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을 앞두고 자유한국당이 추진해온 새로운보수당과의 '보수통합'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관측이 나오지만, 여전히 뚜렷한 성과는 없는 상태다. 이런 가운데 한국당이 이른바 '태극기 부대' 등 강성 보수 세력의 목소리에 휘둘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29일 오전 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전날 유튜브 방송 출연 내용과 관련한 질문을 받았다. 황 대표는 전날인 28일 보수성향 유튜브 방송 '신의한수'에 출연해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애국시민"이라며 "모든 것을 공천관리위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었다.
황 대표는 앞서 김형오 전 국회의장을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위촉했고, 김 위원장은 김세연 의원 등 상대적으로 보수 진영 내에서 개혁적이거나 소신파로 꼽히는 인사들을 공관위원에 앉혔다. 이에 대해 강경보수 세력은 '친박계 학살' 등 가능성을 우려하며 반발해 왔다.
황 대표는 방송에서 '공관위 구성에서 태극기 세력을 등한시한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고 "공관위에 상당 부분 자율성을 줘야 하지만 공관위가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잘못된 공천에 대해서는 당 최고위에서 제재할 수 있다"고 했다.
황 대표는 이튿날인 이날 오전 기자들이 이 발언의 취지를 묻자 "당헌당규에 정해진 공천 절차에 대한 답을 드린 것"이라고만 했다.
황 대표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자신이 김영우·유민봉 의원 등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의원들을 비례대표 공천용 위성정당 '미래한국당'으로 이적하는 방안을 논의했다는 이날자 <동아일보> 보도에 대해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당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에게 계속 더 헌신해 달라고 당부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논의를 이제 하고 있다"고 부인하지 않았다.
앞서 한국당 '김형오 공천관리위'는 현역의원들에 대한 지역구별 여론조사를 실시해 1/3 이상의 현역의원을 '컷오프'하겠다고 예고했다. 공관위는 29일 오후 3차 전체회의를 열어 여론조사 방식과 시기 등을 논의했다.
그러나 김형오 위원장 역시 지난 27일 "설 연휴를 맞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석방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며 "(수감 생활이) 3년이 돼 가고 있는데도 이 정권이 햇빛을 못 보게 하고 있다. 해도 너무 한다"고 말하는 등 강성보수 세력을 의식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전날 불출마 및 정계은퇴를 선언한 이완구 전 국무총리 역시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세대교체와 인재충원의 기회를 여는 데 기여하겠다"고 하면서 "3년여 고통 속에서 지내는 박 전 대통령 석방이 서둘러 이뤄지길 고대한다"고 해 눈길을 끌었다.
강경보수 세력은 한국당이 새보수당과의 통합 논의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해온 우리공화당 등이 소외됐다며 불만을 품고 있다. 우리공화당뿐 아니라 이언주 의원, 이정현 의원 등이 각자 신당을 준비하고 있고, 김문수 전 경기지사도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과 손잡고 '국민혁명당'(가)이라는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한국당 지도부는 이같은 '우측에서의 압력'에 긴장감을 보이고 있다. 황 대표는 '신의한수' 인터뷰에서 '유승민을 택하고 태극기를 버렸다'는 지적이 있다는 질문에 대해 "제가 왜 태극기 세력에 관심이 없겠느냐"며 "자유 우파의 필승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지, 특정 세력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 석방 주장에 대해서도 "제가 직접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제는 선처가 필요하다. 국민의 통합이 필요한 때'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며 "(박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오래 구속돼 있지만 이 정권이 응하지 않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과도한 형사제재 부분에 대해 국민통합적 차원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릴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황 대표는 또한 지난 27일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자유 우파의 통합 추진과 공천관리위 출범에 대해 많은 분이 우려의 목소리를 전달해 주셨다. 자유민주 시민 여러분의 심정, 저 역시 잘 알고 있다"면서 이들의 '우려'를 언급하기도 했다.
황 대표는 다만 "정말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이라며 "야합으로 뭉친 거대 여당 세력에 맞서 모든 자유민주 세력이 똘똘 뭉쳐 단일대오를 이뤄야 한다. 여기서 분열하면 모두 끝"이라고 위기감을 강조했다. 강경보수 신당을 견제하고, 한국당 중심의 보수통합의 당위성을 설파한 것이다.
