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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혐오와 북한 혐오가 만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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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혐오와 북한 혐오가 만나면?

[기고] 젠더 의식의 결여가 가져 온 최악의 비유

국회의원, 교수, 기자 등 북한과 통일에 대한 담론과 생각을 이끌어 나가는 사람들은 종종 남북관계를 부부관계 혹은 연인관계에 비유한다. 남북관계는 갈등이 치닫는 연인이면서, 신혼의 단 꿈에 젖은 신혼부부이기도 하고, 파경 위기에 닥친 중년부부이기도 하다. 혹은 70년 전에는 부부였는데 현재는 별거 상태에 있는 것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비유에서는 항상 남한은 남자 북한은 여자로 표현된다. 어떤 글에서도 남한을 여자로 북한을 남자로 비유하지 않는다.


북한과 아내의 공통점?

통일교육원에서 발간한 <주제가 있는 통일강좌 27: 통일비용보다 더 큰 통일편익>에서는 통일편익을 설명하기 위해 생명이 위급한 아내에게 드는 수술비용을 통일비용에 빗대어 설명한다. 아무리 수술비용이 많이 들어도 아내를 살렸을 때 얻게 되는 편익이 크기 때문에 수술비용을 마땅히 지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통일에는 비용이 수반되나 통일로 인해 발생하는 편익도 상당하다. 예컨대 당장은 아내의 수술비용이 들지만 아내를 살림으로써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가. 우선 아내가 없으면 음식 준비, 빨래, 청소 등을 위하여 파출부를 써야 할 것이다. 집으로 손님을 식사 초대할 일이 있어도 하지 못하고 훨씬 더 비용이 많이 드는 외식으로 해야 할 것이다. 물론 남편이 살림을 맡아서 할 수도 있겠지만, 직장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쉽지 않은 일일뿐더러, 설령 남편이 다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소요되는 시간의 기회비용도 무시하지 못한다. 아내 없이 혼자서 아이들의 학업이나 진학 문제 등을 도와주고 신경 쓰는 데에서 오는 시간과 노력 비용도 클 것이다. 더욱이 아내가 직장을 가지고 있었던 경우라면 소득의 상실도 매우 클 것이다." - 조동호, <주제가 있는 통일강좌 27: 통일비용보다 더 큰 통일편익>中

ⓒ통일교육원

아내를 살려야 하는 이유가 가사노동에 드는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서라고? 혹은 아내가 벌어들이는 소득이 상실되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그런 아내를 살릴 수 있는 힘과 능력은 남편에게만 있다고? 이후 이어지는 문단은 더 가관이다.

"따라서 통일에 대비하는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정책은 바로 우리의 경제를 튼튼하게 키워 나가는 것이다. 다시 예로써 이야기하면, 아내가 언제 아프더라도 수용비용을 감당할 수 있도록 내 능력을 키워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열심히 일하고 자기 계발도 꾸준히 함으로써 명예퇴직 안 당하고 승진도 순탄하게 해 나감으로써 월급을 많이 받게 되면 수술비용 정도는 무리 없이 마련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들 공부를 잘 시켜서 좋은 직장을 가지게 도와주면 아이들도 엄마의 수술비용 일부를 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 앞의 글

아내는 평생 집안일을 하면서 자신의 수술비용을 대줄 능력이 있는 남편과 자식들 뒷바라지를 해서 자신이 걸릴지도 모르는 병을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절대 중병에 걸릴 가능성이 없는 남편과 자식들은 그 뒷바라지를 받으며 사회에서 자신의 능력을 꾸준히 키워나가면 된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물론 글의 후반부에서는 아내를 살려야 하는 이유로 '가족 간의 사랑‘도 언급하지만, 전체 글을 읽고 난 후에는 남편이 아내를 바라보는 이해 못할 시각만 기억에 남는다.

아래 글은 남북관계가 신혼과 파경 위기를 모두 거쳤으니 이제는 중년부부 관계를 잘 유지해야 한다는 논지를 담고 있다. 여기서 중년부부란 감정에 동요되지 않고 가정 내에서 각자의 역할을 해내면서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가정을 지키는 성숙한 부부를 말한다. 모든 중년부부가 그래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에도 문제적 문단이 등장한다.

“우선 북한은 경제사정이 좋아졌다. 예전 어렵게 살던 시기에 남쪽에게 경제적 지원과 협력을 은근히 기대했던 것과는 사정이 달라졌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의 북한은 정말 어렵고 힘든 시기였다. 남북관계가 그나마 좋았던 연유이기도 했다. 살림하기 위해 남편에게 돈을 타서 써야 하는 아내의 처지는 무작정 남편에게 대 들고 싸울 수 없다. (중략) 북중 교역의 지속 증가는 북한 경제에 상품 유통과 시장 확산을 촉진하고 있다. 경제가 조금씩 회복되면서 북한은 남쪽에 의존할 필요가 줄어들었다. 신혼 초기에 남편에게 꼬박꼬박 월급을 받아 써야 했던 아내가 이제 딴 주머니를 차고 경제적으로 자립하게 된 셈이다. 남쪽에 경제 의존도 줄면서 북한이 신혼 때처럼 고분고분하지 않은 이유가 생겨났다.” - 김근식, "남북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 신혼과 파경을 지나 중년부부로"

살림을 위해 남편에게 꼬박꼬박 돈을 타 써내야 했기에 고분고분했던 아내는 돈이 좀 생기자 더 이상 고분고분하지 않는다. 만일 아내가 소득이 생겼다는 이유로 파경에 이르렀다면, 아내는 그동안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남편과 살았다는 건데. 이런 부부는 그냥 이혼하고 사는 것이 서로에게 더 좋은 것이 아닐까?

