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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은 작은 약속 하나도 버리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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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은 작은 약속 하나도 버리지 않았습니다"

[전문] '마지막' 준비하는 지율스님이 노대통령에게 보낸 3통의 편지

단식 80일을 넘어선 지율스님이 사실상 '최후'를 준비하고 있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청와대와 정부가 지율스님의 목숨을 건 단식에 화답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급속히 높아지고 있다.

지율스님은 네 번의 단식을 통해 일관되게 "지질, 지하수 문제 등이 포함된 환경영향평가를 충분한 기간을 두고 실시한 후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관통터널 공사 재개 여부를 결정하자"고 주장해왔다. 지율스님은 13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부실하게 이뤄진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실시하자'는 요구가 그렇게 들어주기 힘든 것이냐"며 갑갑함을 토로한 바 있다.

한편 지율스님은 지난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편지 형식을 빌려 노무현 대통령에게 메아리 없는 외침을 계속해왔다. 지율스님은 특히 지난 2002년 8월~9월 45일간 3천배 기도를 하면서 또 2003년 10~11월 두 번째 단식 기간 동안 세 번에 걸쳐 노무현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는 지율스님이 지난해 3월 출간한 <지율, 숲에서 나오다>(숲 펴냄)에 실려 있다.

최근 지율스님을 진단한 의사는 "지율스님의 몸은 이미 죽었다"고 말했다. 청와대나 정부가 강건너 불구경하듯 할 때가 아니다. 노대통령이 직접 문제 해결에 나서기를 기대하며, 그동안 지율스님이 노대통령에게 보냈던 편지 세 통의 전문을 싣는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드리는 편지 1**

시청 앞에서 삼천 배 기도를 시작한 지 삼십여 일이 지났습니다.

오늘은 절을 하다가 시청 앞에 마련된 작은 화단에 날아온 산제비나비 한 마리를 만났습니다. 거리로 나오기 전에 꽃가루를 온몸에 묻히고 제 방 앞 화단을 분주히 날아다니던 그 산제비나비였습니다. 이 나비의 연상으로 가슴속에 뜨거운 눈물이 흘렀습니다.

고향을 떠나 있는 사람은 고향 이야기를 하는 사람만 만나도 반가워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비록 길지 않은 한 달이었지만 이 거리의 기도는 쉽게 끝이 날 것 같지 않고 연일 계속 되는 불볕 더위 속에서 제 의지와 상관없이 제 육체적 한계는 나날이 소진하여 가고 있습니다.

혹자는 제가 하고 있는 일을 폭풍우 치는 바닷가에 있는 작은 판잣집으로 비유합니다. 그 폭풍이란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불신과 부조리의 또다른 이름이며 작은 판잣집이란 생명과 진실의 또다른 이름이라고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 천성산의 가치에 눈을 뜨고 천성산의 보존을 위해 일했던 지난 2년 동안 저는 천성산 문제를 통해서 도덕적으로 병들어 가는 사회의 모습을 보았으며 이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구조적인 모순이 어떤 것인지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 천성산 문제는 전문가들에 의해 고속철도가 활성화 단층인 양산단층과 법기단층, 10여 개의 노년기 단층대를 통과하는 데 따른 대형 산사태와 터널 붕괴 위험으로부터 문제가 제기되었고 정부는 아직 과학적으로 검증된 자료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며 이에 대한 대답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또한 11개의 법적 보존지역으로 지정된 생태계의 보고 천성산을 관통하는 것이 습지 보존지역인 18개의 늪과 영남의 소금강이라는 6개의 계곡 생태계를 파괴한다거나 부산과 양산, 울산의 가장 중요한 식수원인 39개의 저수지에 끼치는 직․간접적인 영향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사실을 근거로 한 조사와 경제성 분석의 결과가 없습니다.

천성산 문제는 대통령과 경남 도지사와 부산 시장이 공약했고 건교부 장관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약속했던 일이며, 지난 겨울 민정수석이 목숨을 걸고 거리에 섰던 한 수행자의 손을 붙잡고 대통령의 뜻을 믿어 달라고 했던 일이었습니다.

