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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가가 지속돼도 '오일달러'는 없다"

스티븐 로치 모건스탠리 수석 이코노미스트의 충고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중동 산유국들의 석유 수출대금 수입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호주와 캐나다를 제외한 전 세계 산유국들이 석유수출로 벌어들이는 돈의 총액이 1998년 1290억 달러, 2002년 2810억 달러에서 올해는 7030억 달러로 크게 늘어났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이에 따라 산유국들의 수중에 들어간 막대한 자금이 과연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예측이 나오고 있다. 가장 흔한 예측은 1970년대의 오일쇼크 때처럼 중동 산유국들의 석유수출 대금 수입이 달러화 표시 자산 구입자금으로 전환되는 방식으로 세계경제의 윤활유 역할을 하리라는 것이다. 이른바 '오일달러'라는 표현은 바로 이런 관점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모건스탠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스티븐 로치는 29일 모건스탠리 홈페이지(www.morganstanley.com)에 올린 글에서 "1970년대와 달리 이번의 오일쇼크에서는 '오일달러' 현상이 나타나고 있지 않다"고 진단했다. 로치가 '오일달러 부재의 실상(The Case of the Missing Petro-dollars)'라는 제목으로 게재한 이 글이 최근의 고유가 현상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면서 전문을 번역해 소개한다. 〈편집자〉

***오일달러 부재의 실상**

과거에 오일쇼크은 세계경제에 파괴적인 영향을 끼치는 만큼이나 희망의 빛도 비추었다. 석유생산자들, 특히 중동의 산유국들에게 돌아가는 막대한 석유 수출대금 수입 중 상당부분이 달러표시 자산으로 환류됐기 때문이다. 과거의 오일쇼크 때는 오일달러와 관련된 자금흐름이 충분히 커서, 미국의 금리와 미국경제 중 금리에 민감한 부분에 오일쇼크가 타격을 입히는 것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올해의 오일쇼크는 그 성격이 다르다. 대단히 높아진 석유가격이 중동 산유국들에게 3000억 달러에 가까운 추가수입을 가져다주었지만, 이것이 오일달러 효과를 통해 달러자산으로 환류되는 현상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는 최근 내가 중동을 방문하는 동안에 분명하게 내린 결론이다. 나는 아부다비와 두바이에 단지 며칠간만 머물렀지만, 그동안에 모건스탠리의 '2차 중동 기관투자가 회의'에 참석한 많은 의사결정자들로부터 그들의 견해를 두루 들어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많은 개별적 만남과 더불어 진행된 이 기관투자가 회의 기간에 나는 중동의 주요 산유국들에서 온 투자자, 사업가와 기업인, 관리들을 폭넓게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이번의 오일쇼크는 금융적 환류의 측면에서 과거의 오일쇼크와 매우 다르다는 데 대해,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해 사실상 이구동성이라고 할 만큼 유사한 견해를 밝혔다.

***과거의 오일쇼크와 다른 다섯 가지 이유**

첫째, 중동 산유국들이 올린 석유 수출대금 수입 중 상당부분은 주가가 급등하는 각국 국내 주식시장에 투자되고 있다는 것이다. 석유가격의 급등과 더불어 올해 들어 최근까지 주요 중동 산유국들의 주가가 상승한 내용을 들여다보면 놀랄 정도다. 예를 들어 두바이는 166%, 사우디아라비아는 99%, 쿠웨이트는 82%, 아부다비는 80%, 카타르는 69%나 주가가 올랐다. 이들 주식시장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대단한 속도로 성장해 이제는 석유와 관련된 자금유입의 상당부분을 흡수할 정도로 용량이 커졌다. 예를 들어 두바이와 아부다비의 주식시장을 합쳐 보면, 그 상장주식 시가총액이 2000억 달러에 이른다. 2000년에만 해도 150억 달러에 미치지 못했던 점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극적인 성장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이들 주식시장의 주가수준은 거품으로 볼 수 있을 정도에 이르렀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고, 이런 우려는 이해할 만하다. 그럼에도 이들 주식시장에서 손을 털고 빠져나가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고유가로 인해 추가로 벌어들인 풍부한 수출대금 수입을 바탕으로 중동 산유국들은 각각 자국 주식시장의 성장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다.

