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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라의 위기' 둘러싸고 요동치는 브라질 정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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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라의 위기' 둘러싸고 요동치는 브라질 정계

김영길의 '남미 리포트'<80> 룰라 'No 사임' 발언의 배경

"브라질 경제는 정치인들이 잠자는 밤에만 성장한다."

최근 브라질 국민들 가운데 널리 퍼진 우스개 소리다. 그 만큼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이 크다는 말일 것이다.

지난 3개월 동안 국민들의 관심 속에서 진행된 브라질 하원의 특위 활동은 정치권의 만성적인 부정부패와 각종 사기, 정치인들의 타락상, 비능률적인 국정 운영에다 무능력, 불요불급한 낭비, 친인척 편중 인사 등의 실체만 국민들에게 적나라하게 드러낸 모양새가 되었다.

브라질 최대의 뇌물 사태를 조사하고 있는 하원은 여야 합동으로 3개의 특위를 운영, 정치권의 부정을 조사하고 있지만 실적은 아직까지 별 무속득인 것으로 알려진다. 각종 고발과 설만 무성했지 고발된 당사자들이 뇌물수수 혹은 공여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어 특위의 만료 기간인 오는10월 15일까지 어떤 확실한 결과를 매듭짓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오죽했으면 특위 활동의 증언과 당사자 심문 때 "거짓말 탐지기를 사용하자"는 말까지 나왔을까.

문제는 브라질 의회가 룰라 정부와 집권 노동당의 뇌물수수에 관한 핵심을 꿰뚫지 못하고 주위만 맴돌며 시간만 끌고 있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는 데에 있다. 따라서 브라질 민심은 룰라 대통령이 역사상 최대의 뇌물사태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고 과감한 정치개혁에 나서주기를 바라고 있지만 '나 몰라라' 식의 엉거주춤한 태도를 보인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룰라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양상이다.

룰라 대통령에 대한 국민 지지도는 시간이 갈수록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지난 25일 상 파울로의 <다타폴랴>의 발표에 따르면 룰라의 지지도는 39%로 추락한 반면 차기 유력 대선주자인 조제 세하 상 파울로 시장은 48%로 급상승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결론적으로 브라질 하원의 이런 시간 보내기 식의 미지근한 조사 태도는 여론의 방향을 반룰라 쪽으로 몰고 가기 위한 노련한 정치적인 노림수일지도 모른다는 얘기도 들린다. 최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만난 브라질 경제계의 한 정치평론가는 "브라질 정치권이 룰라를 탄핵하는 것보다는 스스로 물러나도록 하는 지연 작전을 펴고 있는 감이 없지 않다"고 진단했다.

다시 말해서 브라질 의회가 룰라를 직접 압박하는 강공을 구사, 정치권 전체가 뇌물 파동 소용돌이 속으로 말려들어가는 파국을 피하면서 룰라로부터 민심을 이반시켜 조기 '레임덕 현상'을 부추기는 고도의 작전일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이달 초 브라질 정치권에서 룰라 대통령의 탄핵이 거론되자 40여 년 동안 브라질 정계에서 잔뼈가 굵은 세베리노 까발깐티 하원의장은 "확실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논리를 앞세워 탄핵 논의 자체를 거부했다.

노련한 까발깐티 의장은 자신이 대통령 유고시 부통령에 이어 권력 계승 서열 2위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지만 정국이 현직 대통령 탄핵으로 불 붙은 뒤 여야 간의 폭로전으로 정국이 불안해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의 계산은 대중적인 인기로 지금까지 버텨 온 룰라 대통령이 민심이반과 집권당의 내분으로 딜레마에 빠져 자진사임을 하게 되는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룰라의 외각 때리기만 계속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만일 그의 시나리오대로 룰라 대통령이 사임을 하게 되면 룰라의 러닝메이트였던 조세 알렌까르 부통령 역시 동반퇴진을 해야 하는 수순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게 되면 오는 2006년 10월 대선 때까지 까발깐티 하원의장이 과도기적이지만 대권을 손에 쥘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전망을 일부 현지 언론들은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한편 정치권의 이와 같은 조기사임 압력에 대해 룰라 대통령은 25일 대통령의 경제, 사회개발자문기구인 노조지도자, 기업인대표, 시민단체대표 등과의 회동에서 "사임을 고려치 않고 있으며 어느 누구도 나를 이 대통령궁에서 밀어내지 못할 것이다. 2개월 동안(하원의 조사결과를) 인내, 또 인내하며 기다리겠다"고 밝히고 "진실은 언젠가는 꼭 밝혀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룰라 대통령은 아직까지도 브라질 최대의 뇌물파동을 정치적인 음모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민심과 정치권으로부터 외면 받고 있는 룰라가 선택할 정치적인 제스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중적인 인기마저 잃어가고 있는 룰라가 과감한 정치 개혁 드라이브를 걸기에는 지지세력이 별로 없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룰라 대통령의 향후 선택이 무엇일지 그것이 현지의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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