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6일은 체르노빌에서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지 20주년이 되는 날이다. 체르노빌 재앙은 그 뒤 전 세계적으로 원자력 발전소 확대와 원자력 에너지 사용을 재고하는 데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원자력 에너지의 안전성에 대한 믿음은 계속되고 있다. 누가 원자력 에너지의 안전을 장담하는가?
환경운동연합 부설 시민환경연구소와 민주노동당은 24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체르노빌 사고 20주년을 맞아 '체르노빌의 교훈' 토론회를 개최했다. 체르노빌 사고가 이 시점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탐색하는 이 토론회에서는 국내 원자력 발전소 근무자와 주변 지역 주민에 대한 국내외 역학 조사를 비교·검토한 결과가 발표돼 눈길을 끌었다.
국내 역학조사, 신뢰성 의심되는 상황
이날 토론회에서 임종한 인하대 교수(산업의학과)는 "국내 원자력 발전소 근무자와 주변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내외 연구기관의 역학조사 결과를 비교한 결과 역학 조사의 신뢰성이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전 세계 15개국을 대상으로 핵발전소 원전 근무자의 암 발생 위험도를 측정해 2005년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BMJ)>에 발표된 카르디스 등이 주도한 국제 공동 연구에 따르면 원전근무자의 방사선 누적 노출량이 100mSv(밀리시버트)를 초과할 경우 백혈병을 제외한 모든 암의 사망률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국내에서 한국수력원자력이 별도로 만들어지기 전 원자력 발전을 담당했던 한국전력공사(現 한국전력)가 1992년부터 2000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실시했던 국내 원전 근무자와 주변 지역 주민 역학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미 10년 전인 1995년에 100mSv 이상의 누적 노출량을 보이는 노동자가 135명이나 됐다.
임 교수는 "사정이 이러한 데에도 국내 조사 결과 보고서는 원전 종사자들의 암 발생 위험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이런 문제점은 조사가 원자력 산업을 주도하는 한국전력공사의 발주로 이뤄진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방사능에 '항암 효과'가 있다고?
실제로 국내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1992년 1월부터 1997년 12월까지 원전 근무자 및 대조군(원전 비근무자)의 암 발생률을 살펴보면 원전 근무자 쪽이 더 낮다. 원전 근무자의 암 발생률은 10만 인·년 당 198.8명이었던 반면 대조군은 10만 인·년 당 234.0명으로 나타났다. 원전 근무자의 암 발생률이 대조군에 비해 15% 정도 낮은 것.
임종한 교수는 "이런 결과만을 보면 원전에 '항암 효과'라도 있는 것 같다"며 "이 의문은 '건강한 노동자 효과(Healthy Worker Effect)'가 일어났을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면 해소된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일반적으로 건강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원전 근무를 기피하기 때문에 일반인보다 건강 수준이 높다"며 "조사 결과를 해석할 때에는 이런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해외의 조사와 비교했을 때 국내 조사가 갖는 한계는 이뿐만이 아니다. 우선 국내 조사는 태아 및 어린이 등 방사선의 영향을 훨씬 크게 받을 수밖에 없는 이들을 조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더구나 원전 인근 주민의 대조군을 도시 지역으로 설정한 것도 난센스다. 임 교수는 "도시 지역에 사는 주민의 경우 이미 많은 발암 물질에 노출돼 있기 때문에 적절한 대조군이라고 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임 교수는 "국내 조사는 유일한 관련 역학 조사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객관적이라고 볼 수 없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며 "원전 안전성에 대한 시민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좀더 진전된 연구가 필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임 교수는 "외국에서는 독립된 기관이 이런 조사를 맡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한국수력원자력이나 원전 개발 부처인 과학기술부가 아닌 보건복지부, 환경부에서 조사를 맡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체르노빌 피해에 관한 엇갈리는 진실 국내 원자력 발전소의 건강 영향도를 놓고 진행되는 논란은 체르노빌 피해를 두고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논란과 비교했을 때는 '새 발의 피'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1~2년 새 나온 체르노빌 피해에 대한 여러 가지 보고서의 내용이 소개됐다. 최예용 시민환경연구소 기획실장은 국제연합(UN), 토치(TORCH·The Other Report of Chernobyl), 그린피스(Greenpeace) 등 체르노빌 사고에 대한 여러 가지 연구 보고서를 검토해 그 보고서 간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보여줬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세계보건기구(WHO)가 주도한 2005년의 UN 보고서는 20년 전에 발생한 체르노빌 사고의 방사선 노출로 인해 모두 4000명이 사망할 것으로 전망했다. 2005년 중순 현재까지 방사선 노출이 직접적인 원인이 돼 사망한 사람들이 채 50명이 안 된 사정을 염두에 두고 예상치를 낮게 잡은 것이다. 이 보고서는 또 체르노빌 사고 인근 지역 갑상선암 환자들의 생존율이 99%에 이르며, 방사선 노출에 따른 각종 부작용의 증가나 출산율의 저하를 보여주는 어떤 증거나 유사 증후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 마디로 방사선의 위협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믿음이 체르노빌 사고의 영향을 과장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UN 보고서가 체르노빌 사고의 건강 피해를 축소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과학자들에 의해 진행된 토치는 전혀 다른 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토치는 UN 보고서가 실제 유출된 방사능 낙진의 40%가 떨어진 유럽 지역과 11%가 떨어진 아시아 지역에 끼친 영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즉 방사능에 심하게 오염된 벨로루시, 우크라이나, 러시아 외의 나라의 피해가 조사돼야 한다는 것. 특히 토치는 "UN 보고서에서 예측한 4000명의 7~15배가 되는 약 3만 명에서 6만 명의 암 사망이 예상된다"며 "혈액암, 갑상선암은 물론이고 20~60년의 긴 잠복기를 갖는 유방암과 같은 고형암 발생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린피스가 체르노빌 사고 20주기를 맞아 체르노빌 인접 3개국은 물론 유럽 전역의 전문가 60여 명이 참여해 실시한 조사 결과는 더욱 충격적이다. 그린피스 보고서는 "체르노빌 사고의 방사능 오염이 앞으로도 50년간 더 지속될 것"이며 "벨로루시 2만1420명, 그 외 다른 나라 7만1660명이 사망해 총 9만3080명이 사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갑상선암은 2056년까지 모두 13만7000건, 유방암 같은 고형암은 12만3000건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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