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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과 적의 경계가 없는 곳이니, 모두 적으로 간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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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과 적의 경계가 없는 곳이니, 모두 적으로 간주하라"

[팩션] 실록소설 '행군-어느 민족주의자를 위한 변명' <29>

해방 후 왜곡된 역사 속에서, 지금까지의 한일 관계는 효용을 다했다. 그러나 예고된 갈등이었다. 일본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35년, 8.15 광복과 분단체제, 그 이후 70년의 강고한 구 체제 시스템 속에서 우리 내부 깊숙이 침투해 들어와 알게 모르게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그 안에 우리 내부의 모순과 고뇌가 응축되어 있다. 이 모순과 고뇌를 탐구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한 개인사를 통해 시대와 사회를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하는 것이 문학의 영역일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외세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생존이 우선이었던 관계로 자기 자신을 앞세우지 못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잊어버렸고 안일했다. 그러다보니 역사는 박물관에 소장된 문화재인 양 화석화되고, 현대의 역사는 더군다나 묻혔다.

기자 출신 이계홍 작가의 실록소설 '행군-어느 민족주의자를 위한 변명'은 그런 배경에서 나왔다. 이 소설은 2016년 10월호부터 2019년 6월호까지 문예월간 '월간문학'에 연재되었던 소설이다. 월간문학 연재를 마친 뒤 많은 부분을 수정 보완해 프레시안에 재수록한다.

이 연재물은 이른바 '팩션(Faction)'이다. 팩트와 픽션의 사이 어디에서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인 '논픽션' 형식의 소설이다. 필자는 취재의 일환으로 일제강점기 말 일본 육사 출신 젊은 생도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어지러운 시대, 그 안에서 제국주의 광풍에 휘말린 젊은이들의 시각을 잡아내려 했다. 이계홍은 "일본의 극우 정권이 일제강점기의 역사적 사실들까지도 왜곡하는 역사 모독에 대해 하나의 담론시장을 형성하자는 데 목적이 있다"고 했다. '행군-어느 민족주의자를 위한 변명'은 총 33회로 나뉘어 연재될 예정이다.(편집자)


제29장 삶은 고구마

부대 앞에 보퉁이를 든 웬 노파가 바지런히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노파는 잔뜩 굽은 허리를 지팡이에 의지한 채 철조망이 처진 부대 앞길을 왔다갔다 하는데, 조급해하는 빛이 역력했다. 노파가 이윽고 잰 걸음으로 위병소(衛兵所)로 다가갔다.
“펜안하우꽈. 우리 양순돌이를 재게재게 찾아옵서게(빨리빨리 찾아오라).”
얼굴은 온통 주름살 투성이고, 이가 모두 빠져서 말을 할 때마다 노파는 합죽이처럼 입을 오물거렸다. 눈엔 눈꼽이 끼어있어서 불결하고 비위생적인 모습이었다. 마귀 할망구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았다.
“뭐라구요?”
위병이 노파의 말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물었다.
“드르멍드르멍 왔서양(서둘러 왔어). 노꼬메에서 왔어.”
“노꼬메라니요?”
“게메 양 경 말해시민(그냥 그렇게 말했으면)양순돌이영.”
“양순돌이가 뭐지요? 사람 이름입니까?”
“만나게 경 해시민(그냥 했으면) 을매나 좋고 마씀. 노꼬메 산막굴이영.”
노파는 동문서답이었다. 위병이 답답한 나머지 제주 출신 병사를 불러서 통역으로 세웠다.
“저 할머니 뭐라 말하나 들어봐라.”
제주 출신 병사가 노파를 한쪽에 세워놓고 그녀의 말을 들었다. 한참만에 돌아온 그가 말했다.
“손자가 집에 들르기로 했는데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애월면인지 한림면인지 노꼬메 산막에서 산다는 노파입니다. 손자는 잠깐씩 집에 와서 헛간의 재를 밭에다 져다 부리고, 삶은 고구마를 한 보자기 싸서 부대로 돌아가는데, 집에 오기로 한 날짜가 훨씬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고, 요근래는 꿈자리가 사나워서 찾아왔다고 합니다.”
“군대가 마실 다니는 곳이가?”“어쨌든 할머니는 손자가 군에 입대한 뒤로 걱정이 많다고 합니다. 아들은 남자들과 함께 산으로 도망가 숨고, 손자마저 오지 않으니 걱정을 하는데, 마을 사람들은 군에 들어간 것이 안전하다고 말해줘서 걱정을 줄이면서도 소식이 없으니 답답해서 찾아왔다고 합니다.”
“야, 이 새끼야, 군대가 사랑방 드나드는 사사로운 곳이냐고? 당장 보내!”
위병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제주 병사가 노파에게 다가가 돌아가라는 손짓을 했으나 노파는 지팡이로 허공을 가르며 위병에게 잰 걸음으로 다가와 따졌다.
“내놓으라 마씸. 내 아덜 손지 메누리 다덜 모연 밤새낭 놀이허여도 즐거웠다영(아들 손자 며느리 다들 모여서 밤새도록 놀아도 즐거웠다). 한디 아덜은 숨고, 메누리는 정신 웂고, 손지는 소식이 웂다. 잡아갔시민 보내주어야지. 보내주기 싫으면 보여주기라도 해야지 왜 안보여주낭.”
대책이 없다고 생각했던지 위병이 비상경비 전화로 본부로 연락을 취했다.
“제주도 노꼬메 산막에서 왔다는 할머니가 양순돌 병사를 면회 왔다. 양순돌을 부대별로 찾아서 정문 위병소로 급히 보내주기 바란다.”
전화를 끊은 한참 후에 비상전화가 걸려왔다.
“양순돌은 탈주병으로서 붙들려서 총살당했다. 돌려보내라.”
그리고 찰칵 전화가 끊겼다. 위병은 주춤했으나 곧바로 마음을 수습해 노파에게 말했다.
“손자는 한라산 깊숙이 작전에 들어갔습니다. 한번 들어가면 몇 달씩 못나옵니다. 돌아가시오.”
노파가 못나온다는 말을 알아듣고 한동안 혀를 끌끌 차더니 보퉁이를 내밀었다.
“멕이라 마씸.”
보퉁이엔 찐 고구마가 가득 들어있었다.
“네, 할머니, 우리가 부대를 찾아가서 전달하겠습니다. 맡기시고 마음 놓고 돌아가세요.”
위병이 할머니에게 말하고 제주 병사에게 지시했다.
“야! 네가 할머니를 찻길까지 모셔다 주고 와라.”
병사가 노파를 부축해 큰 길로 나갔다. 그리고 그 병사는 돌아오지 않았다.
밤이 깊자 병사 둘이 죽은 개 한 마리를 끌고 왔다.
“이것들이 말입니다. 사람 두상을 물고 다니고 말입니다. 그래서 총으로 쏴죽였다 말입니다. 보신탕거리로 좋을 것 같아서 메고 왔다 말입니다.”
“야, 이 새끼야, 사람을 뜯어먹은 개를 삶아먹는다고? 이런 개새끼가 다 있나? 당장 버리지 못해?”
위병소는 밤이 되자 긴장감이 감돌았으나, 이런 엉뚱한 일도 자주 벌어지고 있었다. 사람 머리를 물고 산과 들을 쏴다니는 개들을 뒤쫓다 보니 병사들은 복수를 하는 심정으로 쏘았고, 때로는 산에서 불에 구워먹기도 했다. 누구나 풀어지고 정신줄 하나씩은 놓아두는 분위기였다.

