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문제로 중국의 고민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북핵 중재자로서 중국의 역할에 대해 미국의 신뢰가 갈수록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화를 통한 북핵문제 해결이 실패로 끝날 경우 미중간의 충돌은 예상보다 훨씬 빨라질 전망이다. 이를 예시하는 워싱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미국은 중국의 중재역할에 대해 여전히 일정하게 인정은 하고 있으나, 더 이상 커다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8일 필자와의 통화에서 밝힌 워싱턴 소재 한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전언이다. 그는 “그동안 중국은 미국의 반테러 전략에 동승해 왔고, 반테러 동맹국으로 인정받아 왔으나, 테러국가인 북한을 보는 시각에선 미국과 확연히 다른 입장”이라며, “주변국들이 북한 핵문제 해결에서 미국을 도와주지 않으면, 미국은 독자적인 방식으로 북핵문제를 해결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네오콘의 중국카드는 '쓰리쿠션 전략'**
그 '독자적인 방식'이란 무엇일까? 미국은 그간 활용해왔던 '중국카드'를 이제는 포기한다는 것일까? 미국의 독자적 행보는 지난달 26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에 “대북 석유공급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던 데서 그 일단이 드러나고 있다. 또한 그 직후 한국을 방문하여 더욱 강경해진 대북입장만을 전하고 떠나버린 그 다음 순간, 곧이어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의 대북성토에 가까운 강경발언이 튀어나온 사실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미국의 '독자적 행보'는 중국카드의 포기가 아니라 중국카드를 보다 '본격적'으로 활용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힐 차관보의 요구에 대해 중국은 “석유공급을 중단할 경우, 중국의 동북지방에 공급되는 송유관이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된다”며 그 요구를 거절했다. 북한의 체제붕괴를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보인 것이었다. 미국은 중국의 이와 같은 반응에 좌절했으며, 외교적 체면 또한 크게 손상되었다. 지난 2003년에도 당시 라이스 안보보좌관이 북한에 대한 식량과 원유공급 중단을 요청했으나 중국정부는 이를 거절했다. 지난 3월에는 북한을 6자회담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중국측에 안보리 회부문제를 언급했으나 이 역시 거절당했다. 지금까지는 중국카드가 제 역할을 못한 것이다. 이에 따라 네오콘들이 구상한 '원래의 중국카드'가 주목받고 있다.
원래 네오콘들의 전략은 일종의 '당구게임 모델'이었다. 그 계산은 이렇다. 북한은 식량의 40%와 에너지의 70%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이 그것을 중단시켜 압박을 가한다면 북한은 핵개발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서 만일 중국이 북한에 압박을 가하는 데 주저한다면, 미국은 중국경제가 미국시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활용하여 중국경제를 압박하면 될 것이다. 결국 미국이 중국에 경제적 압박을 가하면 중국 또한 북한에 경제적 압력을 가할 것이고, 그 결과의 끝은 북한의 핵개발 포기로 이어질 것이란 일종의 '쓰리쿠션 전략'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그동안 중국의 중재 역할과 관련한 부시행정부의 입장은 네오콘들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오히려 미중간의 충돌은 지역적 불안정을 초래해 미국의 국익에 이롭지 못하다"는 키신저나 브레진스키 같은 현실주의자들(realists)의 조언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따라서 중국이 대북 압박에 성의를 보이지 않아도 중국의 팔을 비트는 데 적극적이지 못했던 것이다.
네오콘들은 중국이 자발적으로 대북압력을 행사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고, 그간 중국의 미온적인 태도로 이러한 예측은 입증되었다. 따라서 이제 미국은 중국에게 더 큰 압박을 가하는 정책으로 돌아서면서, 북한에 대한 독자적인 액션플랜을 펼쳐 보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중국에겐 더 큰 압박을, 그리고 북한에겐 더 큰 채찍을 들겠다는 것이다. 이제 미국의 북핵전략은 '당근 없는 대화'에서 '더 큰 채찍을 통한 압박정책'으로 선회하고 있다.
***미국, "중국이여, 북핵 저지 안하면 우리는 일본 핵무장 허용하겠다"**
미국이 현재 북핵문제를 접근해 들어가는 전략은 크게 3가지이다.
첫째, 지금까지 살펴본대로 중국경제에 대한 직접 압박이다.
둘째, '일본카드'이다.
셋째, 김정일 정권의 붕괴이다.
그동안 미국은 의회 차원에서 대중 보복법 관철 문제와 미국 시장으로 들어오는 중국제품에 대한 수입 관세장벽을 높여야 한다는 경제압박 카드를 만지작거리기만 했었다. 그리고 폭정의 전초기지로 명명한 북한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체제종식에 커다란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대신에 지금까진 일본 카드의 활용론에 무게 중심을 두어 왔었다.
