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줄곧 독립을 주장해오던 신장위구르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에 또 다시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이곳의 주 민족인 위구르인들은 중국으로부터 분리독립을 주장하며 중국과 많은 마찰을 겪고 있다.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2009년 7월 5일, 신장성의 성회(省會, 성의 중심 도시)인 우루무치(烏魯木齊)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로, 197명이 사망하고 1700명이 부상을 입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이후에도 이와 같은 과격한 행위들이 그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3월, 위구르 독립운동단체가 윈난(雲南)의 쿤밍(昆明)시에서 벌인 무차별 테러로 172명이 숨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다시 우루무치 기차역에서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해 3명이 숨지고 79명이 다쳤다. 시진핑(習近平) 중국국가주석이 우루무치 체류 중에 발생한 것이다.
끊임없이 독립을 주장하는 위구르인들과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며 신장의 독립을 강력히 반대하는 중국, 결국 일촉즉발의 화약고가 되어버린 신장의 속사정은 무엇일까?
신장의 위구르인과 이슬람
신장 지역은 중국에서 서쪽으로 비단 교역을 위해 나가던 '비단길'의 주요 무대였다. 고대에는 '서역(西域)'이라고 불리며, 수많은 민족들이 여러 나라를 세우고 있었다. 중국은 한과 당대에 이 지역에 잠깐 진출하였으나 그리 오래 가지는 못하였다.
8세기경, 이 지역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다. 투르크계의 위구르인들이 이 지역에 정착한 것이다. 이들은 위구르 제국을 세워 이 지역에 뿌리를 내린다. 또한 이슬람교가 이 지역에 전파되면서 종교와 문화 역시 기존의 불교에서 이슬람으로 바뀐다. '투르키스탄(Turkistan)'이라는 말이 바로 이때 등장한다. 투르크(Turk, 터키인)와 이스탄(Istan, 존재하는 곳)의 합성어로 '터키인의 땅'이라는 의미이다. 이렇듯 이 지역의 주 민족은 위구르인으로, 종교 역시 이슬람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시기 형성된 민족과 문화가 그대로 정형화하여, 한족과는 확연히 다른 인종과 그들만의 문화와 언어를 향유하며 현재까지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파미르 고원을 중심으로 동·서투르키스탄으로 분류하는데, 모두 같은 투르크계 민족이며, 동투르키스탄이 바로 현재의 신장이다. 서투르키스탄은 후에 러시아 제국에 점령되었다가 소련령이 되었고, 구소련의 해체와 함께 우즈베키스탄 등 '~스탄'이라는 여러 나라들로 독립하였다. 현재는 같은 민족이 세운 터키와 경제·문화 교류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청의 정복과 '새로운 강역', 그리고 현재
이 지역이 본격적으로 중국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 것은 중국의 마지막 왕조인 청대이다. 본격적으로 중국의 영역에 편입되면서 이 지역은 '신장(新疆)'이라는 지명을 얻게 된다. 신장은 말 그대로 '새로운 강역'이라는 의미로, 200여 년 전인 1757년 청의 건륭제가 이 지역을 완전 정복하고 붙인 이름이다. 하지만 19세기부터 시작된 청의 몰락과 러시아의 침략으로 조금씩 그 영향력을 상실하게 된다. 중화민국이 건국된 이후에도 군벌의 난립과 열강들의 침략으로 신장은 방치 상태에 놓이게 된다. 결국 1933년 한족의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주장해왔던 위구르인들은 '동투르키스탄 이슬람공화국'을 건설하나 이듬해 멸망하였다. 1944년에도 같은 이름의 국가를 건설하나 1949년 현재의 중국에 의해 멸망당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렇듯 신장의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지역은 대부분 시기 중국의 지배를 받지 않고 독립을 유지해 왔다. 현재의 신장위구르자치구가 중국의 영토에 완전하게 편입된 것은 청이 무력으로 점거한 200여 년에 불과하다.
위구르인들이 독립을 주장하는 데에는 위와 같은 역사문화적인 원인 외에 중국의 정책 탓도 있다. 1980년대부터 실시한 한족 이주정책이 더욱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외국과의 변경문제에서 속지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중국은 한족들을 집단으로 이주하고 있다. 향후 문제가 될 때 인구구성에서 한족들이 많으니 우리 땅이 옳다는 것을 주장하려고 대비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신장뿐만이 아니라 우리 동포들의 거주지인 조선족 자치구에서도 두드러지게 발생하고 있는 현상이다.
2012년 말 중국의 인구통계에 의하면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총 인구는 2232만 7800명인데, 그 중 한족은 약 40%인 900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많은 위구르인들이 자신들의 고향에서 외지인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전통적인 유목생활에 익숙한 위구르인들에 비해 상술에 능한 한족들은 여행지와 같은 '노른자'들을 차지해 경제적인 면에서도 위구르인들을 압박하고 있다. 갈수록 강해지는 한족들의 영향력과 위구르인들의 상대적인 박탈감, 그리고 억압된 사회 분위기 역시 위구르인들이 독립을 요구하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중국의 강경책 그 이면에는?
그럼 중국은 왜 신장의 분리독립을 강력하게 저지할까? 먼저 경제적인 이유를 살펴보자. 신장의 면적은 166만 제곱키로미터로 중국 전체 영토의 6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남한의 약 17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크기이다. 또한 사막지역인 이곳에는 중국 전체의 34%에 달하는 천연가스와 30%에 달하는 석유 등이 매장되어있다. 중국이 신장의 이러한 막대한 자원량을 절대로 놔줄 리가 없다.
이러한 경제적인 원인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정치적인 이유이다. 중국은 현재 G2의 일원으로서 막강한 경제력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급속한 성장의 이면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잠재하고 있다. 빈부와 도농 격차, 민족 간의 불화 등이 바로 그것이다. 현재 중국은 이러한 모순들을 무력으로 억지로 제압하고 있다. 특히 민족 간의 불화에서 중국은 어떠한 강경한 수단도 가리지 않는다.
실제로 이를 합법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중국은 지난 2005년 제 10차 전국인민대표대회 제 3차 회의에서 '반분열국가법(反分裂國家法)'이라는 것을 통과시켰다. 중국의 분열을 강력하게 반대하는 이 법안이 통과하자 가장 강력하게 반발했던 것은 대만과 티벳, 그리고 신장이었다.
중국이 이렇게 무력행사라는 악수(惡手)를 써서라도 '중국'을 하나로 묶는 이유는 바로 자신과 같은 노선을 걸었던 구소련이 해체되었던 경험을 똑똑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통일적 다민족 국가'라며 여러 민족들을 강제로 묶어놓은 이 허울이 얼마나 쉽게 부수어질지 잘 알고 있다. 하나가 분리독립하면 다른 지역과 민족들도 연쇄반응이 나타나고, 그 파급효과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바로 이 점을 노심초사하기 때문에 중국은 강경책을 구사하는 것이다. 항상 '통일은 평화와 발전', '분열은 혼란과 후퇴'라는 공식을 강조하는 것도 그런 연유이다.
경제·외교 등 많은 부분에서 미국을 대체해 나가며 대국으로 원위치하는 중국. 하지만 대국으로의 길에는 수많은 장애물들이 존재한다. 특히 민족 간의 불화라는 지뢰는 중국을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중국은 신장을 절대 놓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독주(毒酒)로 갈증을 해소한다'는 중국의 고사성어 '음짐지갈(飲鴆止渴)'이라는 말처럼, 무력을 통해 강제로 묶어놓는 것은 위구르인들과의 갈등을 더욱 깊게 할 것이다. 이 복잡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중국의 현명한 선택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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