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펀드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주목받고 있다. 최근 '국제 자본시장의 상어'로 불리는 펀드 운용자 칼 아이칸이 KT&G(옛 담배인삼공사)의 약한 고리를 물고 늘어지기 시작하면서 그 추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칼 아이칸은 KT&G의 지분을 갖고 있는 또 다른 외국계 펀드를 규합해 경영 참여 등을 요구하면서 공기업에서 민간회사로 탈바꿈한 KT&G를 압박하고 있다. 특히 3월 주총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주목된다.
***적대적 M&A 위협에 전전긍긍하는 국내 기업들**
외국계 펀드가 특정 기업의 1대 주주나 대주주가 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국내 기업들 사이에 적대적 인수합병(M&A)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외국계 펀드들은 대주주라는 지위를 이용해 위협을 가한 뒤 주가를 뻥 튀겨놓고 차익을 챙겨 떠나는 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외국계 펀드의 공격은 국내 개인투자자들에게도 '잘만 하면 편승해 한몫 벌 기회'로 비치면서 투기심리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외국계 펀드의 동향이 국내 주식투자자들에게 낯설지 않은 '재료'가 된 것이다. 그런가 하면 기업들은 '주주자본주의'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한 외국계 펀드의 위협 앞에서 전전긍긍한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를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 외국계 펀드의 탈세에 대한 세무당국의 조사, 외국계 펀드에 의한 각종 M&A설, 외국계 펀드가 초래하는 기업 경영상의 위험 등의 이야기들이 이어지면서, 외국계 자본의 횡포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다. IMF 외환위기 이후 국내 정책당국과 기업, 시장이 주주자본주의를 무턱대고 신봉해온 탓에 드디어 모순이 곪고 곪다가 터지게 된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국내 자본시장에서 벌이는 외국계 펀드들의 '활극'을 어떻게 봐야 할까? 외국계 펀드들 중에는 주주라는 지위를 앞세워 정상적인 기업경영을 방해하거나 주가 부양을 노리고 지나친 자사주 매각이나 배당을 요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주주자본주의가 전세계로 수출되면서 대형 펀드들이 어디에서나 늘 먹잇감을 노리고 있다. 이들에 의한 국내 자본시장의 왜곡을 막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들의 공과를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편협한 시각으로 외국계 펀드의 폐단만 내세워서 스스로 국수주의 족쇄를 차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공기업 민영화 성공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혔던 KT&G가 외국계 펀드 앞에서 움츠리고 있다. 최근 외국계 펀드들이 주로 쓰는 전략, 즉 다른 펀드들에 "주가를 높여줄 테니 밀어 달라"고 요청하면서 뭉치는 연합전선 앞에 국내 기업들의 취약성이 노출되고 있다.
특정 기업의 외국계 주주들 가운데 하나인 어떤 펀드가 앞장서서 주가 부양을 외치면서 다른 외국계 펀드들의 손을 빌리는 것이다. 우호적인 지분을 넓히고 이를 통해 이사회 진출 등으로 경영에까지 개입할 수 있다. 그러면 국내 기업들 역시 우호세력을 규합하는 데 여념이 없게 되고, 그러는 동안에 주가는 출렁거린다.
***IMF 위기에 대응한 금융개방의 후유증**
한국은 IMF 외환위기 당시 구제금융을 제공받는 대가로 금융시장의 빗장을 열어젖혔다. 외국인의 칼을 빌려 국내 금융시장을 개방하고 주주 중심 경영을 외쳤다. 그 결과로 현재 국내 기업과 금융시장은 감당하기 어려운 난제에 부닥쳐 있는 것이다.
과거 자본시장이 외국인들에게 열리기 전에는 국내 기업들이 개인 주주를 무시하는 행태를 많이 보였다. 배당에 소극적이었고, 재벌 총수 일가의 편법적 세습을 일삼아 일반 주주들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이같은 기업의 횡포나 불합리한 관행이 어느 정도 수습된 데에는 외국계 펀드 등 외국 국적의 자본들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공이 있으면 과도 없는 법. 외국계 펀드들은 자기가 투자한 기업의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위협도 서슴지 않았다. 특히 얼기설기 엮인 국내 기업들의 순환출자 구조가 드러내는 국내 대주주의 허약한 기업지배력을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지분매입 공격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면 곧이어 요구사항이 뒤따른다. "자사주 매입을 하라", "배당을 많이 달라", "자산을 처분해 주가를 부양하라"는 윽박지르기가 이어지고, 경영진 교체나 사외이사 추천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럴 경우 기업은 울며 겨자 먹기로 자사주를 되사서 외국계 펀드를 비롯한 대주주들의 배를 불려주기도 한다. 회사의 주인인 주주의 이익에 부합하는 경영을 하는 것 자체는 잘못된 것이 없다. 하지만 일부 대주주들이 억지로 주가를 부양하는 데만 골몰할 경우 기업은 투자를 해야 할 곳에 돈을 못 쓰게 되고 주식을 사서 소각하는 데만 열을 올리게 되며, 결과적으로 국내 경제에 불이익이 돌아갈 수 있다.
