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 모두가 한 해를 정리할 시점에 지율스님은 '시대의 아픔'과 공명하면서 29일로 64일째 단식을 힘겹게 이어가고 있다.
지율스님은 정부가 "환경단체와 공동으로 천성산 관통터널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겠다"는 약속을 거부하자 지난 10월27일부터 단식에 들어갔다. 천성산 관통터널 반대 운동을 시작한 이후 네 번째 단식이었다. 하지만 이번 단식은 과거와 달리 세간의 주목을 크게 받지 못하고 있다.
재판 과정에서 환경단체 편처럼 보이던 법원도 결국 11월29일 정부와 한국철도시설공단의 손을 들어주었다. 천성산 관통터널 공사도 즉각 재개됐다. 대법원에 재항고를 하고, 재판 과정의 속기록 공개를 요청한 상태지만 결과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렇게 앞뒤가 꽉 막힌 상황에서 단식을 계속 진행하고 있는 지율스님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프레시안>은 28일 청와대 앞 모처에서 지율스님을 만났다. 수척해진 모습에 한눈에도 건강이 좋지 않아 보인 지율스님은 모종의 '결단'을 준비하는 모습이었다. 지율스님이 지혜로운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시민들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때다.
다음은 지율스님과의 인터뷰 전문.
***"'시대의 무게'를 감당하는 게 내 몫"**
프레시안 : 얼굴이 수척해졌다. 건강 상태는 어떤가?
지율스님 : 개인적으로 아주 힘들다. 몸이 힘들기보다는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많다. 뭔가 정리를 해야 할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프레시안 : 많은 관심을 끌었던 지난 세 번째 단식보다 1주일을 더 버텼다. 지율스님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율스님 : 이미 '내가 중단한다'고 중단할 수 있는 단식이 아니다. 천성산 문제는 환경을 경시하는 이 '시대의 무게'이다. 4년 가까이 반대 운동을 하면서 이 무게를 감당하는 것이 내 몫이 됐다.
프레시안 : 지율스님이 단식을 중단한 뒤에도 여러 가지 일들을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스님은 천성산과 우리 시대의 생명 의식을 상징하는 분이다.
지율스님 : 3년 10개월 동안 산에서, 거리에서 활동을 하면서 나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지금도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 단식을 풀 것인가, 이 문제도 가장 좋은 방향으로 해결이 될 것이다. 너무 걱정 안 해도 된다.
***"지금은 4년간의 활동 정리할 때"**
프레시안 : 아까 정리를 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씀을 하셨다.
지율스님 : 이번에 <초록의 공명>이라는 CD를 만들었다. 나한테는 각별한 의미가 있는 CD다. 지난 4년간의 활동을 일단락 짓는 것이니까. 하루에 15시간씩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었다. 물론 전문가가 하면 2~3시간이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프레시안 : 어떤 내용이 담겨 있나.
지율스님 : 그 동안 천성산에 관해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자료를 모으고, 이번 운동이 갖는 의미를 '생태적 감수성'의 관점에서 접근했다. 사실 천성산 문제가 이렇게 해결이 안 되는 것도 결국 생태적 감수성이 결여된 탓 아닌가?
프레시안 : 전교조에서 이 CD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지율스님과 함께 하기로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율스님 : 애초에 선생님과 아이들이 이 CD를 잘 활용했으면 좋겠다, 이런 것을 염두에 두고 CD를 만들었다. 그런데 마침 전교조 선생님들이 큰 관심을 보여서 다행이다.
프레시안 : 청와대나 정부에서도 CD에 담긴 내용이 많이 궁금했을 것 같다.
지율스님 : (웃음) 그렇다. 그 분들한테도 CD를 드렸으니, 아마 봤을 것이다. 내용을 보면서 생태적 감수성을 일깨우면 좋은 일이고.
***"나는 답이 1백개는 보이는데, 청와대나 정부는 '선물이 없다' 타령만..."**
프레시안 : 청와대나 정부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나?
지율스님 : 아무래도 무관심하지는 못할 것이다. 특히 이 문제를 처음부터 계속 담당해온 청와대 문재인 시민사회수석같은 경우는 조바심도 날 것이다. 사실 내가 단식을 하는 게 청와대나 정부에 칼을 겨누고 있는 것 아닌가?
프레시안 : 청와대나 정부도 뾰족한 수가 없으니, 당혹스러울 것 같다.
지율스님 : 그렇다. 그러니 한심한 거지. 나는 답이 1백개는 보이는데. 문재인 수석이나 곽결호 환경부 장관 같은 경우는 '선물이 없다', 이런 얘기만 하고 있으니. 결국 문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내가 돼 버렸다. (웃음)
***"주위의 좋은 사람들이 큰 힘이 된다"**
프레시안 : 주변에 사람들은 좀 있나?
