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왜곡된 역사 속에서, 지금까지의 한일 관계는 효용을 다했다. 그러나 예고된 갈등이었다. 일본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35년, 8.15 광복과 분단체제, 그 이후 70년의 강고한 구 체제 시스템 속에서 우리 내부 깊숙이 침투해 들어와 알게 모르게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그 안에 우리 내부의 모순과 고뇌가 응축되어 있다. 이 모순과 고뇌를 탐구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한 개인사를 통해 시대와 사회를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하는 것이 문학의 영역일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외세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생존이 우선이었던 관계로 자기 자신을 앞세우지 못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잊어버렸고 안일했다. 그러다보니 역사는 박물관에 소장된 문화재인 양 화석화되고, 현대의 역사는 더군다나 묻혔다.
기자 출신 이계홍 작가의 실록소설 '행군-어느 민족주의자를 위한 변명'은 그런 배경에서 나왔다. 이 소설은 2016년 10월호부터 2019년 6월호까지 문예월간 '월간문학'에 연재되었던 소설이다. 월간문학 연재를 마친 뒤 많은 부분을 수정 보완해 프레시안에 재수록한다.
이 연재물은 이른바 '팩션(Faction)'이다. 팩트와 픽션의 사이 어디에서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인 '논픽션' 형식의 소설이다. 필자는 취재의 일환으로 일제강점기 말 일본 육사 출신 젊은 생도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어지러운 시대, 그 안에서 제국주의 광풍에 휘말린 젊은이들의 시각을 잡아내려 했다. 이계홍은 "일본의 극우 정권이 일제강점기의 역사적 사실들까지도 왜곡하는 역사 모독에 대해 하나의 담론시장을 형성하자는 데 목적이 있다"고 했다. '행군-어느 민족주의자를 위한 변명'은 총 33회로 나뉘어 연재될 예정이다.(편집자)
제26장 가장 짧고 가장 긴 날
“맨스필드 군정장관 각하, 과실이 큽니다.”
“서프라이즈!”
‘과실’은 회담 성과를 말해주는 암호였다. 군 비상전화를 통해 회담 타결 소식을 전한 김익창 연대장은 밀린 숙제를 한꺼번에 해결한 느낌으로 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지금 곧바로 내 사무실로 오시오. 직접 듣고 싶소.”
김익창은 오민균 대대장과 이동락 정보장교를 대동하고 연대를 떠났다. 맨스필드는 그들이 도착하자 현관까지 나와서 맞았다. 군정관실 소파에 차례대로 앉은 뒤 김익창이 이동락으로부터 정리된 서류를 받아 맨스필드 군정관에게 내밀었다.
“합의된 내용 중 당장 실시할 것부터 말씀 드리겠습니다. 폭도들의 귀순 절차는 1948년 4월29일 자정을 기하여 실시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를 위해 연대본부 내에 1개소, 제주읍 비행장 인근에 1개소의 귀순자 수용소를 설치하되, 군대가 직접 관리하고 경찰의 출입을 금지하겠습니다. 점차적으로 서귀포, 성산포 등에도 수용소를 확대, 설치하겠습니다. 서로 정보 오인 같은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긴급 연락망을 구축하겠습니다.”
그의 말을 들으며 서류에 눈을 주던 맨스필드가 기쁨을 표시했다.
“9연대장 각하께서 합의한 내용대로 연대 병력이 주변 치안을 맡으시오. 경찰은 해당 지서만 수비방어하고 외부에서의 행동을 중지토록 하겠소.”
“감사합니다. 그럼 24시간 내에 실시하겠습니다. 또한 합의 안건을 신속 이행해야 폭도들이 회담의 진정성을 믿게 될 것입니다.”
맨스필드는 구내 비상전화를 통해 부관에게 지시했다.
“미군정장관의 지시사항으로 공포하라. 전 경찰은 지서만 수비방어하고, 외부에서의 행동을 중지하도록 명한다. 경찰 지서 밖의 치안책임 임무는 1948년 4월29일 자정을 기해 국방경비대 9연대가 맡도록 권한을 위임한다.”
맨스필드는 무장대를 단시일 내에 평정할 수 있다는 데 고무되었다. 위로부터 압력을 받았던 것을 불식할 계기가 된 것에 안도하고 있었다. 근래 전개되는 상황이 유동적이고 불확실했지만, 그는 김익창과 오민균을 지원해 결실을 맺었다는 데 긍지를 느끼고 있었다. 현지 주둔 두 군·관 최고책임자가 수시로 바뀌는 상황을 극복하고, 총 한방 쏘지 않고 상황을 안정시킨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김익창도 사태 진압이 우유부단하다고 하여 통위부(국방부 전신)로부터 인사조치 위협까지 받았다. 통위부 지휘부는 경찰의 방향대로 폭도와의 대화는 토벌의 명분을 쌓기 위한 요식 절차일 뿐, 귀순이 목표가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을 평화롭게 군말없이 해결해버린 것이다.
“전단을 살포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귀순 정책을 확고히 굳히고, 여론을 그 방향으로 몰아가게 될 것이다. 폭도들에게는 즉각 귀순을 권고하는 자극제가 될 것이다.
“폭도들이 약속을 지켜야 해요.”
맨스필드가 말했다.
“저 자들이 협상을 깰 여하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 군경이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뇌관이 장착된 곳은 우리 쪽입니다.”
“그렇지 않소. 총쏘지 않고 이기는 것을 누구나 지향합니다. 편견을 갖지 마시오. 다시 말하지만, 저 자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우리가 힘들어진다는 걸 아시오.”
“그 자들이 약속을 깬다면 우리에게 토벌 명분이 주어집니다. 그들이 자기 죽으려고 무덤을 파진 않겠지요. 그보다 우리측이 화평회담을 깰 것에 대비해야 합니다. 여기저기 함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는 맨스필드 군정장관 각하께서 커버해주셔야 합니다.”
맨스필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폭도들은 약속대로 대정‧중문면 일대에서 전투를 즉각 중지했다. 서귀포‧한림‧제주읍 일대에서는 병력을 철수했다. 조천면 산중에서 소규모 충돌이 있었으나 미처 연락이 닿지 못해 일어난 불상사였고, 상황이 알려지자 곧 중지되었다.
“내 생애 가장 긴 날이라고 생각했는데 행운의 날이 되었소. 축배를 들러 갑시다.”
그들은 읍내 중심부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커다란 술통 앞에서 서부사나이가 총을 들고 시가를 물고 평원을 굽어보는 간판이 서있는 미국식 레스토랑이었다. 실내는 어두침침했지만 손님들이 몇 테이블 차지하고 있었다.
“오늘 마침 레미본야스키 21년산과 아케보노 18년산이 들어왔다고 연락을 받았소.”
자리를 잡자 맨스필드가 말하고 매니저를 불렀다.
“내가 마시던 것 가져오시오. 버본도 가져와요.”
“안주는 뭐가 있소?”
김익창이 매니저에게 물었다.
“전복 말랭이와 소라 무침, 갓 잡은 문어 삶은 것이 있습니다.”
“모두 한소쿠리씩 가져오시오.”
김익창이 말하고 좀 과장되게 웃었다.
술들이 차례로 들어오자 맨스필드가 각자의 잔에 술을 따랐다. 몇 순배 돌자 일행은 금방 취했다. 어느새 담배연기가 자욱한 가운데 탁자에 양주잔과 얼음조각, 빈 양주병이 널부러지고, 재떨이에는 담배꽁초가 수북히 쌓였다. 전등불 밑에서 그들은 큰 모의를 하는 사람들처럼 쑥덕거리다가 호탕하게 웃고, 그리고 즐겁게 마셨다. 맨스필드가 술잔을 높이 들어 소리쳤다.
