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한사코 부인하고 있지만, 이라크가 이미 심각한 내전 상태라는 것을 부인하기 힘든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지난 7월 한 달 동안에만 이라크에서 3438명이 살해됐으며, 사망자 대부분이 민간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한 달 동안 벌어진 이스라엘-레바논 전쟁으로 인한 레바논 주민 사망자 수의 두 배나 되는 것이다. 20일에도 이라크 바드다드에서 시아파 순례자들에 대해 수니파 저격병들이 총격을 가해 20여 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같은 이라크의 현 상황이 내전이 아니고 무엇이냐는 지적이 적지 않다.
게다가 이라크 전쟁이 내전의 양상을 띠면서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게 됐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 개입, 2차대전 개입보다 길어져
미국의 일간지 <네이션>은 18일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 개입한 기간은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개입한 기간보다 이미 3일 더 많아졌다"면서 "독일이 미국에 대해 선전포고를 한 것은 1941년 12월 11일, 미국이 승리를 선언한 것은 1945년 5월 8일로 1244일 걸렸지만,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선언한 지는 이미 1247일이 지났다"고 지적했다.
<네이션>은 "그럼에도 부시 행정부는 아무런 탈출전략도 없고, 승리를 위한 계획도 없으며, 이라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있다"면서 "부시 대통령이 '임무 완수'를 선언한 지 1204일이 지난 지금도 미군이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라크의 내전 상황은 미국이 일으킨 이라크 전쟁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이라크에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와 같은 강력한 반미 무장세력이 부상할 것이라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특히 미국의 중동정책에 좌절감을 안겨준 헤즈볼라의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처럼 반미 성향이 강한 이라크의 시아파 성직자 무크다다 알 사드르가 '제2의 나스랄라'로 주목된다는 것이다.
다음은 시리아의 정치 분석가 사미 무바에드가 <아시아타임스>에 최근 기고한 '부시가 잘못 과소평가한 이라크(Misunderestimating' Bush's Iraq)'에서 발췌한 주요 내용이다.(원문보기)<편집자>
크로아티아 주재 미국 대사를 지낸 피터 갤브레이스는 지난 여름 <이라크 사태의 끝: 미국의 무능력이 만들어낸 끝나지 않을 전쟁>이라는 주목할 만한 책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갤브레이스가 밝힌 가장 인상적인 사실 중 하나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하기 2개월 전에 이슬람이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일전에 "그들이 나를 과소평가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요즘 이라크 사태가 레바논 전쟁에 가리워져 있지만, 아마도 상황을 '과소평가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미국일 것이다.
2003년 3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이후 지난 7월은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달이다. 이라크와 이라크 주민들은 어쩌면 이스라엘-헤즈볼라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다.
한 달 동안 세계의 이목은 이스라엘, 레바논과 헤즈볼라에 완전히 고정돼 있었다. 이라크에서 종파간 폭력사태가 점증하고 있다는 사실은 레바논에 대한 유엔 결의안에 의해 휴전이 발표된 지난 14일까지 주목받지 못했다.
레바논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이라크는 내전 조짐을 보였다. 종파 간에 무자비한 살육이 벌어지고 누리 알-말리키 총리 내각은 무력했기 때문이다.
7월 중 이라크인들 3438명 사망
한 달 뒤 이라크는 내전 상태에 있다. 통계만 보더라도, 7월 들어 종파 분쟁으로 살해된 이라크인들의 숫자는 놀랍게도 3438명이다. 이같은 수치는 이스라엘이 30일 간의 공습에 의해 사망한 레바논 주민들의 숫자의 두 배이며, 하루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6월에 비하면 사망자 수가 9%가 늘어났다. 게다가 미국인들에 의해 살해된 것이 아니라 이라크인들끼리 서로 죽인 것이다. 7월에만 하루 평균 110명의 이라크인들이 죽어갔다.
미국 관료들과 말리키 각료들이 한사코 부인하고 있지만, 이것은 전쟁이며 부시 행정부에 의해 시작된 전쟁이다.
이같은 통계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첫째, 지난 7월 14일 시작된 이라크 총리의 '바그다드 치안 계획'이 완전히 실패했다는 것이다. 둘째, 수니파 반군이 지도자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가 죽은 뒤에도 진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셋째, 이라크 정부에게 치안 책임을 완전히 넘기겠다는 계획은 미국이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한 이후 어느 때보다 멀어진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의 중부군 사령관 존 아비자이드와 피터 페이스 합참의장이 미 의회에서 이라크의 내전 가능성에 대해 경고한 이후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내전이 발발하면 이라크 주둔 미군을 유지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변을 거부했다.
내전이 발생할 것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다만 "그러한 문제는 이라크인들이 스스로 다뤄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이라크에는 13만3000여 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이미 수십억 달러의 비용과 2500명 이상의 미국인이 희생됐다. 누구나 내전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상황이 온다면 이라크 주둔 미군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확실하지 않다.
부시 대통령은 2009년 1월까지인 자신의 재임 중에는 미군을 철수시키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의 고위급 참모의 말을 인용한 <뉴스위크>의 보도에 따르면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에서 내전이 일어났다는 것을 시인하게 될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 심각하게 대책을 연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임 예정인 윌리엄 패티 이라크 주재 영국 대사가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에게 보낸 비밀 전문에서도 내전 가능성에 대해 미국과 영국이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패티 대사는 "저강도의 내전과 사실상 이라크의 분열 가능성이, 이라크가 안정적인 민주주의로 성공적이고 실질절으로 이행할 가능성보다 훨씬 높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 '이라크판 헤즈볼라'의 등장
이같은 문제들뿐 아니라 '헤즈볼라 모델'이 이라크에서 등장할 위험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이후 그들에게 악몽이 되어 온 무크타다는 헤즈볼라의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처럼 이라크에서 그같은 조직을 만들어낼 모든 자격을 갖추었다.
무크타다는 젊고, 종교계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나스랄라와 마찬가지로 그는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해 반대하고 있으며, 나스랄라와 마찬가지로 이라크의 분열을 원하지 않는 전형적인 아랍 민족주의자다.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무크타다는 이라크에 신정체제를 구축하길 원한다는 것이다.
그는 나스랄라와 같은 카리스마를 갖고 있지 않고, 이란으로부터 자금과 무기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줄만 잘 잡으면 이란으로부터 강력한 지원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이같은 시나리오는 미국이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피하길 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나리오가 실행되고 무크타다가 침묵을 깨기로 결정한다면, 그는 즉시 말리키 내각을 무너뜨릴 수 있다. 또는 현 정부에서 소속 각료들을 빼내는 등의 작업으로 내각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레바논 전쟁 이후 미국인들의 마음 속에 확고하게 자리잡은 것 중 하나는 '이라크판 헤즈볼라'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라크마저 내전에 빠진다면 페르시안과 아랍 전체의 전쟁터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수니파를 지지하고, 이란과 헤즈볼라는 시아파를 지지하는 식이다.
미국은 그 중간에 끼어 어느 쪽도 편들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수니파를 지지하는 것은 미국이 무너뜨린 이라크 바트당을 지지하는 것을 의미하며, 시아파를 지지하는 것은 이란과 동맹을 맺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미국으로서는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를 쳐들어가기 전에 수니파와 시아파에 대해 좀 더 잘 알고 있었어야 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