연대는 공기가 흉흉했다. 소대 병력이 탈영하고, 그중 21명이 붙잡혀 집단 즉결처분되고, 나머지는 입산해버렸다는 것은 이유야 어떻든 전 부대원을 공황 상태에 빠뜨렸다. 바로 엊그제까지만 해도 구보를 같이하는 가운데서도 읍내 갈보집을 찾자고 질퍽한 농담을 나누고, 담배 한 가치로 우정을 함께 하던 전우가 일시에 사라져버리니 어떤 누구도 딱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도대체 이것이 현실인가 싶자 누군가 건드리기만 하면 금방 폭발해버릴 것같은 긴장감이 부대를 억누르고 있었다.
지휘관들 역시 혼란 상태에 빠졌다. 집단 탈주도 문제지만, 그중 반 수가 무장자위대에 합류해버렸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마을로 도망갔다면 모르지만 탈주병들이 무장자위대에 합류했다는 것이 견딜 수 없는 모멸감을 주었다.
“제 정신이 박힌 거야?”
박진경 연대장은 분노를 참지 못했다. 군 기강이 엉망인데다 피아 구분도 못하는 군대라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자 올 데까지 온 것이라고 그는 단정했다. 그가 그동안 강공 토벌 드라이브를 편 것도 이런 해이된 군 기강을 바로잡자는 데 한 원인이 있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탈영 사건은 강경 토벌작전에 대한 반발이었다. 제주도의 특수한 사정을 모르고, 이민족 진압하듯 거칠게 물리력을 행사하니 제주 출신 병사를 중심으로 저항이 생긴 것이다. 바로 앞의 연대장이 화평회담을 가졌고, 그런 분위기가 무르익어서 이제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데, 정반대의 길로 가니 병사들은 혼돈에 빠졌다.
이런 사정을 신임 연대장은 간파하지 못하고 있었다. 진압이라는 실적주의에 빠져든 인상이었다. 군 조직이 군대답지 않게 이완되고 풀어진 것이 해이된 군기 탓이라고 여겼다. 그는 며칠 후 긴급 지휘관 회의를 소집했다.
“내가 부임하자마자 이런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났다. 나에 대한 도발인가. 토벌에 대한 반기인가? 과연 11연대(구 9연대)는 적도(敵徒)와 내통하고 있는가?”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침묵이 흐르자 박 연대장이 다시 소리쳤다.
“수습책을 내놓기 바란다.”
그러나 뽀족한 수가 나올 리 없었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이때 채명산 소위가 나섰다.
“집단탈영 사건은 수습될 때까지 외부에 노출되어선 안됩니다.”
“이 중대한 사건이 드러나지 않겠는가. 감춰진다고 해서 감춰지는가. 중앙에 직보할 것이다.”
“드러나지 않을 수야 없겠지만 가능한 빨리 사건을 수습해야 합니다. 그때까진 기밀을 유지해야 합니다.”
“무기 반출 상태는?”
“병기고와 탄약실은 이상 없습니다. 트럭을 회수해 와서 대량 무기 반출을 막았습니다. 화기는 탈주병들이 가지고 나간 구구식 총들 정도입니다.”
“병력을 투입해서 주변 산지를 수색하라. 탈주병들이 은신해있을 것이다. 보건대 폭도대에 투항하진 않았을 것이다. 잔여 병력은 전원 작전에 들어간다. 토벌을 병행한다. 적정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척후활동을 강화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선 강경 토벌작전이 만능이 아닙니다.”
김이구 소위였다.
“무슨 개소리야? 이런 때일수록 강경작전으로 내부 결집력을 강화하는 거다. 당장 평정하지 못하면 수습이 안돼. 쇠뿔은 단 김에 뽑으라고 하지 않았나?”
방법론상의 차이였다. 연대장의 명령은 지상 명령이고, 병사들 탈출은 강경토벌에 보다 확실한 명분을 주었다. 밀어붙여야 할 당위성을 찾은 것이다.

탈영병 집단 처형 이후, 허무의 침묵

전체 연대병력이 완전군장한 채 연병장에 집결했다. 병력은 미국에서 갓 들여온 압도적인 화기와 병기, 위세등등한 기동력으로 무장하고, 바닥까지 완전히 쓸어버릴 기세였다. 수색-섬멸작전은 당장 효과가 발생했다. 중산간 마을에서부터 해안 마을에 이르기까지 가리지 않고 밀어붙이자 주변은 말끔히 정리되었다.
그 과정에서 물동이를 이고 가던 여인이 고샅길에서 배에 총을 맞고 즉석에서 죽었다. 어린아이가 울부짖으며 동구 밖으로 달려나가다가 포탄을 맞고 머리가 사라졌다. 말뚝에 묶인 소가 엉덩이가 날아가 죽었다. 적은 숨기만 할 뿐, 나타나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삐라가 한라산 아래로 눈발처럼 내렸다. 나풀나풀 내리는 삐라가 정말 눈발 같았다. 산으로 들어간 사람이 투항하고, 투항하면 먹을 것 입을 것을 주고, 전비(前非)를 따지지 않겠다고 삐라는 약속했다. 그러나 내려오는 사람은 없었다. 두 번 당하지 않겠다는 태도들이었다.
종전의 작전은 병력을 풀어 토끼몰이하듯 제한된 산지나 지목된 마을을 훑어가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지역 제한없이 빗자루로 쓸고 가듯 작전을 전개했다. 무고한 인명의 희생이 컸다. 이는 대규모 전쟁만을 치른 미국식 군사전략 문화에서 비롯된 전술이었다. 게릴라 전법은 미국식 군사전략과는 거리가 멀었다.
주민보호 작전보다는 무력에 의존하는 수색·섬멸 작전으로 전환하니 사람이 많이 다쳤다. 그리고 언제나 선제공격이었다. 상대방이 움직일 것이라는 예단 아래 미리 들어가 박살내버리는 작전이었다. 우수한 장비와 신병기로 쓸어버리니 소규모 게릴라전이나 비정규전, 땅굴작전 따위는 명함을 내놓을 수 없었다. 마을에 남아있는 사람들마저 모두 놀라 산으로 들어가고, 토벌대는 빈 마을을 불지르고 다른 마을로 이동했다.
“양민과 적의 경계가 없는 곳이니, 모두 적으로 간주하라.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울 수밖에 없다.”
박진경 지휘부는 이런 전쟁 철학을 갖고 있었다. 그 배후에 미군의 지원이 있었다. 딘 장군이 엄명을 내려 박진경을 제주로 파견한 것인 만큼 화력을 전폭 지원했다.
병사들은 총기 다루는 법이 서툴렀다. 교육량이 절대 부족한 데다 내키지 않은 출동이라는 듯 은연중 출동에 대한 반감도 갖고 있었다. 병사들 7,80%가 제주도 출신이고, 앞의 연대장은 무장 폭도대와 우호적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적대적이지도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경찰과 무장폭도대가 격돌해 경찰이 궁지로 몰려도 출동을 자제했고, 때로는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경찰에 대한 반감으로 무장폭도대와의 격돌을 고소하게 여기는 병사들도 있었다. 무장대를 적으로 간주하지 않으니 강경 진압에 심정적으로 거부하는 병사들도 있었다. 강경토벌을 가할수록 지휘부에 대한 반감과 폭도대에 대한 동정심은 대칭을 이루는 분위기가 연대 내에 감돌고 있었다.
“군대를 왜 이 따위로 만들어놨어!”
박진경 연대장은 대단히 불만이 컸다. 그가 볼 때 이것은 군대 조직이랄 것이 없었다.

