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 행사가 열리는 시간에 국립중앙박물관 입구에서 시민단체들이 모여 이 행사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렇게 뜻 깊은 행사를 시민단체들은 왜 전면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는가? 이 기자회견을 연 시민단체들 중에 '노무현'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떨고 잠을 설치는 수구단체들은 하나도 없었다.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용산기지 공원화 계획'이 큰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리기 위해 더위와 공해를 무릅쓰고 국립중앙박물관 입구에서 이 행사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던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 행사에 참석해서 축사를 했다. "이 땅에 새로운 미래가 열리고 있다. 침략과 지배 그리고 전쟁과 고난의 역사를 과거로 보내고, 자주와 평화의 대한민국, 세계를 향해 비상하는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기념비적 공원이 들어서게 됐다." 용산기지는 분명히 전쟁과 분단의 상징이었다. 따라서 그 반환의 의미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말은 분명히 올바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사실 미군기지 반환협상은 없었다. 미군이 원하는 대로 땅과 돈을 주기로 했을 뿐이다. 이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말은 터무니없는 자화자찬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래도 정말로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모양이다.
그 자리에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기념비적 공원이 들어서게 됐다"는 말도 큰 문제를 안고 있다. 그것은 어떤 공원인가? 노무현 대통령은 "서울 한복판에 새로 열릴 80만 평의 녹지공원은 생각만 해도 가슴을 부풀게 한다"면서 "시민 누구나 자유롭게 찾을 수 있고 북으로는 남산에서 북한산, 남으로는 한강을 건너 관악산까지 뻗어가는 생태 축은 서울의 새로운 활력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북 녹지 생태 축을 되살릴 수 있는 넓은 녹지 공원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이러한 설명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전혀 믿을 수 있는 근거가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 정부의 '용산 공원화 계획'은 결코 믿을 수 없다.
첫 단추부터 잘못 꿴 용산기지 이전
2004년 1월, 주한미군 2사단을 중심으로 한강 이북에 주둔하고 있는 주한미군을 한강 이남으로 이전하는 계획의 일환으로 용산기지의 평택 이전 계획이 확정되었다. 이로써 1945년 9월 미군이 점령군으로서 용산 일본군사령부를 접수한 지 거의 60년 만에 용산 기지를 돌려받게 되었다. 이에 대해 보수 세력은 마치 나라가 망할 것처럼 목에 핏대를 올렸다. 그러나 용산 미군기지의 반환은 노무현이 아니라 노태우가 시작했다. 1987년에 노태우가 처음으로 용산 미군기지의 반환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것이다.
전시 작전통제권을 둘러싼 최근의 이상한 논란에서 다시금 잘 드러났듯이, 한국의 보수 세력은 사실과 논리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어서 정상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붙이면서 스스로 이상한 존재가 되는 것이 그들의 특기이자 취미다. 자기들이 먼저 주장했던 용산기지나 전시 작전통제권의 반환을 빨갱이의 책동으로 우기는 데서도 '선택적 망각증'과 '빨갱이 콤플렉스'가 그들의 고질병이라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이 병은 그들을 뜻하지 않게 '반미투사'로 만들고 있기도 하다.
