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의약협상 종료…미국 16개 사항 요구

합의안 도출 실패…한미 FTA 3차협상 난항 예고

한국과 미국 양국은 싱가포르에서 21~22일 이틀 간 별도로 개최한 한미 FTA 의약품·의료기기 작업반의 협상을 마무리했다. 두 나라는 싱가포르에 있는 양국 대사관을 오가며 회의를 진행했지만 양국의 뚜렷한 입장 차만 확인했을 뿐 구체적인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연합뉴스>가 22일 오후 보도했다.

이번 싱가포르 협상은 미국 측이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한미 FTA 2차 협상을 결렬시키면서까지 반대했던 의약품 선별등재(포지티브 리스트) 제도를 최근 전격적으로 수용하고 그 대신 이 제도의 절차적 사항을 논의하자고 제안함에 따라 열리게 됐다.

미국 측 협상단은 이번 협상에서 의약품 선별등재 제도의 구체적인 시행 방안에 대해 무려 16가지나 되는 까다롭고 구체적인 요구사항(아젠다)들을 들고 나왔고, 우리 측은 이 요구사항들의 구체적인 의미를 파악하느라 진땀을 흘린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알려진 미국 측의 요구사항은 △미국계 다국적 제약회사의 신약이 부당하게 건강보험 의약품 선별등재 목록에 등재되지 않는 일이 없도록 선별등재 목록에 대한 신약의 접근성을 보장해 줄 것 △신약에 대한 한국 환자들의 접근성을 보장해 줄 것 △미국이 인정한 혁신적 신약의 가치를 한국에서도 그대로 인정해 줄 것 △다국적 제약회사가 신약의 보험가격을 결정하는 데 참여할 수 있도록 독립적인 '이의신청기구'를 설치할 것 △신약의 보험가격을 결정할 때 미국의 물가인상률을 반영해 줄 것 등이다.

의약품·의료기기 작업반의 협상단을 지휘하고 있는 전만복 보건복지부 한미 FTA 국장은 "이번 협상에서 내놓은 미국 측의 요구를 정리하자면 선별등재 제도를 시행하는 모든 단계에서 다국적 제약회사가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해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싱가포르 협상에 앞서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미국 측이 이런 요구들을 할 것이라고 '친절히' 예상을 해줬는 데도 불구하고 우리 측은 이에 대한 대비는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국내 의약품과 의료 인력의 미국 진출 확대'라는 협상목표를 가지고 협상에 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측이 미국 측에 제시한 요구사항은 모두 4개로, 주로 국산 의약품의 제조 기준과 의료진의 면허를 미국 현지에서 인정해 달라는 데에 집중됐다. 하지만 미국 측이 내건 16개의 요구사항들에 대응하느라 바빠 이같은 우리 측의 요구사항은 협상장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싱가포르 협상에서 의약품 선별등재 제도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참여와 간섭을 '제도적'으로 보장해 달라고 요구한 미국 측은 내달 6일 미국 시애틀에서 개최되는 한미 FTA 3차 협상에서 의약품 특허권의 강화를 요구하며 공격의 수위를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