오민균 대대장은 2개 중대를 이끌고 수색작전에 나섰다. 수색작전은 각 중대장 인솔하에 병력을 풀어 산지를 훑어가는 방식이었다. 탈주병들이 무장대와 힘을 합쳐 타격해올 경우 속수무책이 될 수 있다. 미리 차단하고 일망타진할 계획이었다. 눈치 빠르고 전쟁 경험이 있는 김이구 소위와 채명산 소위가 각기 소대를 이끌었다. 김이구 소위가 뒤처져 오민균 대대장에게 따라붙었다.
“무슨 할 말있나?”
낌새를 알고 오민균 소령이 물었다.
“대대장님, 이건 아니지요.”
“뭐가?”
“대대장님의 가치관을 알기 때문에 터놓고 말하겠습니다.”
“내 가치관이 뭔데?”
“굳이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지금 연대장이 벌이고 있는 수색·섬멸 작전은 주민을 몰아붙일 뿐입니다. 반감이 안나오겠습니까. 이러다 더큰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주민보호 작전이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채명산 소위가 그들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김이구가 내색하지 않고 하던 말을 계속했다.
“우수한 장비와 최신병기로 당연히 우세한 전쟁을 치르지만 이길 수 있을까요? 화공작전만으로 이긴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하지만 주민 생활터전이 상실되면 전 주민이 게릴라가 될텐데요? 주민 학살이 반정부·반미감정을 극대화하지 않겠어요?”
“전쟁을 그런 방향으로 끌고 가고 있지 않나?”
“그렇지요?”
동의를 구한 듯 김이구가 자신있는 태도를 보였다. 오민균은 화평회담 실패 이후 좌절을 맛보고 있었다. 의욕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강요된 침묵만 있을 뿐이야.”
“그렇지요? 굴복하지 않지요. 이 따위 승리가 무슨 의미가 있나요? 지금 전쟁 개념으로 인식하는 태도가 잘못된 거예요. 미국의 사주를 받아서 우리가 멋모르고 싸우는데, 지금 서로 험악하게 총질하다 보니 왜 싸우는지도 모르고 부딪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성격 규정을 한다구?”
“그렇습니다. 이건 이데올로기적 성격보다는 탄압에 대한 항쟁이라고 봐야지요. 폭동, 빨갱이, 공산주의자로 덧씌우는 경찰과 청년단 등 극우세력의 색깔론입니다.”
그들의 뒤를 따르며 듣고 있던 채명산은 장교단이 이렇게 생각이 다를 수 있는가 싶어 의아스러웠다. 이들의 대화를 들으면 그가 왜 제주에 투입되었는지를 알 수 없었다. 박 연대장이 자신을 부대에 박아놓은 것아 이런 이질적인 생각을 가진 군인들을 적발하라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지금까지 개별 보고를 한 적은 없었다. 의심스럽긴 해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 보았다.
“미국이 종전 관리를 일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2차 대전 종전 이후 조선반도에서 미국의 패권주의가 거칠게 작동되고 있어요. 왜 하필이면 제주도입니까. 가장 약한 고리를 뜯는 것으로 지배정책을 펴겠다는 방식 같으니까 옹졸하죠. 미국의 덩치에 어울리지 않아요. 세계질서를 이딴 식으로 끌고 가도 됩니까? 평화를 지키기 위해 최신 화기를 가지고 제주에 들어왔다? 이런 역설이 어디 있습니까. 평화를 만드는 것은 평화로운 이성과 관용이지, 저주와 증오와 분노로 만드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김이구는 열을 뿜기 시작했다. 세계 질서란 뭐고, 미국의 간섭은 또 뭔가. 채명산은 의구심을 가졌다. 정말로 이 사람이 빨갱이가 아닌가?
“국내 정치를 장악한 세력이 파쇼로 몰고 가고, 그런 가운데 민생은 해결된 것이 없습니다. 미국은 이들을 비호하고, 이들은 일제보다 더 험악한 폭력정권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러니 주민들 사이에 불만이 고조되고, 그 틈사귀를 노려서 공산세력이 발호하죠. 미국이 이것들을 키우고 번식시키고 있습니다. 자꾸만 키워요. 꼭 그쪽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처럼....”
“전쟁 말고 평화를 정착시키자는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미국이 전쟁을 절실하게 원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납득이 안갑니다.”
채명산이 이의를 달았다.
“하지만 이 전쟁은 이겨도 손해, 져도 손해야. 왜 이런 전쟁을 하지? 미국은 자신들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다 뿐, 내부자들끼리 총질하도록 이간질하고 있잖나. 소총수들은 멋모르고 총을 쏘지. 전쟁을 하는 인간 개개인은 본능적이고, 충동적이고, 야만적이기 때문에 말단은 본능적으로 저 살자고 총질을 하는 거야.”
그리고 그는 오민균에게 동의를 구하듯 말했다.
“특정 세력과 특정 집단은 이 전쟁에서 이겨도 이익, 져도 이익입니다.”
“모두 손해란 말은 이해하지만, 져도 이익이란 말은 이해하기 안갑니다.”
채명산이 물었다.
“전쟁은 생명을 걸고 하는 도박이야. 그런데 여기에 환호하는 사람들이 있어. 전쟁의 비참함을 걸고 이익을 챙기는 집단이야. 전쟁에 의한 피해는 송두리째 국민에게 돌아가지만, 그중 가장 피해를 입는 사람이 어린아이와 여자들이지만, 이런 와중에도 이익을 챙기는 집단이 있다구. 그들은 피해의 타자화, 이익의 사유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지. 그래도 모르겠나?”
“그렇게 말하니 알겠습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에 머리 굽히고, 같은 조선놈을 노예 취급했던 부일 세력이 이익을 편취했습니다.”
“그렇다니까. 경험상 손해본 것이 없고, 오히려 재미를 보았으니 전쟁을 부추기고 조장하는 거다. 민족의 미래를 향한 통찰도 없고, 자신을 향한 성찰도 없으며, 오직 현찰만 챙기는 이권만 있는 거지. 그런데 그 세력이 너무 비대하고, 힘이 강고해서 나라의 바른 진운을 바로잡기가 어렵게 돼버렸어. 여기에 외세가 지원해주니 말이야.”
오민균은 듣고 있다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것이 있지. 팔레스타인 출신의 어느 학자가 만들어낸 개념인데, 간단히 말해서 서양사람들이 바라보는 동양이라는 편견을 말해. 서양문화 속에서 동양은 열등한 존재로 재현된다는 것이지. 19세기와 20세기 서세 동점, 즉 서양의 아시아 식민지배는 그런 것으로 정당화되었어. 동양은 열등하고 무능하고 게으른 존재이며, 두뇌나 신체에서 뒤떨어졌기 때문에 지배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이지. 서양과 동양은 다르고, 그 차이는 동양인은 사고방식에서부터 행동양식까지 저열하다는 것이야. 오리엔탈리즘적 사고는 동양에 대한 서양의 편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지. 타자로 분류될 수 있는 모든 집단과 개인에 대해 나타날 수 있는 편향이야. 일본은 일찍 문호가 개방되어서 서양과 동등한 위치에 있고, 그후 서양과 동등하게 식민지 약탈을 강행했지. 그들은 동양인이면서 동양인이 아니라며 동양인을 멸시했어. 그런데 이것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야. 일제에 부역해 명예와 부를 축적한 자들이 일반 백성을 축생 취급을 하면서 때마침 미국인이 들어오자 또 미국인을 빨면서 자신은 조선인이 아니라며 조선 국민을 축생으로 몰아가는 거야. 일제보다 더한 차별로 내부 식민지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야.”(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일부 인용)
“너무 이분법적인 재단 아닙니까?”
채명산이 이의를 달았다.
“그런 편견의 핵심을 우리는 똑바로 봐야지. 동양을 수구 퇴영적이며 비합리적이고 비정상적인 인종으로 보는 지적을 봐야지. 그것은 일견 맞아. 우리가 잘못된 우상을 만나 헤매고 있으니까. 그리고 시정할 안목이 없으니까. 서구사회라면 진작에 우상을 파괴했을 거야. 우린 정신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우상의 지배를 받았어. 부수진 못했지.”
채명산은 지금 당장 적을 죽여야 하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 서있는데 관념적인 것에 속박되어 있다는 것으로 느꼈다. 당장 현실의 해답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다.
“지금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가 내전을 겪고 있지. 서구 열강과의 전쟁이야. 미국은 전승국의 선물로 식민지 나라를 물려받아서 군사력을 투입하고 있다. 그러나 역내 역사나 전통, 문화, 정서에 아랑곳없이 누르고 강압하려고만 해. 공산주의 팽창에 대비한다고 하지만, 사실 이 시간 현재 소련은 자기관리도 하기 힘든 게 현실이야. 미국에 의해 끌려가면서 판을 짤 뿐이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베트남이란 나라가 있지. 베트남을 식민 지배한 프랑스가 세계 2차 대전으로 힘에 겨울 때 일본이 재빨리 베트남을 점령해버렸어. 미국이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하자 패전한 일본이 물러가고, 같은 전승국인 프랑스가 다시 연고권을 주장하며 베트남을 물려받는데 프랑스는 독일과의 전쟁에서 힘이 소진되어서 베트남 독립 인민전선을 부술 수 없었어, 그래서 미국이 개입해서 대신 싸워주지. 베트남도 우리처럼 국토를 양단하려고 하고 있지. 베트남 사회민족주의자들이 총선거를 통해 자본주의가 되든 사회주의가 되든 민의로 통일국가를 세우자고 미국과 회담을 갖고 합의했는데, 미국이 밀릴 것 같으니까 어느 순간 합의문을 소각해버렸어. 미국은 석유 메이저와 군산 복합체가 나라를 이끌어가는 양대 기둥이야. 이들에 의해 대결주의보다 평화주의를 선호하는 지도자는 암살되거나 축출되지. 세계의 에너지 자원을 독점하기 위해 분쟁지역을 만들고, 팍스아메리카나를 확장하기 위해 전비를 무한 사용하는 나라야. 그중 지원국의 일파에게 전쟁을 사주하고, 전쟁에 참여하도록 독려하지. 이때 전쟁을 수행하는 자들은 애국자로 포장되고, 전쟁을 할 때나 멈출 때나 손해를 보지 않지. 전쟁은 대다수 인민들에게 항상 손해인데도 그들의 세뇌에 순치되어 무한 피해자인 줄 모르고 총칼을 들고 나서서 맹렬히 내국인을 죽이지. 바로 내전이야. 전쟁 대역자들은 검은 머리 외국인이야. 그들은 벌써 양놈이 되어서 자국의 역사, 민족, 전통, 문화 따위를 열등하고 촌스럽다고 여기지. 모든 기준은 차별에 기반한 인식이야. 이런 것이 모순을 만들고, 대결을 가져오지. 가진 자와 못가진 자, 배운 자와 못배운 자, 지배층과 피지배층, 상류층과 하류층 따위... 서양이 동양을 바라보는 기준을 그들도 그렇게 적용하지. 지배층이란 이름으로 국민을 종으로 보는데, 이런 현상은 식민지를 겪은 나라에서 똑같은 방식의 통치구조로 인식되어버렸어. 부숴야 하는데 부수기엔 너무나 그들이 막강해...”<이상 위키백과 등 인용>