1989년에 서울시는 용산기지를 모두 '민족공원'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리고 같은 해에 슐츠 미국 국무장관이 용산기지의 반환을 지시했다. 미군으로서도 한국에서 반미운동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서울시내 한복판에 대규모 군사기지를 보유하는 것이 크게 부담스러워졌던 것이다. 그 결과 1990년 6월에 1996년까지 이전하기로 하는 내용의 '용산 미군기지 이전 합의서'가 체결되었다. '이전'이라는 점에서 큰 문제를 안고 있기는 했어도 이것은 커다란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한미동맹'의 상징과도 같은 용산기지를 돌려받는다는 것은 생각하기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합의서에 따라 1991년 6월에 우선 용산 미군기지의 골프장을 돌려받았다. 본래 12만 평을 돌려받아야 했으나 주한미군이 3만 평은 계속 써야겠다고 우기는 바람에 12만 평 중에서 9만 평만 돌려받아 공원을 만들게 되었다. 그러나 1993년 2월에 들어선 김영삼 정부가 갑자기 이곳에 국립중앙박물관을 짓기로 하면서 공원은 결국 2만3000평으로 줄어들고 말았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합의서에 따른 용산 미군기지 이전계획 자체가 취소되어 버렸다. 이전부지와 이전 비용에 관한 미군 쪽의 요구를 우리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1993년으로부터 10년의 세월이 흐른 2003년 초에 미군은 용산 미군 기지를 평택으로 이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따라 막 들어선 노무현 정부와 주한미군 사이에 용산기지의 이전에 관한 재협의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2004년 1월에 이전 계획이 확정되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여러 큰 문제들을 안고 있다. 이 때문에 이 계획은 이 정부의 무능을 보여주는 중요한 예로 여겨지고 있기도 하다. 이는 주한미군의 일방적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이전 부지와 이전 비용의 문제다. 전체적으로 용산에서 83만 평, 그리고 파주의 2사단 주둔지를 돌려받는 대신에 평택의 350만 평을 새로 내주기로 했다. 이 때문에 평택 대추리의 주민들은 큰 고통을 받게 되었다. 미군은 기존의 기지를 최대한 집약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이전해야 한다. 그리고 부지 매입비 1919억 원에 건설비 3조7652억 원을 더한 3조9571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제시되었는데, 실제로는 10조 원 이상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실 1차 합의 때 주한미군은 처음에 이전 비용으로 17억 달러(약 1조7000억 원)를 요구했으나 뒤에 무려 95억 달러(약 9조5000억 원)를 요구해 합의가 결렬되고 말았다.
미군은 불평등한 행정협정(SOFA)에 따라 오직 한국에서만 기지의 사용료를 내지 않고 있다. 더욱이 용산 미군기지의 이전은 사실 미군의 새로운 세계전략에 따른 것이다. 미군이 이전 비용의 상당 부분을 부담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여기에 덧붙여 미군은 수천억 원에 이르게 될 환경 복원 비용도 사실상 전혀 내지 않기로 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확인되었다. 이 점에서 용산 미군기지의 이전은 불평등한 한미관계의 상징과 같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는 아무 것도 개선한 것이 없다.
한국과 미국의 진정한 우호관계 증진을 위해 용산 미군기지 이전 협정은 전면적으로 개정되어야 한다. 주한미군은 한국을 존중하지 않고 있으며, 노무현 정부는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있다. 특히 협상 아닌 협상으로 국민에게 큰 고통을 떠넘기게 된 외교부와 국방부에 대한 전면적 감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용산기지를 '생명의 숲'으로
이런 여러 문제들에 대한 주민들과 시민사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2008년까지 용산기지를 돌려받기로 한 계획은 강행되고 있다. 이와 함께 돌려받는 용산기지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관한 논의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그것은 개발인가, 공원인가의 문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노무현 정부의 문제는 두드러진다. 먼저 이 정부는 불평등한 이전 협정에 따라 천문학적 금액의 이전 비용을 우리가 모두 내기로 했으므로 용산기지를 팔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불평등한 이전협정이라는 잘못을 저지르고 다시 용산기지의 매각이라는 잘못을 저지르려고 하는 것이다.
그 경우 용산기지에는 60~70층의 초고층 건물들이 들어서게 될 것이다. 결국 투기꾼과 개발업자를 위해 용산기지를 돌려받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고 주한미군의 요구대로 이전비용을 제공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참여정부는 단지 쉽다는 이유만으로 가장 나쁜 방법을 택하려고 한다.