여성과 북한에는 자기 결정권이 없다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위와 같은 비유들은 북한과 여성을 능력 없고, 성숙하지 못한, 자기 결정권이 없는 사람과 국가로 인식한다. 굉장히 학술적이고 객관적인 어투로 설명하지만 이들의 ‘격 있는 어투’를 거둬내면 아래와 같은 내용이 숨겨져 있다.

'나(남한)'는 좋은 직업을 갖고 있고 회사에서도 인정받는 사람이다. 앞으로 승승장구할 일만 남았다. 이미 집도 마련했고 젊은 나이에 재산도 꽤 많이 모았다. 게다가 성공한 친한 친구들(미국 등)도 여럿 있어서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인생을 즐기고 있다.

그런데 이런 내게도 문제가 하나 있으니, 바로 여자 친구(북한)다. 여자 친구는 어릴 때부터 옆집에 살고 있어서 가족처럼 지냈다. 어릴 때부터 당연히 이 친구랑 결혼해야 한다고 부모님들에게서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당연히 이 친구와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런 운명도 있는 거지.

하지만 여자 친구는 나에 비해 별 볼일 없다. 직장도 없고, 돈도 없고, 능력도 없는데다가 친구도 없다. 사실 거의 왕따나 다름없다. 결혼 할 때 가져올 수 있는 혼수라고는 사용할 수 있을지 확인도 안된 자원과 저임금 노동력뿐이다. 그런 주제에 꽤나 폭력적이고 분노조절장애도 있는 것 같고, 때로는 그냥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내 말은 듣지도 않고, 약속을 지킨 적도 별로 없으며, 내가 내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도 싫어한다.

그래도 나는 이 사람을 책임져야 한다. 가족 간 약속도 있고, 혼수도 까보면 생각보다 괜찮을 수도 있다. 내가 큰 걸 요구하는 건 아니다. 그냥 내가 하라는 대로 좀 하고 눈치 없이 아무 때나 자기 의견 말하지 말고 내 친구들하고 잘 좀 지내고 사고 치지 말고 살림만 잘하면 진짜 아무 조건 없이 먹여 살려주겠다는데! 얘는 죽어도 자존심을 굽히질 않는다. 게다가 이건 비밀인데 딸린 자식이 2500만 명이나 있다!!! 하아. 내가 그 자식들까지 모두 거둬주겠다고 말하는데. 이 정도면 사실 그냥 숙이고 들어와야 하는 거 아닌가? 이렇게 별 볼일 없고 약한 너를 받아주다니, 이런 남자가 세상에 어디 있냐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기 위한 비유라는 건 핑계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여성으로 비유되는 북한의 파트너는 비단 한국만이 아니다. 북한은 온 세계의 국가(남성)들과 연애 중인 듯하다. 아래는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8년 북미정상회담 이후 작성해 문제가 됐던 글이다.

민병두 의원은 해당 글이 논란이 되자 이렇게 설명했다. '쉽게 설명하기 위한, 이해하기 쉬운' 비유였다고. 그리고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앞서 인용한 두 저자도 이렇게 설명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건 핑계다. 이해하기 쉬운 비유라는 건 결국 자신도 해당 프레임으로 여성을 인식하고 있다고 고백하는 것과 같다. 저자들은 늘 남성의 입장에 선 채 여성과 북한을 철저히 대상화한다.

그리고 해당 비유가 쉽게 이해되는 많은 사람들은 북한이나 여성이나 생각을 잘 드러내지 않고 자꾸 속내를 감추기 때문에 적절한 비유라고 얘기할 것이다. 그러나 여성을 그렇게 표현해서도 안 될 뿐더러, 모든 외교 관계에서 국가라는 행위자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전략적으로 행동한다. 남녀관계의 비유를 들어 북한이 감정적이며 비정상이고 부족하다는 식으로, 그렇기에 남북이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해야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간 관계의 딜레마를 있는 그대로 설명해야 하는 건 아닐까.

북한을 아내로 비유하면서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쓴 글은 사실 저자 자신이 젠더감수성도 부족하고 여전히 북한을 비정상적인 국가로 보고 있다는 걸 드러낼 뿐이다. 그런데도 ‘이런 분들’이 북한과 통일에 대한 담론을 이끌고, 교수도 하고, 정치도 하고, 북한에도 가고, 기사도 쓰고. 뉴스를 비롯한 방송에 나와서 혜안이 있는 척 하고 있다니, 기가 막힐 노릇 아닌가.

이 글은 힐데와소피 온라인 매거진(바로가기)에도 게재돼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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