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1만 명에 달하는 철도 승무노동자가 시민들과 함께 움직이는 열차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노동조건에 큰 영향을 미칠 운전실 내 감시카메라(CCTV) 설치가 추진되고 있습니다. 안전과 노동에 미치는 영향을 당사자와 전문가의 관점에서 하나씩 짚어보는 세 편의 글을 연재합니다.
국토교통부는 교통사고 상황 파악과 관련 증거를 파악한다는 명분으로 철도 차량 운전실에 영상기록장치(CCTV)를 설치하려고 한다. 사고 발생 시 기관사의 인적 과실(휴먼에러)에 대한 책임을 규명하여 사고 재발을 방지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과연 그럴까?
국가든 민간이든 개인정보를 수집하려 할 때는 수집하는 쪽에서 개인정보 수집의 필요성이 그 부작용보다 크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해야 한다. 단순히 개인정보 수집의 필요성을 증명하는 것만으로 의무를 다한 게 아니다. 인권 침해의 소지가 없는 다른 수단을 찾을 수 없다는 점도 입증해야 한다. 개인정보 수집이 공적 목적을 달성키 위한 최후수단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적 과실은 의도, 부주의, 최소 노력의 심리와 같은 여러 인지적 요인이 작용하여 발생한다. 생각과 다른 동작을 하거나 계획을 잘못 설정하는 착각을 하거나 깜박 잊고 하지 않거나 지름길·생략행동을 하는 등 수많은 요인에 의해 다양한 형태로 실수가 발생한다. CCTV를 설치한다고 해서 사람의 이런 복잡한 마음 상태와 작용을 제대로 파악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CCTV가 인지적 요인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국내외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까닭이다.
인지적 요인의 정확한 파악을 위해선 종사자가 자신의 실수를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는 조직문화 조성이 전제조건이다. 책임추궁 문화에서 벗어나 의도하지 않은 단순 실수는 원칙적으로 면책되고 사고조사·수사가 공정하게 진행된다는 신뢰가 우선 형성돼야 한다. 이런 바탕 위에서 비로소 관계자가 사고 당시의 심적 작용과 상태를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하게 된다.
인간의 심리적 특성에 대한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사고 관계자와 심층 인터뷰를 실시하는 등 사고조사 방법을 고도화하는 것도 인적 과실의 정확한 원인 파악을 위해 필수적이다. CCTV와 같은 기술적 방법으로 사고 원인을 접근해선 인지적 요인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외국의 사고조사에서 심리 전문가가 사고조사에 참여하는 것도 복잡한 인지적 요인에 대한 정확한 파악을 위해서다.
기존 운행정보기록장치 기록으론 인적 과실의 원인을 온전히 파악할 수 없다는 이유로 CCTV의 효과에 대한 설득력 있는 검증 없이 안이하게 CCTV에 기대려고 하는 것은 행정 편의주의적인 발상이자 논리 비약이다. 인적 과실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선 CCTV 외의 대안을 충분히 모색하고 사고 관계 사실을 숨김없이 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CCTV가 아닌 다른 방안에 인적 과실의 원인에 대한 답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철도안전 선진국 사례를 널리 살펴봐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CCTV 설치가 사고 예방에 많은 역기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은 더욱 우려스럽다. 기관사 입장에서 자신의 행동이 일거수일투족 감시당한다고 생각하면 심리적 압박감에 최적의 주의력과 판단력을 발휘할 수 없고 트러블에 말려들지 않을 행동만을 하는 방어적 태도로 일관할 수 있다. 또한 직면하게 될 다양하고 새로운 상황에 창의적으로 대응하기보다 형식적 규정을 준수하는 데 얽매일 가능성이 높다. 실수를 저지른 경우 영상 기록된 것에 신경이 쓰여 또 다른 실수를 불러오는 부작용도 생길 수 있다. CCTV를 통해 실수가 일일이 기록된다면 아무래도 위축되고 수동화돼 실수를 보고하려는 개방적 태도가 질식될 수도 있다. 지금 같은 처벌 지향적인 분위기와 사고조사의 공정성에 대한 불신이 강한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결국 사고조사의 편의를 대가로 사고 예방을 위한 소중한 기회와 수단을 놓칠 수 있다.
CCTV 설치는 그에 따른 기회비용도 생각해야 한다. CCTV 설치에는 경제적 비용, 개인정보 침해 소지 등 많은 비용이 수반된다. 기회비용을 무시하고 대안과 비교하는 대신 CCTV 설치 결정만을 개별적으로 평가하는 건 합리적이지 못하다. CCTV와 같은 감시 강화는 현 정부가 배격하는 신자유주의 정치사조의 일환이라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충분한 논거 없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자료만을 '체리 피킹'하며 CCTV 설치를 밀어붙이는 건 기관사를 실험 대상으로 삼는 것이나 다름없다. 실효성 있는 다른 방안이 없는지 이해관계자, 전문가와 충분히 논의하고 검토하는 책임 있는 자세가 절실히 요구된다. 교각살우의 우를 범할 수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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