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 간 세계경제는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은 평균 4.7% 상승해 1970년대 이후 2년 연속 가장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다.
그러나 이런 세계경제의 호황은 그 기초가 불안하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미국이 세계 최대의 소비자이자 채무자가 되고, 미국 이외의 다른 나라들은 미국인들에게 계속 돈을 대주면서(달러 리사이클링) 소비를 계속하도록 상품을 대주는(대미 수출) 구조가 과도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빚더미 미국경제가 국제금융 붕괴시킬 가능성은 75%"**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부설 싱크탱크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의 경제부장 로빈 뷰는 최근 발표한 '2006년 통화위기'란 글에서 "경제학자들은 이미 몇 년간 세계경제가 거대하고 지속될 수 없는 불균형을 안고 있다고 경고해 왔다"며 "미국의 소비자들과 정부가 미친 듯이 소비만 하고 거의 아무 것도 저축하지 않아 미국은 사업장비나 생산시설 확충을 위한 투자를 상당 부분 외국에 의존해야 했다. 그 결과는 경상수지 적자의 증가와 세계 다른 국가들에 대한 채무의 급증"이라고 지적했다.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는 '사상누각(砂上樓閣)'은 빚더미에 올라 앉은 미국경제와 이를 떠받치고 있는 위태로운 세계경제를 묘사하기에 딱 적합한 표현이다. 모래 위에 세워진 현재의 호황은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다.
세계시장연구소(GMI)의 소장인 프레드 버그스텐은 지난해 9월 GMI가 브루킹스 연구소와 '세계경제의 10대 위험'을 주제로 공동 주최한 세미나에서 "미국의 쌍둥이 적자는 미국 달러화와 미국경제는 물론 세계경제의 경착륙을 초래할 수 있다"며 "미국의 쌍둥이 적자가 국제금융체제를 붕괴시킬 가능성은 75%"라고 강력하게 경고한 바 있다.
이들을 포함해 적지 않은 수의 국제경제 전문가들은 미국의 쌍둥이 적자 문제가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세계경제에 대한 심각한 위협요소로 떠오를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의 경제담당 편집자인 팸 우달은 최근 '불안한 기초'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2006년에는 미국을 비롯한 몇몇 국가들이 내수침체에 빠질 것으로 전망해야 할 타당한 이유들이 있다"며 "그것은 바로 저금리, 고유가, 부동산거품, 사상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는 저축률, 사상최대의 경상수지 적자, 엄청난 재정적자 등"이라고 지적했다.
***최근의 달러 가치 하락, 불길한 조짐**
아닌 게 아니라 올해 들어 연초부터 미국 연준이 정책금리 인상 행진을 마감할 가능성과 세계적인 부동산거품의 붕괴 조짐, 전세계적인 고유가 압력의 지속, 유럽연합(EU)과 일본의 재정긴축이 종료될 조짐 등이 한꺼번에 미국경제에 압박을 가하게 되면서 미국의 쌍둥이 적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존재로 부각되고 있다.
EIU의 로빈 뷰에 따르면, 미국이 올해 당장 갚아야 할 돈만 9000억 달러에 이른다. 따라서 미국이 파산하지 않게 하려면 올해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은 미국이 빚을 갚을 달러를 대주기 위해 달러나 달러 표시 자산을 그만큼 많이, 아주 많이 사줘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달러의 가치는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불안불안한 미국경제를 보면서 계속해서 달러를 무한정 사줄 나라는 없다. 이미 지난 2002년부터 달러는 해외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를 잃기 시작했으며, 이에 따라 그들의 달러 또는 달러 표시 자산에 대한 구매욕도 수그러들고 있다. 달러 가치의 하락은 외국인들로 하여금 달러로 표시된 자산을 팔아치울 유인이 되고, 그러면 달러 가치가 추가적으로 더 하락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로빈 뷰는 "2006년에는 달러 가치의 하락이 더 빨라질 위험이 있는데, 그러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 내 자산의 가치가 떨어진다"며 "이런 점을 고려해 투자자들이 미국 자산을 팔기 시작하면 2006년은 달러화가 폭락하는 해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무사태평한 미국인들, 무슨 배짱일까**
그러나 정작 미국인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미국경제가 순항하고 있다고 자랑하기까지 하고, 일반 미국인들의 태도도 무사태평이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GDP 대비 6%에 육박(2004년 기준)한다는 것은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실제 경제력보다 6% 만큼 더 많이 소비하고 있다는 의미이고, 미국의 저축률이 제로 내지 마이너스 수준에서 계속 머물고 있는 것은 미국인들이 빌린 돈을 갚을 마음이 별로 없다는 의사표현이나 다름없다.
