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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협상장에서 양쪽 다 퇴장? 그건 '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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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협상장에서 양쪽 다 퇴장? 그건 '쇼'야!

[한미FTA 뜯어보기 60:기고] '포지티브 리스트'와 '의약 특허기간' 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의약품 관련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급기야 14일 협상이 중단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변방의 문제로 인식했던 의약품 문제가 협상의 중요한 고리로 떠오른 것은 어쩌면 매우 당연한 결과일지 모르겠다. '의약품 전담 협상반'까지 편성해 협상에 나섰던 미국은 이미 의약품 분야가 큰 판돈이 걸려 있는, 그래서 꼭 성사시켜야 할 분야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비교했을 때 이 분야에 대한 우리 정부의 사고와 처신은 여전히 미덥지 못하다.

김종훈 수석대표는 13일 FTA 2차 협상 중간 브리핑에서 "신약 개발에 투자된 노력과 투자에 대한 정당한 대우는 분명히 인정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정부의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은 올바른 정책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약에 대해서는 정당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인식을 담고 있다. 필자는 이런 발언을 들으면서 과연 그가 의약품 관련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을지 강하게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약에 대한 '정당한 대우'는 도대체 어느 정도인가?

미국이 반발하고 있는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은 효율성과 경제성을 기준으로, 다른 나라에서 이뤄진 약가 협상 자료까지 총동원해, 일방적인 약가 결정이 아닌 '적정한' 약가를 결정하는 제도다. 지금까지 우리의 약가 결정 방식이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요구하는 약가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것이었음을 염두에 둔다면, 이 새로운 방식의 도입은 때늦은 감이 있다. 대한민국은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약장사하기 딱 좋은 시장이었고, 그 과정에서 환자들은 높은 약값에 시달렸으며, 국민들은 더 많은 건강보험료를 내야만 했다.

이런 사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예가 몇 년 전에 있었던, 다국적 제약회사 노바티스의 만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을 둘러싼 사건이다. 환자와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글리벡 약가가 결정된 2004년 2월에는 국내의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 수가 약 600명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불과 3년 뒤인 최근 이 약을 먹고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환자는 약 1600여 명 정도로 불어났다.

이 약을 먹는 환자의 증가와 함께 노바티스의 매출액 역시 3년새 약 2.5배 정도로 늘어났다. 노바티스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나는 매출액에 즐거운 비명을 지를 것이다. 더구나 노바티스는 이 약을 20년 동안 유효한 특허로 묶어 놓았으니, 이 제약회사가 약 하나로 얼마나 돈을 벌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최근 환자단체에서 한미 FTA를 맞아 발표한 성명서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다.

"그들은 개발비가 막대하다는 주장을 하면서, 그 개발비의 몇십 배를 가져가고자 한다. 다국적 제약회사 노바티스가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의 개발비를 몇년 전에 8억 달러라고 주장한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이미 출시 5년만에 전 세계적으로 글리벡 매출이 60억 달러에 이른다."

환자들은 이런 기업들을 '악덕기업'이라고 비난했다. 은행의 예를 들어보자. 은행은 왜 이자를 일년에 200%, 300%, 400%를 받으면 안 되는가? 그렇게 이자를 받으면 은행은 '고리대금업자'가 된다. 고리대금업자는 대출자가 이자로 인해 가정이 깨지든 신용불량자가 되든 굶어 죽든 상관하지 않는다. 목표는 오로지 원금과 이자를 어떻게 환수하느냐다. 여기에 '인간'은 없다. 제약회사가 바로 그 꼴이다.

제약회사는 돈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든 말든 별 관심이 없다. 오로지 약을 팔아 이윤을 얻는 것이 최대의 목적이다. 이래서 소위 선진국이라는 곳에서는 이미 다 쓰고 있는 에이즈 치료제를 한 번 써보지도 못하고 1년에 무려 1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어간다. 환자들은 제약회사가 주장하는 그 막대한 개발비의 근원이 바로 약을 사먹기 위해 자신들이 낸 돈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정작 약을 못 먹고 죽어간다고 절규한다.

'포지티브 리스트' 받아주면 '신약 특허기간' 연장해주려고?

김종훈 수석대표의 발언 내용 중 '신약에 대한 정당한 대우'라는 것은 도대체 어느 정도의 대우를 말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그는 브리핑 도중에 난치병으로 투병 중인 자신의 인척 중 한 명의 예를 들면서 "좋은 약이라면 큰 돈을 들여서라도 사고 싶은 생각"이라고 말했다. 자기가 말한 '정당한 대우'의 근거와 수준을 친절하게 설명해준 셈이다.

이 정도의 인식과 사고라면 결국 '신약에 대한 정당한 대우'를 위해 어떠한 형태로든 미국의 요구를 보장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지 않은가? 그렇기에 어제 보건의료 시민단체들은 의약품으로 인한 협상 결렬이라는 상황을 접하면서 '양국 정부는 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쇼를 멈추라'고 비난했던 것이다.

이미 우리는 신약에 대한 대가라는 이유로 김 수석대표가 말한 '정당한 대가' 이상으로 착취당해왔다.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을 시행한다고 해도 우리는 김 수석대표가 말한 '정당한 대가' 이상으로 제약회사에 지불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아무리 정부가 다양한 제도와 정책을 통해서 약가를 내리겠다고 해도 특허를 가지고 있는데다 사람의 생명이 걸린 필수 의약품을 독점하고 있는 다국적 제약회사를 근본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온전한 방법은 결국 없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김종훈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결국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을 유지하는 대신에 의약품의 특허를 연장해주거나 그가 생각하는 대로 정당한 대가를 보장해주기 위해 신약에 대한 특별방안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미국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을 슬쩍 받아주는 척하면서 의약품에 대한 독점적 공급을 보장하는 특허기간 연장을 즐겁게 수용할 것이다. 그것이 더 큰 이익을 확보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벌써부터 예고라도 하듯 협상이 결렬된 14일 오후에 미국 협상단의 커틀러 대표는 "의약품을 둘러싼 차이점이 비록 도전적이기는 하지만 극복하지 못할 만한 사안은 아니다"라면서 "오는 9월 4일 시작될 3차 본협상에서 이 문제가 생산적으로 접근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미 한국 국민에 대한 '기만'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환자단체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번 의약품 협상의 결렬을 '쇼'라고 비난한다. 우리에겐 환자들의 생명이 걸린 문제가 처음부터 이런 협상 테이블에 올려졌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슬픈 현실이다. 우리의 생명이 애초부터 그들의 협상 판에 올려진 순간부터 분노와 슬픔은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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