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는 미국 및 캐나다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라는 이름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후 2년 간 흔히 '페소화 위기'로 불리는 외환위기를 거쳤고, 미국경제에의 종속과 외국계 투기자본의 득세를 경험했다.
미국과 FTA를 맺으면 노동, 사회, 환경 등 전 분야가 선진국 수준으로 격상된다는 논리가 적어도 멕시코에서는 성립하지 않은 것 같다.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발효된 뒤 멕시코에선 노동, 사회, 환경 전 분야에서 갖은 문제가 발생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악명 높은 '멕시코의 양극화'다.
***NAFTA 체결 후 임금과 최저임금 지속적으로 하락**
2000년 멕시코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1994~1995년의 페소화 위기가 지나간 후 1995년부터 멕시코의 실업률은 빠르게 떨어지고 고용이 급증해 1995~1999년 5년 사이에 3390만~391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겼다. 무역자유화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로 인한 고용 효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통계치에는 1998년부터 멕시코 정부가 실업률과 고용을 계산하는 데 '새로운' 방식을 적용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숨겨져 있다. 멕시코 정부는 일주일에 단 한 시간만 일해도 노동자로 분류했고, 4주 이내에 일을 시작할 것이라고 보고하기만 해도 노동자로 쳤다. 게다가 일자리를 구하는 데 드는 최소한의 비용도 감당할 수 없어 '비자발적'으로 구직을 포기한 사람은 실업자로 분류하지 않았다. 이는 NAFTA로 인한 고용 효과가 상당히 과장돼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멕시코의 경제학자들이 이런 통계상의 '속임수'를 걷어내고 다시 계산한 결과 1999년 멕시코의 경제활동인구 중 적어도 20%가 여전히 실업자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표 삽입-〈멕시코의 고용, 임금, 생산성, 단위노동비용, 1990-1999〉
게다가 NAFTA를 체결한 후 안 그래도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악명이 높았던 멕시코의 노동시장은 더욱 엉망이 됐다. 특히 NAFTA로 고용기회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던 제조업 분야에서 고용은 크게 줄었고, 임금은 크게 낮아졌다. 최저임금도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게다가 NAFTA로 인해 성장한 일부 산업의 노동조건은 그렇지 않은 분야에 비해 더욱 악화됐다. 특히 1990년대 중반 NAFTA 덕으로 생산과 고용이 크게 성장한 것으로 선전되고 있는 마킬라도라 제조업의 임금은 다른 일반 제조업 임금의 47%에 지나지 않았다. 2000년에는 이 차이가 80%로 줄어들었으나, 이는 마킬라도라 제조업의 임금이 상승해서가 아니라 비(非)마킬라도라 산업의 임금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하락한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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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개방경제의 상징, 마킬라도라**
마킬라도라(Maquiladora)는 인근 국가, 주로 미국에서 원료와 장비를 무관세로 수입한 다음 조립·가공해 만든 제품을 다시 수출하는 멕시코의 공장을 의미한다. 원래는 미국에 인접한 멕시코 국경 마을에만 있었는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발효되면서 멕시코 전역으로 확산됐다. 마킬라도라 공장은 원래 '마킬라 법령(Maquila Decree)'에 따라 모든 생산품을 수출해야 하지만 2001년부터 멕시코 국내 판매가 가능해졌다. 또 마킬라도라는 외국인만 소유할 수 있는데, 현재 대부분의 마킬라도라는 미국계 초국적기업이 소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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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일자리 득실거려**
게다가 현존하는 일자리도 대부분 '나쁜' 일자리들이다.
대부분의 멕시코 노동자들은 사회보장, 휴가, 보너스 등의 형태로 지급되는 임금외수당을 받지 못한다. 1996년 멕시코 총 노동인구의 64.9%에 해당하는 2억2673만 명의 노동자들이 아무런 수당을 받지 못했다. 수당을 받지 않는 노동자들의 비율은 NAFTA가 체결된 후 지속적으로 상승해 왔다.
NAFTA가 체결된 후 최저임금보다 낮은 수준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 수도 증가했다. 1996년 총 노동인구 중 19.5%에 해당하는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고 일했다. 이는 인간이 가장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소비재들의 가치를 합산한 '기초소비 바스켓(basic consumption basket)'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액수다.
동시에 노동자들이 벌어들이는 임금의 구매력도 감소했다. 임금의 구매력은 '멕시코 사회보장연구소'에 따르면 NAFTA가 체결된 후 3년 동안 10.81% 감소했는데, 같은 기간 이 최저임금의 구매력은 73.7%나 감소했다.