그때 총소리가 났다. 한두 방씩 쏴재끼는 듯하다 연달아 총소리가 나더니 이윽고 콩볶는 듯한 총소리가 골짜기를 울렸다. 숲으로 몸을 숨기는데 하사관 둘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한 하사관은 눈이 크고, 다른 하사관은 눈이 째져서 다부진 인상이었다.
“무장폭도대와 붙었습니다.”
“어느 소속인가”
“4대대 병력입니다. 박진경 연대장 각하가 직접 인솔했습니다. 사격을 피하느라 은신처를 찾았는데 그때 무기고를 발견했습니다.”
“무기고? 건너편 산 비탈 쪽인가?”
채명산이 하사관에게 물었다. 지난번 발견했던 일본군이 버리고 간 무기고를 말하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가 상세히 지형을 말하자 과연 맞았다.
“대대장님, 우리가 발견했던 것입니다. 아직 수습해오지 못했습니다.”
“알았다. 채 소위와 김 소위는 총소리 나는 쪽으로 병력을 인솔해 가라.”
그리고 오 소령은 두 하사관을 불러세웠다.
“운반 병력은 충분하겠지? 무기를 수습해 가자.”
오민균은 두 하사관을 앞세우고 골짜기로 내려갔다. 과연 소나무 숲에 가려진 바위동굴에 무기고가 있었다. 그는 분대 병력을 차출해 띠로 멜빵을 만들어 구식 총과 탄환을 매도록 했다. 일인당 50kg을 맸으니 노획량은 상당했다. 그는 능선에 올라 귀대 지름길 방향을 살폈다. 이때 무기고 뒤쪽에서 총소리가 빵빵빵 연거푸 났다. 한 병사가 총에 탄환을 재어 하늘에 대고 발작하듯 마구 쏘아대고 있었다.
“엎드려라!”
오민균이 명령하자 대원들이 일제히 엎드렸다.
“다 죽여버릴 거야! 병사들 죽이면 다냐? 개새끼들아!”
하사관이 기어서 오민균에게 다가왔다.
“돌아버렸습니다. 총소리가 나면 저 지랄입니다. 친구도, 동생도 죽었다고 합니다.”
“그 자들이 탈주병이었나?”
“그렇습니다. 그래서 완전 실성했습니다. 쏴버릴까요?”
“내가 알아서 하겠다. 귀관은 병력을 이끌어라.”
하사관이 내려가는 사이 난동 병사가 총을 겨눈 채 분대병력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니 새끼들 다 죽일 거야. 다 죽일 놈들이야, 하하하.”
그러면서 탄창을 철거덕 재더니 한 병사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그러나 그가 곧 나무토막처럼 앞으로 벌러덩 나동그라졌다. 쓰러진 채 몸을 발발 떨더니 그대로 잠잠해졌다. 오민균이 권총을 뽑아들어 그를 쏘아버린 것이다. 그가 골짜기로 내려가서 대원들에게 말했다.
“노획 무기 운반자는 그대로 무기를 옮겨라. 능선을 넘어서 산 아래 밭을 가로질러 연대본부로 가라.”
그리고 눈이 째진 하사관에게 명령했다.
“무기 운반 병력을 귀관이 인솔하라. 나머지는 나를 따르라.“
노획 무기 운반자들이 산을 넘어가고, 그는 잔여 병력을 시켜 시신을 묻고 건너편 산으로 이동했다. 각 중대 작전 현황을 살피고 귀대하자 저녁 무렵이었다. 그때까지 무기 운반자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빠른 걸음이라면 한 시간이면 족히 들어오는 거리였다. 네 시간이 지나도록 귀대하지 않고 있었다. 사고가 났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그는 부관을 대동하고 무기 운반병들의 행선지를 더듬어갔다. 은신 무기고까지 다달았으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몇 시간 전까지만해도 콩볶듯 총소리가 요란했던 골짜기는 고요 적막했다. 그는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귀대했다.
채명산 소위가 침통한 얼굴로 그의 앞에 나타났다.
“김이구 소위가 작전 중 전사했습니다.”
오늘은 유독 사고가 많다는 것을 느끼고 그는 한동안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사물이 더욱 또렷하게 나타났다. 김이구는 직속 부하는 아니었지만 그를 몹시 따랐다. 게다가 함께 수색작전에 나갔다가 변을 당했으니 마치 자신의 실수로 죽음으로 이끈 것같은 아픔이 왔다.
“어느 지점이야?”
“폭도대 진지 바로 앞입니다. 놈들의 저항이 심했습니다.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저놈들이 가져가면 무슨 개망신이야!”
그는 손수 지프를 몰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오민균이 나가는 것을 보고 채명산이 급히 연대장실로 향했다. 연대장 역시 작전에서 금방 돌아왔는지 먼지 투성이의 머리를 거울을 들여다보며 털고 있었다.
“연대장 각하, 지금 오민균 대대장이 지프를 몰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뭣 땜에?”
“작전 때문입니다.”
“채 소위 혹시 나한테 속이는 게 없나?”
박 연대장은 오민균 대대장을 의심하고 있었다. 채 소위도 그를 다르게 생각해왔으나 이간질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에 관한 동태는 직보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달리 말했다.
“해박한 군대지식과 훌륭한 장교 덕목을 갖추었습니다.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투철합니다. 일본 육사 지망한 것을 후회하고, 지금부터라도 정신 차리자고 했습니다. 존경스런 지휘관입니다.”
“그 자는 꼭 엘리트 정신 티를 낸단 말이야. 그런 현학적인 언어 가지고 전쟁터에서 뭐하자는 수작이야? 내가 쏘지 않으면 내가 죽는 현장인데... 김이구 소위 보아라. 그도 민족주의자입네 했다. 그런데 적의 총탄에 사라지지 않았나. 시신은?”
“그것 때문에 오 소령이 나갔습니다.”
오민균 소령이 김이구 소위의 시신을 지프 뒷 트렁크에 싣고 영내로 들어왔을 때는 한 밤중이었다. 병영에 시신이 안치되자 비로소 그의 전사가 실감이 되었다. 영내가 웅성거리더니 병사들이 울었다. 그가 병사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시간 노획 무기 운반 병사들이 고양이처럼 몸을 웅크리며 영내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빈 손이었다. 보고를 받은 오민균은 그러나 아무 일 없는 듯이 그들을 소속 부대로 배치하고 연대장실로 올라갔다.
“연대장 각하, 노획한 무기를 반입해오는데 중간에 탈취 당했습니다.”
“뭐라고?”
“동굴에 은닉돼있는 것을 수색병들을 동원해 일부 운반해오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인솔 하사관이 대원들을 협박해 무기를 탈취해서 도주했습니다. 일부는 하사관을 피해 도망오는데 다 같이 당한 것으로 하자고 하고, 나머지 무기들을 웅덩이에 빠뜨리고 왔다고 합니다.”
“멋대로 노는군. 그런 당신 도대체 지휘 통솔하고 있는 거야, 뭐야?”
성질을 참지 못하고 연대장의 주먹뺨이 날아왔다. 그는 부동자세로 우뚝 서서 주먹을 맞았다. 상관으로부터 기합을 받기는 처음이었다. 일본 육사에서도 이런 기합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빠트린 무기는 내일 아침 회수해 오겠습니다.”
“당신은 안돼. 내 당신 알지. 통위부 정보국 김창동 소령 아나?”
순간 오민균은 긴장했다. 그리고 화가 치밀었다.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 그의 존재가 화인처럼 와서 찍힌다. 운명적인 무엇이 작용하는 느낌이 들어서 오민균은 소름이 쳤다. 연대장이 엉뚱한 말을 한 것을 후회하는지 곧바로 다르게 말했다.
“내가 충동을 못이기고 구타한 것은 내 과오요. 사과하오.”
“저도 잘한 것은 없습니다. 수색 중 한 병사를 쏘아 죽였습니다.”
“알고 있소. 잘한 것은 아니지만 잘못한 것도 없소. 걱정 말고 돌아가시오.”
채명산 소위로부터 미리 보고를 받아서 연대장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대대장은 여러 병사들을 구한 것이다.
며칠 사이에 일어난 사건들로 오민균은 심히 지쳐있었다.
박진경 연대장도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그는 부대 편성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모두 이질적인 구성원들로 짜여져 있었다. 기존 제주 토박이 병력에 5연대 1개 대대가 합류하고, 2연대 대대병력이 들어오고, 4연대, 8연대 병력도 섞였다. 사고 덩어리들을 징벌 차 보내버린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잡다하게 혼합 편성되니 조직이 잡탕이 되어버렸다. 숫자만 채웠을 뿐,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편성이 되지 못하니 명령체계나 규율이 잡힐 리 없었다. 장교단 또한 각양각색이었다. 강경파, 온건파, 협상파, 무색파, 무능파, 거기에 제주 본토박이와 육지 출신... 협상에 미련을 두기도 하고 도망갈 궁리를 하기도 하고, 멋모르고 먼지처럼 아무렇게나 휩쓸려 다니기도 하고.., 중구난방이었다. 그중 신경 거슬리게 하는 장교가 오민균이었다.
“건방진 자식...”
박 연대장은 정보국 김창동 소령으로부터 제보를 받았다. 김종석, 최남근. 박정희 조병헌, 이정길, 홍태화, 이성유, 이상진, 김학림, 최학림, 오민균... 주로 일본 젊은 육사 출신들로 구성된 반군 조직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쁘게 보니 모든 것이 거슬렸다.
오민균은 그대로 박 연대장을 신임하지 않았다. 탈주병 중 체포된 20여명 전원을 총살해버린 것이 지휘관으로서 자격이 있는가를 의심케 했다. 죄의 경중이 있을 것이다. 강제적으로 끌려간 자도 있을 것이고, 덩달아 따라나선 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처단했다. 가혹한 징벌은 필연코 반작용을 가져온다. 저항하거나 자폭하거나... 토벌작전에 나가도 성과를 내기는커녕 도망가는 병사들이 속출하는 것으로도 그것은 입증되었다. 이런 것일수록 절망과 허무주의를 짙게 병사들 가슴 속에 깔아놓고 만다.
지루하고 답답한 나날이 지속되었다. 기강을 잡기 위해서도 토벌이 강행되었지만, 동력은 현저히 약화되었다. 박 연대장 혼자 고군분투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것을 보상이라도 하듯 윌리엄 딘 미 군정장관이 박 연대장에게 1계급 특진명령을 내리고, 대령 진급을 통고했다.

