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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4월26일, 체르노빌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체르노빌, 그 후 20년] '체르노빌 재앙'의 시작을 돌이켜 보다

20년 전 체르노빌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유난히 따뜻했던 토요일 체르노빌 인근 주민들은 나들이를 즐기기 위해 야외로 나갔다. 인근 프리피야트에서는 결혼식만 16건이 열렸다. 하지만 그 때 이미 '체르노빌의 재앙'은 시작되고 있었다. <프레시안>은 영국 BBC의 '체르노빌 재앙'을 요약해 소개한다. <편집자>

20년간 전 세계인의 악몽으로 자리 잡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 단지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에프에서 북쪽으로 약 100㎞ 떨어져 있다. 이웃 국가 벨로루시와의 국경은 불과 7㎞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 단지는 모두 4기의 원자로로 구성돼 있었다. 1호기는 1977년, 2호기는 1978년, 3호기는 1981년, 4호기는 1983년 가동을 시작했다.

놀라운 것은 폭발 사고로 1986년 4호기가 봉쇄된 후에도 다른 3기의 원자로가 수년 전까지 계속 가동돼 온 점이다. 1호기는 1996년 수명이 다해 폐로 됐으며, 2호기는 1991년 화재로 파괴됐다. 3호기는 선진7개국(G7) 정상회의의 권고에 따라 2000년 안전상의 이유로 가동이 중단됐다.
▲ 폭발사고가 발생한지 이틀 후인 1986년 4월 28일의 체르노빌 사고 현장 모습. 사고가 발생한지 9일만에 겨우 화재가 진압됐다. © U.S. Department of Energy

악몽의 시작, 1986년 4월 26일

토요일이던 1986년 4월 26일 새벽,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4호기는 출력을 낮추는 실험을 하고 있었다. 제어봉을 일제히 삽입한 직후 예정대로라면 멈춰야 하는 원자로의 출력이 겨우 몇 초 후 오히려 급격히 상승했다.

이 원전은 구 소련이 개발한 흑연감속로(RBMK) 원전으로 격납용기가 없고 불이 잘 붙는 흑연을 감속재로 쓰는 형태였다. 자동 안전장치를 끈 상태라서 냉각 체계도 작동 시킬 수 없었다. 흑연이 타오르자 핵연료가 녹아내리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다. 그리고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한 원자로에서 분출한 방사능 물질은 1km 상공까지 치솟았다. 방사능 물질들은 북서풍 바람을 타고 벨로루시 지역으로 날아갔으며 발전소 전체에 불이 붙었다. 몇 시간 후 발전소 자체의 불은 진화되었으나 흑연에 붙은 불만은 9일 간이나 그대로 타들어가 방사선 방출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 체르노빌 핵발전소에서 일하던 노동자와 가족들이 살던 인구 5만의 우크라이나 프리피야트 시는 사고 이후 유령도시로 변했다. 사진 속에 체르노빌 핵발전소가 멀리 보인다. ©Greenpeace

화재 진압을 위해 1800여 차례 동원된 헬기는 5000t에 달하는 진화물질, 중성자 흡수물질, 모래와 흙 등을 쏟아 부었다. 5월 9일, 방사선이 지하수를 타고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원자로 밑으로 터널을 뚫었고 결국 원자로는 30만t에 이르는 콘크리트와 철골구조로 뒤덮인 거대한 무덤으로 변했다.

구 소련은 사고 발생 직후 이를 숨기기에 바빴다. 국제사회의 요구가 빗발치자 당국은 마지못해 사고발생을 시인했는데 이때는 이미 방사선에 오염된 대기구름이 유럽 일대를 지나버린 후였다. 체르노빌에서 유출된 방사능 낙진의 40%는 유럽 지역에, 11%는 아시아 지역에 각각 떨어졌다.

사고로 인한 방사선 오염은 미국과 일본 등 북반구 전체에서 감지되었는데 다행히 남반구는 피해를 입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모든 나라들은 사고의 규모와 피해의 심각성에 경악했지만 국경을 넘어온 재해의 오염 피해에 대비하는 준비는 전무한 상태였다.

죽음의 현장에 투입된 사람들

사고 당일 현장에 투입된 발전소 노동자와 소방요원들이 방사선에 가장 많이 노출됐다. 31명이 현장에서 사망했고 134명이 추가로 방사선 중독으로 확인되었다. 반경 30km 지역의 오염제거를 위해 22만6000명이 1987년까지 2년 간 동원되었는데 이들 또한 고농도 방사선에 피폭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 뒤 이 지역에 40만 명이 추가로 방제작업에 동원되었으나 실제 동원된 사람들의 숫자는 더 높을 가능성이 크다. 1년에 1인당 10mSv를 넘으면 인체에 심각한 위해를 주는 방사선에 이들은 15mSv부터 170mSv에 걸쳐 노출됐다.
▲ "진짜 지옥은 체르노빌이 아니라 모스크바의 병원이었다. 그곳에서 죽어가는 많은 이들을 봐 왔다"고 말하는 유리 코르네에프는 사고 당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제4호기에서 일하던 유일한 생존자다. 방사선 노출에 따른 백내장을 앓았지만 다행히 시력이 회복됐다. ©Greenpeace

사고 즉시 소개됐던 반경 30km 이내 거주민의 수는 11만6000명에 이르며 1990년과 1995년 사이에 21만 명이 추가로 이주됐다. 30km 내에 있던 주민들의 피폭 방사선량은 평균 120mSv였다.

오염지역에서 특히 어린이들에게 갑상선암 발병이 크게 증가된 것으로 나타났다. 발병률은 사고 전 100만 명당 4~6건 수준에서 사고 후에는 45건으로 약 10배 가량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의 15세 이하 갑상선암 환자 중 64%가 사고로 인한 오염지역에 살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체르노빌 어린이 프로젝트'는 다른 단체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오염으로 인한 기형아 출산, 암과 백혈병 등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과 함께 흐르는 방사선

원자로 폭발은 전체 우라늄 연료의 3.5%, 약 6톤에 해당하는 방사선 동위원소와 여러 핵분열물질을 방출시켰다. 이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폭탄의 200배에 해당하는 양이다.

방사선 세슘(Cs-137)은 반감기가 30년으로 2016년에 가서야 환경 중 농도가 절반으로 줄어든다. 칼슘과 화학적 성분이 비슷한 세슘은 쉽게 동식물에 흡수되어 먹이 사슬 과정을 거치며 축적된다. 오염이 심했던 인접 3개국(벨로루시, 우크라이나, 러시아)에는 농업 제한 구역이 여럿 있지만 지역주민들은 낚시와 어로행위를 계속하고 있다.
▲ 벨로루시 고멜에서 사는 아홉 살 알렉산드라는 뇌수종이라는 선천성 기형을 가지고 태어났다. 아버지 비탈리는 딸을 돌보기 위해 직장도 그만두었는데, 이들은 체르노빌 방사능 낙진이 떨어진 지역 내에 살고 있다. ©Greenpeace

폭발 사고는 특히 수환경을 심각하게 오염시켰다. 사고 지역을 지나 흐르는 우크라이나의 식수 공급원 드니퍼(Dniper)강을 포함해 여러 호수와 강 등이 오염되어 있다. 이들 지역에는 아직도 강우로 인해 고농도의 방사선오염도를 보이는 특별구역이 많다.

한편 사고 이후 7개월 만에 급조된 석관은 추가적인 붕괴나 제2의 오염사태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또한 방제과정에서 엄청난 쓰레기들이 오염된 채 발생했고 이것들이 통제구역 여기저기에 매립되었던 점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요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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