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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격랑 견뎌낼 기초체력 있나?

[빚꾸러기 미국, 위태로운 세계경제 5(끝)] 경제 다이어트와 양극화 해소를

최근 국내외에서 달러화 가치의 폭락과 세계 대공황 발발 가능성을 주 내용으로 하는 책들이 속속 발간되고 있다. 언론에도 미국 쌍둥이 적자와 세계경제 불균형이 불러올 급격한 환율조정과 경기침체의 위협을 경고하는 글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런 경고성 시나리오들은 연초부터 폭락한 원/달러 환율, 최근 주가가 급락하며 발동된 서킷브레이커(시장 일시중단 조치) 등 한국경제가 보여주는 위태위태한 모습과 맞물려 '미국경제와 세계경제의 위태로운 균형 잡기'가 이제 한계점에 도달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국내 금융당국과 기업들은 이런 흐름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달러화 가치의 폭락과 미국경제의 붕괴'라는 시나리오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대책을 정책에 반영하고 있는 것일까. 〈프레시안〉이 만나본 대부분의 금융당국 관계자들과 기업의 외환 담당자들은 대부분 이런 시나리오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주류의 시각은 아니다"**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 등 금융당국은 세계경제가 처한 불안한 현실에 대해 우려하면서도 이것이 세계대공황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은 염두에 두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재정경제부 외화자금과의 최희남 과장은 "달러화 가치의 폭락과 미국 경제의 붕괴 가능성이 정부의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느냐"는 〈프레시안〉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며 "의도적인 메시지를 밝히면 시장에 시그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한국은행 정책총괄팀의 한 관계자는 "달러화 가치와 미국 경기 동향에 대해서는 당연히 예의 주시하고 있고, 원/달러 환율은 정책 결정의 중요 변수"라며 "그러나 달러화의 붕괴나 세계 대공황의 시나리오는 출처가 명확하지 않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경제에 대한 우려는 있지만 주류의 시각은 아니다"라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정책금리 인상행진을 종료한 후 미국경제가 어떻게 움직일지에 대한 시나리오는 작성하고 있지만 달러화가 폭락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개별 기업이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

삼성 등 국내 대기업들의 경우도 경영실무 차원에서 기본적인 환리스크 관리는 하고 있으나 '달러화의 폭락 가능성'을 염두에 둔 시나리오를 짜고 이에 따른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삼성경제연구소(SERI) 등에서 외환시장 및 미국경제·세계경제의 동향을 분석하면 이를 반영해 경영계획을 수립하고 중장기적인 환리스크 관리를 한다"면서 "개별기업 수준에서 리스크 관리로 결제일을 조정하고 달러 일변도의 결제통화를 다변화하며, 수출통화와 수입통화를 동일화하는 통화매칭 방법을 쓰기도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삼성전자는 외환딜러 등을 고용해 따로 달러 헤지(hedge: 통화가치 등 가격변동으로 인한 위험을 분산시키기 위한 투자) 등을 하고 있지는 않다"며 "개별 기업이 세계시장의 움직임에 일일이 단기적으로 대응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어서 그는 "개별 기업이 할 수 있는 것은 열심히 기업활동을 해 원가와 물류비를 절감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라며 "달러화 폭락 가능성과 같은 문제에 대한 고민은 개별 기업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재경부, 한은 등 금융당국이 해줘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한국의 중소기업들은 세계경제의 불안정성에 대한 인식은커녕 기본적인 환리스크 관리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한국무역협회가 국내 중소기업 148개 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약 47%의 중소기업들이 환율변동에 따른 환위험에 대응하는 업무를 해본 경험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환위험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응답업체의 55%가 대응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딜레마에 빠진 한국경제**

미국의 쌍둥이 적자와 세계경제의 대외불균형에 직면해 한국이 취할 수 있는 현명한 선택은 무엇일까.

한국 혼자 살아보겠다고 당장 외환보유액을 다변화하고 달러화로 표시된 미국 국채와 자산을 팔아치운다고 생각해보자. 전세계 국내총생산(GDP) 11위(2005년 기준) 수준의 한국이 이런 조치를 취하면 미국경제에 악재가 되고 미국과의 통상외교에 마찰을 일으키게 돼 결국은 한국경제에 부메랑이 되어 날아올 것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미국이 자국의 대외불균형과 빚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떠넘기는 원화 환율 절상, 시장개방 압력 등을 고스란히 떠안게 되고, 언젠가 닥칠 수 있는 미국의 경기침체에 속수무책으로 영향받게 될 것이다.