“이 날이 오리라고 믿었소. 충성스런 애국장교들을 보면서 세상을 이렇게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구나, 내 조국의 인민들을 이렇게도 사랑하고 있구나 하고 나는 감격했소.”
“각하께서 우리를 애국자로 만들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물러갈 것입니다. 우리가 여러분을 지켜주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최상의 우방은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노래로 보답하지요.”
김익창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잔을 높이 치켜든 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요동만주 넓은 뜰을 쳐서 파하고
여진국을 토멸하고 개국하옵신
동명왕과 이지란의 용진법대로
우리들도 그와 같이 원수쳐보세
창검 빛은 번개같이 번쩍거리고
대포알은 우뢰 같이 퉁탕거릴제
우리군대 사격돌격 앞만 향하면
원수머리 낙엽 같이 떨어지리라
나가세 전쟁장으로
나가세 전쟁장으로
검수도산 무릅쓰고 나아갈 적에
독립군아 용감력을 더욱 분발해
삼천만번 죽더라도 나아갑시다
노래를 마친 김익창의 눈가에 물기가 어렸다.
“나는 이 노래를 만주에서도 노래하고, 남양군도에서도 노래했소. 그래도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어서 늘 가슴이 비어있는 듯했지요. 힘차면서도 슬픈 군가였지요. 지금 마음껏 부르니 더욱 내 나라가 좋다는 생각을 합니다. 미치도록 사랑하는 나라입니다.”
“내 노래도 그렇소. 내 한번 부르리다.”
맨스필드 군정관이 자리에서 일어나 ‘blood upon the risers(낙하산 줄의 붉은 피)’를 소리높여 부르기 시작했다. 김익창이 군화발을 쿵쾅거리며 장단을 맞추고, 이동락 정보장교가 두 손가락을 입에 넣어 훅훅 휘파람을 불며 흥을 돋았다.
gory, gory what a hell of a way to die(4반복)
He ain't gonna jump no more!
The risers swung around his neck,
connectors cracked his dome,
Suspension lines were tied in knots
around his skinny bones
The canopy became his shroud
he hurtled to the ground.
He ain't gonna jump no more!
gory, gory what a hell of a way to die(2반복)
He hit the ground, the sound was "SPLAT",
his blood went spurting high;
His comrades, they were heard to say
"A hell of a way to die!"
He lay there, rolling 'round in the
welter of his gore
gory, gory what a hell of a way to die
gory, gory what a hell of a way to die
He ain't gonna jump no more!
피가 철철 개죽음이네(4반복)/전우는 다신 못뛰게(강하 점프) 되었네/라이저에 목 감기고(낙하산 줄이 그의 묵을 조르고)/커넥터에 머리가 깨져(연결기는 그의 머리를 박살내)/선들이 얽히고 설켜/엉성한 몸을 휘감네/캐노피는 덮개 되고(낙하산이 수의가 되고)/그는 땅에 고꾸라져/다신 못뛰게 되었네/피가 철철 개죽음이네(2반복)
땅을 내리자 '철퍽' 소리와 함께/그의 피가 높이 솟구쳤네/전우들은 마음이 상해 이렇게 말해줬지/그런 개죽임이 다 있나!/자기 피로 흥건한/피바다를 뒹구네/피가 철철 개죽음이네/피가 철철 개죽음이네/전우는 다시는 못뛰게 되었네!
맨스필드가 계속 노래를 이어가자 김익창이 하하 웃으며 그를 제지했다.
“뭐 이런 노래가 끝이 없노?”
“그러니 우린 개죽음 당해선 안됩니다.”
밤은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오민균이 자리에서 일어나 두 상관을 향해 경례를 올려붙인 다음 밖으로 나왔다. 오늘 밤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 사이 어떻게 소문이 퍼졌는지 행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쑥덕거리고, 들뜬 표정으로 어디론가 급히 가는 모습들이 보였다. 그는 관목 숲이 우거진 주택 앞에서 문을 두드렸다.
“어머, 대대장님.”
달려나온 현호영이 오민균을 맞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르신께 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응접실에서 생각에 잠겨있던 현문선 사장이 그를 맞았다.
“이 밤에 무슨 일로....”
“협상이 타결되었습니다.”
“타결?” 믿기지 않는다는 듯 현문선 사장이 되묻고는 이윽고 환히 웃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일세. 디행스런 일이야. 나는 오민균 대대장이 일을 해내리라 보았네.”
그러면서도 그는 신중했다.
“호사다마라고, 신은 사랑하는 자에게 더 힘든 고난을 준다고 하지 않던가. 사랑의 역설이네. 사랑할수록 비련의 고통이 숨어있기 마련이네. 그러니 살얼음 딛듯 신중하고 사려깊게 접근해야 할 것이야.”
“알겠습니다. 전단을 만들어 살포해야 합니다. 신문사가 문을 닫아서 야단입니다.”
“그러게 말이야. 서청에서 접수한다는 소문이 돌아.”
“기존 신문사 사람들을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그들을 움직일 수 없겠습니까.”
“청년단을 움직이는 것이 더 빠를 거야.”
생각 끝에 현문선 사장이 말했다. 그는 사태를 꿰뚫고 있었다. 서북청년단이나 경찰은 한통속이다. 그들은 비밀협상 타결을 방해하는 세력이다. 그러니 그들은 위험하다. 순간 오민균의 뇌리에 서북청년회 사진봉 단장이 떠올랐다. 지난번 만났을 때 사진봉은 신문사 접수를 거론했다. 서청이 언론사까지 손을 댄다는 것은 주제넘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와보니 그의 손을 빌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문선 사장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사진봉 단장을 찾겠습니다.”
그는 현문선 사장 집을 나와 보헤미안으로 향했다. 마담 오신애를 움직이면 된다.
미군정 연락기에서 삐라가 눈발처럼 뿌려지고 있었다. 삐라는 비밀협상에서 타결된 합의문이었다.
“이건 서청은 알디 못하는 일이니, 그렇게 아시오.”
사진봉은 이렇게 말하고 신문사 인쇄공을 연결해주어서 전단이 인쇄되었다.
■평화협상 합의사항
①쌍방은 72시간 내에 전투를 완전히 중지한다.
②무장해제는 점차적으로 하되 약속을 위반하면 즉각 전투를 재개한다.
③무장해제와 하산이 원만히 이뤄지면 주모자들의 신병을 보장한다.
오후가 되자 산의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그것은 개펄에서 구멍을 나온 게들 같았다. 한결같이 누더기에 봉두난발한 모습들이어서 얼핏 사람의 행색으로 보이지 않았다. 연소자와 부녀자들이 주로 산을 내려왔는데, 그중엔 노인들도 섞여있었다. 휴대한 무기들을 길바닥 이곳저곳에 내던지는 자도 있었다. 사용 불가능한 것들이었지만 자기 목숨의 부적처럼 들고 다니던 것들이었다.
귀순희망자들이 9연대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9연대가 가장 안전지대라고 여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연대 병사들이 철책선 안쪽 연병장에 천막을 쳤지만 두려웠던지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고, 그들 스스로 연대에서 제공한 천막을 받아 철책선 밖에 쳤다.
“경찰 치하에선 못살겠다는 뜻 아닌가?”
창밖의 광경을 지켜보던 김익창 연대장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습니다. 양민들로부터 군이 신뢰를 받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오민균도 귀순자들의 동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정보장교 이동락은 창틀에 기대어 이들의 움직임을 계속 카메라에 담았다.
“숨겨둔 비화 하나 소개할까?”
김익창이 시가를 입에 물며 여유있게 입을 열었다.