두 발의 총성

1948년 6월 17일 밤. 제주 읍내 고급 요리집 옥성정에서 박진경 연대장의 대령 진급 축하연이 열렸다. 요리집에는 도지사를 비롯한 도내 유지급과 미군 고문관, 경찰청 간부, 군 간부들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미군 고위급 장교와 새로 편성된 11연대 간부들이 들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일인 양 뻐기는 모습이었다.
한복 차림의 예쁜 여자들이 술 시중을 드는 가운데 주흥은 무르익어 갔다. 참석자들은 연대장의 전과를 칭송했고, 빨리 혼란을 끝장내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루하게 상황을 끄는 것이 지긋지긋하다고 했다. 그러는 가운데 모두들 거나하게 취했다.
박진경 연대장은 술을 잘 하지 못했다. 주흥이 한창 무르익어갈 무렵, 그는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토벌과 선무작전으로 정신적·육체적 피로가 겹쳐 조금이라도 쉬고 싶었다. 숙소에 돌아와 침소에 드니 자정 무렵이었다. 침소는 연대본부가 있는 제주 농업학교 교장 관사였다.
새벽 세 시쯤 되었을까, 연대장 침소에서 갑자기 빵빵, 두 발의 총소리가 났다. 당직 사령이 졸다가 달려갔을 때, 박연대장은 야전 침대에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었다. 위생병이 언제 왔는지 연대장의 피묻은 얼굴과 가슴을 씻어내며 울고 있었다. 총탄은 그의 심장과 머리를 관통했다. 두개골이 박살나 있었다.