이런 딜레마의 상황 때문인지 국내에서 이 문제에 대해 뾰족한 해법을 내놓는 전문가를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철저한 준비만이 살 길'이라는 추상적인 원칙에는 동의하고 있다.

***"제2의 플라자합의에 대비해야"**

무엇보다도 부시 행정부에서 부쩍 강화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드라이브 등 시장개방 압력과 통상마찰, 원화 절상 압력 등 국가간 갈등이 늘어날 것에 대비해 정부와 민간이 함께 여론을 수렴하고 대응 시나리오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삼성경제연구소(SERI)는 25일 발표한 보고서 '거듭되는 환율불안, 원인과 전망'에서 "미국은 무역수지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외환정책과 함께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 통상압력을 강화할 전망"이라며 "미국의 반덤핑 관세 및 보복관세의 부과, 수입규제 등에 사전에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또 "제2의 플라자합의 주장이 본격적으로 제기될 경우에 대비해 미리 대응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며 "실제로 그런 합의가 타결되면 세계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의 판도가 어떻게 바뀔지에 대한 분석을 하고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기경보 시스템 마련하라"**

한편 미국이 콧방귀라도 한번 뀌면 태풍이라도 몰아친 듯 요동치는 국내 금융·외환시장의 취약성을 줄이기 위한 체계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도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SERI)는 "1999년 이후 최근까지 국내 주가지수와 원/달러 환율은 해외시장의 변동에 과잉반응해왔다"며 "1999년 1월부터 2004년 10월까지 월별 자료를 이용해 단순회귀분석을 한 결과 미국 다우지수가 1% 변하면 국내 종합주가지수는 1.26% 변동하고, 엔/달러 환율이 1% 변하면 원/달러 환율은 6.69% 변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세계시장에의 노출 정도가 급속도로 높아진 국내 외환·금융시장이 외부 악재로부터 받을 충격을 미리 감지하고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기경보 시스템을 확충하고 이 시스템에 대한 관리·감독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은 지난해 말 발표한 '2006년 국내외 경제전망'에서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에 대한 정책대응이 필요하다"며 "경기회복에 따라 시중금리의 상승은 불가피하겠지만 국채 발행시기 분산을 통해 시장에 주는 충격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LG경제연구원은 "환율의 변동성을 줄이는 일도 필요하다"며 "달러가 약세로 추세전환할 경우 단기적으로 불안정성이 증폭될 수 있기 때문에 환율조정의 속도를 조절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와 더불어 전문가들은 정부와 기업의 재정정책 운영과 외환관리 정책의 시야를 5년 이상으로 장기화할 필요가 있고, 이를 제도화하기 위한 정치경제적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경제정책을 보다 긴 안목에서 수립할 수 있도록 대통령 단임제를 연임제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토종자본 육성해야"**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한국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세계경제가 불균형의 급격한 조정에 따른 충격을 받을 경우 그것이 한국경제 전반에 미치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여파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우리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한국경제의 기초체력을 강화하는 방안 중 하나로 일각에서는 외국인 주식보유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국내 기업들의 내국인 지분비율을 높이고 비즈니스의 국내 기반을 확충해야 한다는, 이른바 '토종자본 육성론'이 제기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외국인 상장기업 주식보유 제한을 대폭 완화한 우리나라의 경제는 현재 외국인의 유가시장 상장주식 보유금액이 전체 시가총액의 40.47%인 252조 원(2005년 말 기준)을 차지하는 등 이미 외국자본, 특히 미국계 초국적 자본의 통제권 안에 들어가 있다.

