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쌍둥이 적자(twin deficits)가 미국경제와 세계경제를 위협하고 있다는 경고는 이미 몇 해 전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미국이 곧 망할 것처럼 몇 년 전부터 호들갑을 떨었지만 현재 미국경제와 부시 행정부는 저토록 건재하지 않느냐고, 다른 나라도 아닌 미국이 그렇게 쉽게 망하겠냐고….
맞는 말이다. 미국은 분수에 넘치는 과소비와 명분 없는 전쟁을 계속하면서 이를 다른 나라들로부터 빌린 달러로 충당하는 비정상적인 경제구조를 놀라울 정도로 오랫동안 '잘' 유지해 왔다.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였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이는 세계 최고의 수출품인 '달러'를 찍어내서 얻는 이익, 즉 미국의 시뇨리지가 해외의 잉여달러를 빨아들여 죽어가는 미국경제에 산소를 공급해준 덕분이다. 특히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달러재활용(dollar recycling)'이라는 놀라운 재활용 정신을 발휘하며 미국경제의 산소호흡기 역할을 떠맡아 왔다.
그러나 미국경제가 재생불능 상태가 되지 않기 위한 조정(adjustment)은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되어 있다. 경상적자와 재정적자를 합쳐 국내총생산(GDP)의 10%(2004년 기준)가 넘는 경제는 결코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불안한 기초 위에 형성된 달러의 가치는 필연적으로 하락할 것이고, 달러에 대한 투자자의 신뢰 상실이 이를 가속할 것이며, 그 결과 미국 경제가 불황에 빠져드는 반전이 일어나는 시기가 분명히 올 것이다.
그래서 현재 세계 경제전문가들의 관심은 미국경제가 쓰러지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미국경제의 조정(adjustment)이 과연 언제 어떻게 일어나느냐에 쏠려 있다.
***"미 경상적자가 GDP 8% 넘으면 전세계 저축으로도 감당 못 한다"**
삼성경제연구소(SERI)는 최근 경상수지가 적자에서 흑자로 반전되는 경험을 한 25개의 국가들을 연구한 결과 대부분의 국가들이 경상수지 적자가 GDP의 5% 수준에 이른 시점에서 통화의 절하와 경기의 침체를 동반한 조정을 경험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경우 현재 경상수지 적자가 GDP의 6%에 육박하고 있는데도 세계 기축통화 발권국가로서의 시뇨리지 이익에 힘입어 경상적자가 더욱 확대되는 상태를 지속시켜 갈 수 있었다. 그러나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돼 달러화에 대한 세계 투자자들의 신뢰가 유지될 수 없는 정도에 다다르면 이런 시뇨리지 효과도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에 따르면 미국의 경상적자가 GDP의 8%(2004년 기준)보다 많아질 경우 이는 전세계의 초과저축을 모두 흡수해야 보전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물론 미국이 전세계의 저축을 100% 흡수하는 일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미국의 경상적자가 GDP의 8%에 도달하면 이와 같은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대외불균형 미국경제의 향후 행보…2006년~2010년에 탈 나나?**
지난해 12월 삼성경제연구소(SERI)가 발표한 '미국의 대외불균형 조정 시나리오와 시사점' 보고서에는 앞으로 미국의 대외불균형 문제가 언제 어떻게 조정될 것인지에 대한 3가지 시나리오가 제시되어 있다.
〈표: 삼성경제연구소의 '시나리오별 조정 과정'〉
***최악의 시나리오: 당장 미국경제 위기 닥친다**
먼저 미국 정부의 재정정책에 아무런 변화가 없고 달러화 가치의 조정도 일어나지 않을 경우, 미 쌍둥이 적자의 반전 시점은 2006년이나 2007년으로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시나리오 2)
부시 정부가 감세 및 사회보장비 지출의 확대를 특징으로 하는 공화당 전통의 경제정책을 고수하면 미국의 재정 부문은 향후 10년 간 연평균 GDP 대비 3~3.5%의 적자를 지속할 것이다.