게다가 NAFTA를 체결하면 없어질 것으로 기대됐던 아동노동은 계속 유지되고 있다. 멕시코 내에서는 법으로 아동노동이 금지돼 있지만, 1996년 1000만 명의 아동이 불법으로 노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멕시코 '국립 원주민센터'의 카를로스 졸라 소장은 멕시코의 총 노동인구 중 약 20%가 미성년의 원주민들이고 이들은 대부분 비참한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양극화의 시름은 깊어지고**
한편 노동과 자본 사이의 양극화는 심화됐다. 1980년대 초반 국내총생산(GDP) 대비 노동수입은 40% 이상이었지만 NAFTA가 체결된 1994년에는 30.9%로, 2000년에는 18.7%로 떨어졌다. 반면 자본가가 거둬간 이윤은 1982년 48%에서 1994년 57.1%, 2000년 68.1%로 급증했다.
계층 간의 양극화도 한층 깊어졌다. 상위 10%가 차지하는 소득은 1984년 49.5%에서 1992년 54.2%, 1998년 54.1%로 증가했다. 반면 하위 80%가 차지하는 소득은 1984년 50.5%에서 1998년 45.9%로 감소했다.
NAFTA를 강력히 지지했던 멕시코의 경제학자인 노라 러스팅 박사도 "멕시코 정부가 적절한 경제적·사회적 인프라로 뒤처지는 부문들을 지원해주지 않으면 이미 심각한 수준인 부문별, 지역별 불평등이 그대로 유지되는 정도가 아니라 훨씬 더 악화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양극화는 다음 세대로 대물림돼**
연구개발(R&D), 교육, 보건 등 다른 사회적 여건들도 NAFTA가 체결된 후에도 극히 열악한 수준에 머무르거나 오히려 악화됐다.
1996~2000년 멕시코의 연구개발비 지출은 평균적으로 GDP의 0.3% 수준에 그쳤다. 다른 선진국들은 보통 R&D에 GDP의 2%를 투자하고 있다.
교육과 관련된 지표들도 악화됐다. 1996~2000년 멕시코의 평균 교육기간은 11년이었다. 이는 한국 14.6년, 프랑스 15.5년, 미국 15.9년 등 다른 나라들에 비해 크게 뒤지는 수준이다. 심지어 GDP 수준이 멕시코보다 훨씬 더 낮은 이웃국가들인 칠레(12.6년)와 브라질(11.1년)에도 뒤지는 것이다.
다른 중요한 사회지표인 영아사망률도 마찬가지다. 1996~2000년 멕시코의 영아사망률은 1000명당 32명을 기록했다. 브라질의 35명에 비하면 약간이나마 나은 편이지만 아르헨티나 22명, 칠레 12명에 비하면 매우 열악한 수준이다. 선진국과는 비교할 필요도 없다.
R&D, 교육, 영아사망률은 모두 한 나라의 인적자원 미래를 가늠하게 해주는 지표들이다. 이런 지표들이 낮으면 경제성장이 늦어지고 사회·경제적 양극화도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NAFTA를 체결하면 멕시코 사회가 선진국 수준으로 격상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실제로 멕시코 사회에서 벌어진 것은 사회적 조건의 악화와 양극화의 심화였다.
***NAFTA의 환경보호 조항은 유명무실**
한편 NAFTA가 발효되면 무역, 투자와 더불어 가장 긍정적인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던 환경분야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NAFTA가 체결된 지 3년만에 멕시코 수출산업 중 약 80%는 2% 미만의 기업들이 장악하게 됐고, 이 몇 안 되는 기업들 가운데 대부분이 미국에 기반을 둔 기계, 섬유, 화학 분야의 다국적기업이다. 이들은 주로 '독성이 강한 위험물질을 처리하는 산업'에 속한다. 멕시코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1996년에 이 기업들이 배출한 700만 톤의 독성폐기물 중 오직 10%만이 제대로 처리됐다.
NAFTA는 '북미개발은행(NADBank)'이나 '국경환경협력위원회(BECC)'와 같은 하위 환경기구들을 통해 NAFTA 협정국들의 환경을 향상시키겠다고 선전했지만 실제로 이런 기구들은 법적 실체와 예산 기반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또 멕시코는 NAFTA에 따라 투자자를 유인하거나 무역규모를 늘릴 목적으로 환경수준을 낮출 수 없게 돼 있지만 이를 강제할 법적인 장치는 부재한 상태다. 이에 따라 멕시코 정부는 국내외 투자자들이 환경비용을 부담하지 않도록 하는 반(反)환경적인 투자정책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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