11연대 2대대 2중대장 문상길은 기회가 왔음을 직감했다. 명분은 분명히 섰다. 양민·폭도 구분없이 벌이는 강경 토벌작전은 물론, 사랑하는 병사 20여명을 일거에 즉결처분해버린 것은 자기 행동을 정당화시켜주는 확실한 근거가 되었다.
문상길의 계획은 착착 진행되었다. 지난번 지방 올구로부터 비판을 받은 이후 그는 묵묵히 일을 추진했다. 누구의 지시를 받는 위치가 아니라 지휘하는 위치였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중앙 올구와 지방 올구는 철저히 구분되었고, 연락망 체계도 달랐다. 지원을 받는 자는 조직 내부 그의 직속 뿌락치였다. 다만 연대 내의 오민균 소령에게 자문을 구하고 싶었다.
오민균은 양민 토벌에 회의감을 갖고 있었고, 강경 지휘부에 일정 부분 반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암묵적 지지자로 삼았다. 전임 김익창 연대장 휘하에서 화평회담을 주선한 참모로 활동해 왔다는 점도 그를 고무시켰다. 김익창 연대장이 제주를 홀연히 떠나고, 후속 조치를 취하기 위해 5.10선거가 있던 날 김달삼 측과 교섭했다는 소문도 그를 신뢰하는 바탕이 되었다. 부대 내에 그런 지휘관이 있다는 것은 알게 모르게 힘이 되었다.
문상길 중위는 정보계 선임 양회천 상사를 불렀다. 그가 부대 내에서 아는 자는 그 뿐이었다. 상부 올구를 통해 양회천을 활용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의 명령을 받기 전에 그도 벌써 결행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심전심 통하는 바가 있어서 두 사람은 더욱 자신감을 가졌다.
“한 사람의 희생으로 더 큰 피해를 막는 것은 정당하다.”
그는 스스로에게 행동의 정당성을 부여했다. 양회천은 심복 세포 손선호(22세) 하사를 불렀다. 그가 손선호를 부른 것은 ‘10.1 대구 폭동’에 가담했다가 경찰의 추적을 피해 경비대에 입대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는 수완이 있었고, 신념이 투철했다. 그는 또 세포 신상우(20세) 중사, 강자규(22세) 중사, 배경용(19세) 하사를 만나 지침을 주었다.
“17일 밤이다. 연대장이 숙소로 갈 때다.”
연대장 진급 축하연은 본래 박진경 연대장이 6월 1일 진급된 다음날 갖기로 했었다. 그런데 연대장이 토벌작전을 마친 뒤 갖자고 해서 이날로 미뤄졌다. 승진 때문인지 그의 소탕작전은 더욱 불을 뿜었다. 이를 지켜본 사람들은 이를 갈았을 것이다.
당초 예정대로 진급 다음날 축하연이 열렸다면 암살을 모면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명분이 축적되지 않았고, 준비도 덜되었다. 그렇다면 다른 날로 미뤄질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이고, 그땐 또 실패할 수도 있다.
-대대적인 주민 진압과 탈주병사들 집단 처형. 선택의 길은 하나다.
연회의 주빈이었지만 박진경 연대장은 연회 내내 침통한 표정이었다. 술을 많이 마시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취하지 않을만큼 마시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웬지 가슴이 쓸쓸했다. 남의 잔치에 온 듯 흥이 나지 않고, 서울에 두고 온 처자 생각이 났다. 그것은 강공 드라이브에 대한 누적된 피로 때문일 수도 있었고, 야릇하게 가슴을 누르는 어떤 생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그는 취흥이 나지 않았지만 그럴수록 머리를 털고 건네는 술잔을 마다하지 않고 마셨다.
자정 무렵 지친 듯 취한 듯 비틀거린 몸으로 그는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는 제주 농업학교 연대본부 내에 있었다. 그는 예복을 입은 채로 침대에 들어 잠이 들었다. 주번 사령은 1중대장 정 대위이고, 당번병은 정보과 최 상사였다. 이들도 늘 하던대로 연대장이 침소에 들자 숙소로 돌아가 잠을 잤다.
"신상우는 연대장이 숙소에 든 것을 확인했으면 강규찬에게 알리고, 강규찬은 배경용과 손선호에게 알리고, 숙소 밖에서 보초를 서라. 배경용은 후래쉬로 안을 살피고, 손선호는 침소로 들어가 머리에 딱 한방으로 끝내라. 두 방을 쏘면 모두 놀라서 일어나고, 다른 부위를 쏘면 피가 많이 흐른다. 주번사령이 깨나지 않도록 하되 깨면 미리 열어둔 창밖을 넘어 숲으로 사라져라. 만에 하나 붙들리면 자결하라. 혼자의 죽음으로 끝내야지 다른 전우 끌어들여서는 모두 망한다. 누설하면 누구보다 먼저 사살될 것이다.“
작전은 주도면밀하게 추진되었다.
손선호는 내부반에서 점검 나간다는 이유로 M1 소총을 분해해 닦고 8발의 실탄을 탄창에 재어 넣어두고 초조하게 시간을 기다렸다. 하수인들은 모두 지시된 장소에 배치되었다.
“새벽 두세 시 경이면 모두 잠이 든다. 연대장은 취했으니 곯아떨어졌을 것이고, 깨어난다 해도 취해서 비틀거릴 것이다.”
손선호는 ‘대구 폭동’을 일으키고 고향 경주에서 동료들을 규합하여 야산대에 합류해 태백산맥에서 여러 달의 비트생활을 하면서 경찰과 대치한 경험이 있었다. 그때 두둑한 뱃심을 길렀다. 그래도 막상 시간이 촉박하자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배경용이 오히려 사명감에 불타는 용사처럼 여유가 있었다.
“두시 사십분이오. 떠납시다.”
물론 엎디면 코가 닿을 곳이었다. 미리 잠복해 배치된 세포들의 손짓으로 손선호는 소총을 품에 숨기고 연대장 숙소로 고양이 걸음으로 살금살금 허리를 구부려 기어 들어갔다. 침소에 이르러 안전핀을 풀고 M1 소총의 총구를 연대장의 머리에 겨누어 힘껏 방아쇠를 당겼다. 빵 빵! 두 발의 총성이 연쇄적으로 울렸다.
박진경 대령은 1948년 6월 18일 새벽 3시15분 숨을 거두었다. 그의 나이 만 28세였다. 미래의 확실한 육군참모총장이자, 고위급 장교 한 명이 창군 이래 가장 먼저 암살당한 기록을 남겼다. 암살단은 작전대로 각자의 부대로 그림자처럼 모두 사라졌다.
새벽의 적막을 깬 두 발의 총소리는 모두를 잠에서 깨웠다. 옆방에서 잠을 자고 있던 주번사령과 부관이 총소리에 놀라 연대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연대장은 두개골과 심장이 함몰된 상태로 숨져있었다. 경황이 없는 가운데 허둥대는데 언제 들어왔는지 위생병이 시체의 몸에서 피를 닦아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가 바로 M1 소총으로 박진경을 암살한 손선호 하사였다. 범죄심리학에서 나오는 말이지만, 범죄자는 범죄현장을 자기의 은밀한 소유물로 여기는 심리가 있다. 마치 어릴 적 자기만의 비밀 방이나 음침한 곳에 남들이 모르는 자기만의 것을 숨겨두고 몰래 들여다보는 심리와 비슷한 행동양태다. 손선호 역시 쏜살같이 도망가려다 혹시 물증이 남아있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으로 되돌아와 침소를 더듬거리다 주번사령, 당직 부관이 뛰어들자 재빨리 위생병으로 변신해 피로 얼룩진 연대장의 얼굴을 씻고 있었던 것이다.

박진경 연대장의 암살에 미 군정장관 딘 소장이 직접 내도(來島)해 박 연대장 유해를 수송기에 싣고 상경하고, 뒤이어 국방경비대 정보국과 미국 CIC 수사대가 제주에 급파되었다. 수사대는 도내에 있는 M1 소총을 모두 거두어 감정하는 데 열흘을 소비했으나 단서를 잡지 못했다. 육군 정보국 수사관 김창동은 채명산 소위를 불렀다.
“박 연대장 추천으로 제주연대로 배속되었지?”
“그렇습니다.”
“상황을 살피라고 박아놓았을 텐데, 오민균 대대장 동태 파악했나.”
“함께 작전에 나간 적이 있습니다.”
“특이점은?”
“미친 병사가 전우를 향해 총을 겨눈 것을 직접 쏴서 제압했습니다. 조국의 미래를 생각하는 민족정신과 군인철학이 투철한 장교입니다.”
“이 자식아, 내가 말하는 동태는 그것이 아니야. 서청에도 가입했다는 놈이 생각하는 게 고작 그 모양이냐?”
사상적으로 의심하지 않는다는 질책이었다. 그러나 채명산은 오민균을 다르게 말할 수 없었다. 생각이 다르긴 했지만 그의 사상은 의심의 여지없이 지적이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었다.
김창동은 제주 현안 정보를 꿰뚫고 있었다. 반란 두목 김달삼이 제주연대 내 40여명을 탈영시키자 박진경은 이중 20여명을 잡아다가 총살시켰다. 김달삼은 그 보복으로 박 대령을 죽이기로 작정하고, 연대 내 문상길 중위에게 지령을 내렸다. 5월 10일 남한 단독선거일에는 제주읍에서 남로당 제주도당 군책(김달삼), 조책 2명과, 국경측(국방경비대)에서 오민균 대대장 및 부관, 9연대 정보관 이동락 소위 등 3명과 비밀회담을 하여 대대 내 박진경 연대장 이하 반동 장교들을 숙청하자는 의견을 나누었다... 그런 내용의 첩보를 입수한 것이다. 믿고 싶은 방향으로 생각은 움직이게 되어있다. 믿음이 집착하면 그것은 곧 신념이 된다. 의심하면 할수록 그것은 확신에 가까운 ‘종교’가 되어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채명산이 아직 애송이 티에서 벗어나지 못한 순진한 ‘관념 청년‘에 머물러 있으니 김창동은 화가 치밀었다. 부대원 중 누구 하나 믿을만한 똑부러진 놈이 없는 것이다.

