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치러진 대만 대선 결과 천수이벤(陳水扁) 총통이 2만9천여표차라는 박빙의 승부 끝에 11대 총통으로 당선됐으나 렌잔(連戰) 주석은 선거결과 불복종을 선언하고 법원은 투표함 봉인을 명령하는 등 대만 정국은 극도의 혼란으로 치닫고 있다.
선거일 하루 전에 터진 천 총통, 뤼슈렌(呂秀蓮) 부총통의 총격사건이 상당한 영향을 발휘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는 이번 대선에 대해 렌 주석 측은 총격사건과 부정선거에 대한 진상조사와 재검표를 요구하고 나섰고 야당 지지자들은 이에 동조해 대만 각지역에서 시위를 벌이는 등 대만 사회는 극심한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천 총통 2만9천여표차로 렌잔 주석에 가까스로 승리, 무효표 33만여표**
대만 중앙선관위원회 황스청(黃石城) 위원장은 20일 밤 이날 실시된 "제11대 대만 총통-부총통 선거에서 민진당의 천수이벤 총통과 뤼슈렌 부총통이 6백47만1천9백70표를 얻어 당선됐다"고 발표했다.
천-뤼 후보에 맞서 국민당-친민당 연합 후보로 나선 렌잔 주석과 쏭추위(宋楚瑜) 부총통 후보는 막판까지 전례가 없는 치열한 경합을 벌였지만 6백44만2천4백52표를 얻어 49.89%의 득표율에 그쳐 천 후보측의 50.11%에 2만9천여표차로 석패했다.
한편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무효표도 33만7천297표에 달해 양 후보가 격차보다도 11배나 높은 무효표가 나왔다. 투표율은 80.28%를 기록했다.
예상밖의 많은 무효표가 나온 이유에 대해 이번 선거에서 민진당-국민당 양 정당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이 투표 기권을 촉구하는 운동을 벌인 데 따른 결과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으나 이번에 나온 무효표 수는 지난 2000년 대선에 비해서도 3배나 많은 숫자다.
선거 개표는 20일 오후 4시(현지시간)부터 시작됐는데 양 후보간 득표율이 0.22%에 불과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전례가 드문 박빙의 격전을 벌였으며 개표 이후 시간대별로 총 4차례나 순위가 바뀌기도 했다.
***천 총통, "대만 민주주의의 승리", 부결된 국민투표엔 아쉬움**
11 대 총통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천 총통은 이날 민진당 선거본부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이번 선거 승리는 대만 민주주의와 대만 국민들의 승리"라며 "대만의 모든 민족의 단합을 위해 노력하고 개혁을 지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선거는 끝났으며 비합리적이고 비민주적인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며 "다른 생각과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제부터 우리는 관용을 통해 조화롭고 단합된 새로운 대만을 건설하기 위해 서로를 껴안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는 "전세계가 대만의 민주주의를 지켜보고 있다"며 "렌잔 주석과 쏭추위 부총통 후보에게 경의를 표하고 국민당과 친민당의 비판과 제안에 대해서도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날 최초로 실시됐으나 부결된 국민투표에 대해서도 "이번에 처음 실시된 국민투표는 우리 역사에 새로운 페이지를 쓴 것이며 민주주의에 있어 위대한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라면서도 "일부 국민들은 이번 국민투표의 민주적 가치와 의미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 국민투표 결과는 대만 국민들 다수의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고 인정했다.
***렌 주석 "선거 불공정, 선거무효 소송", 법원 투표함 봉인명령**
하지만 대만 정국은 천 총통의 말과는 달리 극심한 혼돈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국민당의 렌잔 주석 등 야당은 선거 전날 발생한 천 총통 총격 사건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며 불공정 선거로 규정하고 선거 불복을 선언했으며 대만 법원은 투표함 봉인 명령을 내렸다.
렌잔 주석은 이날 중앙선관위의 선거결과 최종 발표전 타이베이 중앙선거운동본부에서 지지자들을 앞에 두고 한 연설을 통해 "많은 의혹이 있으며 선거무효 소송을 내겠다"고 밝혔다고 대만 일간 중광신문 등 대만 언론들이 보도했다.