한편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의 통화가치 상승 등이 일어나지 않고 달러화 가치가 현재의 수준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소폭의 상승세를 보인다면 이르면 올해 안에 미국의 무역적자는 GDP의 6.5%, 경상적자는 GDP의 8%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미국경제에 대한 해외투자자들의 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달러화 가치가 급락하고 금리가 급등하는 등 급격한 조정이 시작될 것이다. 이렇게 경기침체를 동반한 급격한 조정이 단기적으로 이뤄진 후에는 향후 2년간 1% 미만의 성장정체가 있을 예정이다.
***달러화 가치 떨어지면 위기는 4~5년 미뤄질 것**
한편 미국 정부가 현재의 경제정책을 고수하는 가운데 달러화 가치가 주요 통화들에 비해 5% 이하로 조정되는 경우 쌍둥이 적자로 인한 위기는 2009년 이후로 몇 년 정도나마 미뤄질 수 있을 것이다. (시나리오 1)
달러화가 주요 통화 대비 5% 절하되면 무역수지 적자는 GDP의 5% 수준에서 그럭저럭 유지될 수 있지만, 경상수지 적자는 대외부채 누적에 따른 이자 부담이 증가함에 따라 악화될 것이다. 그 결과 2009년 대외순채무는 GDP의 55%에 달하게 될 것이고 바로 이때 달러화의 급락과 금리의 급상승을 동반한 급격한 조정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전세계의 많은 경제전문가들도 구체적인 수치에서는 차이를 보이지만 이르면 올해 안에, 늦어도 2010년 내에는 이런 급격한 조정이 일어날 것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캐서린 맨 존스홉킨스대학 국제학 교수는 미국의 경상적자가 GDP 대비 13%(2004년 기준)에 이르는 2010년이 되기 전에 미국경제가 급격한 조정을 겪을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국제개발센터(CGD)의 윌리엄 클라인 박사도 미국의 경상적자가 GDP의 8%(2004년 기준), 대외순채무가 GDP의 55%(2004년 기준)에 이르는 2010년이 고비가 될 것으로 보았다.
***국제공조에 힘입은 연착륙 시나리오**
물론 이런 급격한 조정 시나리오와 다르게 미국의 쌍둥이 부채가 완만한 속도로 조정될 것이라고 내다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이런 연착륙(soft landing)이 가능하려면 미국은 현재의 재정적자를 2% 미만으로 줄여야 하고 달러화의 가치도 주요 통화에 비해 25% 정도 절하돼야 한다. 이 경우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2~3% 대에서 유지되면서 세계경제의 불균형 문제도 완만하게 해소된다는 것이다. (시나리오 3)
이는 물론 부시 정부가 쌍둥이 적자 문제의 심각성을 직시하고 재정수지의 개선에 힘씀과 동시에 국제적 공조를 통해 달러화 가치를 조정해나갈 것이라는 가정 아래 만들어진 시나리오다.
***이대로는 경착륙 가능성이 높다**
지난 몇 년 동안 국제통화기금(IMF), 선진7개국(G7), 전세계의 경제학자들이 미국의 쌍둥이 적자와 세계경제의 불균형(imbalance) 문제를 지적하며 미국경제의 연착륙(soft landing)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도록 국제적 차원에서 노력하자고 촉구해 왔다.
안타깝게도 현재로서 개연성이 더 높은 시나리오는 미국의 쌍둥이 적자와 국제경제의 불균형이 지속되다가 이런 불균형 상태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위기 국면을 맞아 급격한 조정, 즉 경착륙(hard landing)이 일어나는 것이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미국의 경상적자는 GDP의 3% 수준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적자가 이 수준에서나마 유지되면 현재 GDP의 28%에 달하는 미국의 해외순채무를 줄이지는 못할지언정 더 늘어나는 것만은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GDP 3% 수준의 경상적자는 미국의 평균 경제성장률과 실질이자 수준을 감안한 '외채 증가 저지선'인 셈이다.
