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탐사그룹 <셜록>에서 충남 논산에서 가장 큰 병원인 백제종합병원을 취재했다. 병상만 583개, 연간 매출이 500억 원을 훌쩍 넘는다. 논산시로부터 위탁받아 시립노인병원도 운영한다. 사실 무늬만 공익법인이고 뚜껑을 열어보면 병원 설립자인 고(故) 이덕희 일가가 병원을 쥐락펴락한다. 이사 5명 모두 고 이덕희의 친인척이다. 설립자의 아들들이 이사장과 병원장을 맡고 있다. 병원이 설립자 일가의 돈 버는 창구인 셈이다.
병원이 민낯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김인규 때문이었다. 김인규는 백제병원의 잘못으로 어머니를 잃었다고 주장한다. 어머니가 쓰러지자 김인규는 백제병원을 취재했다. 무자격자 수술, 잦은 의료 사고, 과잉 진료, 간병인의 학대를 추적했다. 백제병원은 김인규를 고소했다. 김인규 때문에 병원 신뢰도가 떨어진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형사 소송에서는 김인규가 이겼다. 민사 소송에서는 병원이 이겼다. 대전지방법원 논산지원은 병원 측 주장을 받아들여 김인규에게 200만 원을 손해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과연 김인규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했을까. <셜록>은 김인규의 사연을 확인해보고자 한다. 더불어 백제병원이 그동안 무엇을 숨겼는지, 설립자 일가는 어떻게 엄청난 부를 축적했는지 밝히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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켁, 켁...
숟가락이 떨어지면서, 시어머니가 목을 부여잡았다. 오후 12시 30분 즈음, 찰나였다. 병원 점심 메뉴로 나온 콩나물국에 밥을 말아서 먹여 드리던 중, 시어머니가 갑자기 사레 걸린 듯 기침을 시작했다. 얼굴이 삽시간에 빨개졌다. 눈에선 총기가 사라졌다, 상체가 바닥 쪽으로 기울면서 의식을 잃어갔다.
"어머니! 어머니! 간호사, 어디 계세요?"
며느리 이수영(가명)은 급히 간호사를 불렀다. 쌀 몇 알 때문에 시어머니를 잃을 순 없었다. ‘여긴 종합병원이니까 응급실에서든 당장 의사가 달려오겠지’란 생각에 일단 간호사에게 상황을 전했다. 운 좋게도 근처에 간호사가 있었다. 간호사는 급히 의사를 호출했다. 다른 간호사는 숨이 넘어가는 시어머니를 반듯하게 눕혔다.
"심폐소생술 할게요."
간호사들은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침대를 복도로 끌고 나왔다. 이수영은 ‘응급실로 가려나 보다’ 생각했다. 예상과 다르게 침대는 중환자실로 향했다. 이수영은 ‘중환자실에 의사가 있나 보다’ 생각했다. 침대는 중환자실 앞에서 멈췄다. 의사는 나오지 않았다. 시어머니 얼굴은 퍼렇게 변해갔지만, 의사는 아무도 없었다.
"왜 이렇게 의사가 안 와요?"
"지금 점심시간이라서요."
"점심시간이라도 응급상황에 의사가 안 오면 어떡해요? 여긴 종합병원이잖아요!"
고통의 시간은 길고 끔찍했다. ‘점심을 먹다가 환자가 사고를 당했는데, 점심시간이라 의사가 병원에 없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이 병원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제대로 드시지 못해 병원에 모시고 온 것이었다. 의사가 일반식을 먹어도 좋다고 한 데에는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착오였다. 밥알은 시어머니의 숨통을 막았다.
백제종합병원과 같은 규모의 큰 병원은 응급코드를 미리 정해 응급상황에 대처한다. 이수영의 시어머니처럼 기도가 막혀서 응급처치가 필요한 상황이 터지면, 병원은 모든 의사들에게 코드 블루(Code Blue)를 발령한다. 코드 블루는 심정지 상태를 말한다. 코드 블루가 방송을 통해 나오면, 손이 비는 모든 의료인이 해당 병동으로 달려가야 한다.