이들 외국자본은 영미식 자본주의 논리에 입각해 건전한 투자보다는 단기적 경영성과만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한국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그들에게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가능한 한 국내 기업들의 지분에서 토종자본의 비율이 높아지도록 국가정책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올 한해 인수합병(M&A) 시장에 대우건설, LG카드, 외환은행 등 우량 기업들이 매물로 나오고, 퇴직연금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며, 연기금의 주식투자 비중이 높아질 전망이여서 국내 자본시장에 외국자본이 물밀듯 들어올 것으로 보인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에서 사모투자펀드(PEF)와 국내외 전략적 투자자들을 연계시키는 등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 토종자본을 육성하고 국부유출을 막아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또한 한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자본과 외국에 나가 있는 한국자본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외환위기 당시 국내 금융기관은 공격적인 해외투자 과정에서 리스크 관리가 미흡해 큰 손실을 입은 바 있다"며 "자본자유화와 원화강세에 힘입어 늘어나고 있는 외화대출과 해외투자의 리스크 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근본대책은 경제양극화 해소하는 것"**

세계시장에서의 수출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경제양극화를 해소해 내수기반을 공고히 해야 한다는 것도 많은 경제학자들이 단골로 내놓는 대책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수출경쟁력 제고방안은 생산요소 중심의 양적 투자가 아니라 연구개발(R&D)과 인적자본개발(HRD) 등 질적 투자를 통해 가격경쟁력이 아닌 품질경쟁력으로 승부하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원화 강세에 따른 가격경쟁력 약화를 품질, 디자인 등 비가격 경쟁력 강화로 보완해야 한다"며 "고품질·고기술 제품을 확보하고 있으면 원화 강세를 수출가격으로 전가해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경제성장 동력을 수출에만 과도하게 의존하는 현재의 수출지향 경제를 수출과 내수가 조화를 이루는 균형경제로 전환하는 것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즉 경제양극화를 심화시켜 내수기반을 무너뜨리는, 지금과 같은 '수출 위주의 성장 제일주의'를 지양하고 '내수를 중심으로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창출한다'는 중장기적인 목표에 대해 전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합의 하에 빈부격차의 해소, 국내 고용 증대, 사회복지망의 구축 등이 적극적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1995년~2003년 사이 우리나라 하위 10%의 소득은 평균 소득의 41% 수준에서 34% 수준으로 떨어진 반면, 상위 10%의 소득은 평균의 199%에서 225%까지 급상승했다. 같은 기간 무려 70%에 달하는 한국경제 GDP의 수출의존도로 인해 대규모 수출을 하는 소수의 대기업들은 성장을 지속한 반면 대다수의 중소기업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또 이른바 '고용 없는 성장'이 지속되면서 일자리는 크게 줄었고 비정규직은 급증했다.

아시아개발은행(ADB)도 '2006년 상반기 아시아경제 모니터' 보고서에서 2006년 동아시아 경제의 가장 큰 위험요소 중 하나로 '국제수지의 불균형'을 들며 "이런 위험요소 하에서도 동아시아 각국이 경제성장을 유지하려면 현재 진행 중인 민간소비 유지 정책을 더욱 강력하게 지속함으로써 경제성장의 기반을 수출에 한정하기보다는 국내수요 쪽으로 이동시키고 이를 통해 외부환경에 대한 탄력성을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권고했다.

***다 함께 건강한 '경제 다이어트'를**

한국과 미국을 막론하고 지금 세계경제에 지금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세계의 자연자원을 미친 듯이 소비해 온 그간의 나쁜 습관을 버리고 건강한 다이어트를 하는 것이다. 허리띠를 갑자기 졸라매 건강을 위험에 빠뜨리는 위험한 다이어트가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운동과 식이요법을 해야 하고(각 국가 경제별 기초체력 강화),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격려해줘야 한다(국제공조).

삼성경제연구소는 "급격한 달러화 약세에 대비해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공조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달러화의 급격한 약세는 국제금융시장에 불안을 야기하고 장기적으로는 미국경제에도 불리하다는 점을 미국 정부에 인식시키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삼성경제연구소는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합의를 통해 위안화의 점진적인 평가절상을 유도하는 것도 세계의 환율갈등과 원화 환율의 급락을 진정시키는 방법"이라며 "장기적으로 아시아통화기금(AMF) 등 아시아 통화협력체제를 구축해 동아시아 지역의 환율안정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이어트는 힘들다. 그러나 그 성과는 달다. 우리 경제는 끝을 모르는 미국식 폭식경제의 동반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올바른 경제 다이어트를 통해 건강체질로 거듭날 것인가. 선택의 시간이 그다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미국이라는 일극의 지배 하에 세계화로 질주하는 현재의 국제사회에서 경제 다이어트의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 만한 국제정치의 리더십을 찾을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긍정적인 답변을 하기가 어려운 것도 또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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