최근 미국이 일본의 도발적 행동을 은근히 부추김으로써 중국의 신경을 날카롭게 자극해 온 것도 그 일단이었다. 미국은 일본의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적극 후원하는 반면, 중국과의 영토분쟁에도 눈을 감았다. 일본의 공세적인 대중국 외교도 애써 외면하는 태도를 취했으며, 급기야 '일본의 핵무장론'에 대해서도 별다른 대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왜?
물론 미국은 내심 일본의 핵무장을 바라지 않겠지만, 일본의 핵무장을 적극적으로 저지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중국을 초조하게 만드는 데는 상당히 성공한 듯 보인다.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는 북한핵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핵무장이란 사실을 미국은 일찌감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경제력에서 우위에 있고, 중국에 대한 식민지배 경험까지 갖고 있는 일본이 핵무장까지 하게 된다면,일본은 언제든지 중국을 또 다시 정복할 수 있다는 '일본 위협론'이 현실화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일본이 미국과 함께 대만문제까지 개입할 수 있도록, 일본 역할론에 여지를 남겨두는 것도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인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지난 7일 “북핵문제를 다음달 초에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자는 미국의 전술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한 마치무라 일본 외상의 발언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일본의 핵무장은 북한의 핵개발을 명분으로 한다. 따라서 미국의 방관적 태도는 중국이 북한의 핵개발을 막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미국 역시 일본의 핵무장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수도 있다는 메시지인 것이다. 이는 만일 중국이 북한 핵개발을 포기시키지 못하면, 현재 중국이 누리고 있는 동북아와 국제사회에서의 강대국의 지위는 약화되며, 그 역할이 일본에 의해 대체될 수도 있다는 암시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일본카드'는 중국을 움직이는 가장 효과적인 카드로 미국은 생각해 왔었다.
***중국, "미국이 오는 7월 영변을 공격할 것"**
그러나 이러한 압박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협조가 신통치 않다면, 미국은 중국경제에 대한 미국의 압력을 강화시키면서, 북한에 대한 군사적 공격도 진지하게 고려하겠다는 전략을 중국에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 점은 최근 워싱턴에서 흘러나오는 영변 핵시설에 대한 폭격 발언들이 날이 갈수록 그 강도가 높아지는 데서도 확인되고 있다. 미 NBC방송은 6일 "미국은 북한의 핵 실험장소를 선제공격하는 작전계획을 입안했다"고 보도했다. 라포트 주한미국사령관이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계획이 없다고 발표한지 불과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론이 미 본토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그러나 우리를 더욱 위협적이고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중국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7월 위기설'이다.
최근 필자가 통화한 중국정부 고위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중국 지도층 내부에는 "미국이 오는 7월 영변을 폭격한다"는 침묵 아닌 묵시적 발언들이 순환되고 있고, 이 때문에 중국 핵심지도층에서는 전례 없이 긴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7월 위기설'의 핵심은 단순히 미국이 북한을 공격한다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북한의 영변핵시설에 대한 기습적인 군사공격을 감행하더라도, 중국영토에 미국의 포탄이 떨어지지 않는 이상, 중국은 더 이상 북미간의 군사적 충돌에 직접적으로 개입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물론 아직 그 진위가 확실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지만, 이러한 내용들이 나돌고 있는 것 자체가 변화된 북중관계와 미중관계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알리고 있다.
중국이 대외적으로는 북한을 보호하고 엄호할 것 같은 외교적 제스쳐를 보이면서도, 막상 미국이 영변의 핵시설을 폭파할 경우 내심으로는 이에 간여하지 않는다는 이중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12.12사태때 북한에 원유 공급 차단했던 중국, 이번엔 식량차단 검토**
지난 79년 12.12사태 때 중국은 미국의 긴급요청에 따라, 단동에서 신의주를 연결하고 있는 11개의 원유 파이프 중 7개를 차단한 적이 있다. 북한이 한국의 위기상황을 기회적으로 이용하여 전쟁을 준비하지 못하도록 한 조치였다. 2005년 미국은 중국이 다시 한번 북한의 핵개발을 막기 위해 원유와 식량지원을 중단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중국 관리들은 이에 대해, "대북 압력면에서 원유공급 중단보다는 식량 공급 중단이 가장 크다"면서 대북 수출 품목에 대한 금지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음을 시사했다고 한다.
이제 북핵문제는 북한보다 중국에 더 큰 부담이 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중국이 미국의 압력을 받아 들여 '혈맹'을 버릴 것인지, 아니면 미국의 압력을 거부하여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거센 압박을 받게 될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7월 위기설'의 내용처럼 한발 떨어져서 제3자적 방관자의 입장을 취하게 될 것인지, 중국의 선택이 주목된다. 그리고 북한이 중국의 이런 움직임을 어떻게 읽고 있는지 그것도 무척 궁금하다.
중국발 '7월 위기설'이 왜 나왔으며, 북한과 미국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비상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중차대한 국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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