“네. 말씀 하십시오.”
“맨스필드 제주군정관이 말일세, 딘 군정장관의 명령이라고 하면서 날더러 비밀리에 미군 CIC 제주사무실을 방문하라고 지시하더군. 가보니 딘 군정장관의 정치고문이란 사람이 나를 맞으면서 국제 정세와 한국의 미래를 장황하게 설명하더군. 그러면서 제주 폭동을 빨리 진압해야 한다는 거야. 유일한 방법은 초토화라면서 나의 의견을 묻는 거였네. 이미 결정된 일이라서 묵살하고 자리를 털고 나오려는데, 그가 자기 명령을 따르면 대한민국 새 정부 요직에 앉혀주겠다는 거야. 원하는 직책을 말하면 해결해 주겠다는 거지. 일종의 바터야. 초토화 작전을 완료한 후, 한국의 민족주의자들로부터 미움을 받아 한국에서 살기 어려우면 가족을 데리고 미국에 가서 살도록 해주겠다고도 했어. 정착금으로 10만 달러를 주겠다고 하더니 대답이 없자 얼마가 필요하냐고 묻는 거야. 나는 ‘폭도들의 귀순 작전 성공이 나에 대한 최상의 보상이요’, 하고 말했네. 그러자 그자가 한참을 생각하다가 내 손을 잡더니 당신이야말로 훌륭한 군인이라고 하더군. 어리둥절했네. 간을 보는 건가? 종잡을 수 없었어. 본심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어. 그런데 그가 자기 감동은 개인적일 뿐, 미군의 전략과는 무관하다고 하더군.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했지만 H라는 이니셜은 알고 있네.”
말을 마친 그의 얼굴에 웬지 쓸쓸한 표정이 감돌았다.
“연대장 각하, 군 주둔지 주변이 주민의 해방구가 되고 있습니다. 제주읍 유지들도 연대장 각하의 화평정책에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안도해도 됩니다. 그들도 이 정책이 성공했단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오민균은 연대장을 위로했다.
“그들 또한 고맙지. 자기 보신 때문에 육지로 피신한 자도 있지만, 뜻있는 지도층들이 고초를 넘어 조건없이 도왔어. 오 소령도 그 점 잊지 말게. 물오리처럼 수면 아래서 부지런히 발을 움직인 사람들이야. 내가 한 일은 그들의 일부에 지나지 않야.”
김익창 연대장은 감회에 젖은 듯 실내를 한동안 서성거렸다.
“앙꼬 빵에 앙꼬가 없다”
이상하게 유언비어들이 제주 읍내에 부유하고 있었다. 이것들을 수집하기 위해 김익창은 병력을 읍내에 투입했다. 이날 오후 이를 검증이라도 하듯 맨스필드 제주 군정장관이 김익창을 호출했다.
“어제 극비리에 딘 소장이 특별기 편으로 제주를 다녀갔소.”
결국 딘 소장이 유언비어의 진원지인 셈이었다. 딘 장군은 제주경찰 정보와 경무부 경찰토벌사령부의 정보 보고를 받고 현지 확인차 전용기로 급히 내려온 것이었다.
“유감스럽게도 군이 폭도사무실에 들어가서 협상을 하고 온 것은 군의 명예를 실추시킨 처사라고 화를 냈소. 유리한 협상 결과를 얻었다고 해도 군의 상궤에서 벗어나는 행위라는 것이오.”
“비밀회담이라는 게 원래 그런 성격을 갖는 게 아닙니까.”
“우리가 명예를 중시해야 하는 것을 간과했소. 군은 격식이 중요하고, 그래서 곤란하게 되었소. 묵과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소.”
“그게 무슨 뜻이지요?”
김익창이 언성을 높였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지 몰랐다.
“군 책임자가 항복을 받으러 갔다가 설득 당하고 왔다는 것이고, 경찰을 죄악시했다는 거요. 이것이 나나 각하가 오해를 받는 이유가 되었소. 미군정은 이번 사태를 9연대장의 무모한 개인적 영웅주의의 일탈로 몰아가고 있소. 폭도대장과의 개인적 친분관계 때문이라고 보는 것같소. 김달삼과 일본군 학병 동기라고 했소?”
“학병 동기는 무슨... 결국 나를 의심하는군요? 경찰 정보 보고 때문이요?”
“경찰 정보만이 아니오. 국방경비대 파견 정보장교의 보고도 있소. 제주에 파견된 다른 부대의 정보참모부 일원이 무장대를 비밀리에 만났소. 그들 역시 무장대사령관이라는 자와 만나 서로 공격하지 않는다는 협정을 체결했소. 그러면서 그들은 우리를 음해했소. 우리 정체가 의심스럽다고 말이오. 미군정청은 어느 라인이 정통인지 혼란스럽고, 그래서 연대장의 협상도 개인적 사안으로 본다는 결론이오.”
이것은 모략이거나, 이중플레이다. 김익창이 단호히 말했다.
“맨스필드 군정장관께서 나에게 비밀협상권을 위임할 때 ‘서면으로 조인된 모든 약속의 이행은 미 군정장관 딘 장군이 책임진다’고 했지 않았습니까. 9연대장 김익창은 폭도와의 평화회담에 필요한 일체의 권한 행사에서 미 군정장관 딘 장군을 대리한다는 것 아니었습니까. 나는 그 지시를 성실히 이행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협상 대상이 대표성을 띠고 있느냐는 것이오. 폭도사령관만도 네 명이나 되오.”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아군을 교란시키고,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덫을 친 것에 불과합니다.”
맨스필드도 할 말을 삭히는지 창밖 한라산에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분명 딘 군정장관으로부터 비밀회담 지시를 받고 김익창에게 명령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맨스필드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문제는 조인문서에 서명이 없으면 어떤 합의도 무효라는 것이오.”
시쳇말대로 합의문에 도장이 없다면 ‘앙꼬없는 찐 빵’이라는 것이다. 꺼림칙했던 게 현실화된 셈이다. 약자에겐 사소한 것도 약점이 되어 끝내 발리게 된다. 역시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디테일의 조종간은 힘센 자가 쥐고 있다. 그것이 약자의 한계다.
“우리가 협상타결 협상문을 전단으로 만들어서 대대적으로 뿌렸습니다. 근거없이 할 수 있습니까.”
“나한테 시비하지 마시오. 나도 진심으로 괴롭소.”
“시비가 아니고 팩트를 말한 것입니다.”
애초에 폭도사령관과 굳이 그런 문건을 만들 필요가 있겠느냐는 무시 전략도 있었다. 그들과 공식문건을 교환한다면 폭도를 인정하는 셈이니, 그들 조직을 공적 기구로 인정한 것이 된다. 그래서 문서를 주고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회담은 회담인만큼 합의문서가 필요했고, 그래서 이만한 협정문이라도 가져온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서명이 무슨 필요한 증표라도 된단 말인가. 서명을 받아왔다고 해도, 폭도외 밀거래한 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휴지조각으로 소각해리면 그만이다. 성공은 성공 이유가 단 두 가지지만, 실패는 7만가지가 존재한다고 하지 않던가. 약자는 그 7만가지에 포박당하게 되어있다.
“딘 소장 각하는 대화로 항복을 받아내라고 하셨습니다. 유혈사태를 막는 것이 저나 맨스필드 군정장관이나 딘 소장 각하의 기본 뜻이 아니었습니까.”
“그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소. 다만 대표성에 의문을 표시하는 것이오. 우리가 낙관했소.”
사태는 김익창에게 책임이 돌아가는 분위기였다. 맨스필드가 엉뚱한 얘기를 했다.