아, 죽음이 멀리 있지 않구나

깊은 밤, 일단의 괴한들이 보헤미안 다방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사진봉이 숨어든 것을 알아차린 괴한들이 한 순간에 집을 덮쳤다. 그를 쫓는 사람들은 경찰과 구대구 일당이었다. 최동칠 경위가 살해된 이후 구대구는 단번에 사진봉을 의심했다.
“개새끼, 그 자가 최동칠 경위님을 먼저 기습, 조자버린 기라우!”
사익을 챙긴 자, 청년단을 배신한 자, 경찰에 항명한 자는 가차없이 분쇄해야 한다는 것이 제주 서청 조직의 조칙(條則)이었다. 피의 보복만이 배반을 막는 길이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디. 사진봉, 그 자가 여태까지 우리를 팔아서 부를 쌓구, 이익을 챙기구, 폭도와 거래했다는 게 드러났다. 그런 놈에 새끼가 우리 지도자라니, 참 내 눈이 한심해서 못보갔다. 고놈에 새끼가 자기 비리를 감추갔다고 압박해오는 최동칠 경위님을 참혹하게 봐버린 기라우. 은혜를 원수루 갚는 새끼디.”
아직도 이마빡에 반창고를 붙이고 있는 구대구가 씨부렁거렸다. 최동칠이 언질했을 때, 구대구는 처음에는 믿지 않았었다. 그러나 최동칠이 무참하게 살해된 후 비로소 확신했다.
최동칠은 어느날 말했다.
“사진봉 그 자, 폭도대장과 9연대 사람들, 지역 유지와 폭도대 간부를 연결해주구 거금을 챙갔다. 그 자가 숨겨둔 돈의 은신처도 알아냈디. 보헤미안 오신애 마담년 보지 속에 거금이 잠겨있디. 그래서 동태를 살펴보는 중이다.”
배신자 새끼. 지 혼자 살겠다고 여자 치마폭에 자금을 숨겨둬? 지도자란 놈이 함께 나누지는 못할망정 사복(私腹)으로 배때지를 채워? 부글부글 끓어오른 구대구는 그동안 당한 것까지 모아서 되갚아 주리라 마음 먹었다. 단원들은 경찰의 비호를 받는 구대구가 힘이 생겼다는 것을 알고 단번에 그의 편에 섰다.

“내 말 잘 새겨 들으라우.”
쫓긴 신세가 된 사진봉이 오신애를 뒷방으로 불러세웠다. 이제 그는 더는 숨을 곳이 없었다.
“떠나라우.”
그가 다급하게 말했기 때문에 오신애는 처음 무슨 말뜻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디로 가라구요?”
“무조건 이곳을 떠나. 아기를 살려야 한다.”
제주 땅에선 어느곳도 안심할 수가 없었다. 이곳에선 단 한평의 공간도 그에게 평화롭게 내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배편이 있을 거야.”
“다방은요?”
“다방이 아니라 두 사람이 살아야 할 거 아니간?”
“안돼요, 떠날 수 없어요.”
“진미호, 배재정 사장을 찾아. 시간이 없어. 그 돈이면 어디서든 견딜 수 이서.”
“안돼요. 이제 안정을 찾았는데, 떠나다니요.”
“떠나야 해. 급하다.”
오신애는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사진봉이 다시 말했다.
“어떻게든 떠나. 살아있으면 만나게 돼. 절대로절대로 살아있어야 돼.”
밖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났다. 개들이 일제히 짖어댔다. 이윽고 경찰의 핸드마이크에서 카랑카랑한 쇳소리가 울려나왔다.
“사진봉은 완전 포위됐다. 사진봉은 포위됐다. 무장해제하고 밖으로 나오라.”
이윽고 오신애가 울음을 터뜨렸다.
“어떻게 헤어져요? 떠날 수 없어요.”
다시 밖에서 요란한 마이크 소리가 마을을 울렸다.
“사진봉은 포위됐다. 열 셀 때까지 나오라. 그렇지 않으면 일제 사격이다!”
그와 동시에 보헤미안의 현관문이 와지끈 부숴졌다. 문짝이 떨어져 나가자 구대구의 곁에 각목을 들고 대기하고 섰던 대여섯 명의 장정들이 우루루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그들 뒤쪽에 일단의 경찰이 반쯤 무릎을 꺾은 채 거총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경찰 지휘관이 핸드마이크를 입에 대고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낫, 둘, 셋, 넷....”
사진봉은 오신애를 향해 빠르게 말했다.
“나를 쫓을 때 도망가. 시간없어. 꼭 살아남아. 장롱 속에 권총 한 자루 있으니까 필요하면 사용해.”
그렇게 말하고 그가 허리춤에 휴대했던 권총을 꺼내 총알을 재넣은 뒤 후닥닥 뒷문으로 뛰어나갔다. 그가 훌쩍 뒷담을 넘어 골목으로 사라지자 밖이 더 소란스러워졌다.
“뒷골목이다. 쫓아라! 추격하라!”
괴한들이 뒷골목으로 몰려가 그를 쫓기 시작했다. 구대구는 뒷방으로 스며들어가 옷을 챙기는 오신애를 덮쳤다. 그가 워카발로 그녀 등짝을 걷어찼다. 자루처럼 풀석 그녀가 고꾸라졌다.
“간나년, 이 놈 저 놈 배를 내주니 살맛 나누?”
그리고 장농을 열어젖히더니 속을 마구 헤집었다. 옷가지 속에서 권총을 발견했다. 그가 권총을 집어들고 위아래를 살피더니 소리쳤다.
“최 경위님 권총이 여기 숨가져 이서. 요새끼가 사람 죽이고 무기까지 빼앗았군. 이건 내가 선물한 권총이야, 이년아!”
그가 권총을 자기 품에 찔러넣었다.
“이 권총으로 모든 것이 드러난 기야. 두 번 다시 헛소리 못하갔지?”
그는 더 이상 운신하지 못하도록 오신애를 걷어차고 밖으로 사라졌다. 사라진 사진봉을 붙잡아야 했다.
사진봉은 골목을 빠져나오자 바다쪽으로 달렸다. 아무 배나 타면 된다. 밀선들이 정박해있는 비밀지역을 그는 알고 있다. 그러나 주력 좋은 청년들이 줄기차게 그의 뒤를 쫓고 있었다. 여러 개의 후래쉬 불빛이 어둔 밤을 가르듯 서치라이트처럼 이리저리 들과 바다를 훑었다.
“저기다!”
사진봉의 형체를 발견하고 외치던 청년들이 무섭게 그를 뒤쫓았다. 목표물이 정해지자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반대편 쪽에서도 일군의 청년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사진봉은 주춤 제 자리에 섰다가 구렁창으로 뛰어들어 권총을 뽑아들었다. 은신처는 그곳 뿐이었다.
“넌 독안에 든 쥐야!”
청년들이 구렁창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사진봉이 권총을 발사하자 한 놈이 쓰러졌고, 그러나 그의 몸이 후래쉬 불빛에 노출되었다. 몇 놈이 단박에 달려들어 그를 덮쳤다. 그의 팔이 꺾이며 권총을 떨어뜨렸다. 누군가 휘두른 각목에 그의 팔이 부러졌다. 팔은 순식간에 바람에 펄럭이는 허수아비처럼 하찮게 너덜거렸다. 그는 한 주먹으로 한놈씩 제압해 나갔으나 역부족이었다. 청년들이 그를 넘어뜨려 마구 밟았다.
“멈춰라.”
어느새 구대구가 뒤따르던 대원들과 함께 현장에 당도했다. 구대구는 청년들을 몇 걸음 뒤로 물러서게 한 다음 사진봉 앞에 섰다.
“단장님, 왜 이러십네까. 왜 이 지경이 되었습네까. 왜 최동칠 경위님을 살해했습네까. 동지 아닙네까. 왜 그리 축재를 하셔서 여인의 치마폭에서 놀아나셨습네까.”
조롱이 가득 담긴 말씨였다. 사진봉은 대답하지 않았다. 고통이 전신으로 퍼지고 있었다. 부러진 팔의 부위가 쑤시고 아렸다.
“운명이 이리 될 줄 몰랐습네다. 인간지사 참 험악하외다. 자, 이 자 결박하라우!”
결박당하면 끝이었다. 모진 모욕과 망신을 당한 끝에 죽을 것이다. 그는 벌떡 일어났다. 어떻게든 이들의 숲을 헤치고 나가야 한다. 그러나 두 걸음도 못가서 앞으로 고꾸라졌다. 구대구의 칼이 그의 복부에 정통으로 들어와 꽂힌 것이다. 구대구가 쓰러진 그의 얼굴을 군홧발로 짓이겼다. 부러진 팔을 잡아 비틀었다. 아아아, 본능적으로 비명을 지르면서 반사적으로 구대구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아 물어뜯었다. 구대구가 칼로 그의 얼굴을 찍고 목을 연달아 내리찍었다. 사진봉의 몸이 풀석 한 차례 떠오른 듯하다가 꺼지더니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야비한 새끼. 지 혼자 쳐먹갔다구, 지 혼자만 살갔다구. 그러면서 대장 흉내는 다 내? 씨팔새끼!”
구대구가 그의 얼굴에 침을 칼 뱉었다. 잠시 후 경찰 무리가 달려왔다. 구대구가 그들에게 먼저 보고했다.
“최동칠 경위 죽인 놈을 제압했습네다.”
“잘했어. 하지만 생포가 나았는데 처치했나?”
“어렵습네다. 무술 유단자에 총기를 휴대하구, 완력이 셉네다.”
“보헤미안 압수 수색하라.”
“경찰 두 사람 붙여주시라요.”
“이제 자네두 경찰이야. 여기 순경 두 사람 구단장 따르라. 구 단장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전과를 올리지 못했지. 동선을 아는 사람이 협조하면 이렇게 사건 제압하기가 쉽단 말이야. 자, 귀대한다.”
구대구가 보헤미안을 찾았을 때는 어두운 정적만이 무겁게 감돌 뿐, 집안은 텅 비어 있었다. 오신애는 벌써 자취를 감추었다.

