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소개할 책은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로렌 그레이엄 지음, 최형섭 옮김, 경인문화사, 2017)이다. 제정 러시아 말기인 1875년에 태어나서 경력을 쌓았고, 소비에트 연방 체제를 맞이하여 신념을 갖고 새로운 국가 건설에 매진하다가 스탈린에 의해 1929년 처형당한 엔지니어 표트르 팔친스키(Петр Пальчинский)가 주인공이다. 팔친스키는 제정 러시아 시절부터 광업 실무와 경영을 연구하면서 당시 광업 노동자・환경의 열악한 실상을 파악했고, 이러한 실상에 무지하거나 실상을 무시하는 당시의 지배층에 엔지니어의 관점과 입장으로 저항했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소비에트 연방 성립 이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1926년 팔친스키는 어느 에세이에 소련의 8,000만 노동자들은 "이 나라의 엄청난 자연 자원보다 훨씬 중요한 생산력이지만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썼다. 또한 러시아가 풍부한 자연자원을 현명하게 이용함과 동시에 노동자들을 잘 돌보지 않는다면 강대국이 될 수 없을 뿐더러 인간적 문명국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1989년 광부 파업 훨씬 이전에 소련은 군사 강대국이 되었고, 세계에서 손꼽히는 중공업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민의 지지를 잃은 산업화 승리는 허망한 것이었다." (178쪽)
스탈린은 공산당이 정한 과업에 엔지니어들이 토를 다는 것을 공산당과 소비에트 연방에 대한 배신행위로 간주했으므로, 팔친스키와 같이 큰 틀에서 세계를 파악하고 기술을 적용하려 하는 소비에트 연방 건국 초기의 엔지니어들을 '산업당'이라는 이름으로 처형・무기징역 등에 처했다. 이들이 소비에트 연방의 발전을 저해하려는 서방 제국주의 국가의 스파이라는 이유였다. 이 책의 저자가 다음 인용문에서 간략히 정리한 것처럼, 엔지니어였던 팔친스키가 인간의 동기부여와 처우개선, 즉 산업에서의 '인간 요인'을 중시한 반면, 인간 해방을 주창한 소비에트 연방의 지도자가 기술 결정론을 주장한 것은 아이러니하다.
"팔친스키는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마술사가 아니다"라며 중용을 강조했다. 반면 스탈린은 "볼셰비키가 함락시킬 수 없는 요새란 없다"라고 주장했다. 팔친스키는 인간 요인 human factor 이 산업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반면, 스탈린은 "기술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엔지니어링 전문가가 기술보다 인간의 욕구를 우위에 두고, 공산당 지도자가 기술을 가장 강조했다는 사실은 대단히 역설적 상황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83쪽)
소련・러시아의 과학사를 연구하는 미국인 저자 로렌 그레이엄은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인 1960~61년에 처음으로 미국과 소련이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시작했을 때 모스크바대학교에서 팔친스키라는 이름을 듣게 되었다. 그러나 1928년에 체포되어 1929년에 처형당한 팔친스키는 1930년에 열린 '산업당 재판'에서 국가 전복을 꾀한 산업당의 당수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미국인 대학원생이 소련에서 팔친스키에 대해 유용한 정보를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 즈음 이반 솔제니친은 유명한 소설 <수용소군도>(1974)에서 팔친스키를 냉철하게 소비에트 연방 체제를 바라본 인물로 묘사하고 있었다.
1980년대 초가 되어 저자는 동료로부터 산업당 사건에 대한 경찰의 보고서 사본이 소련 사회과학학술정보연구소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된다. 당시 사회과학학술정보연구소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는 자격을 지니고 있던 저자는 도서관에서 '산업당'이라는 키워드로 카드 목록을 검색했고, 팔친스키 등의 엔지니어들에 관한 경찰의 비밀 보고서를 찾았다.
짐작할 수 있다시피, 이런 자료가 소련 도서관의 일반 서고에 놓여있다는 것은 무언가의 착오에 의한 결과였다. 소련 당국이 그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그 자료는 다시 비밀 서고로 옮겨지거나 폐기처분될 것이었다. 그래서 저자는 우선 비밀 보고서의 핵심 부분을 손으로 베낀 뒤, 아무렇지도 않게 복사실의 직원에게 자료 복사를 부탁했다. 그 직원은 자료의 제목도 보지 않고 무심히 마이크로필름으로 복사를 해주었고, 저자는 미국 대사관을 통해 필름을 급히 미국으로 보냈다. 저자의 우려는 적중하여, 필름을 보낸 며칠 뒤에 복사실 담당 직원이 보고서 원본과 사본 반납을 요구했다. 저자가 복사본을 이미 미국에 보냈다고 하자, 당황한 담당 직원은 저자가 복사본을 미국에 보낸 사실을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사회과학학술정보연구소의 공산당 조직이 저자의 동향을 파악하고 이 보고서를 비공개 자료로 돌려놓았다는 것이다. 저자가 도서카드가 담겨있던 서랍을 열어보니, 누군가 이 보고서 사본에 관한 도서카드를 뜯어가고 남은 마분지 조각만 남아 있었다.
