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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체류 외국인=범죄자'라는 인종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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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체류 외국인=범죄자'라는 인종혐오

[인권으로 읽는 세상] 10월 20일 전국이주노동자대회에 함께 하자

우연이었을 게다. 9월 24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불법 체류 외국인 수를 감축할 수 있는 근본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지시했고, 김해의 이주노동자 아누락 씨는 법무부의 단속을 피해 달아나다가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정말 우연이기만 했을까. 법무부 장관의 지시는 그 며칠 전 발생한 뺑소니 사고에 대한 응답이었다. 운전자가 '불법 체류 외국인'이었고 이미 국외로 출국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나온 대책이다. 뺑소니 사고는 교통안전의 문제에서 출입국관리의 문제로 둔갑해버렸다. '불법 체류'에 드리운 누명이다.

'불법 체류'라는 이름

사람들은 '불법 체류'라는 말에서 범죄의 냄새를 맡는다. 적법한 체류 자격을 허가받지 못한 상태를 이르는 말이지만 이미 범죄를 저질렀거나 저지르기 위해 숨어지내는 얼굴 없는 사람을 떠올린다. 외국인 범죄율이 내국인 범죄율보다 상당히 낮다는 점, 그중에서도 '불법 체류' 상태의 외국인은 '합법 체류' 상태의 외국인보다 범죄율이 더 낮다는 점을 통계가 아무리 증명해도 사람들의 편견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주민과 범죄를 연관시키는 용어나 보도는 인종혐오를 부추긴다. 사람들은 실제 벌어지는 일과 무관하게 외국인에 의한 범죄 피해가 크다고 인식하고 자신도 범죄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낀다.

2017년 이주민 환대지수가 OECD 23개 회원국 가운데 21위를 기록한 배경에는 이런 현실이 있다. '불법 체류'라는 이름은 '내국인의 권리를 위협하는 외국인'이라는 구도를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그래서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나 국가인권위원회 모두 용어를 '미등록 체류'로 바꾸도록 권고한다. 법무부 역시 영어로는 'undocumented(미등록)'이라고 표기한다. 하지만 한글로는 존재 자체가 불법인 것처럼 들리는 '불법 체류'라는 이름을 고수하고 있다. 이것은 이름에 그치지 않는다.

사회재난이 발생하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현장에서 구호 물품을 지급한다. 미등록 체류 이주민이라고 구호 물품이 필요 없을 리가 없다. 그러나 '사회재난 구호 및 복구 업무 편람'은 "불법 체류자 제외"를 명시한다. '재한외국인 처우 기본법'은 "대한민국 국민과 재한외국인이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사회 환경"을 만들겠다면서 "재한외국인"을 "합법적으로 체류하고 있는 자"로 한정한다.

재난 현장에서도 버림받는 미등록 체류 이주민이 자신이 겪는 괴롭힘이나 학대, 노동 착취, 인권 침해를 호소할 수 있을까? 이들은 범죄피해를 입었을 때에도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다. '불법 체류'는 내국인을 위협하는 잠재적 범죄가 아니다. 스스로 보호할 아무런 장치 없이 내던져진 사람들의 이름이다.

'불법 체류' 양산하는 고용허가제

외국의 미등록 체류 현황과 달리 대부분 합법적으로 입국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왜 미등록 체류 상태에 놓이게 될까? 돈을 벌기 위해 '불법 체류'를 할 작정으로 오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2018년 말 한국에 거주하는 '불법 체류' 이주민은 355,126명. 이 중 가장 많은 수가 고용허가제(E-9, 비전문취업)로 입국한 노동자들이다.

한국에서 기업들이 '노동력 수입'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후반부터다. 임금 인상 압력을 회피하기 위해 중소제조업 및 건설업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커졌다. 정부는 차츰 이들의 요구를 수용하여 산업연수생제도를 도입했고, 수많은 인권침해 논란 끝에 2004년 고용허가제가 시행된다. 내국인을 고용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구하지 못했음을 증명한 사용자에게 외국인을 고용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것이다.

허가받은 사용자와 근로계약을 맺는 것이 제도의 골격이므로 이렇게 입국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사업장 이동이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사용자는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으나 노동자는 그럴 수 없다. 체류자격이 위협받기 때문이다. 임금체불, 상습적 폭언, 폭행, 성폭력 등을 당해도 사업장 변경이 쉽지 않고, 법정 사유에 한해 3회까지 허용된 사업장 변경 신청 역시 기간의 제한으로 체류 자격 유지가 위태롭다. 사용자를 위해 설계된 제도가 '불법 체류'를 양산하고 있다.

일할 사람이 필요해 불러들이지만 이주노동자의 정주를 방지하는 것 또한 국가의 목표다. 2012년 성실근로자 재입국 취업제도가 도입되었지만 사용자의 명령과 요구에 순응할 때에만 체류자격이 유지된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체류자격을 상실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단속과 강제추방은 국가가 사용자의 의도를 실현시켜주는 방편이 되고 있다.