“제주비행장에 착륙하려던 미군용기 C-47기가 저격을 받은 것에 대하여 딘 군정장관 각하께서 격노하셨소. 정보기관에 따르면, 인민유격대 집결지인 애월면 어도지경 샛별오름과 바리악, 조천면 선흘지경 거문오름 등에서 군용기를 향해 총알이 날아왔다는 것이오.”
또다른 사태 변화였다.
“그 문제가 사실이라면 단호히 폭도들에게 책임을 묻겠습니다. 화평회담을 깨는 중대 도발이니까요.”
“그만 두세요. 그렇잖아도 9연대장은 폭도들과 내통한다는 오해를 받고 있소. 자격 문제가 대두될지 몰라요. 그리고 무장대도 협상타결 의지가 없는 것 아니오?”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들의 공격에 대해 확인이 필요합니다. 음모가 있을 수 있습니다. 현장에 나가 진위를 가리겠습니다.”
“그만 두라고 하지 않았소?” 맨스필드가 짜증을 냈다. “군 최고 지휘관이 자체 정보를 불신하는 거요? 또한 경찰과 계속 갈등을 보일 이유가 있소?”
맨스필드는 또다시 흔들리고 있었다. 그가 덧붙였다.
“딘 소장 각하는 9연대가 사상이 불온한 장교단과 병사들이 폭도들과 내통하고 있다고 파악하고 있소. 비밀협상 자체도 그들과 사상을 공유하는 자들끼리 내통하여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보고 있소. 오민균 소령이 중심이란 첩보도 있소.”
그것은 경찰 정보가 가리키는 지점이었다. 김익창-김달삼 회담은 사적 면담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대표성과 정통성이 없다는 것이고, 격식과 절차를 무시했으니 군의 명예에 상처를 냈으며, 예비회담을 한 오민균 소령의 정체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흑막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건없이 폭도들을 사면한다는 협정문은 항복문서나 다름이 없다. 그것은 미군정과 새로 들어설 정부의 질서 유지에 큰 부담이 된다... 문제를 삼으려면 어떤 무엇도 문제가 되는 것이 강자의 논리라는 생각에 김익창은 으스스 몸을 떨었다. 정말 살 떨리는 일이었다.
“틀린 겁니까.”
그는 절망에 젖어서 물었다.
“길은 있습니다. 딘 장관 각하께서 5월 초 다시 내도하셔서 최고위 간부회의를 소집할 것입니다. 그때 조병옥 경무부장 등 경찰 수뇌부도 내도한다는 것이오. 이때 관철시키도록 노력해봅시다.”
“잘 되었습니다. 진실로 다행입니다.”
명분이 살아있으니 그때 미군정과 경찰 수뇌부를 설득하면 수고했다고 격려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제주군정장관실을 나왔다. 본능적으로 위기라는 파도가 몰려오는 느낌을 받았다. 발을 헛디뎠던지 그는 계단에서 삐끗하고 앞으로 넘어졌다. 지나가던 사람이 이상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김익창은 일순 수치심을 느끼고 일어나 제복의 흙먼지를 턴 뒤 황망히 제주도청을 빠져 나왔으나 정작 갈 곳 잃은 고아처럼 한동안 정문 앞에서 서성거렸다.
별이 지다
여운형이 암살(1947.7.19)되기 직전까지 여운형은 미 군정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미 군정 정치담당 장교인 버치 중위의 ‘버치 보고서’에 따르면(이하 경향신문 연재 중인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버치보고서’ 시리즈 중 일부 발췌.2018.4.8일자), 버치 중위는 미국의 한국 통치를 위해 1945년 가을 미군정자문위원회를 구성하면서 보수적이고 자산가이거나 친일 경력이 있는 한민당 소속 인물들을 임명할 때, 여운형도 함께 자문위원으로 위촉했다. 여운형은 미군정에 협조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건국준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국민으로부터 절대적으로 추앙받고 있는 그가 미국과의 협상에서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지만, 내심으로는 친일파가 장악한 자문위원회에 들러리를 설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여운형은 1년 후에야(1946년 가을) 미군정이 주도하는 좌우합작위원회에 좌파의 리더로 참여했다. 그러나 창당한 박헌영 남로당과의 갈등과 건강상의 이유로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미군정에서는 이런 그의 태도를 보고 미군정 노선에 반대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정치공작에 관여하고 있었던 미군정 정보팀의 링컨 대령은 경제정책을 담당하고 있었던 번스 참사관에게 보낸 문서에서 ‘여운형은 미군정의 정책으로부터 잘 도망다니고 있다’고 평가했다(1947년 4월4일자, 버치 문서 박스2).
이렇게 잘 도망다니는 여운형을 미군정은 그가 암살당하는 순간까지 붙잡으려 했고, 일부 요원은 그에게 높은 존경을 표했다. 그 이유의 하나는 그의 대중적 영향력 때문이었다. 여운형은 국민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고 있었다. 여운형을 추종하는 청년들에게 있어서 그가 좌냐 우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인기가 높았던 것은 인간적 풍모와 걸출한 외모, 거기에 항일의 중심에 서있었던 사회주의 계열의 대표적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사회주의는 국가정체성을 확보하는 데 있어서 대세였다.
1945년 10월, 중도 우파 성향의 잡지 ‘선구’가 서울 시민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조선을 이끌어갈 양심적인 지도자는 누구인가’에 대한 인물 평가에서 △여운형 33% △이승만 21% △김구 18% △박헌영 16% △김일성 9% △김규식 5% 순으로 나왔다.
1946년 미군정청이 '어떤 체제를 지향하느냐?'는 주제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사회주의에 대한 지지는 강고했다. 동아일보는 1946년 8월13일자 3면에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군정청 여론국에서는 조선 인민이 어떤 종류의 정부를 요망하는가를 관찰키 위하야 삼십항목의 설문을 열거하고 여론을 조사하였는데 설문에 반영된 민의는 다음과 같다.
문 1, 일신상의 행복을 위하야 가장 중요한 것은 어느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가. 생활안정을 실현할 기회 3,473명(41%)
나. 정치적 자유 4,669명(55%)
다. 모름니다 311명(4%)
문 2, 귀하께서 찬성하시는 일반적 정치형태는 어느 것입니까
가. 개인독재(민의와는 무관계) 219명(3%)
나. 수인독재(민의와는 무관계) 323명(4%)
다. 계급독재(타계급의 의지와는 무관계) 237명(3%)
라. 대중정치(대의정치) 7,221명(85%)
마. 모름니다 453명(5%)
문 3, 귀하의 찬성하는 것은 어느 것입니까
가. 자본주의 1,189명(14%)
나. 사회주의 6,037명(70%)
다. 공산주의 574명(7%)
라. 모름니다 653(8%)
여론조사에서 보듯 해방공간에서의 민심은 사회주의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해방 당시 문맹률이 77%에 달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민중의 여론을 그대로 반영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으나, 정치적 의사표시를 적극적으로 하는 지식인 집단이 사회를 끌어가는 주체란 점에서 이같은 조사결과는 한국 여론을 지배한다고 볼 수 있다. 또 흥미로운 대목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다른 정치체제로 구분했다는 점이다.
위에서 보듯이 여운형이 해방정국의 지도자로 민심의 지지를 받고 있었으며, 사회주의가 대세라는 것 때문에 미군정은 그를 무시할 수 없었다. 강경 좌파가 아니라 온건한 사회주의자 그가 미국에게는 필요한 인물이었다.
미군정이 여운형을 내세우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한국 내 좌파를 분열시키는 데 동원될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미군정 뿐만 아니라 일본 총독부와 소통이 가능했던 여운형을 통해 좌파를 분열시키고 강경한 입장의 공산주의자들을 고립시킬 수 있다면, 이는 소련에 우호적인 좌파의 힘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조선공산당의 영향력을 축소시키는 것이 된다.