이처럼 빚꾸러기가 소비를 줄이지도 않고 저축도 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은 파산에 이르는 것이다.
미국 국제경제연구소(IIE)의 윌리엄 클라인은 지난해 9월에 발간한 저서 〈채무국 미국〉에서 "미국이 현재의 재정정책 등을 수정하지 않으면 2010년에는 경상수지 적자가 1조2000억 달러로 GDP의 7.5~8%, 대외순채무는 8조 달러로 GDP의 50%에 이를 것"이라며 "나아가 2024년에는 경상수지 적자가 GDP의 14%, 대외순채무는 GDP의 135%를 기록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상황이 이런데도 일부 경제전문가들, 특히 미국 내의 보수적인 경제전문가들은 미국의 쌍둥이 적자에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다고 난리법석이냐고 반문하거나, 설사 미국의 쌍둥이 적자에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미국 탓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적자는 좋은 것(Deficits are good)'이나 '영원한 공짜 점심(Perpetual free lunch)'의 관점은 앞의 경우에,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의 관점은 뒤의 경우에 해당한다.
***◇"적자는 좋은 것"…?**
'적자는 좋은 것'이라는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미국에 경상수지 적자가 쌓이는 이유는 한마디로 미국이 다른 나라들보다 잘 살기 때문이라고 본다. 미국이 무역상대국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보다 더 많이 소비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최근 유럽이나 일본이 경상수지 흑자를 내는 것은 그 나라들의 소비가 둔화되고 경제성장이 정체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리처드 쿠퍼 하버드대학 국제경제학 교수는 "현재 미국은 세계 '잉여저축'의 10%를 끌어당기는 자석"이라며 "미국은 투자하기에 최적의 장소를 제공해주고 있는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이들은 미국이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한 조치를 취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게 하면 미국이 경기침체에 빠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들은 오히려 전세계 다른 나라들이 시장친화적인 개혁, 즉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루면 세계경제의 불균형 문제가 자연히 해소될 것이라는 논리를 편다.
그러나 이런 논리에는 두 가지 오류가 들어 있다. 먼저 미국이 고수익을 보장해주는 매력적인 투자장소라는 주장은 미국경제가 소비가 아니라 투자에 의해 견인될 경우에나 맞는 소리다. 하지만 최근 미국에 유입되는 자금은 주로 외국의 중앙은행들이 공적자금을 들여 미국 국채를 구입하는 데서 나오고 있다. 미국으로 흘러들어가는 자금은 민간의 투자자금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하나의 오류는 미국이 바라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국가 간 경상수지 불균형을 균형으로 되돌리는 데 긍정적인 효과를 미쳤다는 역사적인 증거가 전혀 없다는 점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원한 공짜 점심"…?**
그런가 하면 달러 가치만 저하시키면 GDP의 5% 정도의 경상수지 적자는 손쉽게 보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들도 있다. 이들은 미국의 해외자산 대부분이 달러가 아닌 현지 통화로 표시된 것이어서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자동적으로 해외자산 수익이 늘어나 미국의 빚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를 편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다음의 두 가지 조건이 만족될 때만 성립한다. 첫째, 사람들이 달러의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고 미리 예상하지 못 해야 한다. 사람들이 달러 가치의 하락을 예상하게 되면 달러 가치 하락에 따른 자산수익 증가라는 기대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둘째, 해외 투자자들이 현재의 금리에서 미국 자산을 보유하는 것에 계속 만족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의 금리인상 행진이 종료되고 EU, 일본 등에서 금리인상의 신호가 나오고 있는 현 상황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런 두 가지 조건이 언제까지나 계속 유지될 수는 없는 게 당연하다.
