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표현을 규제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말씀하시는 게 '표현의 자유'에요. '어떤 표현이든지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경쟁하게 하면 좋은 표현이 살아남을 것이다' 이런 뜻인 것 같은데요. 그냥 '혐오표현을 계속 하겠다'라는 뜻이죠. 혐오표현과 관련해서 사상의 자유시장이 작동하려면 그것을 할 자유보다 '그건 아니야'라고 말할 자유, 즉 '혐오표현을 거절할 자유'가 좀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혐오표현을 거절할 자유>(들녘 펴냄)의 저자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는 책의 제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현재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 전 대표는 정치계에 몸담은 내내 '종북', '빨갱이' 등의 혐오표현으로 불렸다.
혐오표현의 당사자가 말하는 혐오표현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베짱이홀에서 <혐오표현을 거절할 자유> 북토크가 열렸다. 저자인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가 패널로 참여하고 손솔 민중당 인권위원장이 사회를 맡았다. 북토크는 사전 질문을 모아 저자인 이 전 대표가 답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이번 행사는 민중당 인권위원회가 주최했다.
이 전 대표는 책을 "대법원에 내려고 쓰기 시작한 글"이라며 "법률적인 용어가 많아서 읽기 좀 어려우실 수 있다"며 멋쩍게 웃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대법원은 과거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한 '종북'이라는 표현에 대해 명예훼손이라는 입장을 판단을 유지했다. 그러나 그것이 뒤집힌 것이 2018년 10월경, 바로 이 전 대표의 사건이었다.
보수논객 변희재 씨가 이 전 대표와 남편 심재환 변호사 부부에 대해 '종북 주사파', '종북파의 성골쯤 되는 인물', '경기동부연합의 브레인이자 이데올로그' 등이라고 표현한 사건이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런 표현이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이를 명예훼손을 이유로 과도한 책임을 묻는 것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이 전 대표는 "혐오표현은 다른 사람을 적대시하고 배제하는 말"이라며 "그 대상이 되는 사람의 사람의 사회적 삶은 물론 신체적 위험, 생명까지 위험하게 만드는 공격"이라며 대법원의 판단을 비판했다. 그는 "혐오표현을 지적하기만 해도 '너 왜 그렇게 예민해? 너도 뭐뭐야?'라는 식의 공격이 들어온다"며 "브레이크를 거는 것만으로도 혐오표현의 대상으로 공격받는 걸 감수해야 하는게 현재 혐오표현을 둘러싼 한국사회"라고 꼬집었다.
예멘난민수용반대부터 중국인입국금지 청원까지, 한국사회 '혐오'에 대하여
<혐오표현을 거절할 자유>에는 우리사회의 광범위한 혐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지난해 있었던 예멘난민수용반대 청원도 혐오의 하나. 더욱이 '종북' 공격은 인권단체나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에서조차 배제된 것이 현실이다.
최근 신종코로나바이러스 확진 환자가 늘어나면서 북토크 당일 기준 중국인입국금지청원이 52만 명 돌파하기도 했다. 혐오에 기반해 정치권이 신종코로나 관련한 공포감을 정쟁거리로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이어졌다. 이 전 대표는 이를 두고 "시민으로서 공존의 책임과 관련된 문제"라고 단언했다.
"이런 상황을 보면, 혐오는 늘 잠재돼 있다가 어떤 계기만 생기면 즉시 올라오는 것 같아요. 외국인을 예로 들면,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우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나 이주민들에 대해서 그렇죠. 잠재돼 있다가 범죄라든가, 이번처럼 전염성 질환이 계기가 돼서 떠오르는 거에요. 이럴 때 가장 중요한 건 '이건 혐오표현이야, 하면 안 돼'라고 정확하게 이야기해주는 목소리에요"
그는 그러면서 "혐오표현이 혐오표현이라고 제때 이야기 해주는 정치, 혐오표현이니까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정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나의 말을 이야기하는 정치가 가장 중요하다"며 "진보정치가 그 몫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정치인의 혐오표현에는 '법적 책임'까지 뒤따라야
정치가이기도 했지만 법률전문가이기도 한 그는 정치권에서 무분별하게 쓰이는 혐오표현에 경계해야한다고 당부했다. "최근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선천적 장애인은 의지가 없다'는 식으로 발언을 했다. 그리고 한국당에서 '당신 같은 사람이 장애인'이라고 하면서 여야당이 장애인 혐오발언을 주고받았다"며 "정치인들의 이런 표현은 혐오표현에 무감각해지게 만든다"고 경계했다.
그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 사태와 관련해 '중국인들 입국 금지시켜라, 다 나가라'는 식의 정치권 일각의 목소리에도 비판적이었다. "'중국을 경유한 외국인의 입국 제한'과 '중국인 입국금지'는 다르다"며 "국회의원의 말 하나에 그 사람들은 심각한 사회적 배제에 시달리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종차별 철폐협약에서 형사처벌대상으로 정하고 있는 민족적·인종적 차별"이라고 설명했다.
"일종차별철폐협약은 일반인의 혐오발언보다 정치인·공무원의 혐오발언에 대해 더욱 중요한 위법사항으로 보고 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이 조항 덕에 일본에서 혐한 피해를 보던 재일동포들이 권리를 구제받을 가능성을 찾고 있는데 그런 동포를 가진 우리가 다른 한편으로 다른 나라를 대상으로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에요. 시민들의 힘으로 그런 정치를 멈춰 세워야 합니다"
차별금지법, '공존의 책임'을 공식화 하는 것
"차별금지법 제정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차별금지법은 그 자체로 처벌하는 법은 아닙니다. 그러나 많은 시민들에게 '이건 안돼요, 공존의 권리를 침해하는 거에요'라고 공식적으로 제재할 수 있어요. 무엇보다 우리는 완전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늘 실수합니다. 내제된 혐오가 튀어나올 수 있어요. 그럴 때마다 비난하기보다는 스스로 반성하고 그러지 않도록 노력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전 대표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일부 극우 기독교 세력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그들의 주요 근거가 '미국은 동성애 반대 집회도 표현의 자유로 인정하고 있다'라는 것을 두고 "미국과 우리나라는 상황이 다르다"며 선을 그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은 표현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는 수정헌법 제1조에 따라 인종차별철폐협약이나 시민적및정치적권리에관한국제협약 모두 유보했다. 이에 따라 혐오표현에 금지하는 법은 두고 있지 않다. 그러나 차별행위에 대해서는 개별적인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혐오세력'은 모두 연결...소수자들의 연대 필요
"일부 극우 기독교 세력의 혐오표현은 극우 정치세력과 연결돼 있어요. 그 뿌리는 결국 한국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분단 과정에 있었던 심각한 대립이 이어져 온 거에요. 정치세력은 ‘종북’을, 기독교세력은 성소수자 혐오를 하고 일베는 페미니즘 혐오, 재벌 대기업은 노조 혐오를 퍼뜨리는 거죠.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는 세월호 가족들이 그 대상이 됐고요. 지난 보수정권은 혐오를 증폭시키고 이 사회를 채워왔습니다"
그는 "결국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혐오의 대상이 된다"며 "그렇기 때문에 모든 혐오표현에 멈추라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종북 혐오의 피해를 입은 사람이 성소수자 혐오에 동조할 때, 가슴이 아프다"며 "피해자가 함께 뭉쳐야 극우 정치세력, 종교세력, 재벌대기업의 집합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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