렌 주석은 "이번 선거는 불공정하고 재검표와 총격사건에 대한 조사를 원한다"며 "양 후보간 아주 작은 득표율 차이는 선거전날 발생한 총격사건에 영향을 받았고 이날 사건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아직도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렌-쏭 후보는 선거다음날인 21일 새벽까지 지지자들과 함께 하며 새벽에는 지지자들과 총통부앞에서 대만 국가를 부르며 대만 국기 의례를 치루기도 했다.
렌 후보는 이날 오후 타이베이 총통부 앞 광장에서 열린 부정선거 규탄 항의 집회에도 참석해 재차 봉인된 투표함의 즉각 재검표를 요구하고 외국 의사를 포함한 국제적이고도 독립적인 의료진을 꾸려 총격사건 진상조사 조사단을 구성할 것을 촉구했다. 쏭추위 부총통후보도 이날 "가짜 민주가 아닌 진짜 민주를, 부정선거가 아닌 공정선거를 원한다"며 이번 선거에 대해 부정선거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대만 고등법원도 21일 새벽 렌-쏭 측 변호사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전국 법원에 1만3천여개 투표함의 봉인 명령을 내렸다. 고등법원 대변인은 이날 발표를 통해 "렌잔 주석이 요구하는 것과 같은 재개표 명령을 내린 것은 아니지만 투표함은 지금 당장 봉인돼야 한다"고 밝혔다.
***야당 지지자 이틀내내 전국적 항의시위. 대만국민 상당수 불공정 인식**
천-쏭 후보의 선거불복 선언으로 대만각지에서는 20일 밤 이후 21일 하루 종일 렌-쏭 후보를 지지하는 국민들이 격렬한 항의시위를 벌였다.
대만 TVBS 방송 등 외신에 따르면 대만 수도인 타이베이에서는 1만여 군중들은 전국적인 재검표를 요구하며 연좌시위를 벌였고 대만 중부 타이중에서도 렌-쏭 지지자들은 지방검찰청 앞에서 선거부정행위 조사와 투표함 봉인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다 바리케이트를 넘어 청사내로 진입하기도 했다.
대만 남부인 타이난 지역에서도 2,3백명의 군중들이 지방검찰청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였다. 이밖에도 지방 각지에서는 렌-쏭 지지자들이 총통부앞 시위에 동참하기 위해 상경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사태가 확산될 기미마저 보이고 있다.
야당 지지자 이외에도 대만 여론도 이번 대선에 대해 불공평하지 않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는 상황이다. 대만 일간지인 중시전자보(中時電子報)가 21일 CNN 방송의 긴급여론조사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대만국민들은 이번 대선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CNN 방송이 대만 중앙선관위가 천수이벤 총통의 승리를 선언하고 렌잔 주석이 선거결과 무효를 주장한 이후 4만명의 대만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번 대선이 공평하다고 응답한 사람은 총 1만6천8백17명으로 42%에 불과한 반면 총 58%의 응답자들인 2만2천7백73명은 불공평하다고 대답했다.
***총격사건과 쏟아진 무효표에 대한 의문 강력 제기**
렌-쏭 후보측이 선거결과에 상당한 의문을 품고 있는 이유는 우선 총격 사건에 대한 의문이다. 선거전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경합을 벌이기는 했으나 렌 후보가 앞서나간 조사결과를 의식한 것으로 분석가들은 총격사건이 유권자들의 동정심을 유발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현재 경찰과 사건이 발생한 지역인 타이난의 지방정부는 총격 범인에 대해 보상금을 걸어놓고 있으나 아직까지 어떠한 용의자도 체포되지 않았으며 언론에는 범행 동기나 진전된 조사보고서조차 발표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이날 사건으로 취해진 국가보안조치로 약 20만여명의 경찰과 공무원이 투표를 할 수 없었다고 국민당측은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 국민당-친민당 측이 선거 불공정과 재검표를 요구하고 있는 이유는 양 후보 사이의 격차보다 11배나 많이 나온 무효표에 대한 의문이다. 대만 일간지 중앙사가 타이베이시 선거관리 위원회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야당 성향이 강한 타이베이에서만 무효표가 3만7백89장이 나와 지난 2000년 대선때의 1만2천여장에 비해 상당히 많은 무효표가 나왔다. 야당측은 또 무효표 가운데 상당수가 심하게 훼손됐다는 점에도 의문을 강력히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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