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정부에 2020년 미국 대선 개입을 요청했다는 내부 고발이 나왔다. 미 민주당의 대통령 탄핵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트럼프는 미 대통령 가운데 네 번째로 탄핵 대상이 됐다. 내부 고발자가 백악관에 파견된 미 중앙정보국(CIA)요원임이 알려졌고 그가 작성한 고발문이 대통령의 위법 사실을 정확하게 적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트럼프는 이미 2016년 대선과 관련해 촉발된 ‘러시아 스캔들’에도 휘말린 적 있다. 당시는 '재직 중인 대통령은 수사할 수 없다'는 법규에 따라 직격탄을 피했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 내부 고발자가 수개월 동안 백악관 내부 심층직에서 다루던 관련 정보를 입수해 퍼즐을 맞추는 식으로 치밀하게 준비했고 백악관 직원 일부가 이를 은폐하려 했다는 사실까지 폭로했다는 점에서 이전과 상황이 다르다. 탄핵 조사를 선언한 미 민주당 하원 소속 의원 대부분과 함께 공화당 의원 일부도 사실 규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트럼프는 특유의 직설적 어법으로 반격을 취하고 있지만, '내부 고발 행위는 스파이'라고 매도한 사실까지 미 언론에 보도되면서 점점 더 궁지에 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2020년 11월 미 대선이 본격화한 시점에서 발생한 이번 사태가 어떻게 진행될지 속단키는 어렵다. 미 민주당 하원 지도부 등은 '러시아 스캔들' 때부터 최근까지 트럼프 탄핵 조치에 따른 역풍을 우려해 정면 대결을 극력 회피하는 태도를 보여 왔다. 미 상원을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한 태도였지만, 이번의 경우 확연히 달랐다. 미 민주당은 '우크라 의혹'이 트럼프 탄핵으로 이어지지 못할 경우 내년 대선은 물 건너간다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우려되는데도 탄핵 강행을 선언했다. 이는 정치 정의 확립보다 선거 승리와 같은 당리당략을 최우선시 하던 미 민주당 지도부의 종래의 태도에 비춰볼 때 대단히 이례적이다.
미 민주당이 실보다 득이 클 것이라는 정치적 계산을 한 결과 트럼프 탄핵 조치 발동을 선언한 만큼, 우크라 의혹은 단기간에 결말이 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특히 내부 고발자가 정보에 정통한 전문가인 만큼, 그의 폭로 내용은 러시아 스캔들 특검 조사 결과보다 훨씬 강력한 폭발력을 지닌 것으로 <워싱턴 포스트> 등 미 언론은 분석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이후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는 것은 그가 지난 수일 동안 보인 격렬한 반응에서도 읽힌다.
우크라 의혹을 맞은 트럼프가 한반도 비핵화를 외교적 성공 사례로 자신의 재선에 이용하려 했다는 점에서 한국도 이 사태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가 한반도 비핵화를 성공시켜 재선 승리는 물론 노벨 평화상까지 노렸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탄핵 가능성이라는 최악의 사태에 직면한 트럼프가 앞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제대로 추진할 수 있을까.
모든 협상에는 상대가 있다. 이번 사태를 맞이한 북한의 입장도 중요하다. 클린턴 정부 때인 2000년 북미는 수교 직전까지 갔지만, 그 해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당선됨에 따라 이는 물거품이 됐다. 진전 가능성이 컸던 북미 관계는 원위치 되고 말았다.
트럼프는 오바마 대통령 시절 만들어진 국내외 정책을 뒤집거나 백지화하는 조치를 지속적으로 취해왔다. 유사한 사태는 2020년 대선 이후에도 벌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만약 트럼프가 대선 전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대통령 권한의 범위 안에서 타결한다 해도, 내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경우 그 이후가 보장되지 않는다. 북한이 우크라 의혹 발생에 따른 트럼프 탄핵 움직임의 추이를 바라보면서 회담 일정을 저울질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우크라 의혹의 불똥은 한국에도 미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뉴욕으로 달려가 북미정상회담 지지와 지원을 강조하면서 가까운 시일 안에 북미 협상 재개를 희망했다. 그러나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26일 9월 안에 북미 실무 협상이 시작되지 못한다고 밝혔고, 김계관 북 외무성 고문도 27일 북미 실무협상의 난항을 거론하며 '트럼프의 용단'을 언급했다. 향후 북미관계가 교착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북한이 최근 남한에 보여준 차가운 대응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문재인 정부가 공을 들인 한반도 비핵화는 내년 총선까지 진전이 없을 가능성이 커졌다.
문 대통령은 조국 장관 문제로 자중지란이 발생한 것과 같은 국면에 처해 있다. 여권은 검찰과 언론의 책임을 묻고 있으나, 대통령 지지도 약화는 정권 내부의 힘겨루기 또는 소모전과 같은 현상이 주원인이라는 특성이 강하다. 정권의 위기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부터 온다는 말이 떠오르는 양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 의혹’의 발생과 한반도 비핵화 추진 동력의 약화 가능성이 발생한 것이다. 청와대가 동시다발적으로 닥친 악재들을 어떤 식으로 대처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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