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회의는 의약품 선별등재(포지티브 리스트) 제도 도입의 세부 절차와 방법에 대한 논의에 집중하고 있다."
김종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수석대표는 21일 오후 전화 인터뷰를 통해 이날 싱가포르에서 이틀 간의 일정으로 개막된 한미 FTA 의약품·의료기기 작업반 협상에서 한미 양국이 '주고받기'를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으며 이같이 말했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이는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미국이 아무런 조건 없이 포지티브 리스트를 받아들였다는 정부의 발표를 납득할 수 없다"면서 "한미 양국 간에 이면합의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데 대한 반박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은 보다 구체적으로 이번 싱가포르 협상에서 미국이 포지티브 리스트를 수용해 주는 데 대한 '보답'으로 우리 정부가 의약품 특허권 인정기간의 직간접적 연장, 의약품 선별등재 시 미국 측 이해당사자들의 참여 보장, 배타적 자료독점권의 강화, 독립적 이의기구의 설치 등과 같은 미국 측의 요구를 들어줄 것이라고 점쳐 왔다.
이같은 미국의 요구가 관철되면 우리 정부가 포지티브 리스트를 도입하려는 본래의 목적과 달리 국내 약값은 오히려 상승할 것이라고 시민사회단체들은 주장하고 있다.
김종훈 "그렇다고 미국이 특허권 강화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고…"
이에 대해 김종훈 수석대표는 "미국 측이 특허권 강화 등과 같은 문제를 제기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재 (한미 양국 간에) 합의된 내용은 없고 각각 쟁점별로 다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측 협상단이 우리 측에 특허권 기간의 연장 등과 같은 요구를 할 수는 있지만 이는 포지티브 리스트를 받아들인 것에 대한 반대급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통상적인' 요구라는 것이다.
이같은 정부의 논리는 그동안 여러 차례 되풀이돼 왔다. 가령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재개 등 이른바 4대 선결조건의 이행과 한미 FTA 협상의 개시를 놓고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가 '거래'를 한 정황증거들이 속속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이 두 가지 사안이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고 주장해 왔다.
뿐만 아니라 이번 싱가포르 협상에서 한미 양국이 우리나라의 공공정책인 '건강보험 약가 적정화 방안'의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을 놓고 그에 대한 세부사항들을 논의하기로 한 것은 미국이 우리 측 공공정책의 큰 틀을 수용했다고 해서 그 구체적인 내용에까지 간섭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을 다시금 확인시켜 준다.
의약품·의료기기 협상…왜 제3국에서 별도로 열리나?
한편 시민사회단체들은 한미 FTA 3차 협상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한미 양국 정부가 굳이 싱가포르에서 의약품·의료기기 작업반 협상을 별도로 개최하는 것을 두고 이면합의 의혹을 더욱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시민사회단체들이나 국민의 감시가 덜한 제3국에서 회의를 열어 미국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려는 꿍꿍이가 아니냐는 것이다.
이번 싱가포르 협상은 미국 측이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한미 FTA 2차 협상을 결렬시키면서까지 반대했던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을 최근 전격적으로 수용하고 그 대신 이 제도의 절차적 사항을 논의하자고 제안함에 따라 열리게 됐다.
이와 관련해 보건복지부는 의약품·의료기기 작업반의 협상 초안이 아직 교환조차 되지 않는 등 이 작업반의 협상이 다른 분과들의 협상에 비해 더디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전체 협상일정과 보조를 맞추도록 하는 차원에서 별도의 협상을 하게 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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