이날 김무성 의원도 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 참석해 '김문수 신당'을 정면 비판하면서도 이들을 다소 의식하는 태도를 보였다. 김 의원은 "많은 국민은 지금 누가 우파 보수 통합을 이끄는지, 누가 통합을 방해하는지 지켜보고 있다"고 경고하며 "일부 정치인이 당치 않은 이유를 대면서 정당을 창당한다고 한다. 이는 그동안 많이 고생하셨던 애국시민을 분열의 세력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사실상 김 전 지사를 겨냥했다.
김 의원은 또 "문재인 정권의 폭주를 막기 위한 보수통합에 있어서 각자 밥그릇을 챙길 한가한 때가 아니다"라며 "자신의 이익을 위한 이런저런 까다로운 조건을 따지는 정치야말로 천추의 한을 남기고 낙인찍혀서 국민의 조롱을 받게 될 것"이라고 현재 진행 중인 한국당-새보수당 간의 협상을 에둘러 비판했다. 그는 "혁신통합추진위원회에서도 '광장 세력'이 참여할 수 있는 필드를 확보해 달라"며 강경보수 세력을 포함한 통합을 주문하기도 했다.
혁통위에 구 안철수계 인사 합류
한국당과 새보수당 간의 통합 논의는 설 연휴를 거치면서도 뚜렷한 진전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유승민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황 대표와 서로 솔직하게 얘기 중"이라면서도 "모든 대화가 끝난 후 당 구성원들에게 보고하고 합당이 될지, 연대가 될지, 100% 독자노선이 될지 허심탄회하게 토론한 후 당의 입장이 결정될 것"이라고 여전히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했다. 황 대표와의 양자 회동 시점에 대해 그는 "협의가 다 끝나고 '더는 대화할 게 없다' 싶으면 제가 황 대표를 만날 것"이라고 했다.
유 의원은 전날도 "한국당과 대화 창구를 통한 비공개 협의는 설 연휴 중에도 계속되고 있었다"며 "오늘부터는 더 본격적으로 대화할 생각이고, 대화가 그렇게 길어질 이유는 없다"고 하면서도 "며칠까지 무엇을 하는 등의 일정을 잡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저와 황 대표의 대화는 진행되고 있고, 충분히 대화가 진행된 뒤 필요하다면 제가 황 대표를 직접 만나 생각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한편 한국당이 추진해온 보수통합 플랫폼 '혁신통합추진위'는 이날 구 안철수계 인사였던 김영환·문병호 전 의원의 합류 사실을 발표했다. 두 전직 의원은 이날 박형준 혁통위원장과 회동을 갖고 혁통위 참여 입장을 밝혔다. 혁통위원인 김근식 경남대 교수가 가교 역할을 했다. 박 위원장은 "중도정치권의 김·문 전 의원이 '통합신당이 진정한 범(汎)중도·보수라면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이들은 안철수 전 국민의당(바른미래당) 대표도 혁통위의 통합신당에 참여하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당 지도부와 중진 의원들은 강경보수 세력을 달래려는 손짓을 연달아 하고 있는 와중에, 혁통위에서는 그 반대 방향인 '중도로의 확장'을 시도한 셈이다.
다만 안 전 대표는 이날 기자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이들 인사들의 혁통위 참여는 자신과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안 전 대표 측 김도식 비서실장은 "최근 혁통위에 과거 국민의당에서 활동했던 분들이 참여한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며 "이는 참여하는 분들 개개인의 정치적 소신에 따른 것이지 안 전 대표의 정치적 입장과는 무관함을 분명히 밝힌다"고 했다.
김 실장은 "특히 관련된 분들과의 사전 논의나 '긴밀히 교감하고 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해당 참여 인사에게도 앞으로 안 전 대표와 연관성을 두는 발언에 대해서 자제해 줄 것을 당부한다"고 경고했다. '안 전 대표와 긴밀히 교감하고 있다'는 말은 김 전 의원이 이날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김근식 교수도 "안 전 대표도 결국 뜻을 같이하리라고 생각한다"며 "인내심을 갖고 모시려고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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