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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갑자기 브리핑룸 문이 잠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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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그때 갑자기 브리핑룸 문이 잠긴 이유

[기자의 눈] 국회의원더러 '외부인'이라는 외통부

우리 나라, 우리 정부, 우리 협상단 등 우리는 우리의 모국을 지칭할 때 '대한민국'이란 말 대신 유독 '우리'라는 말을 많이 쓴다. 그런데 대한민국 정부에는 도저히 '우리'라고 부를 수 없는 이들이 꽤 많다. '우리'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저들' 편만 들어서 헷갈리게 하는 이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그들'을 '우리'라고 습관적으로 쓰게 될 때마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기자의 손은 부르르 떨린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3차 협상이 개시된 6일 저녁 7시 55분(현지시각) 시애틀의 한 호텔 안에 한국 기자들을 위해 마련된 브리핑룸. 기자가 마음속으로는 '그들'이라고 부르는 외교통상부 통상홍보기획관 소속의 공무원들이 브리핑룸 뒤편에 모여 서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브리핑룸은 열대여섯 명 기자들이 막 끝난 첫날 협상의 내용을 둘러싸고 취재와 기사작성을 하는 가운데 열기로 가득 차 있는 상황이었다.

기자는 한미 FTA 반대 시위에 참가하고자 미국 시애틀에 온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이 기자회견을 하러 브리핑룸에 올 것이라는 소식을 막 들은 상태였다. 사전에 알려진 기자회견의 내용은 사실 일부 언론들에서 이미 보도된 것이었다. 강 의원을 포함해 대한민국 국회의원 36명이 지난 4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아직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재개하는 데 반대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 나라의 국회의원이 굳이 기자회견까지 열겠다는데 뭔가 새로운 내용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기자는 취재를 할 채비를 서둘렀다(새로운 내용은 보건복지부가 8일이나 9일께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재개를 승인하기로 했다는 소식과 그에 대한 의견 표명임이 나중에 확인됐다).

국회의원더러 "외부인"이라 하는 '우리' 정부

그런데 '그들'은 기자회견을 열기 위해 브리핑룸을 사용하겠다고 알린 강기갑 의원 측에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단칼에 거절했다. 이유는 "브리핑룸은 외교통상부가 마련한 것이라 '외부인'이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 국민들이 직접 선출한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외부인이라고? 그러면 전날인 5일 '귀빈' 대접을 받으며 당당히 브리핑룸에 들어 온 스티븐 브라운 시애틀 경찰서장은 '내부인'이었단 말인가?

하지만 '그들'도 눈치는 있었나 보다. 강기갑 의원이 어쨌든 오고야 말 것임을 그들은 이미 눈치 채고 있었다. '그들'은 저녁 8시가 다가오자 마음이 급해졌는지 브리핑룸의 문을 잠그는 '무리수'를 두고야 말았다. 처음에 기자는 그런 사정도 모르고 "왜 불편하게 문을 잠그고 난리냐"고 애꿎은 '문지기'에게 큰소리를 치는 실수를 했다.

정각 8시 강기갑 의원은 오고야 말았다. '그들'은 기자가 카메라를 들고 브리핑룸 앞을 얼쩡거리자 불안했던지 강 의원을 위해 긴급하게 다른 층에 브리핑룸을 마련했다. 그러고는 4층 브리핑룸에 있는 기자들에게 "강 의원이 2층에 온다"는 말을 툭 던지고는 총총 자리를 떴다. 기자들이 밥 먹을 시간까지 안내해 주던 친절한 그들이 어쩌면 그렇게 퉁명스러워졌는지.

결국 그 특별 브리핑룸에 나타난 것은 본 기자와 C신문사의 기자뿐이었다. 강 의원 측은 황망해 했고, '그들'은 강 의원 측에 "기자들이 다 밥을 먹으러 갔다"고 엉뚱하게 기자들 탓을 했다. 사실은 많은 기자들이 바로 그때 4층 브리핑룸에서 기사를 쓰고 있었지만, '그들'은 이런 사실을 강 의원 측에 말하지 않았다.

강 의원은 결국 자신의 보좌관을 4층 브리핑룸에 보내 정말로 기자들이 다 밥을 먹으러 나가고 없는지를 확인하도록 했다. 물론 브리핑룸에는 기자들이 있었고, 강 의원은 4층에 올라오고야 말았다. '그들'도 이번에는 막을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브리핑룸의 문을 열어 젖혔다. 강 의원이 4층 브리핑룸에 '입성'했지만 몇몇 기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하지만 일부 기자들은 강 의원의 기자회견 내용을 받아 적기 시작했다.

강 의원은 한미 FTA 협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부시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을 낭독하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마이크가 꺼졌다. 처음엔 사고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그들'이 마이크를 꺼버린 것이다. 이유는 '이 브리핑룸에서는 한미 FTA에 대한 찬반 의견을 개진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브리핑룸에 언제부터 그런 규칙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사실이 그러하다면 브리핑을 할 때마다 한미 FTA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는 김종훈 수석대표도 브리핑룸에서 몰아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브리핑룸의 사용권은 누구에게?

국민들과 국민들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의 동의를 받지 않고 한미 FTA 협상을 강행하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악수를 두고 있는 우리 정부의 대국민 홍보 정책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은 이제 식상할 정도가 됐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을 '외부인'이라고 하는 '그들'은 국민도 '외부인'이라고 생각할 게 뻔하다는 지적도 굳이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궁금해졌다. 한미 FTA 협상단이 머물고 있는 특급 호텔 안에 한국 기자단을 위해 마련된 브리핑룸의 사용권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그들' 중 한 명은 기자에게 '호텔 측에서 브리핑룸을 공짜로 사용하라고 했다'고 자랑한 바 있다. 하룻밤 호텔비가 300달러에서 1000달러에 이르는 방을 일주일가량 200여 개나 사용하고 있으니 호텔 측에서 그런 편의를 제공해준 것일 게다. 그런데, 그렇다면 브리핑룸의 사용권이 누구에게 있는지가 모호해진다.

하지만 '그들'은 이 브리핑룸에 프린터, 복사기, 정수기, 일회용 커피 등 각종 장비와 음료까지 준비해 놓고 관리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이 브리핑룸 사용권은 자신들에게 있다고 주장하고 싶은 걸까?

45명 규모인 기자단도 이 브리핑룸에 랜선을 설치하기 위해 각각 18만 원을 지불했다. 45명 곱하기 18만 원이면 얼추 800만 원 가량이다. 기자들이 '그들'에게 완전히 '기생'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기자는 '그들'이 이 글을 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기자로서는 이곳 이국 땅에서 매일 하루에도 수 차례 마주치며 인사해야 하는 '그들'이다. '그들'에게 친한 척하며 "당신들은 '우리' 국민들을 위해 일하는 공무원이고, 당신들이 열심히 '물 관리'하고 있는 브리핑룸은 바로 '우리' 국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있는 것"이라고 일일이 말해줘야만 하는가? '그들'이 '우리'가 될 날은 과연 오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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