최동칠의 참혹한 죽음 이후 경찰서 분위기는 긴장되고 격앙되었다. 그의 시신을 거둬다 장례를 치른 경찰서장은 침통한 마음으로 전체회의를 소집했다. 최동칠의 죽음을 계기로 떨어진 사기를 끌어올릴 필요가 있었다.
“여러분에게 알린다. 폭도대에게 판판이 깨진 것은 내부의 기강이 해이해졌기 때문이다. 내부에 불순분자가 없는지 다시 한번 감시하기 바란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다행히도 9연대장이 새로 교체되고 브라운 대령 각하가 제주지역 미군사령관으로 부임해오셨다. 진압작전 최고지휘권을 행사하게 된 것이다.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다.”
경찰서장은 직원들의 사기를 고조시킬 필요가 있었다. 사실은 그동안 너무 당했다.
“조병옥 경무부장 각하께서는 제주도 사건의 치안수습대책을 발표하셨다. 정예부대 파견, 유능 형사대 증파, 영구대책으로 제주경찰학교 강화, 2개 경찰서 신설계획을 천명하셨다. 경무부장 각하께서는 주민의 귀순만을 바라는 소극적인 대책을 떠나 실력으로써 적극적으로 폭도들을 제압 섬멸하라고 지시하셨다. 더이상 수세에 몰릴 수 없고, 물러나서도 안된다. 화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한데 무엇이 두려운가. 오늘부터 폭도와 주민간의 관계를 철저히 분리시키라. 온정주의가 화를 불러일으키고, 진압 실패의 주요인이다. 여하한 수상한 작태를 보면 의심의 여지없이 척결하라. 빠른 시일내 진압해야 주민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민보단의 활약상이 새로운 출발점이다. 향보단은 5.10 선거의 역할로 끝났다.”
민보단은 주민들로 구성되었지만 관제 경찰의 외곽 조직으로 군경 진압작전에 동원되었다. 보초 서는 일과 토벌작전 시 죽창, 각목 등의 무기를 들고 군인이나 경찰보다 앞서서 나가는 총알받이 역할을 했다. 경찰의 외곽조직인 서청보다 민보단의 활약에 경찰은 더 기대를 걸고 있었다.
5.10선거에서 활약한 향보단은 1948년 5월 22일 해산되었지만, 이는 6월 민보단으로 부활했다. 제주 민보단은 5만명 규모였다. 그러나 인력 고갈로 소집할 청년이 부족했다. 그래서 남녀노소 모두에게 민보단의 이름 아래 동원 의무가 부여되었다. 민보단에 대한 미군의 보고서는 무지를 그대로 드러냈다.
1949년 4월 1일자 미군보고서는 "제주도 남자들은 농사일보다는 보초를 서거나 토벌전에 나가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기록했다. 사실이 아니지만, 이런 기록들은 많았다. 민보단은 주민과 군경 사이의 분열을 부추기는 조직으로 악용되었다.
치안 유지는 서청과 대청이 중심이었다. 경찰력으로는 힘에 부쳤기 때문에 이들 청년단에 기대한 바가 컸는데, 이승만은 "사상이 건전한 여러분이 나서야 한다"며 서청의 활약상을 독려했다. 미군 보고서 역시 "제주도의 서북청년단이 경찰과 경비대를 지원하게 된 것은 명백한 성공이다"고 기록했다.
이런 평가로 서청단원들은 ‘특별중대’라는 특수 칭호를 받았는데, 이들에겐 군 내부의 반대자 색출이라는 헌병 기능까지 임무가 부여되었다. 군대 침투는 물론 주민 감시까지 담당해 힘이 막강해진 것이다. 구대구가 힘을 받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주어져야 할 것은 정작 주어지지 않았다. 월급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현지 조달하라는 식으로 처리했으니 주민을 뜯어먹으라는 지침을 준 것에 지나지 않았다. 착취는 일상화되었다. 정부의 외곽 조직이었으니 이들의 비리를 정부가 공적으로 책임질 일은 없었다.

“어떤 놈의 짓이야?”
오민균 대대장이 긴급 중대장 회의를 소집했다. 그가 이처럼 화를 낸 것은 근래 본 적이 없었다. 그의 얼굴이 벌겋게 충혈되었다가 창백해졌다.
“암살의 후과를 모르는 놈들!”
박진경 연대장 암살은 걷잡을 수 없는 후폭풍을 몰고 올 것이 자명했다. 그는 그 후유증을 잘 알고 있었다. 토벌의 명분을 강화하기 위해 자작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데, 이는 권력에게 울고 싶을 때 뺨때려준 격이나 똑같다. 내부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조작도 감행하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그런데 이런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작은 명분, 소영웅주의의 발로는 엄청난 비극을 잉태하게 되어 있었다.
“지휘관을 제거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가. 왜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가. 오늘부터 의심스런 자를 색출하기 바란다. 중대별로 의심스런 자들과의 내통자, 행동대를 살피기 바란다.”
그런 지침이 내려진 며칠 후, 밀고가 들어왔다. 연대장 암살 배후는 바로 오민균 대대장이라는 것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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