내보내야 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생명마저도 내버려 진다. 올해 9월의 아누락, 작년 8월의 탄저떼이처럼 단속 과정에서의 죽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불법 체류'는 또 다른 죽음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2007년 여수 출입국관리사무소 화재 사건은 이주노동자들의 도주를 우려해 이중 잠금장치를 바로 열지 않은 탓에 희생자가 늘어났고, 2017년에는 한국인 남성이 "단속을 피해 안전한 곳에 데려다주겠다"며 여성 이주노동자를 성폭행 시도하고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국가는 제도를 통해 '불법 체류'를 만들어내고 이주노동자들은 '불법'이라는 이름으로 무권리 상태에 갇혀버린다. 일하다가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 비율이 한국 국적의 노동자보다 높은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무권리 상태'에 갇힌 이주노동자

작년 7월 한 청년이 건설 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단속반원에게 집단폭행을 당했다. 그는 대학원 유학생이었으나 법무부에는 잠재적 '불법 체류자'였을 뿐이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의 '생산인구 감소'를 걱정하는 국가는 '우수 외국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 중이다. 그런데 유학생 유치를 확대하기 위한 대학 인증제에서도 '불법 체류율 1% 미만'을 필수지표로 내걸고 있다. 이주정책 개방을 꾀하면서도 권리를 가두려는 의지는 굳건하다.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이유로 다양한 사람들이 한국에 오지만 '재한외국인 처우 기본법'은 체류자격으로 '유학, 연수, 투자, 주재, 결혼'만을 명기한다. '내국인 일자리 보호'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것일까. 국가는 저임금 일자리를 메꾸려고 이주민들을 불러들이면서도 취업이나 노동은 체류의 이유가 아닌 듯 비가시화한다. '이주노동자'는 아직 한국 사회에 온전히 등장하지도 못한 셈이다. '이주노동자의 권리'가 먼 얘기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흔히 이주노동자로 떠올리는 얼굴은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온 피부색 짙은 남성이다. 그러나 이주노동자의 얼굴은 훨씬 다양하다. 음식점에서 서빙 받을 때, 가사도우미나 간병인을 구할 때, 한국 국적이 아닌 사람들을 떠올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조선족'과 '고려인' 등 재외동포(F-4)는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며 방문취업(H-2)은 고용허가제 다음으로 많다. 이주와 여성을 연결시킬 때 흔히 떠올리는 결혼이민(F-6) 역시 일의 세계와 무관하지 않다. 재외동포나 결혼이민은 취업과 결부된 체류자격이 아니라서 직업 선택이나 사업장 이동에 제한이 없다. 하지만 이주민에 대한 편견과 혐오는 일터에서 괴롭힘이나 차별로 이어지고 이들이 노동자로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는 쉽지 않다.

지구상 어느 나라에서나 이주민은 '내국인 일자리 빼앗는' 존재로 취급된다. '돈 벌러 와서' 고생한다는 동정도 한시적이다. 이주민이 벌어가는 만큼 내가 못 번다고 믿게 될 때, 적게 받고도 시키는 대로 일해서 일자리의 질을 떨어뜨린다고 여기게 될 때, 동정은 적대로 순식간에 바뀐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다.

저임금 일자리는 이주노동자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요구일 뿐이다. 기업은 무권리 노동자를 원한다. 기업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국가는 체류자격을 촘촘히 구분하고 취업을 제한하며 권리의 박탈을 정당화한다. 일자리에 대한 기대가 '일할만한 자리'에 대한 기대이기도 하다면, '내국인 일자리 빼앗는' 것은 이주노동자가 아니다. '내국인 일자리 보호'를 내세우며 권리를 제한할 명분을 만들어주는 국가가 일할만한 자리를 없애고 있다. '불법 체류'는 이주노동자의 권리만 가두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권리 자체를 가두고 있다.

'무권리 상태'를 함께 걷어내야

국민국가체제에서 영주권이나 체류자격 등에 기준을 정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래서 이주노동자의 인권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도 복잡한 체류자격 제도 앞에서 어디까지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지 막막해한다. 이주민에 대한 혐오나 차별은 개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관념이 아니므로, '나와 다른', '권리 제한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처럼 여겨지는 순간도 찾아온다. 내국인 노동자'만큼' 이주노동자'도' 권리를 보장하자는 접근은 무력해지기 쉽다.

이주노동을 대하는 태도는 ‘이주'에 앞서 노동을 대하는 태도의 판본 중 하나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이주노동자 최저임금 차등 지급 발언이 문제가 되자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 부작용'을 바로잡자는 취지였다고 변명했다. 근로기준법과 국제인권협약을 명백하게 거스르는 차별 주장의 이면에는 최저임금에 대한 노동자의 권리 자체를 제한하고 싶은 동기가 있었던 것이다.

체류자격으로 인간의 자격을 가르는 현행 제도는 개선되어야 한다. 그러나 열악한 노동조건을 정당화하기 위해 체류자격을 만들어내는 체제에 맞서려면 투쟁 또한 구분을 너머서야 한다. 노동자의 권리 자체를 위해 싸워야 이주노동자의 권리도 실현될 수 있다. 동시에 이주노동자의 권리가 제한되거나 무너지는 것에 함께 맞서야 노동자의 권리를 지킬 수 있다.

일의 세계에서 우리의 권리를 세우려면 새로운 권리체계를 만들기 위한 도전에 나서야 한다. 10월 20일 전국 이주노동자대회의 요구를 귀 기울여 들을 일이다.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으로 읽는 세상'은 <프레시안>과 <비마이너>에 공동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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