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를 안 주는 '나쁜 부모'의 얼굴과 신상을 온라인 사이트에 공개해 재판에 넘겨진 <배드파더스> 사이트 자원봉사자 구본창 씨가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위를 공익 실현으로 판단했다.
수원지방법원 제 11형사부(이창열 부장판사)는 정보통신망법 위반에 의한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구본창 씨에게 국민참여재판에서 15일 무죄를 선고했다. 배심원 7명(예비 배심원 1명 제외) 모두 피고인 구본창 씨에 대해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을 내렸다.
<배드파더스>는 양육비를 안 주는 '나쁜 부모'의 얼굴 사진과 실명, 거주지, 직장 등을 온라인에 공개한 사이트다. 양육비를 주지 않는 ‘나쁜 부모’의 명예보다 자녀의 생존권이 우선이라는 가치를 내세워 탄생했다.
피고인 구본창 씨는 2018년 9월부터 10월 사이 <배드파더스>에 신상이 공개된 부모 중 5명(남성 3명, 여성 2명)에게 정보통신망법 위반에 의한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다.
구 씨는 양육비 미지급자 제보를 받아 <배드파더스> 사이트 운영진에게 전달하는 자원봉사자다. 신변 보호를 위해 익명으로 운영되는 사이트 운영진을 대신해 자원봉사자로 외부와 소통을 맡았다.
검찰은 애초에 구 씨를 벌금 300만 원에 약식기소 했다. 하지만 법원이 이 사건을 제대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직권으로 정식재판에 넘겼다.
이후 구 씨와 변호인단의 요청으로 국민참여재판이 결정됐다. 구 씨의 변호인단(대표변호사 법무법인 숭인 양소영) 총 10명은 이날 국민참여재판에 참석했다.
재판의 쟁점은 <배드파더스>의 신상 공개가 명예훼손인지 아니면, 아동을 위한 공익인지 여부였다.
검찰은 구 씨가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정보통신망법 제 70조)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은 구 씨가 <배드파더스>에 관여한 사실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범죄 성립 여부 등에 대해선 법리적 다툼 여지가 있다고 봤다. "비방할 목적이 없었고,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고려할 때 공익적 목적이 더 크다"는 견해다.
구 씨를 고소한 박OO 씨의 전 부인 A가 이날 재판 피고인 측 증인으로 나왔다. 고소인 박 씨는 '양육비 외면하는 배드파더스'등장하는 양육비 미지급자다.
고소인 박 씨는 혼인 시절 아내와 아이에게 칼을 겨누고, 면접교섭 날 아이를 방치한 채 애인과 영화를 보러 간 인물이다. 박 씨는 A씨에게 상해를 입힌 혐의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양육비는 안 주던 그는 외제차와 명품 모자를 애용했다.
박 씨는 2012년 12월부터 매달 60만 원씩 양육비를 지급하라는 법원의 명령을 약 8년간 무시했다. 그가 지급하지 않은 양육비는 2019년 12월 기준 약 5000만 원을 넘어섰다. 그의 신상은 <배드파더스>에 공개됐다.
증인 A 씨는 전 남편의 신상을 <배드파더스>에 제보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에 대해 재판부와 배심원단을 향해 호소했다.
A씨는 "양육비를 받기 위해 국가기관인 ‘양육비이행관리원’을 통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이행명령, 채권추심, 재산명시 등 총 8개의 소송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면서 "전 남편은 가장 강력한 제재인 감치 10일 다녀온 후에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A씨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준비해온 편지를 꺼내 읽었다.
"결과가 아닌 원인을 살펴봐주면 좋겠습니다. 홀로 양육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이혼한 양육자는 혼자 아이를 키워야하는 게 당연한 건지 묻고 싶습니다. 저는 아이가 아파도 일을 하느라 제때 병원에 데려가지 못했습니다. 학교 행사도 한 번 못 갔습니다. 엄마로서 아이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나, 법의 무능함에 좌절하고 기댈 곳이 없었습니다. <배드파더스> 제보자들을 대신해 피고인석에 앉아 있는 구본창 씨에게 죄송할 따름입니다."
A씨는 눈물을 쏟았고, 일부 방청객도 함께 울었다.
검찰과 변호인 양측은 구 씨의 행위가 공익적 활동에 부합한지를 두고 강하게 부딪혔다.
검찰은 최종의견에서 "'양육비를 주지 않는 무책임한 엄마 아빠’라는 게시글 제목에서 파악할 수 있는 정보는 이혼 사실, 양육비 미지급 사실 등으로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내용에 해당한다"며 "사인(私人)인 피해자 개인들의 양육비 미지급 사실이 공적 관심 사안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피해자들의 사진, 실명, 나이, 거주지 등 인적사항을 과도하게 공개하는 점, 피해자들에게 사실관계 확인절차 없이 공개한 점"을 근거로 피고인 구 씨에게 벌금 300만원 구형했다.
피고인 구 씨 변호인은 최후변론에서 배심원들을 향해 "<배드파더스> 사건은 양육비 미지급 가해자가 명예훼손 ‘피해자’로 뒤바뀐 사건"이라며 "양육비 미지급은 미국 아이다호주에선 미지급자에게 14년 형을 선고할 수 있는 정도로 중범죄"라고 강조했다.
이어 변호인은 "피고인은 고소인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고 아이들을 경제적으로 도우려는 목적이었다"면서 "양육비 미지급자의 명예를 보호하고 피고인을 처벌해 우리 사회에 세울 정의와 공익이 있는가"라고 항변했다.
"만약에 오늘 피고인을 처벌하면 숨죽여 있던 (<배드파더스>에 공개된) 양육비 미지급자들이 이제 달려들어 (명예훼손으로) 추가 고소할 것입니다. 민사상 위자료 청구까지 달려들 겁니다. 깊이 숙고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구 씨는 “한국의 양육비 피해 아동 100만 명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고 최후 진술을 했다.
양측의 주장을 들은 배심원 7명(예비 배심원 1명 제외)은 모두 피고인 구본창 씨에 대해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을 냈다. 14일 오전 9시 30분부터 진행된 재판은 16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양육비 미지급자들의 개인 정보를 공개하면서 대가를 취하지 않았다“면서 "인적 사항을 공개할 때 악의적으로 모욕한 표현은 전혀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재판부는 "양육비 미지급자의 인적 사항을 공개한 건 양육비를 지급받지 못해 고통을 받고 있다는 걸 문제 제기하고 지급 촉구를 목표로 해 공공의 이익으로 볼 수 있다"며 무죄 이유를 설명했다.
구 씨는 무죄 선고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양육자들은 명예훼손 덫에 걸려 그동안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습니다. 양육비 미지급 문제가 단순히 개인 간 채권 채무라면, 오늘처럼 공익성을 인정한 무죄 판결이 안 나왔을 겁니다. 재판부가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사회 전체가 풀어야 할 문제라고 인식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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