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정리해고에 반대해 파업을 벌인 쌍용자동차 노동자에게 국가가 건 손해배상청구소송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정당성이 없다는 의견을 17일 대법원에 제출했다.
인권위는 이날 쌍용차 파업과 관련해 국가기구인 경찰이 쌍용차지부 등에 건 손배소송과 관련해 "쌍용차 파업과 관련한 국가와 경찰의 대응에 헌법상 의무를 져버린 점 및 위법성과 부당함이 있었다"며 "과도한 손해배상 책임으로 노동3권 행사가 위축되지 않도록 담당 재판부가 이를 심리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을 대법원에 제출했다. 이번 의견 제출은 지난 11월 11일 인권위 전원위원회 의결에 따른 것이다.
인권위는 쌍용차 파업 당시 국가 대응에 대해 "다수의 근로자가 특별한 귀책사유 없이 생존권을 위협받는 사정이라면, 기본권 보호의무가 있는 국가가 당시 갈등의 조정자 역할을 할 헌법상 의무가 있다"며 "이런 의무를 해태해 사태를 악화시킨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경찰 진압 과정에 대해서도 "경찰이 당시 위법하고 부당한 강제진압을 자행하여 쟁의행위에 참여한 근로자의 인권을 침해하고 사태를 악화시킨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당사자들의 불법행위 책임을 묻는 것과는 별개로 쟁의행위에 대한 민사 손해배상청구소송이 계속 증가한다면 이는 결국 근로자의 가족과 공동체 붕괴, 노조 와해 및 축소, 노사갈등 심화 등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궁극적으로 국제기구 등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노동조합 활동 전반을 사전에 통제하고 억제하는 작용을 하여 노동3권 보장의 후퇴를 가져오게 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여 대법원 담당 재판부가 정당방위 내지 정당행위 성립에 대한 적극적 검토, 과실상계 법리의 폭넓은 적용, 공동불법행위 법리의 엄격한 적용을 통해 근로자의 노동3권 행사가 위축되지 않도록 심리하고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며 "이번 의견 제출을 계기로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인한 인권침해가 근절되고, 우리 사회가 노동3권이 충분히 보장받는 사회로 더욱 발전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인권위의 의견 제출권은 국가인권위원회법에 근거를 둔 권한이지만, 판결 내용에 법적 효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단, 국가기구인 인권위가 국가기구인 경찰이 제기한 소송에 대해 의견을 낸 것에는 의미가 있다. 법원도 이를 참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 인권침해진상조사위 권고에도 손배소송 철회 않는 국가
경찰의 쌍용차 손배소송은 2009년 파업 당시 경찰 강제 진압과 관련돼 있다. 경찰은 기중기와 헬기, 테이저건 등을 이용해 파업 중인 노동자를 강제해산했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에 의해 각종 장비가 파손됐다며 16억 7000만 원의 손배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노동자들은 새총으로 너트와 볼트를 쏘면서 경찰 진압을 저지하려 했다. 경찰은 그 새총으로 기중기 등이 파손됐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경찰 손을 들어줬다. 2심 재판부가 인정한 손해배상액은 약 11억 6800만 원이다. 게다가 1심 판결 이후 배상금에 대한 이자가 붙어 쌍용차지부 등이 갚아야 할 돈은 현재 20억 원이 넘는다. 대법원이 이를 확정하면 쌍용차 노동자는 꼼짝없이 이를 물어내야 한다. 여기에 회사가 제기한 손해배상금과 지연 이자를 합하면 쌍용차 노동자들이 갚아야 할 돈은 100억원 대에 이른다.
작년 8월 경찰청 인권침해진상조사위원회는 쌍용차 파업 당시 강제진압이 이명박 정부 청와대의 최종 승인 아래 진행됐으며 경찰이 헬기 저공비행 등으로 경기도 평택시 쌍용차 공장에 있던 조합원을 진압하고 테이저건 등을 사용한 것은 위법이라고 결론 냈다. 조사위는 이를 바탕으로 손배소송 철회 등을 경찰에 권고했지만, 경찰은 사건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라는 이유로 손배소송을 철회하지 않고 있다.
쌍용차 해고자들은 지난 6월 복직했다. 그러나 경찰의 강제 진압 이후 29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작년 6월에도 또 한 명의 조합원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등 사건의 여파는 이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 국가의 손배소송 철회는 쌍용차 문제를 종결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각계의 지적이 이어져왔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