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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9.18 총선의 진짜 승자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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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독일 9.18 총선의 진짜 승자는 누구인가"

[기고] 좌파의 '기사회생'과 신자유주의 급물살 제동

지난 9월 18일 치러진 독일 총선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이는 기존의 집권당인 '적녹 연정'의 종언 재확인, 좌파 정치의 기사회생과 신자유주의의 급물살 제동, 거대 정당의 퇴색과 군소 정당의 약진 등이다.

지난 7년간 소위 "사회국가(Sozialstaat)의 유지를 위한 사회국가의 개혁"을 표방해 온 '적녹 연정'은 당초 예상대로 과반수의 지지율을 확보하지 못해 차기 정부 구성에 실패했다. 이는 일단 1990년대 후반 정치적 재기에 성공한 독일의 제도권 좌파가 끝내 실권해 자력으로는 정부를 구성하지 못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2003년부터 본격화된 적녹 연정의 개혁프로그램 '아젠다 2010' 역시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우파의 정권 창출 실패 **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번 선거를 통해서는 '적녹 연정'의 뒤를 이어 집권할 안정적인 정치 세력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선거 몇 개월 전부터 내내 40%를 웃도는 지지율을 자랑하던 기민당(CDU)/기사연(CSU)의 지지율은 정작 뚜껑을 열어 보니 35% 대에 그쳤고, 그 대신 이들과 연정을 공언해 온 자민당(FDP)의 지지율은 기대 이상으로 높아 10% 대에 육박했다. 그럼에도 이들이 구상해 온 소위 '흑황 연정'은 정부 구성이 가능한 50%의 지지율을 획득하지 못해 끝내 '적녹 연정'을 딛고 새로운 권좌에 오르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그에 반해 줄곧 30%를 밑도는 지지율을 보이며 이번 선거에서 참패가 예상되던 사민당(SPD)은 예상 밖의 선전을 해 34% 이상의 지지도를 보였다. 사민당의 연정 파트너였던 녹색당 역시 8% 이상의 득표율로 어느 정도 기대에 부응하는 결과를 얻었다. 결국 좌파 정치는 정권 연장에 실패했지만 적어도 우파 정권의 창출을 저지하는 것에는 성공한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지난 7년간 '적녹 연정'의 정치가 국민 대다수로부터 단지 실정으로만 받아들여지지는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국민들은 슈뢰더나 피셔 등 작금의 정치 지도자들이 이끄는 '적녹 연정'의 연장을 원치는 않지만, 그렇다고 '좌파 정치'에 대한 희망과 가능성 자체를 거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여기에는 현 정부가 좀 더 잘 하길 바라면서도, 그것이 '흑황 연정'의 프로그램이 주창하는 신자유주의화의 급물살로 나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반감과 공포를 지니고 있는 현재의 대다수 독일인들의 정서가 잘 반영돼 있다.

***군소 정당의 약진…독일 사회의 분화 경향 반영**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거대 국민정당(Volkspartei)의 퇴색과 군소 정당들의 약진이었다. 무엇보다도 당초 사민당의 사회 안전망 축소 정책에 반발하며 사민당 내 좌파들이 서독을 중심으로 결성한 '선거연합(WASG)'과 구동독의 민사당(PDS)이 연합해 출범시킨 좌파정당(Linkspartei PDS)은 이번 선거에서 8% 대의 지지율을 얻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들은 동독의 여러 지역들에서 25% 가량의 막강한 지지를 얻기도 했으며, 전반적으로 독일 전국에서 고르게 일정 수준 이상의 지지를 획득해 독일 역사상 최초로 '사민당(SPD)보다 왼쪽에 있는 전국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이는 그간 집권 '사민당의 우경화'에 실망한 많은 좌파 성향의 유권자들, 특히 사회 보장의 축소로 인해 경제 사회적인 타격을 입은 취약 계층들과 진보적 성향의 지식인들이 이들에게 과감하게 표를 던진 결과였다. 라퐁텐이나 기지 등의 인기 정치인들이 벌인 포퓰리즘적인 선거전이 의외의 성과를 얻은 것이라고만 보기에는 이들에 대한 지지 수준은 매우 높았다. 이들이 구체적으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개혁 모델을 표방한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이상주의적 정치세력이라고 쉽게 폄하될 것만도 아니다.

