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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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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해설] '원종건 사태'로 짚어보는 '데이트폭력'

민주당 영입인재 2호 원종건 씨가 지난 29일 사퇴했다. 전 여자친구의 '데이트폭력' 폭로 글이 올라온 지 하루만이다.

피해자는 "원 씨로부터 원치 않는 성관계를 강요당하고 여혐과 가스라이팅으로 고통 받았다"며 "한여름에도 팔 다리를 다 가리는 긴 옷만 입었다"는 등의 피해사실을 구체적으로 적었다. 전형적인 '데이트폭력'이었다.

데이트폭력이란 데이트 관계에서 발생하는 언어적·정서적·경제적·성적·신체적 폭력이다. 물리적인 폭력에 한하지 않으며 정신적·정서적 폭력을 수반한다.

폭언과 욕설, 행동에 제약을 가하며 감시와 통제를 하는 것, 죽이겠다고 협박하거나 자살하겠다고 위협하는 것, 친구와 가족 등 주변사람들을 위협하는 것, 성관계 사실과 데이트 비용을 빌미로 만남을 강요하고 협박하는 것, 그밖에 정신적 괴롭힘, 갈취, 강제추행, 강간, 폭행, 가택침입, 상해, 감금, 납치, 살인미수 등이 보고된다. 헤어지자는 연인의 요청을 거부하고 집요하게 스토킹하는 것도 데이트폭력에 속한다. 데이트폭력은 친밀하고 은밀한 관계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가정폭력과 마찬가지로 단 한 번의 폭력으로 끝나지 않고 오랜 기간 지속된다.

이러한 데이트폭력은 연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지극히 사적인 영역으로 치부되어왔다. 민주당 모 의원이 원종건 사태에 해명하면서 한 말도 "사적인 영역이라 염두에 두질 못했다"였다. 그러나 이는 중대하고 교묘한 성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처벌 대상이지, 사인간의 사적 영역으로 치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해 12월 10일 공개한 통계를 보면 2017 한해동안 데이트관계의 남성으로부터 살해당한 여성은 '언론에 보도된 것만' 42명이다. 살인미수까지 합치면 피해자는 118명으로 늘어난다. 혼인관계는 제외하고 오직 '데이트관계'로만 따졌을 때의 수치다.

데이트폭력과 관련해서는 별도의 법제도가 마련돼있지 않다. 다만 가해자에 대해 형법, 성폭력처벌법, 경범죄처벌법, 기타 특별 형법에 따른 처벌만 가능하다.

▲민주당 인재영입 2호 <눈을 떠요> 원종건 씨. 데이트폭력 폭로 글이 올라오자 하루만에 사퇴했다. ⓒ연합뉴스

데이트폭력의 유형 통제, 언어적·정신적·경제적 폭력, 신체적 폭력, 성적 폭력

'왜 진작 헤어지지 않았어'라는 말은 데이트폭력 피해자에게 큰 의미가 없는 말이다. 피해자들은 이별통보 시 보복이 두려워 헤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심각한 수준의 데이트폭력, 살인·살인미수는 이별을 통보하는 과정에서 주로 일어난다.

데이트폭력은 은밀하고 사적인 영역에서 일어나기에 제3자가 알아차리기도 어렵다. 피해자들은 장시간 이어져온 위협과 폭력으로 판단능력을 상실하고 무기력해지기 쉽다.

또 가해자는 폭력의 순간을 제외하면 한없이 다정한 모습으로 돌변해 "'그것'만 빼면 참 괜찮은 사람이야"라거나 "정말 좋은 사람인데 '나 때문에' 그렇게 된거야"라는 식으로 생각하기 쉽다.

데이트폭력은 크게 △통제 △언어적·정서적·경제적 △신체적 △성적 폭력으로 나뉜다. 다음은 한국여성의전화가 2018년 발간한 ‘F언니의 두 번째 상담실’에 소개된 사례들이다.

'통제'는 누구와 함께 있는지 항상 확인하고, 옷차림을 제한하거나, 내가 하는 일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만두게 하고, 일정을 통제하고 간섭, 휴대폰 이메일 SNS 등을 자주 점검하는 등의 행위를 말한다.

"애인과 오랜만에 주말데이트를 하면서 새로 산 치마를 입었어요. 그런데 만났을 때부터 애인 표정이 안 좋더니 급기야 화를 내는 거에요. '옷이 그게 뭐냐, 차라리 다 벗고 다니라'면서요.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든지 옷을 새로 사라며 계속 화를 냈어요. 애인이 좀 보수적인 건 알았지만 외출하기 전에 자기한테 옷차림 검사를 맡으라 하고 점점 간섭이 심해지는 것 같아요. 애인은 다른 사람이 나를 쳐다보는 게 싫고 걱정이 돼서 그런다 해요. 나를 많이 아끼고 사랑해서 그런가 보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는데 갈수록 정도가 심해지는 것 같아요."

'언어적·정서적·경제적' 폭력은 욕을 하거나 모욕적인 말하기, 위협을 느낄 정도로 소리지르기,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너 때문이야' 라는 말, 나를 괴롭히기 위해 악의에 찬 말, 내가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느낄 정도로 비난하는 것 등을 말한다.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인 '가스라이팅'도 대표적인 정서적 폭력 중 하나다. 폭력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것도 가스라이팅에 해당한다.

"애인이 저와 의견이 엇갈리거나 다툴 때 크게 소리 지르거나 욕을 해서 너무 당황스럽고 상처를 받아요. 그럴 때마다 '네가 날 자꾸 이렇게 만든다'고 하는데 정말 저한테 문제가 있어 애인이 그렇게 화를 내는 건가 싶어 혼란스러워요."