주주자본주의는 만능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 긍정적인 측면까지 무시할 수는 없다. 외국계 자본들은 주주를 중시하고 경영 효율성을 꾀하라는 조언도 하고 있으며, 윈윈 전략을 추구하기도 한다. 또 국내 기업들의 구태의연한 경영이 새롭게 변신하도록 촉매제 역할도 한다. 하지만 최근 외국계 자본의 폐해는 도를 넘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고, 이들이 국내 금융시장에 시스템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지금은 외국계 자본의 공보다 과가 주목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 KT&G의 경영권 압박이 이슈화되자 과거에 서둘러 공기업을 민영화한 것이 결국 외국인들의 배만 불리게 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외국계 펀드들이 그동안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고 목청을 높여왔지만, 실상은 국내 기업들을 먹잇감으로만 삼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내 금융시장 종사자들은 소버린과 SK의 경영권 갈등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국내의 우량기업들도 외국계 자본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위기감도 대두됐다. 특히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라는 삼성전자가 스스로 자사도 적대적 M&A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이런 삼성전자의 주장은 외국계 자본의 위협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삼성이 금산법 논란 등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외국계 자본의 위협을 과장하고 있다는 지적도 받았다.
***위법행위에는 철저한 대처 필요**
시장에서는 장기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좋은 펀드와 단기적인 차익만 노리는 나쁜 펀드를 구분해야 한다는 이른바 '좋은 펀드, 나쁜 펀드'론이 거론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같은 구분은 애매한 측면이 있으며, '경영 참가'의 목적을 밝힌 외국계 펀드에 대해 '페널티'를 줘야 한다고만 생각할 수는 없다. IMF 위기 이후 주주의 권익을 제고하는 긍정적 역할을 해 온 외국계 펀드들에 대해 갑자기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면 국내 금융시장의 대외 신뢰성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이는 그동안 한국이 견지해 온 금융자유화 원칙에도 어긋난다.
이미 국내 금융시장은 외국인 투자자들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게 돼 있고, 과거로 회귀해 그들에게 국수주의의 방패를 들이대는 것도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국내 자본시장의 건전한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봐도 외국인 투자자들의 적극적인 활동을 무조건 막는 게 능사라고 볼 수 없다.
다만 외국계 펀드의 비정상적인 불공정 행위에 대해선 예외 없이 제재를 가해야 한다. IMF 외환위기 이후 국내 자본에 대한 역차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았던 점에 비추면 외국계 펀드의 비정상적인 거래에 대해 사정의 칼을 빼드는 데 대해 시장에서도 수긍할 것이다.
검찰은 최근 미공개 정보를 활용해 투자손실을 줄인 혐의를 받고 있는 워버그핀커스를 기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검찰의 기소가 이뤄질 경우 영국계 펀드 헤르메스에 이어 두 번째 기소가 된다. 워버그핀커스는 지난 2000년 LG카드 주식을 장외에서 매집해 대주주가 된 뒤 사외이사 자리를 꿰찬 후 내부자 정보를 활용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헤르메스 역시 삼성물산의 주가 조작 혐의로 기소됐다.
국내 법을 위반하고 금융시장을 교란한 외국계 펀드에 대해서는 철저한 수사와 처벌이 불가피하다. 이와 함께 외국계 펀드에 의한 국내 산업이나 금융시장의 왜곡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도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서는 주식 보유기간에 따라 의결권에 차등을 두는 방안, M&A 위협에 노출됐을 때 기존 주주가 싼 값에 신주를 인수할 수 있게 하는 방안 등 여러 가지 경영권 방어장치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무조건 시장에 내맡기는 것은 곤란하다. 시장은 합리적으로 움직이기도 하지만, 이른바 큰손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얼마든지 시장의 물을 흐릴 수 있다.
하지만 외국계 펀드의 공격을 핑계로 국내 대기업들의 비정상적인 경영관행을 용인하는 것도 곤란하다. 국내 대기업의 비정상적인 지배구조나 편법세습 등에 대한 '감싸기'는 위험하다. 사실 글로벌화된 자본시장에서 합리적인 대안을 찾는 것 자체가 무척 힘들어졌지만, 제도적 보완은 세밀하게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박스〉
***외국계 펀드의 종류**
외국계 펀드는 운용 행태에 따라 헤지펀드, 프라이빗 에쿼티 펀드(PEF), 뮤추얼펀드로 나눠 볼 수 있다. 이는 딱히 정확한 구분이라고 할 수 없고 애매한 면도 있지만, 펀드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는 도움이 되는 구분법이다. 헤지펀드는 국내의 사모펀드, PEF는 국내의 사모주식펀드(PEF), 뮤추얼펀드는 국내의 일반 공모펀드에 상응하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먼저 뮤추얼펀드를 이해하기 위해 국내의 일반적인 공모펀드 형태를 살펴보자.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펀드는 통상 수익증권을 교부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는 투자자가 주주의 지위를 갖는 뮤추얼 펀드(회사형)와 달리 계약형이다. 수익증권을 교부하는 계약형 펀드는 자산운용사와 수탁회사가 펀드에 대한 계약을 맺고 투자자를 모집한다.