미국 뉴욕 시에 있는 국제경제 연구소인 '루비니 국제경제모니터(RGE Monitor)'의 누레일 루비니 뉴욕대 교수와 브래드 세처 옥스퍼드대학 연구원은 2005년 '미국 대외불균형의 지속가능성'이란 논문에서 "GDP 대비 무역적자가 GDP의 5% 수준에서 유지되면 10년 후인 2015년에는 GDP 대비 해외순채무가 GDP의 90% 정도로 늘어날 것이고, GDP 대미 무역적자가 약 8.5% 수준에서 누적된다면 2015년 부채비율이 GDP의 100%에 이를 것"이라 전망한 바 있다.
통상 해외순채무가 GDP의 50%를 넘으면 대외부문에 적신호가 켜진 것으로 보는 경제학의 상식을 감안한다면 아무리 미국이 기축통화국으로서의 특권을 누리고 있다 해도, 그런 빚꾸러기 국가에 영원히 자기 재산을 묶어둘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메이드 인 차이나"…?**
한편 '메이드 인 차이나'의 관점은 쉽게 말해 미국 대외불균형의 원인이 미국이 아닌 중국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올해 2월에 정식 취임하게 될 벤 버난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지명자가 바로 이 논리의 신봉자다.
이런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와 유럽 등지에서 큰 규모의 경상수지 흑자가 나고 있으므로 이에 따른 잉여자금을 흡수해줄 곳으로 매력적인 투자대상 자산을 가진 미국이 선택되었다고 설명한다. 이는 곧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들에서 초과저축이 발생하는 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말이다.
이런 관점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주로 미국의 정치인들이다. '메이드 인 차이나'의 논리대로라면 미국의 대외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없는 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문제의 진원지가 중국이기 때문에 아무리 미국이 재정정책을 잘 해봐야 경상수지 적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미국민들에게 설명해 납득시키기만 하면 적어도 자신들의 정치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태도를 취한다.
앨런 그린스펀 연준 의장도 최근 "재정적자를 1달러 감소시켜도 경상적자는 20센트밖에 감소하지 않는다"는 한 연구결과를 인용하며 재정정책의 무력함을 호소한 바 있다. 또 미국의 정치인들 중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제시한 거시경제 모델을 인용해 "재정적자를 1달러 줄여도 경상적자는 40센트 밖에 줄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중국이 수출을 통해 돈을 많이 벌어들이는 바람에 미국이 어쩔 수 없이 돈을 많이 쓰게 됐다는 논리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는다. 올바로 말한다면, 미국이 자국의 엄청난 빚을 메우기 위해 중국을 포함한 전세계의 잉여저축을 다 빨아들였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메이드 인 차이나'의 관점이 지닌 또 다른 오류는 최근 미국에 흘러든 자금 중 상당 부분이 외국의 중앙은행들이 미국 국채를 매입함으로써 공급된 것인데 이것을 초과저축, 즉 '민간'의 저축이 미국으로 흘러든 것으로 잘못 보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관점에서 가장 비논리적인 것은 중국이 애써 번 돈을 계속해서 미국에 쏟아부을 것이라는 가정이다. 미국이 돈을 빌려다 투자는 하지 않고 소비에만 써버리는 걸 이제는 알 만한 사람이면 다 아는데 언젠가 이런 돈의 흐름이 역전될 것이라는 생각은 왜 못하는지, 혹시 알긴 아는 것이라면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모르는 체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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