만일 노무현 정부의 주장대로 용산기지를 이전하는 것이 국가적 사안이라면, 당연히 그에 대한 부담도 국가적 차원에서 분담해야 한다. 용산기지를 공원화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을 서울시가 분담하는 것이 옳듯이 용산기지의 이전에 필요한 비용은 전국적으로 분담해야 옳다. 그 방식은 특별세나 채권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는 용산 기지의 매각과 개발은 주한미군을 일방적으로 위한 것도 모자라서 투기꾼과 개발업자를 일방적으로 위하려는 것이다. 물론 그들과 결탁된 관료나 정치인들도 한몫 단단히 챙길 수 있겠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용산기지를 공원화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원화를 위해 구성된 추진위원회부터 그의 말을 도무지 믿을 수 없게 한다. 노무현 정부는 2005년 11월에 국무총리실 산하에 '용산민족·역사공원 건립추진위원회'를 설치했다. 그런데 이 위원회의 위원장은 '단군 이래 최대의 사기사건'으로 불리는 '평화의 댐'을 주도했던 선우중호라는 토목공학자가 맡고 있다. 그야말로 민족과 역사를 우롱하는 처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공원을 만드는 위원회에 대형 댐 전문가를 위원장으로 앉히는 것은 도대체 어느 후진국에서 배운 처사인가?
컴퓨터 회사의 사장이나 유명한 은행가 출신 사업가도 이 위원회의 위원으로 들어가서 위원장과 함께 '개발'을 주장하고 있으나, 정작 용산 미군기지의 반환과 공원화를 오래 전부터 주창했던 녹색연합, 문화연대, 참여연대 등의 시민단체나 관련 전문가들은 사실상 완전히 배제되었다. 이런 점에서 이 위원회는 발족 당시부터 커다란 의혹과 불신을 사게 되었다. 노무현 정부가 내심 추구하고 있는 개발 계획의 '들러리 위원회'라는 것이다. 이 정부가 노무현 대통령의 공언을 조금이라도 신빙성 있는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이 위원회부터 즉각 전면적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이런 와중에 2006년 7월 27일 건설교통부는 '용산 민족·역사공원 조성 및 주변 지역 정비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표했다. 이 법안을 둘러싸고 서울시와 건교부 사이에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건교부의 법안은 공원화를 내세우고 있기는 하지만 건교부 장관이 용도변경을 통해 대규모 개발을 강행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예전에 국방부는 이전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20만 평은 개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투기꾼과 개발업체는 이 주장을 계획으로 만들기 위해 갖은 애를 다 쓰고 있다.
건교부가 '용산민족·역사공원 건립추진위원회'를 내세워서 제시한 복합 개발 구상은 투기꾼과 개발업체의 노력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우려를 불식하고자 한다면, 공원화 면적과 공원화 주체와 공원화 비용에 관한 조항을 법에 포함시켜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정말로 전면적 공원화를 추진할 것이라면, 법에 이런 핵심적 내용을 포함시키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용산기지는 결코 초고층 고밀도 개발과 같은 난개발로 망가져서는 안 될 소중한 공공용지다. 박정희의 개발독재 이래로 세계에서 손꼽는 공해도시로 망가진 서울을 생태·문화적으로 되살릴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있는 유일한 땅이 바로 용산기지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미군이라는 초강력 세력이 주둔하고 있는 '덕분'에 난개발의 광풍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곳에 센트럴파크, 하이드파크, 티어가르텐과 같은 울창한 숲을 조성한다면, 스모그와 시멘트에 찌들고 짓눌린 회색도시 서울의 면모는 크게 개선될 것이다.
용산기지에는 서울을 살리기 위한 '생명의 숲'이 조성되어야 한다. 그곳에는 이미 울창한 숲이 있다. 이 숲을 기반으로 용산기지 전체를 오랜 시간에 걸쳐 거대한 숲으로 조성해야 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개발독재 시대에 파괴된 자연을 되살리고, 서울을 되살려야 한다. 용산 기지는 자연과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서울의 미래를 위한 '금단의 땅'이다.
용산기지는 확장된 서울의 배꼽에 해당하는 곳이며, 서울의 남북 녹지 생태 축을 이어주는 들판이다. 이곳은 아름드리 나무가 우거진 '생명의 숲'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미 이곳에는 생명의 숲을 만들기 위한 커다란 나무들이 많이 있다. 노무현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주변의 난개발을 강력히 제어하는 것이지 그것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다. 이 정부는 용산기지를 생명의 숲으로 만들어야 한다. 시민들은 생명의 숲을 간절히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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