하지만 뮤추얼펀드는 '회사형'으로 불린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투자자는 주주가 된다. 서류상의 회사인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고, 운용은 자산운용사에서 하는 형태다. 국내에도 뮤추얼펀드가 있긴 하지만, '회사형'이 아닌 '계약형'이 일반적이다.
아무튼 공모형 펀드는 말 그대로 공모로 투자자를 모집하는 게 특징이다. 또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돈을 모은 만큼 규제를 많이 받는다. 미국의 경우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등록을 해야 하고, 투자에 관한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국내의 일반인들이 은행이나 증권사 등에서 가입하는 수익증권은 공모형 펀드와 같다고 보면 무리가 없다.
공모펀드는 일반적으로 펀드의 운용내역, 수익률, 수수료, 신탁보수 등을 공개한다. 또 국내의 일반적인 공모펀드에 가입한 투자자는 그 펀드의 기준가를 매일 확인할 수 있다. 뮤추얼펀드는 일반 대중이 가입하는 상품으로, 투자자 보호를 위한 법적인 제약을 많이 받는다. 뮤추얼펀드는 위험을 과도하게 질 수 없도록 규제받고 있어, 이른바 레버리지 활용 등에서 일정한 제약이 있다.
헤지펀드는와 PEF는 뮤추얼펀드와 많이 다르다. 먼저 헤지펀드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돈을 모으지 않는다. 헤지펀드는 기관투자가나 돈이 많은 소수의 개인들로부터 돈을 끌어모아 운용하는 형태다. 운용상의 제약이 별로 없고, 따라서 레버리치 효과를 크게 가져갈 수 있으며, 파생상품 투자도 자유롭게 한다.
헤지펀드는 수익을 올릴 수만 있다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 편이다. 주식, 채권뿐 아니라 주식과 채권에서 파생된 선물, 옵션, 그리고 외환, 실물 등 투자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이른바 조세피난처(tax haven)에 설립되기도 하며, 투자자 보호 장치가 없는 대신 규제도 별로 받지 않는다.
헤지펀드는 이른바 절대수익을 추구한다. 즉 시장 상황에 상관없이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는 것을 목표로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투기적인 행태를 보이기도 하며, 공개되는 정보가 별로 없어 그 운용 내용을 파악하기 힘들다. 헤지펀드의 예로는 조지 소로스의 퀀텀펀드를 들 수 있으며, 펀드 매니저는 성과보수로 엄청난 이익을 챙기기도 한다.
헤지펀드는 국내의 사모펀드와 비슷하다. 국내 사모펀드들은 공모펀드처럼 종목당 주식편입비 등에 별다른 제약이 없으며 절대수익을 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외국의 헤지펀드처럼 다이내믹한 운용을 하지는 못하고 있다.
사모투자회사 혹은 사모주식펀드로 불리는 PEF는 소수로부터 자금을 사모방식으로 모집한다는 면에서 헤지펀드와 유사하다. 각종 규제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PEF나 헤지펀드는 일반 투자자들에게서 받은 돈을 안전하게 운용하는 데 역점을 두는 뮤추얼펀드와는 다른 개념이다.
PEF의 특징은 주식 등 지분증권에 초점을 맞춘다. PEF는 회사의 경영에 참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거나 지배구조 개선 등을 내세우는 경우도 많다. 헤지펀드가 주식, 파생상품 등 다양한 상품을 이용해 최대한 수익을 내기 위해 노력하는 반면, PEF는 비공개회사와 공개회사의 지분 매입 등에 치중하는 경우가 많다. 또 헤지 펀드가 수익을 내기 위해 단기투자도 마다하지 않는 반면 PEF는 비교적 장기투자를 통해 회사의 경영상황을 개선하고 그에 따른 수익을 노리는 게 일반적이다.
한편 외국계 펀드들이 국내 시장을 잠식하고 단기적인 차익만 노린다는 지적이나 국내 경제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대두되면서 PEF에 대한 국내 자본의 관심도 높아졌다. 인수합병, 경영권 참여 등을 통해 국내 기업의 발전에 기여하는 국산 PEF, 다시 말해 외국 자본에 대한 '대항마'로서의 '토종 PEF'의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많은 외국계 펀드들이 국내 주식 등에 투자를 하고 있지만, 이들의 정확한 성격은 파악되지 않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국내에선 이들 펀드에 대한 업태의 분류 정도만 가능하다. 예컨대 은행, 보험, 증권, 투자집합 등으로 외국계 자본을 분류하고 있으며 추가적인 세분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또 외국계 펀드를 통해 국내에 들어오는 투자자금의 성격이 장기인지 단기인지를 명확하게 단정하기 어려우며, 헤지펀드와 PEF로 쉽게 나누지도 못한다. 이로 인해 현실적으로는 외국계 펀드를 통해 국내 시장에 투자하는 외국인들의 의중이 정확하게 파악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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