백제병원에서는 이런 원칙은 통하지 않았다. 추후 경찰 조사 때 드러난 사실이지만, 신경과 의사 이강문(가명)은 일이 터지고 9분 만에 CCTV상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담당 경찰이 전했다. 이미 그땐 시어머니 몸이 퍼렇게 변해 있었다. 의사는 뒤늦게 튜브로 기도에 걸린 음식물을 꺼내기 시작했지만, 때는 늦었다. 중환자실로 옮겨도 소용없었다.
오후 2시 3분. 이강문은 결국 “심폐소생술을 해도 반응이 없다”며 고개를 떨궜다. 이수영은 “그래도 계속 해달라” 요청했다. 오후 2시 30분. 일하다 말고 뛰어온 남편이 어머니를 보고 오열했다. 아들이 본 어머니의 모습은 낯설었다. 얼굴은 퉁퉁 부었고, 가슴은 심폐소생술에 따른 멍으로 가득했다. 몸에는 온기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남편은 이강문의 멱살을 잡았다.
"왜 늦게 왔습니까? 왜 침도 못 삼키는 분에게 밥을 먹여도 된다고 했어요?"
의사 "먹지 말라" 말해놓고 일반식 처방해 질식사
이강문의 처방을 생각하면 시어머니의 죽음은 이해할 수 없다. 2017년 5월 16일 늦은 오후 뇌경색과 심한 당뇨를 앓고 있던 시어머니는 며느리 이수영, 지인과 함께 백제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당시 진료를 본 이강문은 “물도 조심히 먹어야 한다”며 며느리 이수영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의사는 이수영에게 입원을 권유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희 어머니가 물도 드시질 못하세요."
"당 수치가 이렇게 높으면, 물을 드실 때 찻숟가락 같은 걸로 떠서 드셔야 해요. 물이든 음식이든 못 삼키실 테니까요. 어차피 내일 검사하시려면 금식하셔야 합니다."
시어머니 침대에 ‘금식’이라는 명패가 달린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아무것도 삼킬 수 없기 때문에, 금식은 당연했다. 다음 날 아침, 이수영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MRI 검사실로 갔다. 검사를 마치고 돌아오니 침대에는 예상 밖으로 식사가 놓여있었다. 죽도 아닌 일반식이었다. 메뉴는 흰쌀밥에 돈가스, 시금치나물, 김치, 그리고 콩나물국이었다.
"간호사님, 저희 어머니 밥이 정말 맞아요? 분명, 물도 함부로 먹지 마시라고 했거든요."
"의사 선생님께 여쭤봤는데요. 어머니 식사가 맞다고 합니다."
하루 전만 해도 ‘금식하라’고 들었기 때문에 이수영은 간호사에게 어머니 식사가 맞는지 물었다. 간호사는 의사에게 물어 “확인받았다”고 했다. 별다른 치료를 받지 않았는데 갑자기 정상 식사를 해도 된다는 것이 의아했지만, 의사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수영은 시어머니에게 식사가 가능하신지 물었고, 시어머니는 아무것도 모른 채 생애 마지막 말을 했다.
"어머니 드실 수 있으세요?"
"의사가 먹으라고 했으니까 먹지 뭐."
입원 후 시어머니는 음식물을 삼킬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연하검사를 한 적이 없다. 음식물을 잘 삼키지 못하는, 연하장애가 발생할 수 있는 뇌경색 환자에게는 보통 해당 평가를 한 후 정상 식이를 처방한다. 연하검사란 조영제가 포함된 음식물을 먹게 하면서 투시를 통해 무언가를 삼킬 수 있는 상태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검사를 말한다.
이강문은 정밀 검사를 할지 말지를 결정하기 전 단계인 ‘연하장애 선별 서식’을 작성하기는 했다. 선별 검사는 연하장애 발생 가능성을 간단하게 판별하는 걸 말한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이 선별 서식 내용은 가짜였다. 이수영은 분명 의사에게 “시어머니가 물도 삼킬 수 없다”고 했지만, 이강문은 “마른 침도, 물도 삼킬 수 있다”고 거짓으로 표시했다.
'왜 의사는 하루 만에 식사해도 된다고 말을 바꿨을까.'