분노하지 못하는 힘없는 시민들은 오히려 저를 측은히 여깁니다. 옛사람들이 나라를 다스리고 통치하는 데는 미물에까지 그 은덕이 미치도록 하였고 작은 약속 하나도 함부로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이는 근본을 중히 여기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근본을 바로 세우지 못한다면 관료들은 원칙과 명분이 없이 흔들리고 부정과 비리를 일삼을 것입니다.

저는 희망을 이야기하기 위해 거리에서 기도를 시작했으며 국내 최대의 보존지역인 천성산이 희망의 다른 이름으로 불리어지리라 믿고 있습니다.

주인집 문전에서 얼어 죽은 개는 한 나라의 멸망을 예고한다고 하였습니다. 아픈 국토에 대한 사랑과 생명에 대한 서원으로 시작된 이 기도의 응답을 훗날 우리 후손들은 역사라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바라옵나니 만물은 서로 상생하며 국운은 날로 성하여지이다.

지율 합장.

***기다림은 우리 몫이지만-노무현 대통령에게 드리는 편지 2**

한 걸음 한 걸음 40여 일의 긴 계단을 올라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글을 쓸 용기를 냅니다.

아득하게 멀기만 해서 다시는 우리 곁에 서 줄 것 같지 않은 당신이지만 이미 강을 건너 버린 당신이지만 기다림은 우리 몫이기에. 기다림은 우리 몫이지만, 기다림을 놓고 간 당신은 "나는 부산 사람으로 부산의 정기를 끊는 일은 할 수 없다. 조상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고향에 돌아오지 못할 사람이 되지는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기다림은 우리 몫이지만, 기다림을 잊고 있는 당신은 부처님 앞에 발원하며 "자연 환경 수호를 위해 금정산, 천성산 고속철도 관통 노선을 전면 백지화하고 대안 노선을 검토하며 불교계의 자율성과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겠다" 공약하셨습니다.

기다림은 우리 몫이지만, 기다림의 기억을 지워 버린 당신은 지난 겨울 한 비구니의 단식 현장에 찾아온 민정수석을 통해 "대통형의 뜻을 믿어 달라. 백지화 상태에서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기다림이 우리 몫이기에 마른 창자가 항거하는 사십여 일간의 긴 굶주림을 견디며 세 번의 만남 속에 깃든 진실한 힘을 믿으며 사람들에게 이것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기다림은 우리 몫이지만.

***기다림을 버리며-대통령에게 드리는 편지 3**

당신은 우리가 떠나보낸 희망의 배 가득히 살상의 무기를 싣고 돌아왔습니다. 아, 그러나 그것만은 마셔요. 이 땅에 뿌려지는 전쟁과 살상의 무기를 거두어 주세요.

기다림은 우리 몫이었지만 님이 조금만 주의하고 자신의 발밑을 내려다본다면 님이 밟고 서 있는 곳은 바로 피투성이가 된 희망과 생명의 다른 이름입니다.

기다림은 우리 몫이었지만 조금만 귀 기울여 듣는다면 지금 님 주위에 들리는 밤 피리 소리는 많은 생명이 빛 그늘 속으로 사라지며 울고 있는 애절한 절규입니다. 그들은 피로 물들어 갔지만 "나는 보지 못했다" 하고 그들은 영혼으로 울었지만 "나는 듣지 못했다" 합니다. 우리가 당신의 빛이 되고 소리가 되었던 어두운 밤의 기억을 당신은 정녕 잊고 있는 것입니까.

당신 스스로 이야기했듯이 이 땅의 정기를 끊고 다시는 고향에 돌아오지 못할 사람이 되지는 마셔요. 우리를 향해 총칼을 들지 마셔요. 불전에서 했던 언약을 지켜 주세요. 원칙과 약속을 지키겠다고, 믿어 달라고 했던 그 때의 마음을 보여 주세요.

실리보다는 명분을 중요시한다던 패기가 위선이 아니었음을 실천해 주세요. 당신이 부두에서 이방인처럼 떠들며 당신이 타고 있는 배가 폭풍 속에 가라앉는 것을 지켜보는 슬픔이 더 이상 번져 가지 않도록.

기다림은 우리 몫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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