둘째, 이 지역 국가들의 국내 부동산 개발사업 호황도 석유 수출대금 수입의 상당부분을 빨아들이고 있다. 지금의 두바이는 내게 10여 년 전의 상하이를 연상시킨다. 두바이 시 건설 붐의 범위와 규모가 상하이의 경우만큼 크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중국 푸둥에서는 건물이 지어진 뒤 한동안은 입주가 되지 않아 오랫동안 빈 상태로 있었지만, 두바이에 지어지는 건물들은 지어지기도 전에 팔려나간다. 두바이에서는 앞으로 2년 동안 30만 실에 해당하는 89개 정도의 콘도미니엄 빌딩이 건립될 예정인데, 그 대부분이 이미 매각됐거나 임대된 상태다. 게다가 두바이의 해변지역 개발계획도 대단하다. 카타르의 도하에서도 두바이와 비슷한 건설 및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감안하면 석유 수출대금 수입은 과거의 오일쇼크 때는 존재하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출구를 갖게 됐음을 알 수 있다. 중동의 한 투자자문업자는 이렇게 강조했다. "바레인, 쿠웨이트, 오만,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 걸프협력회의(GCC) 소속 국가들은 모두 자국 내 투자 프로젝트를 수립하고 그에 따라 투자를 하고 있다."

셋째, 9.11테러 이후에 생겨난 안전에 대한 우려가 중동의 자본이 달러자산으로 흘러가는 것을 심각하게 방해하고 있다. 중동의 포트폴리오 투자자금이 미국 금융기관으로 흘러가는 데 대해 새로운 요건을 부과하는 규제를 담은 미국의 애국법(Patriot Act)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와 동시에 중동지역에서 계속되고 있는 정치적 불안정도 원인이 되어 중동의 많은 투자자들이 투자결정을 내릴 때 자신이 친미적인 자로 보이게 할 경우 져야 할 위험을 피하려 한다. 주요 기관투자가의 한 간부는 자신이 달러표시 자산의 구입을 꺼리는 데 대한 설명을 부탁하자 "그렇게 해봐야 좋을 게 없을 뿐이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넷째, 세계 최대의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대규모의 공공부문 부채 문제를 안고 있으며, 이에 따라 고유가로 벌어들인 돈의 상당부분을 공공부문 부채를 상환하는 데 써야 하는 상황이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의 공공부문 부채는 2004년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92%에 이른다. 이런 공공부채 수준은 일본(164%)보다는 낮지만 미국(65%)보다는 훨씬 높은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공공부채는 1980년대와 1990년대의 만성적인 재정적자에서 유래된 것이며, 현재 이 나라의 공적 연금 및 사회보장 관련 펀드들의 장부에 채권으로 잡혀 있다. 따라서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부채는 그 대부분이 정부가 스스로에게 지고 있는 빚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과거의 오일쇼크 때 했던 대로 고유가에 따른 석유 수출대금 수입의 상당부분을 재정을 건전화하는 데 활용할 것으로 봐야 한다.

다섯째, 중동에는 달러화 가치의 전망에 대한 우려가 확산돼 있다. 달러화의 가치가 거의 3년간에 걸친 하락세 끝에 올해는 상승세를 보였지만, 내가 만나본 대부분의 자산운용가들은 앞으로 달러화 가치가 더 하락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들도 이미 미국경제의 거대한 대외 불균형이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점을 주된 우려사항으로 꼽았다. 달러화에 대한 중동 사람들 나름의 이러한 견해는 최근의 석유 수출대금이 오일달러로 환류되는 것을 방해하는 또 하나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 다섯 가지는 내가 중동지역의 주요 인사들과 토론을 벌이는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그들의 태도를 종합한 결과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그렇다고 해서 이 다섯 가지가 그들이 달러표시 자산을 더 많이 사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 이유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달러자산에 대한 수요는 늘 존재하고 있지만, 이번에는 중동의 석유 수출대금 수입이 오일달러로 환류되는 정도가 과거의 오일쇼크 때보다 훨씬 낮다는 점이 중요하다. 게다가 이런 결론은 최근 석유가격이 급등하는 동안 지배적이었던 추세와 정서의 연장선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제 석유가격은 얼마 전의 최고점보다는 다소 낮은 수준으로 떨어져 있다. 따라서 환류될 가능성이 있는 석유 수출대금 수입도 그때보다는 적어졌다. 이런 상황은 석유거래와 관련된 재투자가 세계경제에 일으키는 영향이 본질적으로 주기성을 갖고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중동 투자자들은 미국 증시에 관심 없다"**

흥미롭게도 오일달러의 부재는 미국의 자본유출입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미국 재무부가 관리하는 국제자본 계정에 따르면, 석유수출국기구(OPEC) 국가들의 미국 재무부채권 보유액은 2005년 2월에 676억 달러로 최고액을 기록한 뒤 줄어들기 시작해 9월에는 546억 달러까지 떨어졌다. 물론 이 통계는 중동 산유국들뿐 아니라 베네수엘라, 나이지리아, 리비아, 알제리, 인도네시아까지 포함한 석유수출국기구 회원국들 전체에 대한 것이다. 더욱이 이 통계는 미국 재무부 채권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며, 다른 국공채나 달러표시 자산에 대한 수요는 제외된 것이다.