'점심시간이라고 해도 종합병원에서 응급조치를 할 의사가 어떻게 9분 뒤에야 올 수 있을까.'
이해할 수 없는 의문이 넘쳐났지만, 가족을 잃은 슬픔은 모든 걸 잠식했다. 지옥 같은 생애 마지막 식사를 끝내고 떠나버린 어머니를 앞에 두고 이수영은 넋을 놓았다. 그때까지는 이수영은 단순한 의료사고라고 생각했다. 생각이 바뀐 것은 사망진단서와 의무기록 사본을 받아본 후였다. 시어머니 죽음으로 백제병원의 비밀이 밝혀졌다.
주치의가 백제병원 의사가 아니었다
이강문과 백제병원을 업무상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고소하기 앞서, 이수영은 어머니가 계셨던 병동을 찾았다. 경찰 조사를 받기 전에 심폐소생술을 한 간호사의 이름은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방문했다. 사망 다음 날, 병동에서 이수영을 맞이한 인물은 연차가 높아 보이는 간호사였다. 해당 간호사는 예상치 못한 말을 이수영에게 건넸다.
"고소하시게요? 왜 간호사 이름을 물어보세요?"
간호사의 반응은 공격적이었다. 사실 확인을 위해 CPR을 한 간호사 이름을 물어었는데 간호사는 이수영을 크게 경계했다. ‘의무기록을 빨리 확보하자’고 결심한 것은 그때였다. 이수영은 곧장 원무과에 내려가 사망진단서와 의무기록 사본을 뗐다. 끔찍했던 사투의 순간들을 살펴보면서 이수영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바로 주치의 이름이다.
'서류에 적힌 김상규(가명) 의사는 누구지?'
기록에는 생전 처음 듣는 ‘김상규’가 주치의라고 적혀 있었다. 정확하게는 '김상규.'로 이름 끝에 점이 붙어있었다. 김상규는 백제병원 의사였다. 즉, 백제병원 의사인 김상규의 이름으로 이강문이 진료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집중치료실 입실동의서나 간호정보 조사지에도 주치의가 모두 ‘김상규.’으로 나와 있었다. 마치 짠 듯이 병원 전체가 의무기록지를 허위로 썼다.
의료법 제22조 3항에 따르면 의료인은 진료기록부 등을 거짓으로 작성하거나 고의로 사실과 다른 내용을 기록해서는 안 된다. 이를 어길 경우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이름을 빌려준 김상규에도 책임이 따를지 모른다. 의료법 제4조 4항에 따르면 의료인은 면허증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줘서는 안 된다.
환자에게 문제가 생기면 진료한 의사가 책임지는 법이다. 만약 진료기록을 기록에 적힌 의사가 아닌 엉뚱한 의사가 작성했다면, 환자는 책임질 수 없는 의료진으로부터 진료를 받은 격이다. 비단 이강문만 해당되는 얘기일까. 백제종합병원은 진료기록이 허위작성되고 있다는 사실을 환자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문제가 터지자 발각됐다.
이강문의 이름이 간호기록지에 처음 등장한 것은 어머니가 쓰러졌을 때였다. 이강문은 간호사실의 호출을 받고 9분 뒤에야 병실로 달려왔다.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 이강문이란 이름은 기록 어디에도 없었다. 간호사들은 이강문의 이름 대신 김상규를 썼고, 김상규라는 이름 끝에 꼭 .(점)을 붙였다. 이수영은 다시 의문이 생겼다.
'간호사들은 주치의가 김상규가 아니라 이강문이라는 걸 어떻게 알고 호출했을까.'
경찰 수사를 통해 이강문의 정체가 드러났다. 이강문은 백제병원 홈페이지에 이름을 올리긴 했지만, 실제로는 논산시립노인병원 의사였다. 이강문은 당시 경찰 수사에서 "논산시립병원 의사지만, 원무과의 권유를 받아 백제병원에서 진료를 봤고, 백제병원에서 진료할 때는 김상규의 이름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왜 백제병원은 시립병원 의사 이강문에게 불법으로 진료를 보게 시켰을까.'
이 해답은 백제병원을 고발해온 김인규에게서 나왔다. 3화 기사의 주제는 바로 돈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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