미군정의 공작에 조선공산당과 여운형을 갈라놓는 전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여운형의 힘을 빼는 것 역시 또다른 공작의 하나였다. 여운형의 힘을 뺀다면 잘 도망다니는 그에게 계속 구애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아우 여운홍과 형 여운형을 분리시키는 공작을 펴기도 했다.
미군정이 여운형의 약점을 찾는 2단계 작업에 들어갔는데, 그것은 그의 친일행위를 찾는 일이었다. 그러나 당시 미군정이 작성한 ‘여운형 친일행위조사 최종보고서’는 “여운형이 어떤 방식으로든 한국의 절대적 독립을 위한 그의 노력과 일치하지 않는 방식으로 일본과 협력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그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여운형은 일본 항복 이후에 질서를 지키기 위해 일본과 협력했다. 항복 전에 엔도 니시하라(조선총독)는 법과 질서를 유지하고 일본인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하여 여운형과 논의했다. 여운형은 러시아인들이 서울에 오기 전에 정치범들을 석방할 것을 제안했다. 만약 러시아인들이 들어온 이후에 이들이 집단적으로 석방된다면 여운형은 그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일본인들은 그가 유혈사태를 막아줄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여운형은 폭력을 삼가고 평화를 지킬 것에 대한 라디오 연설을 몇 차례 했다. 일본인들은 그의 연설이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고 믿었다.
그런데 여운형은 일본 행정부가 생각했던 바를 따르지 않았다. 일본이 원했던 것은 평화유지위원회의 장이었고, 연합군이 올 때까지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운형은 실질적으로 정부로 여겨질 수 있는 정치적 조직을 만들었다. 이렇게 실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여운형을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 받아들였다. 경찰국장 니시히로는 여운형에게 100만엔을 주었고, 이는 평화 유지를 위해 여운형의 위원회(건국준비위원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이러한 모든 결정이 도쿄의 지시 없이 서울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여운형이 연안이나 러시아와 접촉하는 시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여운형을 공산주의자나 친러시아파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한국 민족운동을 대표하면서 반일주의자였다고 믿었다.
미 조사보고서는 마지막으로 “우리는 그가 ‘밑으로부터’ 남과 북에서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면서 “공산주의자들이 여운형의 공백이 있을 때 더 이득을 얻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리고 “‘미국의 성공을 위해 필요한 사람이라는 점이 인식되어야 한다”고도 언급했다. 그래서 그는 ‘잘 도망다니지만 여전히 중요한 존재’라고 믿었다.
이 무렵 한민당 계열이 '여운형이 일본 총독부로부터 돈받아 먹은 친일파다'라고 미군 정보부에 제보했는데, 이 조사보고서로 돈의 용처가 드러났다. 조선총독부로부터 예산지원을 받은 것은 친일파로서가 아니라 질서유지비였으며, 그렇다고 그가 그들의 뜻을 받든 것이 아니었다. 예산지원 얘기가 근거 빈약한 첩보 문건일 뿐, 신뢰할만한 것이 아니라고 평가했다.
미군정 정보팀이 그의 친일 경력 조사 후 6개월이 지난 시점인 1947년 7월19일 낮에 그는 혜화동 로터리에서 한 괴한에게 암살당했다. 온갖 음해공작과 정치테러를 열여섯 번이나 겪고도 좌우합작운동에 매진했던 여운형의 죽음으로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도, 좌우합작위원회도 모두 좌초했다.
미군정은 여운형이 어떤 인물인지 정보부 내 조사단을 꾸려서 일본 G-2사령부와 협조로 조선총독부 고위직에 있던 자들, 동조자들, 정적들을 만나 기록한 최종 조사보고서를 냈다. 미군정이 그를 의문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끌어들이도록 노력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실제로 여운형이 암살 당한 당일, 미군정에서 그에게 민정장관직을 제안했고, 여운형은 그 제안을 받아들일 것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죽음은 국내 정치세력 중 어떤 누가 자행했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해방정국에서 여운형 만큼 좌우익 모두에게 테러와 암살 위협을 받은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백의사와 백의사를 후원한 것으로 소문이 난 김구와 신익희, 그리고 이승만 추종세력이 죽였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수도경찰청장 장택상은 김두한 패거리가 죽인 것으로 알고 있을 정도였다. 장택상이 김두한에게 권총을 주면서 여운형을 혼내 주라고 했으며, 여운형이 죽자 “그렇다고 죽이라는 말은 아니었다”고 하자 김두한이 발끈하며 “나도 아니고, 나도 모른다”고 했다고 전해진다.
백의사와 김구 신익희가 배후라는 설은 암살범인 한지근이 백의사 핵심 요원인 한현우의 집에 기거했고, 1970년대 전직 백의사 요원이 자신들이 한지근과 같이 여운형 암살에 가담했으며, 일제 때 고등계 형사 출신 노덕술과 다른 경찰 간부들과 입을 맞춰 한지근한테 독박을 씌운 것이라고 증언했으나 암살 배후를 흩뜨려놓는 전략의 하나가 아닌가 하는 이유로 신빙성을 얻지는 못했다.
여운형의 아우 여운홍은 장택상과 조병옥이 사주한 것이라 말하기도 했고, 또 훗날 반공주의자들이 자의적으로 한지근은 김일성이 남파해서 박헌영의 지원을 받아 실행한 거라고 했다. 이처럼 무수한 근거들이 나왔으나 모두가 자기 정치적 이해로 구도를 만들어간 것일 뿐, 확실한 배후를 캐내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좌우의 선택을 강요받던 혼란한 시대에 중도를 걸으려고 했던 지도자 정치적 이익에 주린 세력의 밥이 되었으며, 그것은 순전히 지도자들의 암투에서 빚어진 비극이었다. 이런 가운데 제주 4.3이 터지고, 삼팔선에서는 남북간에 무력충돌이 빈발해 내전 상태에 빠져들었다. 시대 모순을 극복할 내부 역량과 철학이 빈약한 해방조국은 처절한 내전 상태에 빠져들었다.
그런 중에도 군부 내에서는 젊은 장교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민족적 자각이 싹트고 있었다. 식민지의 연장을 원하지 않는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여운형의 죽음으로 의식있는 청년장교일수록 좌절감을 맛보았다. 일본군 출신이지만 조국의 군인이라는 새로운 자각으로 나라의 간성이 되겠다는 꿈을 지녔으나 무너지고 있었다. 오민균과 김익창이 그랬다.
-외세 앞에서 친일적폐가 분단적폐로 이어지고, 끝내는 남북 대립으로 동족끼리 전쟁을 치르는 비극을 맞을 것이다. 친일기득권이 권력과 자본을 독점하고, 이념논쟁, 색깔공세로 몰아가 국민을 분열시키고 가두면서 모든 이익을 편취할 것이다...
오민균의 우려였다. 그것은 곧 현실이 되었다.
오라리, 숨겨진 진실
“단장님, 출동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상황이 매우 복잡해졌습니다.”
구대구 부단장이 단장실로 뛰어들며 보고했다. 사무적일 때, 그는 표준어를 사용했다.
“어디라구?”
“오라리입니다.”
“지금 전투중지명령 내리지 않았나? 휴전 중 아닌가?”
“저 새끼들이 깼습니다. 그래서 긴급 출동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출동명령? 어디로?”
“두 곳 다입니다.”
제주도엔 제주경찰청과 경찰비상경비토벌사령부로 조직이 이원화되어 있었다. 사진봉은 순간 불쾌했다. 명령 하달은 당연히 그에게 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댓 명 차출하라우.”