스탈린이 1929~30년에 처벌한 엔지니어들에 대한 기록과 사건을, 그로부터 50여년 뒤에도 여전히 비밀로 하고 싶어 한 소련 공산당. 다행히 소련 공산당의 이러한 신경질적인 태도는 1980년대 이후 잦아들기 시작했고, 고르바초프의 개혁 개방 이후 소련・러시아의 도서관은 점차 개방적으로 변했다.
그러다가 푸틴 대통령이 집권하고 그 기간이 길어지면서 러시아의 도서관은 다시 닫히고 있는 중이다. 올해 3월, 스탈린 시절 수 십 만의 인민을 수용소(굴락)로 보낸 사건을 다룬 내무인민위원회(NKVD, 엔카베데) 문서를 열람하게 해달라는 관련 연구자의 요청이 법원에 의해 기각되었고, 러시아 정부가 관련 문서 일부를 파기했음이 알려졌다(<The Moscow Times> 2019년 3월 14일자 'Russian Authorities Seal Stalin-Era Archives'). 소련 정부가 자국민을 탄압한 사건을 추적하고 관련 기록을 보존할 목적으로 결성된 시민단체 메모리알(Мемориал)은 지속적으로 당국의 견제를 받고 있고, 최근에는 외국의 스파이로 지목되기도 했다. 팔친스키 등 소비에트 연방 초기 엔지니어들이 스탈린에 의해 ‘산업당’이라는 이름하에 외국 스파이로 지목된 것과 똑같다.
오늘날 자유세계의 일부 시민은 근대 이후 미국・영국・프랑스・네덜란드・벨기에・일본 등 서방 국가들이 정부 차원에서 저지른 범죄를 비난하고 있다. 미 중앙정보국(CIA)이 1953년 이란 모사데크 정권을 무너뜨리고, 1950년대부터 라오스의 몽족을 조직해서 북베트남을 위협하고, 레이건 행정부가 1970년대 말부터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좌파 정부에 반대하는 게릴라 단체들을 지원한 것 등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방 세계가 정부 차원에서 전 세계에 비난받을 행위를 저질렀음은 명백하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 시민이 이들 정부의 범죄 행위를 비난할 수 있는 까닭은, 그들 정부가 관련문서를 남겼기 때문이다.
서방 세계만큼은 아니지만, 그나마 러시아에서는 관련 문서가 남아있다는 사실이라도 확인할 수 있고 일부 문서는 개혁개방 시기 이후의 짧은 자유시기에 시민 사회에 넘어왔다.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정부가 저지른 대량학살과 테러, 납치에 대해서는 관련 기록이 남아있는지의 여부조차 알 수 없다.
나는 중화인민공화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가 서방 국가들과는 달리 그 어떠한 국가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다는 일부 시민의 순진한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최근에는 한국에도 신장위구르지역의 위구르인・카자크인들에 대한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의 탄압이 조금씩 알려지게 되었지만, 사실 이 사건은 수 십 년 전부터 진행 중이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수 십 차례의 핵실험을 한 것도 이 지역이었으며, 핵실험에 따른 인민의 피해를 조사하던 현지 의사들은 국가분열의 죄목으로 투옥되거나 망명한 상태이다(水谷尚子 <亡命者が語る政治弾圧 - 中国を追われたウイグル人> 文春新書, 2007). 티베트도 그러했고, 내몽골자치구도 그러했다. 1969년부터 내몽골 몽골인들이 대규모로 정부에 저항하자, 이에 맞서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하고 탄압한 사건의 진상과 피해규모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김선호 <내몽골, 외몽골 - 20세기 분단의 몽골역사>(한국학술정보, 2014) 72-73쪽). 이 사건의 관련 문서가 과연 현재 남아있을지조차 의심스럽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일으킨 수많은 사건들도 마찬가지다.
1960년대에 미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캠벨(Robert W. Campbell, 1926~2015)은 "러시아는 필연적으로 우리를 추격해올 것이며, 현재의 차이가 앞으로도 지속된다면 더욱 빠른 속도로 따라잡을 것이다"(24쪽에서 재인용)라고 소비에트 연방의 미래를 예측한 바 있다. 자유로운 개인이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는 것을 국가가 법적으로 보장해주는 데에서 현대 세계의 경제 발전이 비롯한다고 본다면(대런 애쓰모글루, 제임스 로빈슨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시공사, 2012), 로버트 캠벨의 예측은 애초에 전제가 잘못됐다. 정부가 수백~수 천 만의 국민을 자의적으로 처형한 사건을 자아비판하지 못하는 국가에 미래는 없었다. 나는 이와 마찬가지 상황이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도 결국은 찾아오리라고 믿는다. "소련 체제가 그토록 쉽게 붕괴해버린 가장 주요한 원인은 인간을 완전히 무시했기 때문이었다"(183쪽)라는 저자의 말은, 소비에트 연방이 멸망한 원인에 대한 고발임과 동시에, 중화인민공화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머지않아 맞이하게 될 미래에 대한 예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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