그럼에도 이 통계는 달러자산에 대한 산유국들의 투자의욕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줌으로써 그들이 자국에 유입되는 자본 중 얼마만큼을 무위험 자산으로 운용하려고 하는가를 비교적 명쾌하게 보여준다. 따라서 이 통계는 오일달러 흐름의 추세를 파악하는 데 꽤 도움이 되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이 지표를 보면 석유가격이 크게 오르고 그에 따라 산유국들의 석유 수출대금 수입이 크게 늘어난 최근의 과정에서는 과거와 달리 오일달러의 흐름이 증가하기는커녕 오히려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이런 현상이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의 자본유출입 통계는 내가 중동에서 얻어낸 정보와 매우 잘 부합한다. 이는 또한 최근의 한 모임에서 중동 투자자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한 참석자가 한 말과도 부합한다. 그는 "중동의 투자자들은 미국의 주식시장에 대해 거의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세계경제에 보다 폭넓은 거시적 의미를 갖는 것일 수 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올해 달러화가 놀랍게도 강세를 보인 배경에는 '오일달러 효과'가 주된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이야기해 왔다. 그러나 위에서 내가 전개한 논리와 주장은 이런 종류의 추론이 근거가 없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또한 본토투자법(Homeland Investment Act)에 따라 미국으로 송금될 수 있는 총 5000억 달러 규모의 해외발생 이익 중 실제로 송금된 자금이 올해 달러화 강세에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보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모건스탠리의 통화팀장인 스티븐 리 젠은 이 법에 따라 미국으로 송금될 수 있는 해외발생 이익 중에서 많이 보아야 1000억 달러 정도만이 "통화와의 관련성을 갖고 있다"고, 다시 말해 '위험헤지가 안 돼 있거나 달러자산으로 보유돼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 외환시장의 하루 거래액이 2조 달러를 넘는 상황에서 1000억 달러라면 상대적으로 아주 작은 금액이다. 이렇게 하나하나 제거해나가면 결국 미국의 자본유입(이는 곧 달러화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일 수 있다)은 주로 민간의 포트폴리오 투자자들과 미국을 제외한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과 같은 일반적인 달러화 수요자들의 손에 주로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물론 이들 사이에서도 거시적인 효과에 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나는 중동의 새로운 모습을 보면서 '즐거운 놀라움'을 느꼈다. 첫 오일쇼크가 일어난 후 32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중동 지역 국가들의 금융적, 경제적 기반은 인상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1970년대에 일어난 두 차례의 오일쇼크 때는 석유수출국기구 국가들이 갑작스럽게 손에 쥐게 된 엄청난 규모의 석유 수출대금 수입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관해 거의 아무런 준비도 돼 있지 않았다. 당시 중동의 산유국들은 국내 인프라와 자체적인 경제개발계획에서도 이렇다 할 것이 없었기에 포트폴리오 투자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고, 석유 수출대금 수입의 환류에 따라 달러표시 자산이 가장 큰 혜택을 입었다.

그러나 오늘날 중동이 그때보다 훨씬 발전한 상태다. 중동 국가들이 선택할 수 있는 국내투자 기회는 그때보다 훨씬 더 다양해졌다. 중동 국가들은 자체적인 개발계획을 갖고 있고, 중동 각국의 국내 자본시장은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으며, 갈수록 정교한 투자기법을 구사할 줄 아는 펀드매니저들이 전통적인 주식과 채권 투자에 머물지 않고 헤지펀드와 사모주식펀드에 투자하는 등 전 세계에 걸친 다양한 포트폴리오 투자기회들을 폭넓게 이용하고 있다. 요즘 나는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의 달러화 선호도에 대해 질문을 하면 "그들이 달러화 말고 다른 어디에 돈을 넣어둘 수 있겠느냐?"는 조건반사적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나는 "직접 중동으로 가서 눈으로 확인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지금 중동에서 달러화와 연관된 자산은 여러 가지 선택가능한 투자메뉴 중 하나일 뿐이다.

중동의 자산거품이 터져 '안전으로의 도피'가 촉발되고, 이에 따라 중동의 자본이 달러자산으로 되돌아올 가능성은 상존한다. 중동의 자산거품을 터뜨리는 원인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석유가격의 급락이다. 석유가격의 급락은 달러자산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자산으로 환류될 수 있는 중동의 석유 수출대금 수입이 급감함을 의미한다. 이런 거품 붕괴의 위험이 잠재돼 있음을 부인하진 않겠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내가 내린 기본적인 결론, 즉 달러화와 미국 재무부 채권이 앞으로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오일쇼크가 발생하면 오일달러가 자동적으로 증가한다고 가정하기 전에 다시 한번 신중히 살펴보라"고 충고해 줘야겠다는 결론은 양보할 수 없다. 중동이 1970년대처럼 단순히 오일달러를 환류시키는 역할을 하고 말기에는 그동안 너무 많이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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