“안이하게 사태를 보아선 안됩니다. 이십명은 차출해야 합니다.”
단번에 거부 의사가 나왔다. 이 새끼 봐라. 사진봉은 구대구를 노려보았다. 지휘의 경계가 모호해져버린 것이다.
“너 왜 건방 떠네?”
“농담할 때가 아닙니다. 이십명 인솔해가겠습니다.”
그가 일방적으로 말하고 밖으로 황급히 나갔다. 사진봉은 체면이 구겨졌다. 저 자가 누군가의 빽을 믿고 설친다는 것을 그는 단박에 알았다. 사진봉이 요즘 사업 진행에 머리를 싸매고 있는 사이 구대구의 활동폭이 넓어진 것이었다.
구대구가 현지에 도착했을 때는 마을이 불타고 있었다. 먼저 온 대동청년단원들이 마을로 들어가 기물을 파괴하고 불을 놓았다. 오라리는 제주읍 남쪽으로 오리 정도 떨어져 있는 행정구역이다. 5개 마을로 구성되어 있고, 600여 호에 주민 3,000여 명이 살고 있었다. 상당히 큰 공동체였다. 작년 3.1 사건 때 관덕정 앞 발포사건에서 6명의 사망자 중 2명이 이 마을 출신임을 볼 때 사상이 불온한 동네였다. 그러니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배운 사람이 많고 일본에 나가있는 출향인사들이 많은 탓으로 민족의식이 강했다. 구대구가 면식이 있는 대동단원에게 다가가자 그가 펄쩍 뛰었다.
“빨갱이 새끼들이 경찰 가족이 밀고해서 보복을 당했다고 부인 둘을 끌고 가서 패서 그중 부인 한사람이 죽었소.”
“개새끼들!” 구대구는 덩달아 이를 뿌드득 갈았다. “이 자들이 협정을 깼고만? 지들이 도장찍어놓고 지들이 먼저 깨는 불상놈들, 그래서 빨갱이는 믿을 수 없지.”
주민들은 산으로 도망을 가서 쥐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았다. 타닥타닥 초가들 타는 냄새가 매캐하게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휘돌고 있었다. 대대적으로 산간마을이 불타는 것은 처음이었다.
“다 꼬실라버려!”
구대구는 인솔한 단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도 한 역할 해야 했다. 다시 짓붉은 화염과 시커먼 연기가 더 크게 하늘로 치솟았다. 이들이 마을을 태우고 떠나자 도망간 노인과 아녀자들이 내려와 가재도구를 수습했다. 파괴된 장독그릇을 안고 울부짖는 아녀자, 불에 타 죽은 말을 부여잡고 우는 노인이 있었다.
“엔간히들 해라, 엔간히들...”
민오름에서 마을이 불탄 모습을 지켜보던 무장자위대가 마을로 내려와 잔불을 끄기 시작했다. 마을에 폭도들이 나타났다는 첩보를 접한 경찰비상경비사령부가 다시 증원부대를 편성해 현지로 보냈다. 마을 사람들이 다시 산으로 도망쳤다. 꼭 숨바꼭질을 하는 것 같았다.
“오라리에서 충돌이 있었다고 합니다. 마을이 소각되고 양 진영에서 사상자가 많이 났다고 합니다.”
제주읍 정보파견소로부터 김익창에게 긴급보고가 들어왔다. 그는 제주읍에 파견된 특별경비부대에 있다가 금방 연대로 돌아온 길이었다. 미군 연락기를 향한 발포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고, 특별한 도발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제주군정관실에 보고한 뒤였다. 맨스필드를 납득시키는 데는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도 사실이 아니란 점에 고무되고 있었다.
맨스필드는 귀순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첩보를 받고 그 나름 작전성공에 흐뭇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것은 자기 과업이라고 만족스러워했다. 연락이 닿지 못해 한두 발 총소리가 나긴 했지만 지금까지 대체로 평온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점 서로 확인하고 안도했는데 느닷없이 오라리에서 터졌다는 것이다.
김익창 연대장은 사태파악을 위해 오민균 대대장과 정보팀 두 명을 차출했다. 달리는 쓰리쿼터 안에서 김익창이 물었다.
“대대장, 왜 이리 어수선한가. 휴전협정이 깨진 건가?”
뒷좌석에 앉아 생각을 가다듬던 오민균은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돌발상황을 예기치 않은 것은 아니지만, 평온을 유지한 가운데 휴전 프로세스가 하나하나 작동되고 있는 것에 그는 안도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사건이 터지자 뭔가 미심쩍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의구심이었다.
“맨스필드 군정관을 만나고 올 때는 이 문제가 거론되지 않았는데.. 그도 모르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맨스필드 군정장관은 혹 알고 있을지 모릅니다. 미군 전략의 하나일 수 있습니다.”
김익창이 한숨을 쉬며 응수했다.
“의심하지 말게. 나는 그렇게 생각 안해. 설사 그렇더라도 그를 우리 편으로 붙잡아야지.”
“무장자위대 진위를 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발적인 사고인지 아닌지, 즉 사소한 시비로 일어난 사고인지, 의도된 것인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모두가 과민해 있으니까 이런 때일수록 신중해야 합니다.”
“음모라면?”
“우리가 우려해온 전략이죠.”
제주읍 특별경비부대에 도착하자 미리 현장을 살피고 온 이동락 정보참모가 그들을 맞았다.
“연대장 각하, 방화사건은 무장폭도대가 저지른 것이 아니라 마을 청년들과 대청청년단원들이 부딪친 사건입니다.”
“마을 청년들이 폭도인지 아닌지 알 수 없잖나?”
“물론 경찰은 그들을 폭도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폭도들이 저항하도록 유도한 측면이 있습니다.”
“무슨 뜻이야?”
“협상을 무력화하려는 것입니다.”
그도 음모설을 말하고 있었다.
“이 중위 본인의 해석 아닌가?”
“아닙니다. 내막은 이렇습니다. 연미부락 청년이 산에 들어가있는데, 그 아비가 양식을 날라다 주었습니다. 대청원들이 알아내고 아비를 구타했고, 그러자 폭도들이 내려와서 보복극을 벌였습니다. 대청단원이 피하자 고을의 대청단원 부인과 경찰관 부인을 잡아서 폭행하다가 그중 임신부 한 사람이 죽었습니다.
김익창이 군화발로 땅바닥을 찼다.
“그렇다면 그놈들이 무장폭도가 아니고 뭔가?”
김익창은 순간 목이 조여오는 것을 느꼈다. 무장대놈들이 사고를 쳤다는 게 더 화를 돋았다. 하지만 실익도 없이 부딪쳤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방화 주범인 대청단원 박상국을 체포해 제주파견소에 감금시키고 조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술서를 받는데 경찰이 수사하겠다고 돌려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돌려주지 말라우. 분명 문제가 있다. 정보참모는 좀더 자세히 조사하고, 오민균 소령은 나와 함께 맨스필드 장관 만나러 가자.”
김익창은 소대 병력을 오라리로 출동시키고 오민균과 함께 제주군정장관실로 향했다. 그는 맨스필드에게 오라리 사건을 빠짐없이 보고했다. 맨스필드가 말했다.
“경찰은 9연대장이 폭도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다고 계속 보고를 올리고 있소. 폭도 귀순 방해공작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관찰하시오. 왜 경찰이 방해한다고 보십니까?
그도 알고 있는 것을 새삼스럽게 묻고 있었는데, 그것은 자기 확신을 확인하려는 태도로 보였다.
