을 능가했다. 2006년 2분기에는 외채 상환액에서 외국인투자 유입액을 뺀 액수가 25억 달러에 달했다. 이는 모든 미국인들이 한 가구당 22달러의 해외부채를 갚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전년 동기에 모든 미국 가구가 분기별로 31달러의 해외투자 수익을 올렸던 것과 대비된다.
미국의 외채 상환액이 외국인투자 유입액을 초과하게 된 것은 이제부터 미국이 부를 쌓더라도 그 중 상당부분이 부채상환의 형태로 외국으로 빠져나갈 것임을 보여준다. 즉 저축이나 투자에 들어가야 할 돈이 빚을 갚는 데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저축과 투자가 경제성장의 필요조건 중 하나라는 것을 상기하면 이는 곧 미국경제의 앞날이 어둡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에 대해 글로벌 불균형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경제학자인 누리엘 루비니는 "(미국인) 여러분이 훨씬 더 열심히 일하지 않는 한 여러분의 생활수준은 떨어질 것"이라며 "우리가 소비를 조절하고 빚을 줄이는 것을 지체할수록 현재의 상황이 미래의 소비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은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게다가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전세계에서 미국의 신용에 대한 우려가 확산될 것이고 이는 이미 약세를 보이고 있는 달러에 추가적인 가치하락 압력을 가할 것이다. 골드만삭스의 짐 오닐은 "경제학자들이 여태껏 이런 점을 여러 번 경고해 와서 이제 사람들이 잘 귀담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면서 "하지만 이제 우리는 사태의 악화를 보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오닐이 지적한 '사태의 악화'란 최근 2년 동안 미국의 단기금리가 크게 인상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난 2년 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인상 기조가 계속돼 단기금리가 2004년 6월 1%에서 현재 5.25%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그 결과 대부분 단기부채인 정부부채의 상환액이 증가하고 있다. 가령 올해 2분기에만 해외부채 상환액은 360억 달러에 달했다.
이처럼 증가하고 있는 해외부채 상환액은 미국의 재정을 금리변동에 더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 연방준비제도의 경제학자인 세드릭 틸은 미국 국채의 수익률이 1%포인트만 올라도 미국의 순(純) 부채상환액은 국내총생산(GDP)의 1.1%나 오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1995년에만 해도 이 수치는 0.5%에 지나지 않았다.
더욱이 금리가 변동하지 않아도 해외부채 상환액의 비중은 증가할 것이라고 경제학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백악관 소속 경제학자인 존 키친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10년 후 미국의 GDP에서 부채상환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0.5%~2%로 증가할 것이다. 이 수치도 미국정부가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해 노력할 경우에 해당하는 전망치이고, 경상수지 적자가 지금과 같은 속도로 불어나고 미국이 해외투자에서 누리고 있는 프리미엄마저 사라지면 이 비중은 5%로 더 치솟을 것으로 예측된다.
물론 13조 달러 규모의 미국경제를 고려할 때 이 정도의 해외부채는 아직은 양호한 수준이다. 가령 2005년 말 현재 미국의 순 해외부채는 GDP의 20%로, 유로존 12개 국가들의 평균인 15%, 영국의 17%에 비해 심각하게 높은 수준은 아니다. 멕시코의 경우에는 이 비중이 44%나 된다. 또 미국의 금리가 도로 낮아지기라도 하면 미국의 해외부채 증가 추세가 멈출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오히려 경제학자들이 걱정하는 것은 미국이 지금 이 순간에도 빠른 속도로 새로운 부채를 쌓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미국이 더 많은 부채이자 부담을 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부담이 늘어날수록 미국이 악명 높은 쌍둥이 적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힘들어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문제로 미국경제가 휘청거리면 전 세계 투자자들은 미국에 대한 투자의 리스크가 커진 데 대해 더 높은 이자율을 요구할 것이고, 이에 따라 미국이 더 많은 이자 부담을 지게 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것이다.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의 피에르-올리버 고울린차스 교수는 "결국 많은 빚을 갚기 위해 더 많은 빚을 져야 하는 상황이 될 것"이라며 "상황은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게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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