이와 더불어, 이데올로기적으로나 집권 프로그램의 내용상으로 가장 오른쪽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자민당(FDP)이 10%대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구가하며 제3당의 자리를 탈환한 것도 주목할 일이다. 선거 집계가 끝나자마자 기민당의 당수 앙엘라 메르켈은 비록 기민당/기사연의 지지율은 기대에 미치는 성과를 보이지 못했지만 그 대신 자민당의 지지가 상당히 높았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그만큼 이번 선거에서 '탈규제의 개혁'를 바라는 유권자들이 다수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그녀의 말대로 독일 국민의 일각에서 탈규제, 신자유주의화를 보다 노골적으로 염원하고 있는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좌파정당과 자민당 모두의 성장은 한편에서는 보다 노골적인 좌향좌를, 다른 한편에서는 보다 노골적인 우향우를 요구하면서, 기존의 거대정당들로부터 이탈한 유권자들이 많아졌음을 뜻한다. 이는 세계화와 유럽화 시대를 맞아 변모하고 있는 독일의 경제 사회적인 추세와 이를 바라보는 독일인들의 이데올로기적인 지형에 있어서 양극화가 심화되어 가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번 선거에서 '적녹 연정'의 좌초와 '흑황 연정'의 집권 실패도 독일이 현재 겪고 있는 사회적 분화의 경향이 단면적으로 표출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이러한 경향은 향후 독일 정치에 중요한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안개정국과 색깔조합 게임**

현재 독일 정가는 그야말로 '안개정국'에 처해 있다. 다양한 색깔조합의 가능성들과 정치적인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는 상태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녹색당은 '소수당으로 집권하느니 영원한 야당으로 남겠다'고 일찌감치 선언하고 나섰다. 녹색당의 인기 정치인이자 현 정부의 외무부 장관인 요시카 피셔도 중앙당의 대표로서의 지위를 벗어 던지는 과감한 모습을 보였다. 녹색당의 명확한 입장 표명으로 소위 '신호등 연정(적녹황)'과 '자마이카 연정(흑황녹)'의 가능성은 거의 희박해졌다.

이제 남아 있는 가장 유력한 가능성은 사민당과 기민당 간의 대연정(Grand Coalition)이며, 그것조차 실패할 경우에는 재선거가 불가피하게 되었다. 이번 선거에서 불꽃 튀는 대결을 벌인 두 당의 대표들은 수상의 자리를 놓고 쉽게 양보하지 않을 태세이며, 두 정당 간의 집권 프로그램 상의 조율도-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녹록치 않을 것이다. 결국 두 당 모두 획기적으로 방향을 선회하거나, 두 정당 중 어느 당이 내부 분열에 빠지지 않고서는 대연정도 쉽게 성립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편 사민당과 기민당 모두 일단 '좌파정당'과의 연합은 원천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사실 사민당, 좌파정당, 녹색당의 '적적녹' 범좌파 연합을 꾸린다면 50% 이상의 지지율을 얻어 정부 구성이 가능하다. 하지만 좌파정당 스스로 사민당과의 명확한 정체성 구분을 표방하고 나섰고, 사민당의 집권 프로그램의 안티테제로 자신들을 드러내 왔기 때문에 이번 선거 결과에 기대어 새로운 범좌파 정부의 구성에 이들이 참여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독일 좌파 정치의 미래 **

결론적으로 이번 선거는 독일의 좌파 정치 세력을 재편시켰지만 몰락시키지는 않았다. 비록 집권좌파인 '적녹 연정'이 좌초하고 범좌파 연합이 정부를 구성할 가능성이 없을지라도, 이들이 통틀어 독일 국민들의 50% 이상의 지지를 획득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러한 결과야말로 향후 독일 정치를 신자유주의의 급물살에 내맡기지 않을 실체적인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비록 쉽게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적어도 이번 선거를 통해 독일의 좌파는 우파에게 헤게모니를 빼앗기지 않았고 다시금 기사회생의 기회를 얻었다. 이제 단기적으로는 연정의 게임의 장에서 국민들에게 어떠한 신뢰있는 모습을 보이며 정국의 헤게모니를 쥐어 나가느냐,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보다 진정성 있고 설득력 있는 개혁 프로그램을 재구축하면서, 분열이 본격화된 좌파세력 내의 정치적인 통합을 어떻게 일궈내느냐가 향후 독일 좌파정치의 진로를 결정할 핵심적인 관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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