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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반도체 산업이 잘못된다면…?

반도체 통계의 착시현상 경계해야 할 때

반도체 산업을 보면 한두 기업의 경쟁력이 우리 경제 전체의 부침을 좌우하리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반도체가 전체 생산이나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아 반도체 경기가 경제성장이나 국제수지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 산업은 기술발전 속도가 빠른데다 대규모 투자를 누가 먼저 하느냐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확연히 갈라지기 때문에 불안감은 증폭된다. 오늘의 선도기업이 내일도 잘 해나가리란 보장이 없는 것이다.

***반도체업계 판도, 10년 안에 본격 양극화 전망**

지난주 세계 최대의 반도체 업체인 인텔과 세계 3위의 D램 업체인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합작회사를 만들어 내년부터 낸드플래시 생산에 뛰어든다고 발표하자 국내 주가지수가 급락한 것도 이런 불안감 때문이다. 낸드플래시 외에도 시스템LSI(비메모리 반도체)나 초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 등에서도 미국, 일본, 유럽, 중국의 업체들이 합종연횡하며 거세게 도전해오고 있어 우리 기업들의 긴장감이 더해가고 있다.

지금 반도체 산업에서 업체 간 경 쟁열기가 하루하루 달라지는 것은 10년 이내에 닥칠 산업지형의 재편에서 낙오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라는 게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최근 분석이다. 반도체 소자의 크기가 점점 작아짐에 따라 기술의 난이도가 높아지고 관련 설비투자 규모는 기하급수로 커지고 있다. 이 연구소의 손상영 연구위원은 "2013년께 반도체 미세화의 기술적 한계인 32nm급 제품 개발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며 "이때쯤이면 세계에서 한두 기업만 이 기술에 투자해 '상위시장'을 형성하고 나머지 업체는 이를 포기한 채 '하위시장'에서 경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전자 없이 독점이윤을 누리는 상위기업이 되느냐, 이전투구식 경쟁을 하느라 수익도 내지 못하는 하위기업이 되느냐의 갈림길에 반도체 관련 업체들이 서 있다는 것이다.

굳이 10년 앞을 내다보지 않더라도 지난해와 올해 반도체 가격 하락의 충격을 완화시켜주며 새로운 기대주로 떠오른 낸드플래시 부문에서 인텔-마이크론테크놀로지의 합작 발표를 계기로 삼성전자나 하이닉스는 공급과잉에 따른 가격급락의 위험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지나친 반도체 의존, 한 바구니에 담은 계란**

반도체가 경쟁력을 잃거나 죽고살기식의 가격전쟁을 벌이게 될 때 우리 경제가 받을 타격은 몇 가지 지표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먼저 지난해와 올해 내수부진 속에서도 우리 경제가 그나마 3~4%대의 GDP 성장을 하는 데는 반도체가 큰 몫을 하고 있다. 지난해 산업생산은 10.4% 증가(전년동기 대비)했는데 반도체를 제외하면 5.5% 증가에 머물렀을 것이란 게 통계청의 분석이다. 자동차 파업에도 불구하고 올해 8월과 9월의 산업생산은 각각 6.4%와 7.2% 증가했지만, 반도체를 빼면 1.9%와 1.7% 증가에 불과했다. 반도체의 생산과 출하가 올해 들어 매달 30%대의 증가세를 유지하며 생산을 이끌었던 것이다. 무역에서도 반도체는 지난해 전체 수출의 10.4%인 265억 달러를 수출해 단일 품목으로는 최대 수출품이었다. 올해 들어서도 9월까지 전체 수출의 10.7%인 224억 달러가 반도체 수출이다.

1990년대 이후 반도체 산업은 몇 번의 호황과 불황 사이클을 탔는데, 불황기마다 경제에 '쇼크'를 안겼다. 세계 D램 시장이 50% 이상 감소한 2001~2002년의 반도체 불황은 우리 경제에 생산과 수출의 급격한 위축을 불러왔고, 정부가 이를 내수부양으로 메우려다 이른바 '카드대란'이란 가계부채 급증 사태를 초래했다. 우리 경제가 1994~95년에 호황을 누리다가 1996년 이후 경기가 가라앉고 경상수지 적자를 내기 시작한 것도 상당부분 반도체 경기 변동 때문이었다. 1996년 이후 D램 생산물량(메가바이트 기준)는 연평균 80% 정도 늘었으나 평균단가는 1995년에 27달러 하던 것이 1997년에는 4달러로 폭락했다. 수출물량은 11배나 늘었으나 수출금액은 오히려 감소해 경상수지에 깊은 적자의 골을 만들었고, 이는 외환위기의 한 요인이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내년에는 경제성장이 잠재성장률 수준으로 회복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반도체가 당분간 수출과 생산의 버팀목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 조사국의 서원석 차장은 "해외 정보기술(IT) 업황이 나쁘지 않아 내년 상반기에도 반도체 경기는 좋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투자격언처럼, 경쟁과 부침이 심한 한두 업종에 대한 국가경제의 의존이 심화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반도체는 기술발전에 따라 가격이 급락하는 대신 생산물량은 크게 늘어나는 특성이 있다. 이런 점은 통계에 착시현상을 불러올 수 있다. 현재 산업생산이나 GDP 통계는 2000년 등 기준연도에 가격을 고정한 채 물량의 증감을 측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금액이 줄고 교역조건이 악화돼 국민소득은 줄어드는데도 성장률만 올라가는 일도 있을 수 있다.

***지난해 반도체의 무역흑자, 자동차의 10분의 1**

반도체 산업이 다른 국내산업의 생산을 유발하는 능력이 자동차, 건설 등 여타 산업에 비해 낮은데다 무역흑자에도 기대만큼 크게 기여하지 못하는 것도 우리 경제의 고민거리다. 국내 업체의 메모리 반도체 생산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반도체 장비나 재료 생산기술은 취약해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이로 인해 지난해 자동차 산업의 무역흑자는 284억 달러인 데 비해 반도체 산업의 무역흑자는 29억 달러에 그쳤다. 올해의 경우 반도체 산업은 9월까지 224억 달러를 수출했으나 비메모리나 장비 수입에 184억 달러를 썼다.

이처럼 반도체는 우리 경제에 기회인 동시에 때론 위험요인이기도 하다. 기회는 충분히 살려가고 잘 하는 기업은 응원해야 하지만 국가정책적으로 다른 성장동력도 부지런히 육성해야 한다. 2000년대 들어 정보통신업종이 성장을 주도하고 있지만 국내 산업연관 관계가 취약해 지표경기와 체감경기가 따로 놀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어, 정보통신업종의 국내 산업연관 관계를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주에는 10월 산업활동 동향과 10월 국제수지 지표가 각각 발표된다. 반도체가 우리 경제의 생산과 수출, 수입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한번 살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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