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전 국민의당(현 바른미래당) 대표가 19일 귀국하며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고, '중도 실용'을 내세운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여당과 야당 모두와 거리를 두는 제3의 길이 그의 새 정치적 진로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특히 옛 국민의당과, 그 지지 기반이었던 호남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안 전 대표는 이날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직후 공항에서 약식 기자회견을 열고 '공정·안전·정치개혁'이라는 비전을 밝히며 자신의 정치 복귀를 선언했다.
안 전 대표는 먼저 "우리는 더 이상 불공정으로 고통받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한국사회는 공정의 실종을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체감하고 있다"면서 "부모가 누구냐에 따라 대학이 결정되고, 스타를 꿈꾸는 젊은이들의 열정은 팬들의 사랑에도 불공정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고 했다. "'음원 사재기' 같은 여론 조작은 좋은 음악 들을 소비자의 권리를 강탈했고, 반칙하지 않는 많은 음악인과 팬들은 분노해야 했다"고도 했다.
최근 한국에서 논란이 됐던 음원 사재기 논란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그의 말은 '조국 사태'와 '드루킹 사건'을 연상시켰다.
안 전 대표는 또 "한국사회가 직면한 또 다른 문제는 안전"이라며 "많은 아이들이 가정에서 아동학대의 위험에 처해 있고, 학교폭력은 더 이상 '애들 싸움'으로 치부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가정폭력에 신음하고, 불법촬영 영상 유통 'N번방 사건'에 이르기까지 여러 성범죄에 노출돼 있지만 법안이나 단속 대책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산업 현장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일하다 장애를 얻거나 목숨을 잃는다"며 "사고 후에도 안전 대책은 미비하고 기업은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안 전 대표는 이어 "이런 한국사회의 문제를 먼저 고민하고 풀어내야 할 정치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며 정치의 문제를 제기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정치적 포지션에 대한 언급도 나왔다. 그는 "지금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문제의 기저에는 현 정권의 진영 논리에 입각한 배제의 정치, 과거지향적이고 무능한 국정운영이 자리 잡고 있다. 그 반대편에는 스스로 혁신하지 못하며 반사이익에만 의존하려는 야당이 있다"고 말했다. 여야를 싸잡아 비판한 것이기는 하지만, 무게중심은 여권에 대한 비판에 있었다.
그는 이어 "정부·여당은 진영논리 구태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진영논리는 생각이 다른 사람은 적(敵)으로 규정한다. 반면에 '우리 편' 생각은 틀린 생각도 옳다고 여긴다"면서 "한 가지 생각으로 몰아가고, 한 가지 생각만 강요하는 것은 전체주의이지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옳은 것인지 아닌 것인지를 따지는 게 아니라, 내 편인지 아닌지만 따지는 분열된 사회에선 집단지성도 공동체 정신도 발휘될 수 없고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다"고도 했다. '공정'의 문제를 지적하며 조국·드루킹 사건을 연상시킨 데 이어 '진영논리'에 대한 비판으로 현 여권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다.
그는 "진영 정치에서 벗어나, 실용적 중도정치를 실현하는 정당을 만들겠다"고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그는 이와 관련해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일단 여러분들을 만나 뵙고 상의드리려 한다. 그래서 최선의 방법을 찾겠다"고만 답했다.
그는 다만 총선 출마에 대해서는 "저는 출마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저는 간절하게 대한민국이 변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러 왔고, 다음 국회에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이 진입하는 게 목표다. 모든 힘을 다해서 돕겠다"고 했다. "결국 제 목적은 이번 국회를 실용적·중도적 문제 해결 능력이 있는 사람들로 채우는 것"이라고 했다.
보수통합에는 다시 한번 선을 그었다. 그는 "현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고 국정 운영의 폭주를 저지하는 데 앞장서겠다"면서도 '같은 목적을 내세운 보수진영 혁신통합추진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저는 관심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야권도 혁신적인 변화가 꼭 필요하다"며 "진영 대결로, 1대1 구도로 가는 것은 오히려 정부·여당이 바라는 일이다. 그러면 정부·여당은 아주 쉽게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오히려 야권에서 혁신 경쟁을 통해 국민들의 선택권을 넓히면 1대1보다도 훨씬 더 합이 큰 결과를 얻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특히 그는 이날 "큰 기대와 과분한 사랑을 보내 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면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영호남 화합과 국민통합이 필요하단 신념으로 바른미래당을 만들었지만, 합당 과정에서 국민의당을 지지해준 분들의 마음을 충분히 다 헤아리지 못했다. 무척 서운하셨을 것이다. 늦었지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해 주목을 끌었다.
유승민계와의 통합에 대해 그가 사과한 것은 처음이다. 그는 "바른미래당이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 역시 제 책임"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다음날인 20일 서울 동작현충원 참배 뒤 광주 5.18 묘지를 찾는 일정을 앞두고 있다. 기자들이 이 일정의 의미를 묻자 그는 "국민의당을 지지해 준 많은 분들께 큰 실망을 안겨드렸다. 제가 그분들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감사 말씀 드리러 가는게 도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안 전 대표의 귀국 현장에는 안철수계 권은희·이동섭·김삼화·김수민·신용현·이태규 의원과 김도식 전 비서실장, 김철근 전 대변인 등이 나와 그를 맞이했다. 바른미래당 당권파로 분류되는 최도자·임재훈 의원도 나왔다. 안 전 대표는 이날 공항 행사 후 20일 동작현충원과 5.18 묘지를 참배하고 이어 부산 본가 방문 등 주변 정리 시간을 가질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언론에서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귀국 직후 회동해 담판을 지을 것'이라는 취지의 보도가 나왔으나, 안 전 대표 측 핵심 관계자는 "손 대표를 만나기는 하겠지만 20일까지는 일정이 있고, 가족들도 만나야 하지 않겠느냐"며 "주 중반 이후에야 의원 등을 만나는 일정을 시작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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