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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라 대통령의 외줄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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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라 대통령의 외줄타기

김영길의 '남미 리포트' <76>

브라질 정치권의 비리 스캔들로 인해 위기를 맞고 있는 룰라 대통령이 연일 초강수의 정면돌파 의지를 천명해 뇌물파동 정국이 제2라운드에 접어들고 있는 분위기다.

룰라 대통령은 최근 자신은 어떤 부정의혹에도 개입하지 않았으며 그의 가족들 또한 깨끗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검찰과 경찰, 그리고 정보기관에 자신과 가족들에 대한 합동수사를 지시하고 부정부패 연루공직자 전원을 사법처리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치적인 위기탈출을 위해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그러나 룰라 대통령의 건곤일척의 승부수는 자칫 정치권과 자신의 정치적인 이미지에 치명상을 입히는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브라질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집권당과 행정부의 부정부패 문제가 정치권의 핵으로 떠오르자 룰라 대통령은 "전혀 문제 될 게 없다"며 노동당과 행정부를 감싸고 "정치적인 음모"라고 큰소리 치기도 했다. 그러나 당과 행정부 내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갖가지 부정부패 사례가 드러나기도 해 청렴했던 자신의 이미지만 구긴 결과를 가져 왔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룰라 대통령 가족의 부정부패 연루설도 "룰라만 모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소리가 정치권과 일부 언론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브라질 정치권에 정통한 현지의 한 정치평론가는 "룰라 가족들이 기업들로부터 거금의 생활비를 받아 온 것은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일정한 직업이 없는 그의 아들은 브라질의 한 전화회사로부터 500만 헤알(약 22억 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룰라 대통령이 가족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모르고 있거나 아니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는 말들이 정치권과 언론계에 널리 퍼져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편 브라질의 법조인들은 지난 5일(현지시간) "룰라 대통령이 브라질 사상 최대의 뇌물스캔들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며 하원에 탄핵안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진다.

탄핵안을 접수한 브라질 하원(의장 세베리노 카발카티)은 "아직은 룰라 대통령이 탄핵을 받을 만한 확실한 근거가 미약하다"며 룰라의 탄핵이 정치 쟁점화가 되는 것을 경계했다. 이는 브라질 의회가 뇌물파동이 더 이상 확대되는 것을 꺼리고 있으며 정치인 가운데 일부를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피할 수 없지만 더 이상의 정치적인 파국을 막는 것이 최선책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뇌물파동이 계속 확대되면 정치권 모두가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최근 브라질의 정가 분위기가 룰라 가족들에 대한 뇌물수수 문제로 분위기가 바뀌자 하원은 기존의 입장을 번복해 "시간을 두고 지켜본 후 탄핵소추 위원회 구성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여운을 남겼다.

브라질 하원이 탄핵소추안을 심의하기 위해 위원회를 구성하면 탄핵소추위원회는 청문회 형식을 빌려 대통령을 소환하여 탄핵에 대한 자기변호 진술을 듣게 된다. 그리고 하원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탄핵을 결정하면 이 안은 상원으로 이송되며 룰라 대통령은 자동적으로 대통령으로서의 권리가 정지된다.

역사적으로 브라질에서 탄핵을 받아 자리에서 물러난 대통령은 지난 1992년 페르난두 콜리요르가 유일하다. 콜리요르 대통령은 자금세탁 의혹을 받고 정치권의 외면으로 탄핵을 받아 대통령직을 물러난 최초의 인물로 기록되었다.

만일 룰라 가족들의 뇌물수수가 사실대로 확인되고 룰라 대통령의 탄핵이 하원에 상정될 경우라도 현 의회의 분위기로 보아 대통령의 탄핵이 정국의 관심사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치권이 내년 대선까지 시간 벌기에 나서 서로간의 정치적인 위기를 넘기려고 노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참고로 전 대통령인 페르난두 엔리케 카루두소도 8년의 재임기간 동안 22건에 이르는 탄핵안이 하원에 제출됐으나 모두 기각된 전례를 가지고 있다.

정치권의 이와 같은 뇌물비리 덮기 분위기 속에서도 일부 야당과 언론계는 룰라의 최측근이던 조세 디르세우 전 수석장관이 최근 "룰라 대통령 역시 뇌물비리 스캔들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기며 합동수사본부의 룰라 가족들에 대한 수사결과 발표에 주목하고 있는 형국이다.

따라서 룰라 가족들의 비리설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수세에 몰려 있던 여야를 망라한 전 정치권이 국면전환을 위해 반룰라의 기치를 들고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룰라가 선택한 정면 승부수가 자충수가 될지, 위기를 벗어나 정국주도의 기회가 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현 상황은 룰라가 위기돌파를 위해 외줄타기의 위험한 모험을 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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