“귀순작업이 종료되어 폭도진압이 끝나면 경찰 지휘부와 그 추종자들의 위신이 땅에 떨어지겠지요. 김정탁이를 경찰 비상경비사령관으로 내려보내서 토벌을 벌였는데도 불구하고 폭도진압은 고사하고, 국방경비대가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니 존재감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전투에서도 별 볼 일 없고, 평화협상에서도 소외되니 체면이 말이 아닌 것입니다.”
“오민균 대대장도 마찬가지요?”
맨스필드가 오민균을 응시했다. 그러나 김익창이 대신 나서서 대답했다.
“그런 모략은 늘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소임은 다하겠습니다.”
“CIC로 가보시오. CIC 정보참모부 간부들은 지금 동화여관에 있소.”
CIC(Counter Intelligence Corps)는 8·15광복 후 주한미군의 전투부대인 24군단과 함께 국내에 들어와 첩보활동을 벌이고 있는 미군 최고 정보기관이었다. 이들은 군부 동향은 물론 국내 정치지도자에 대한 정보수집 활동을 폈다. 요원을 제 단체에 잠입시키고 정보수집활동을 펴는 범죄수사대로서 헌병대 편제 기구지만 활동은 독립적이었다. 사상범 색출, 역내 범죄, 포로심문, 군용물자매매, 성범죄, 마약, 군용물 파괴, 테러 등 다루지 않은 분야가 없었다. 그들은 우익 청년단체를 행동대로 움직였다.
두 사람은 제주 군정장관실을 나왔다. 오민균이 김익창에게 말했다.
“각하, CIC는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연대장의 체모가 있습니다.”
일개 정보부대에 제주군 최고지휘자가 들락거린다는 것은 계급장으로 보아 격에 어울려보이지 않았다.
“그게 좋겠군.”
그들은 헤어졌다. 오민균이 미군정 방첩대가 비밀사무실로 쓰고 있는 동화여관에 들어서자 정보 책임자가 조사보고서를 내보이면서 설명했다.
“오라리 방화사건은 평화협상 다음날인 4월30일 무장폭도들이 2명의 여자를 납치했고, 그중 임신부가 죽었소. 이것으로 그들이 4.29 평화협상을 파괴했소. 경찰가족을 죽이면서 협상이 유효하다고 말할 수 있소? 경찰이 그들을 체포하려는데 도망쳤소.”
그러나 그들을 무장폭도대로 볼 것이냐에 대해서는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폭도들이 뚜렷한 이유없이 백주에 만행을 저지르리라고 보지 않습니다. 그 마을은 오히려 폭도들과 유대가 깊은 마을입니다. 폭도들이 자기 마을을 파괴했다는 경찰의 주장은 근거가 희박합니다.”
“필요하면 자기 마을도 파괴하는 것 아니오? 귀하는 폭도들 주장에 동의하는 것입니까.”
“동의가 아닙니다. 합리적인 판단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청단의 책임자를 체포해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주동자를 구금해 조사중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소행이라고 믿는 건가? 귀하는 자기가 보고자 하는 것만 보는 것이 아닌가?”
CIC 책임자는 불쾌감을 표시했다. 사건의 빌미를 제공한 쪽은 무장폭도대라고 단정하고 있는데, 되려 대동단원을 체포해가다니... 이로인해 그 자신도 오해를 받고 있었다.
“늘상 하는 말이지만, 경찰의 토벌이 무서워서 산으로 들어간 양민들입니다. 이들은 대부분 친인척지간입니다. 이들이 험한 산속에서 굶주리고 헐벗고 있다면 가족이 의복과 식량을 넣어주는 것은 인지상정이지요. 이들은 그러는 가운데 좋은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처벌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엔 어떤 누구도 선량한 사람들이오.”
“추가 조사가 필요해서 우리 정보팀이 현장에 가있습니다.”
“마을 청년들이 경찰 가족을 죽인 것은 사실 아니오?”
“사실입니다.”
“그런데 왜 말이 많소?”
그 보복으로 보조경찰인 대청원이 마을 사람을 죽이고 마을에 불을 질렀다. 그래서 무장대가다시 보복에 나섰다. 자신이 당한 그 지점에서만 상황을 보면 분명 그 자신이 피해자다. 그래서 원한과 분노와 함께 보복을 당위로 삼는다. 그러는 사이 쌍방 희생만 늘어난다. 한가롭게 원인과 배경 따위를 퍼즐 맞추듯 맞춰갈 시간이 없다.
“시간을 벌기 위한 반도들의 술책에 9연대가 말려들었소. 폭도들은 전열을 재정비하여 대대적인 기습을 준비하고 있소. 정보에 따르면, 그들은 전보다 화력을 증강했소. 일본군 무기와 제주 앞바다에 수장된 무기를 도굴했소. 연대로부터 일정 무기도 노획했소. 이 때문에 귀하 지휘관들이 의심받고 있는 거요. 적과 내통하여 사태를 미루는 사이, 저들은 화력을 비축하고,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소. 우방국에게 자유와 인권, 민주적 가치를 전파하는 미국의 선한 가치를 그들이 파괴하고 있소.”
그러면서 그는 대놓고 오민균의 위아래를 훑었다. 오민균은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이들은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가치를 전파한다고 말한다. 그러니 우월적 위치에 서도 된다는 태도다. 미국이 세계경찰을 자처함에 따라 전략지역에 수십 만명의 미군을 상주시킨다. 주재국과 동맹을 강화하지만 적대 국가와 적대 세력도 존재해야 한다. 이를 위해 미국이 독점적으로 무기를 생산하고 배급하는 권한도 그래서 정당하며, 긴장과 평화를 동시에 관리할 책임도 갖는다. 2차 대전 이후 한반도가 미국의 세계전략의 주요한 지역이 되고, 그중 제주도가 피아의 실험장이 되고 있다. 미국에 의한 세계질서 유지의 시험장. 오민균은 미군 정보책임자의 오만한 태도를 보고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양측 희생을 줄이면 어떤 인사상의 불이익도 감수하겠습니다. 항간에는 9연대가 폭도들을 기만하여 폭도 전원을 귀순시켜놓고 일시에 몰살하려 한다는 유언비어가 유포되었습니다. 그래서 폭도들이 흥분해서 연대장 이하 지휘관을 암살한다는 소문도 돌았습니다. 9연대는 양쪽에서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책임자가 조그맣게 웃었으나 그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양쪽으로부터 비난받고 있다는 것은 양쪽에 동시에 불만족스러운 행동을 하고 있다는 뜻 아니겠소? 오 소령, 김창동 대위를 아오?
오민균은 흠칠 놀랐다. 이 자리에서 김창동 얘기가 나오다니, 의외였던 것이다.
“압니다. 경비대사관학교 교관으로 있을 때 만났습니다. 그의 입교를 배제시킨 적이 있습니다.”
“그런 애국장교를 배제시키다니, 왜 그랬습니까.”
오민균은 쓸데없는 얘기를 꺼냈다고 생각했으나 내친 김에 말했다.
“해방된 조국에 맞지 않은 인물입니다. 미국이 일본과 맞서 싸울 때, 그는 일본과 맞서 싸우는 조선인 독립운동자를 잡아가두었습니다.”
“당신도 일본군 출신 아니오? 일본 육군사관학교 출신이 더 일본군 정신이 투철할텐데?”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책임자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더니 다시 물었다.
“윌리엄 딘 군정장관 각하의 뜻이 무엇인 줄 아시오?”
“화평회담을 추진하라는 지시를 받아 성실히 수행했습니다.”
“전쟁은 긴박하게 움직이는 생물이오. 전략도 마찬가지요. 낡은 정보에 매달리면 사태를 오판하고, 흐름을 잘못 읽을 수가 있소.”