지율스님 : 주위에 사람들은 항상 많다. 형사들도 있고, 철도시설공단에서 보낸 사람들도 있고. (웃음) 형사들이 나한테 그런다. 스님 옆에는 참 좋은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서 부럽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자기 일처럼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다. 그 분들이랑 여러 가지 얘기를 하면서 지혜를 얻고, 나를 반성해보게 되고.
프레시안 : 그 분들도 지율스님께 여러 가지 것들을 배울 것 같다.
지율스님 : 변호사님이 나한테 그런다. 두 가지가 고맙다고. 하나는 괜히 정치 쪽으로 눈 안 돌리게 해 준 것이 고맙고, 다른 하나는 계속 공부할 수 있게 해준 것이 고맙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환경법의 실상도 이번 소송을 통해 알게 됐고, '도롱뇽 소송'을 통해 '자연의 권리'를 새삼 인식하게 된 것도 소중한 경험이라고 그러시더라. 최근에는 판사들에게 '자원의 권리'에 대한 강의도 하셨다고 들었다.
프레시안 : 건강이 안 좋으니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분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지율스님 : 동생이 가끔 돌보러 온다. 그런데 가까운 사람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동생이 보면서 힘들어 하니. 그렇게 동생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내 마음이 아프고. 그래서 오지 말라고 했다.
***"환경단체, 패배주의에 젖어 있어"**
프레시안 : 최근에 환경단체와 교류는 좀 있나?
지율스님 : 이번 단식 시작한 뒤로 환경단체와는 교류가 거의 없다. 환경단체 사람들 보면 참 답답하다.
프레시안 : 요즘 환경단체도 경황이 없다. 어떤 모습이 답답하나?
지율스님 : 여기 컵에 물이 있다. 그럼 물이 쏟아질 상황에 처하면 물이 쏟아지지 않게끔 일을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런데 환경단체 사람들은 물이 쏟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접근을 한다. 그러니 일이 될 리가 있나. 그리론 나보고 독선적이라고 하고, 현실 감각이 없다고 하고.
프레시안 : 최근에 구체적으로 갈등이 있었나.
지율스님 : 갈등까지는 아니고. 천성산의 경우도 환경단체에서는 '사후 모니터링'을 하자고 얘기를 한다. 사실 이게 법원의 중재안이고, 정부에서도 나한테 권하는 게 이런 거다. 기왕에 터널을 뚫고 있으니, 사후에 문제가 없는지 보면 되는 것 아니냐고. 이런 얘기를 환경단체 하고 있으니 갑갑하다는 거다.
***"문재인 수석, 곽결호 장관에게 연민 느껴"**
프레시안 : 뭔가 '결단'을 준비하고 있는 듯하다.
지율스님 : 그렇다. 사실 4년간 활동을 하면서 수행자와 운동가, 두 모습 중 한쪽에 치우친 면이 없지 않았다. 이제 수행자로서 스스로를 추슬러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하면 가장 수행자처럼 지혜와 평안 속에서 이 일을 마무리 할 수 있을지를 요즘 고민하고 있다.
프레시안 : 계속 스님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청와대나 정부가 야속할 것도 같다.
지율스님 : 이젠 연민을 느낀다. 사실 나와 마찬가지로 문재인 수석이나 곽결호 장관도 그들 나름의 '시대의 무게'를 짊어지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저렇게 허둥대고 있는 게 뻔히 보이니까. 더구나 아까도 언급했지만 내가 칼까지 들이대고 있지 않나. 이 시대의 아픔이라는 생각도 들고.
프레시안 : 스님의 그런 마음을 문재인 수석이나 곽결호 장관도 알지 모르겠다.
지율스님 : 아마 알 것이다. 모른다면 우리들이 참 불쌍한 거지. 그런 사람들을 그렇게 책임 있는 위치에 서도록 한 게 바로 우리니까.
***"나를 지켜보는 눈들 때문에 4년간 버텨왔다"**
프레시안 : 이제 '결단'의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것 같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시겠지만 지혜로운 '결단'이 됐으면 좋겠다.
지율스님 : 그렇다. 이 운동의 결과에 대해서는 한 번도 비관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 낙관적인 전망 속에서 '결단'을 내릴 것이다.
프레시안 : 스님을 걱정하는 이들에게 전할 말씀은 없나?
지율스님 : 항상 감사하다. 그렇게 지켜보는 눈들이 지난 4년간 나를 지켜줬다. 이 운동을 하면서 난 세상의 온갖 사랑의 감정에 민감하게 됐는데. 바로 이 분들 때문이다.
프레시안 : 아마 이 분들이 스님의 지혜로운 결단을 위해 도움을 줄 것이다. 세밑에 좋은 말씀 감사하다.
지율스님 : 나도 시민들이 큰 지혜를 줄 것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찾아와 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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