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전 국민의당(현 바른미래당) 대표가 연일 문재인 정부에 날을 세우고 있다. 다만 귀국 후 사흘째인 22일에는 진보 성향 시민단체를 찾아 이들과 부동산 정책에 견해를 같이한다고 밝히는 등 보수진영에도 구체적으로 선을 긋고 나섰다.
안 전 대표는 22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을 찾아 단체 관계자들과 대화를 하고 "경실련은 정말 우리 사회에 중요한 경제 정의를 시민단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길인가 제대로 몸으로 실천해서 보여주셨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실련은 지난해 '조국 사태' 당시 진보진영 시민·사회단체들 가운데 드물게 조국 전 법무장관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유지했던 단체다. 안 전 대표는 전날은 조 전 장관을 비판하며 참여연대를 떠난 김경율 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을 만나기도 했다.
즉 안 전 대표가 연일 시민운동가들과의 만남을 잡은 것은 '조국 사태'에 대해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의미를 담은 행보로 해석된다. 그는 실제로 이날 경실련과의 만남에 대해 "(경실련은) 최근 현 정부에서의 여러 가지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시민단체가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모범적으로 보여주신 곳이다. 아마 그 과정 중에 어려움도 많았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 전 대표는 "현 정부는 3가지가 없는 '3무(無) 정부'"라며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무능이다. 사회생활을 해보지 않다 보니 특히 경제 문제는 아마추어 아닌가 생각한다", "두 번째로 없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가짜 민주주의", "공정이 없다"고 문재인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만 안 전 대표는 경실련 관계자들과의 대화에서 "서민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 중 하나가 부동산 문제 아니냐"며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가 아니고 불로소득을 위해 부동산 투기를 하는 것은 망국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하고 "경실련에서 말씀하는 여러 가지 중요한 점들 가운데 하나가 분양가상한제 도입이다. 그 부분을 현 정부에서는 선거 이후로 미루고 있는데, 빨리 도입을 해야 한다는 것이 경실련의 입장이고 저도 거기에 동의한다"고 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정부도 이런 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된 통계, 제대로 된 해법이 이미 나와 있는 상황임을 인식하고, 거기에 따라서 선거 신경 쓰지 말고, 선거 이후로 돌리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실행할 수 있는 정책들은 실행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분양가상한제의 조기 실시에 공감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보수가 아니다'라는 정체성 선언의 구체적 표현이다. 앞서 자유한국당은 지난 16일 부동산 분야 총선 공약을 발표하며 "분양가 상한제 폐지"를 주장했다. 새로운보수당 유승민 의원도 지난달 17일 "시장의 수요와 공급을 완전히 무시하고, 세금과 대출규제와 분양가 상한제로 부동산 가격을 잡을 수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고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며 분양가상한제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안 전 대표는 반면 진보진영이 개인정보 침해 우려가 있다고 비판해 온 '데이터 3법'에는 긍정적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날 오후 경기 안산시의 '청년창업사관학교'를 방문해 청년 기업가들과 간담회를 하고 "데이터 3법의 통과가 너무 늦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며 "이제는 데이터가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청년 기업가 간담회에서 "우리나라도 규제를 철폐하고 감시와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제가 21대 총선에서 만들고 싶은 정당의 지향점이 거기에 있다"고도 했다.
이날 안 전 대표는 자신의 정치 행보에 대해서는 "우선 '무엇을 하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그 다음에 그것을 하기 위한 '형태'가 필요하다"며 "제가 (한국에) 들어온 지 이틀 반 정도 됐다. 그 동안 고민했던 부분들을 하나씩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고 있다"고 즉답을 피했다.
안 전 대표는 전날 자파 의원들과 서울 신촌의 사무실에서 회의를 하며 바른미래당 '리모델링' 등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에는 권은희·이동섭·이태규 의원 등이 참석했고, 참석자들은 '여론을 공유하는 자리였다'는 취지로 언론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이어 오는 28일에는 사실상 바른미래당 소속 의원 전원과 오찬 회동을 가질 예정이다. 안철수계 의원들뿐 아니라 당권파로 분류됐던 의원들과, 당 활동을 하지 않고 있던 박선숙 의원 등도 참석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바른미래당 의원 20명 가운데 법적으로는 바른미래당 소속이지만 평화당·대안신당에서 활동하는 박주현·장정숙 의원과 이상돈 의원을 제외한 전원이다.
정치권에서는 안 전 대표에 대한 러브콜이 나왔다. 이날 평화당 주최 정치개혁 토론회에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유성엽 대안신당 창당준비위원장이 참석해 정동영 평화당 대표와 한 자리에 둘러앉았다. 안 전 대표의 귀국과 맞물려 '제3지대' 통합 논의가 나오는 것과 무관치 않다.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도 참석할 것으로 알려진 자리였으나, 그는 결국 불참했다.
실제로 유성엽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대안신당 내에서 안 전 대표의 복귀에 대해 당 내에서 아주 비난에 가까울 정도로 비판을 보내는 것에 대해 저는 지적을 했다"며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는 과정의 1차적 책임은 안 전 대표에게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머지 우리들도 분열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오로지 안 전 대표만을 비난하는 것은 우리 3세력들의 변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정동영 대표도 안 전 대표의 귀국 사실을 언급하며 "먼저 다당제를 만들어준 국민의 뜻을 받들지 못한 것에 대해 석고대죄해야 한다"면서도 "어떤 정치를 하든지 명분과 가치가 먼저여야 한다. '반문(反문재인) 연대'만으로 명분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손 대표는 이 자리에서는 별다른 발언을 하지 않았으나, 전날 충북 청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안 전 대표가 이번 총선에서 바른미래당의 승리를 위해 앞장서고, 커다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안 전 대표가 결별을 선언한 새로운보수당에서도 안 전 대표에 대해 우호적인 발언이 나왔다. 하태경 새보수당 책임대표는 이날 "안 전 대표가 보수통합보다는 야권의 혁신경쟁을 당부했다. 일부 경청할 부분이 있다"며 "혁신을 강조하는 안 전 대표의 지적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새보수당은 전날 안 전 대표와 회동해 주목을 받은 김경율 전 위원장을 초청해 강연을 듣기도 했다.
다만 하 책임대표 등 새보수당에서 나온 반응은 안 전 대표와의 세력 통합 등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야권 내의 경쟁을 해보자는 뜻으로 해석된다. 하 대표는 "단순히 여야 1대1 구도를 만들기 위해 '묻지마 통합'을 하는 것은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 (이는) 안 전 대표의 지적처럼 망하는 길"이라며 "보수를 혁신하는 통합만이 총선 승리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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