책임자가 말하는 뜻은 분명해졌다. 그들이 국면을 끌고 가고 있고, 결국은 강자의 의도대로 판을 이끌어간다. 현실적 힘의 실체는 미군에 있고, 현지인을 고용해 판을 키우거나 줄이는 권한도 갖고 있다. 그 자체를 모르고 움직이는 현지인들 때문에 희생은 더 강요된다.
백여 명쯤 되는 주민이 산 생활도구를 챙겨 더러는 부목에 의지한 채 절뚝거리며, 더러는 아이를 업은 채 내려오고 있었다. 이들은 9연대 병력과 연대 미고문관 드루스 대위, 미군병사 2명의 인솔 아래 대정면 비상활주로 주변에 설치된 부로(浮虜)수용소로 이동하고 있었다. 야트막한 계곡은 물이 말라붙어있고, 주변에 경작지들이 널려있었으나 난리통에 씨앗을 뿌리지 않은 탓으로 빈 땅으로 남아있었다. 이들이 밭둑을 내려가고 있을 때, 갑자기 계곡 건너편 쪽에서 총알이 날아왔다. 무장한 경찰 십여 명이 하산자를 향해 총을 쏘고 있었다.
“모두들 계곡으로 대피하라!”
드루스 대위가 외치자 귀순자들이 숨어들긴 했으나 그중 두 사람이 총을 맞고 고꾸라졌다. 경찰의 기습 난사는 멎지 않았다. 또 몇 명이 쓰러지자 하산자들이 계곡을 타고 급히 다시 산으로 올라가버렸다.
“멈춰라! 여긴 9연대 병력이다!”
드루스 대위는 병사들에게 응사를 명하면서 소리질렀다. 잠시 주춤해진 사이 병력이 달려가 경찰지휘관을 생포했다. 경찰 병력도 사상자가 두세 명이 났다. 일부는 도주했다. 아군끼리 교전한 셈이었다. 그런데 어설펐다. 교전다운 교전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경찰이 총질하다 도망가버린 것도 이상했다. 드루스 대위는 생포한 경찰지휘관을 심문했다.
“하산자를 공격한 이유가 뭔가. 미군과 9연대 병력이 귀순자를 인솔해 하산하고 있었잖나.”
“명령을 따랐을 뿐이오.”
“누구 명령인가.”
“상부의 명령이오.”
드루스 대위는 발포지휘자의 자백 내용을 보고서로 작성해 맨스필드 군정장관을 찾았다.
“경찰이 귀순자와 미군과 경비대 인솔장병을 공격할 때 이상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싸우던 경찰이 숨고, 귀순자들은 다시 산으로 도망갔습니다.”
“경찰 비상경비사령관을 불러라.”
맨스필드는 부관을 불러 명령했다. 김정탁 경비사령관이 비상전화로 연결되었다.
“하산자를 공격하면 군법위반이란 거 모르시오?”
그러나 김정탁은 달리 말했다.
“공산폭도들을 왜 보호합니까.”
그의 역공이 맨스필드를 격분시켰다.
“당신 정신이 있나? 드루스 대위 인솔 아래 귀순자들이 내려오고 있잖았소? 휴전 시간 아니냔 말이오! 당장 들어오시오. 가만 두지 않겠소.”
“지금은 바빠서 못갑니다. 내일 가겠습니다.”
그리고 그가 다음날 제주군정관실에 들어와서 당당하게 말했다.
“딘 소장 각하께서는 경무부와 함께 폭도회담을 인정하지 않았소이다.”
“헛소리 말라. 이건 딘 장군과 내 지시에 따라 이루어진 회담이고, 휴전이다. 그 후속조치로 귀순자들이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총격 지시자가 누구냐?”
“폭도들이 경찰을 공격했습니다. 우발적 공격이 아닙니다. 지금은 엄연히 교전중입니다.”
경찰과 국방경비대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책동이 분명했다. 이런 일련의 행태가 최고위층의 묵인이 아니면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러니 김정탁이 저렇게 배짱있게 나오는 것이다. 혼란스런 상황이다. 미군정 고위층 생각이 다르고, 맨스필드 생각이 다르고, 9연대 생각이 다르고, 또 경찰 지휘부의 생각이 다르다.
경찰은 동족을 적으로 몰아 자기 권력 획득의 발판으로 삼는다. 하나라도 더 꺼꾸려뜨려야 하고, 하나라도 더 제거해야 한다. 숫자가 많을수록 전공을 세우는 공훈이 된다. 맨스필드는 애써 부정했던 그동안의 정보 보고들이 사실이라고 받아들였다. 경찰은 폭동진압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과오를 은폐하기 위해 폭동을 조장, 확대하고, 전과를 올리는 수단으로 삼으며, 따라서 귀순 방해공작이 노골화되어가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맨스필드 군정장관 각하, 공산폭도들이 경찰을 중상 모략하는 것을 살펴보기 바랍니다. 그들을 제거하려니까 그자들이 경찰을 타도 대상으로 삼습니다. 폭도들을 방치할 수 없지요. 치안을 유지하려는 경찰의 조치가 불가피했다는 것을 이해하시오. 어설픈 애민이 사태를 그르칩니다. 더 큰 희생을 가져옵니다. 빨리 제압해야 희생을 줄입니다.”
“휴전 중이니 지켜보세요. 그들을 자극하면 복잡해집니다.”
“폭도가 자극을 받건 안받건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폭도 사정을 보아가며 직무를 수행할 수 없습니다. 그자들은 국법을 어기고 있습니다. 드루스 대위에게 총격을 가한 경찰들도 사실은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제주도 출신 경찰들입니다. 이 자들은 4.3폭동이 발생하자 경찰의 중화기무기를 탈취해 탈영해서 폭도대에 가담하여 현재까지도 경찰 복장과 무기를 가지고 민가를 습격하고 있습니다.”
“어떻다고?”
도대체 뒤죽박죽이고, 퍼즐이 맞지 않았다. 그들이 하산하는 귀순자에게 총질을 가한다? 스스로 휴전을 깬다? 김정탁이 너무 당당해서 맨스필드는 그 자신 사태를 잘못 파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보았으나 앞뒤가 맞지 않았다. 김정탁이 말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드루스 대위를 습격했다가 생포된 경찰도 사건발생 전에는 제주경찰서 본부에 근무하던 자입니다.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자로서 부하들을 이끌고 산으로 도망간 놈이오. 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그 자가 어젯밤 경찰에서 조사를 받던 중 감시 소홀을 틈타서 자살해버렸다는 점입니다.”
“뭐라고?”
그는 온 몸의 힘이 쏘옥 빠져나가는 무력감을 느꼈다.
“못믿겠습니까?”
김정탁은 맨스필드의 유약함을 알고 있었다.
“맨스필드 군정장관께서 나를 신뢰하지 않는 것은 공산폭도들이 원하는 일이요. 무장폭도들은 미군정과 경찰과 경비대를 이간시켜 경찰을 제주도에서 쫓아내고 제주도에 공산주의자들로 구성된 인민공화국을 수립하려 하는 것이 목적이오. 당신들은 지금 그들의 덫에 걸려든 산짐승 신세요. 우리 경찰의 보고를 신뢰하는 것만이 공산주의자를 타도하는 길입니다.”
“나가시오!”
맨스필드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김정탁이 차갑게 말했다.
“5월 5일 딘장군과 조병옥 경무부장이 내도합니다.”
“나가시오!”
조작, 의도된 기획, 학살공작, 반공 빙자로 얻는 착취기득권... 벽안의 눈이지만, 이러한 것들이 눈에 훤히 보이고 있었다. 그렇다고 폭도들에 대한 확신이 서는 것도 아니었다. 그의 머리가 복잡한 만큼 제주 상황은 정리가 되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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