***미국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국제경제연구소(IIE)의 에드윈 트루먼 박사에 따르면 미국의 경상적자를 현재의 절반 수준인 GDP 대비 3%로 줄이려면 미국 국민들이 각각 1인당 2350달러의 부담을 져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미국의 경기둔화로 줄어들게 되는 1인당 GDP 1350달러에 달러화 가치의 상승으로 인한 무역손실액 1000달러를 더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조지 부시 대통령을 포함한 미국의 정치인들이 대부분 쌍둥이 적자의 심각성을 못 본 체하고 필요한 조정을 임기 중에 하지 않고 뒤로 미루려고 하는 가장 큰 이유다.
미국 국민들에게 각각 2350달러의 비용을 부담하라고 주장해 자신의 정치생명을 위태롭게 할 정치인이 과연 몇이나 될까. 경제정책에 관한 한 미국 정계에서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스칼렛 오하라'식 처방이 유행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달러화 가치 하락도 미국인 과소비 못 막는다**
게다가 미국의 경우 달러화 가치를 감소시켜도 수출이 늘어나고 수입이 줄어들어 무역수지가 개선되는 효과를 크게 기대하기 힘들다. 환율의 변화가 수출품과 수입품의 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한 '환율의 전이효과(exchange rate pass-through)'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턱없이 낮기 때문이다.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린다 골드버그 박사와 스페인 나바라 대학의 호세 마누엘 캄파 교수가 공동 연구한 바에 따르면 달러 가치에 10%의 변화가 생기면 미국 내 수입품의 가격 변화는 3개월 안에 고작 2.5%, 몇 년이 지나도 4%를 초과하지 않는다고 한다. 연준의 자체 연구결과에 의하면 환율의 전이효과는 아예 제로에 가깝다.
따라서 달러화 가치가 하락한다 해도 미국인들의 구매력은 별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이는 달러화 가치에 조정이 일어나도 미국인들이 과소비를 계속해 경상적자가 개선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세계경제가 성장하면 불균형 문제는 악화된다**
한편 미국이 아닌 나머지 국가들, 특히 아시아의 정치인들은 미국의 대외적자가 확대됨으로써 생기는 경제적 이득으로 자국에서의 정치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자국 화폐 가치의 인상 등을 포함하는 국제적 조정(global adjustment)에 나서려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은 자국 정부가 언젠가는 이 엄청난 미국의 대외불균형 문제에 대한 비용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는 가정 하에 정책을 수립하지 않는다. 현재의 불균형 상태가 계속 유지될 수 있으리라는 비합리적인 가정 하에 이들이 움직이면 세계경제의 불균형은 더욱 더 심각해진다.
현재 세계경제 구조는 미국을 제외한 세계 전체 경제가 연간 1%만큼 성장하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0.7%만큼 늘어나는 기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이는 세계경제가 1%로 성장할 때 미국의 수출은 1%만큼만 늘어나지만 수입은 이보다 훨씬 높은 1.7%만큼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만의 고유한 현상이다. 다른 국가들의 경우 세계경제가 성장하면 덩달아 수출도 늘고 경상수지가 흑자로 돌아서며 국내 경기도 호전된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세계경제의 호황이 지속되면 지속될수록 미국의 쌍둥이 적자 문제는 심각해질 것이고 그 결과 세계경제의 불균형 문제는 더욱 더 심화될 것이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고 할까**
이처럼 미국인들도, 미국 정부도, 다른 국가의 정부들도 당장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유리한 유인(incentive)들만 많은 상황에서 미국의 쌍둥이 적자와 세계경제의 불균형 문제는 한계점에 다다를 때까지 계속 앞으로만 나아갈 가능성이 높다.
모두 세계경제를 균형상태로 되돌리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현재의 불균형 상태를 뒷짐 지고 구경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미국경제와 세계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는 인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미국을 포함해 세계의 모든 국가들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게임을 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고양이(미국의 쌍둥이 적자와 세계경제의 불균형)의 위협은 알지만, 누구도 섣불리 나서서 그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달겠다고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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