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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일하다가 죽는 노동자만 6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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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일하다가 죽는 노동자만 6명

[창비 주간 논평] '노동천시' 시대, 전태일과 김용균

11월 13일은 전태일 열사 49주기다. 49년 전 '300만 근로자'의 시대에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했던 사람 전태일, 그는 평화시장 재단사였다.

당시 평화시장에는 2만 명의 노동자가 있었고, 그들의 평균 나이는 열여덟 살이었다. 그리고 시다들은 대부분 열다섯 전후의 소녀들이었다. 그 소녀들이 제대로 못 먹고 못 자며 하루 열네시간, 많게는 열여섯시간의 중노동에 시달리는 걸 본 전태일은 그들에게 풀빵을 사서 나눠주었다. 그러고는 차비가 없어서 퇴근 뒤 창동까지 12킬로미터를 걸어 다녔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었으니, 걸핏하면 파출소에서 밤을 새웠다. 그런 초인적인 삶을 살았던 그는 노동자들을 존중하고, 복지가 실현되는 사업장을 만들고자 했으나 초등학교 졸업장도 없는 그에게 투자자가 나설 리 만무했다.

전태일은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처참한 노동 현실을 알리기 위해서 노동부를 찾고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지만 모두 허사였다. "기준법을 지키라"며 근로기준법을 끌어안고 죽어갔던 그가 마지막 했던 말은 "배가 고프다"였다. 자신도 배고프면서 자기 차비를 털어서 어린 시다들에게 풀빵을 나눠주었던 전태일. 그로 인해 한국의 노동운동, 민주화운동의 새 길이 열렸다.

그렇지만 전태일 49주기를 맞은 오늘날 노동 현실은 얼마나 나아졌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비정규직의 피눈물을 닦아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법을 만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비정규직법은 노무현 정부의 상처"라고 잘못을 인정하면서 '노동존중' 시대를 열겠다고 다짐했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지난해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기념일에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은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죽어갔다. 그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장례를 미루면서까지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하는 일에 매달렸고, 그런 노력 끝에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었다. 그렇지만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에 '위험 업무 자체에 대한 외주 금지'는 빠졌다. '김용균 없는 김용균 법'이라고 비판받는 이유다.

김용균 사망 이후 11개월, 산재 노동자 사망 사건을 집계하는 '노동건강연대'는 홈페이지에 이런 말로 월보고를 시작한다.

"2019년 대한민국에선 매일 평균 3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사고를 당해 사망합니다. 직업병까지 합한다면 하루 평균 5~6명의 노동자가 사망합니다. 알려지지 않고 집계되지 않는 죽음의 통계까지 감안한다면, 일로 인한 사망은 그 수를 예상하기가 어렵습니다."

언론에 보도되는 노동자의 죽음은 대체로 3분의 1 정도다. 나머지 3분의 2는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고 사라진다. 노동자들의 죽음은 얼마나 하찮은지 그 보상금도 안전설비나 안전장치를 작동하는 데 드는 비용보다 엄청나게 싸고, 원청 사업자는 아예 그에 대한 책임에서 면제되어 있다. 하청에 재하청에 또 재하청을 거쳐 내려간 '그 업체'의 노동자가 죽은 일이라며 외면한다. 2인 1조 근무 안전수칙을 어겨 김용균을 사망에 이르게 한 협력업체는 '한국경영인증원'이라는 곳에서 주는 경영안전대상을 3년 연속으로 수상했다. 3년 동안 돈 6000만 원을 홍보비 명목으로 지불한 대가였다.

지난 5일 국가인권위원회는 '간접고용 노동자 노동인권 증진을 위한 제도개선 권고'를 발표하면서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위험의 외주화 개선, 위장도급(불법파견) 근절, 사내하청 노동자 노동 3권 보장을 위한 제도를 개선하라고 했다. 이런 소리가 국회와 정부에 얼마나 크게 들릴지 모르겠다. 지난 9일 열린 노동자대회에서 민주노총은 노동법 개악 저지를 주요 구호로 외쳤다. ILO 핵심협약 비준이 미뤄지면서, 도리어 노동법이 개악되는 걸 막아야 하는 다급한 상황이 다시 연출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문제는 중요한 인권 문제다. 국제인권기준에 비춰 봐도 우리 사회의 노동인권 문제는 이미 위험 수위를 넘은 지 오래다. 노동자의 안전이 비용 문제로 치부되고, 노동자의 죽음을 돈으로 보상하는 게 안전설비와 안전장치 가동보다 훨씬 싸게 먹히는 현실이 바뀌지 않은 한 매일 여섯 명이 죽어나가는 노동 현실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소설가 김훈은 이를 "책임은 아래로 내려가서 소멸하고 이윤은 위로 올라가서 쌓인다", "지금 한국 사회는 신분이 세습되는 고대국가"라고 일갈했다.(☞ 관련 기사 : <한겨레> 5월 14일 자 '[왜냐면] 아, 목숨이 낙엽처럼')

지금 고속도로 톨게이트 노동자는 대법원 판결을 받고도 직고용을 외치며 두 달 넘게 한국도로공사 김천 본사에서 점거농성을 벌인다. 땅바닥을 온몸으로 기기까지 한다. 그런 노동자들에게 도로공사는 1억 원 넘는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있다. 노조를 파괴하고, 노동자들을 죽이는 법과 제도는 여전하다. 강남역 8번 출구 앞 30미터 CCTV 철탑에서 고공농성하는 김용희씨는 150일 넘게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 죽고, 다치고, 하루아침에 해고되는 노동 현실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노동존중' 시대를 약속했던 대통령은 '재벌존중' 시대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나마 다행인 일들이 있다. 부산지하철노조가 안전 분야의 부족한 인력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도록 자신들의 몫을 내놓았다. 전 민주노총 위원장 한상균씨 주도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설립을 지원하는 '권유하다'라는 단체가 만들어졌다. 위험의 외주화를 막겠다는 취지로 '김용균재단'이 설립되었다. 민주노총이 '작은 사업장 노동권 보장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리고 다가오는 17일에는 전태일과 같은 처지에 있는 봉제노동자들의 권익을 실현하기 위한 '봉제인공제회'가 창립된다.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있던 노동자들과 손을 잡는 사회연대 전략이 가동되기 시작한 것이다.

전태일의 '풀빵 정신'은 연대정신이다. 자본과 국가가 만들어놓은 노동의 위계와 서열을 끊어내고 연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한 명이라도 살려야 한다는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 씨의 간절한 외침이 전태일정신이다. 내년에는 우리 사회가 '노동천시' 사회에서 '노동존중' 사회로 조금이라도 이동할 수 있을까. 50년 전의 전태일 앞에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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