"애인이 자꾸 외모를 가지고 구박해서 스트레스를 받아요. '돼지'라 부르고 '뚱뚱해 보인다', '화장 이상해' 등등 상처받는 말들을 해요. 몸무게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요즘은 정말 다이어트를 해야 하나 싶어요. 점점 자신감도 없어지고 만날 때마다 오늘 또 지적 당하진 않을까 늘 조마조마하고요.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나서 저번엔 '그렇게 내가 맘에 안 드는데 왜 만나?'라고 따져 물으니 '애인이니까 솔직하게 얘기해주는 거지, 관리하면 좋은 거 아니야?'라며 다 나를 생각해서 그렇다고 해요."

"우연히 모임에 갔다가 알게 된 사람이 저한테 관심이 있다며 사귀자고 했어요. 지금은 누굴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더니 다시 생각해보라며 매일 같이 연락을 하고, 만나주지 않으면 죽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사람하나 살리는 셈 치고 어쩔 수 없이 사귀게 된 지 세 달 정도 됐어요. 여러 번 만났지만 아무래도 우리 둘은 안 맞는 거 같아서 헤어지자고 했더니 죽어버리겠다고 하네요.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은데, 헤어지면 정말로 저 때문에 죽을까봐 불안하고 겁나요."

'신체적' 폭력은 반드시 '구타'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팔목이나 몸을 힘껏 움켜쥐거나, 세게 밀치는 행위, 팔을 미틀거나 머리채를 잡는 행위도 신체적 폭력에 해당한다.

"애인과 차타고 가는 길에 잠깐 내려 길에서 다퉜는데, 기분이 상해서 혼자 가겠다고 했더니 데려다 주겠다는 거에요. 이런 기분으로는 같이 갈 수 없어서 싫다고 했더니 얼굴이 빨개지면서 갑자기 저를 차에 밀어 넣더라고요. 그러고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달리는데 사고날가봐 너무 무서웠어요. 애인 성격이 다혈질이긴 하지만 때린 적은 없고요. 이런 상황도 데이트폭력이라고 할 수 있나요?."

"애인과 싸우던 중에 뺨을 맞았어요. 너무 화가 나 아픈 것도 모르고 그대로 집에 돌아왔는데, 계속 전화가 오고 잘못했다며, 다신 안 그러겠다며 문자를 보내네요. 실은 전에도 한 번 뺨을 맞은 적이 있는데 미안하다고 울면서 빌어서 용서해줬었어요. 그런데도 또 다시 나를 때렸다는 사실이 충격이고 너무 화가 납니다. 평소에는 다정한 사람이라 마음이 더 혼란스러워요."

'성적' 폭력은 나의 의사에 상관없이 이뤄지는 강제적인 스킨십을 말한다. 스킨십을 강요하는 것도 성적 폭력이다. 내가 원하지 않는데 섹스를 강요하는 것이나 피임을 거부하는 것 등이다.

"2년을 만난 애인이 있어요. 애인이 소장하고 싶다고 해서 성관계 동영상을 찍은 적이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찜찜해서 지우라고 했어요. 그 때는 애인이 지웠다고 했는데, 지난주에 헤어지자고 하니까 '그때 찍었던 영상 기억나? 나만 보긴 아깝기도 하고... 나중에 너 보고 싶으면 봐야지' 하는 거에요. 순간 너무 소름이 돋았어요. 혹시나 그 동영상을 유포하거나 하진 않겠죠? 너무 두렵고 불안해서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네요."

"애인이 피임을 안 해서 고민이에요. 콘돔을 끼면 느낌이 안 온다고 싫어하고 질외사정 사면 된다며 밀어붙여요. 그렇지만 질외사정이 피임법은 아니잖아요. 피임약도 먹어봤는데 약이 몸에 안 맞는지 머리도 아프고 너무 힘들더라고요. 저는 월경주기가 불규칙한 편인데, 월경이 늦어질 때면 너무 불안해요. 이러다 정말 임신이 되면 어떡하나 걱정도 되고요. 애인은 제가 화를 내도 '임신하면 결혼하면 되지, 내가 다 책임질게'라며 뭘 그렇게 불안해하느냐는 식이에요."

무엇보다 주변으로부터 고립되지 않는 게 중요

전문가들은 데이트폭력의 피해자가 주변으로부터 고립되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우선 편안하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고 나를 비난하지 않을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내 상황을 털어놓는 것이 데이트폭력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다.

주변 사람들의 관심도 중요하다. 데이트폭력 여부를 놓고 고민하는 피해자를 비난하지 않는 것은 물론, 데이트폭력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피해자에게 끊임없이 "그건 옳은 일이 아니다"라고 인지시키는 것 등이다. "너에게도 문제가 있다", "둘이 잘 해결하라"는 식의 조언은 절대 금물이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친밀한 관계 내 폭력은 젠더기반 폭력 철폐에 있어 핵심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영역”이라고 강조한다. 젠더폭력방지법이 필요한 이유다.

▲한국여성의전화가 2018년 발간한 'F언니의 두 번째 상담소'에 소개된 데이트폭력 자가진단표 ⓒ한국여성의전화

<데이트폭력 피해자를 위한 지원>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02-2263-6464~5
서울1366(여성긴급전화) 1366
한국성폭력상담소 02-338-5801~2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02-335-1858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 02-3013-1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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